#도서협찬
차인표의 『인어 사냥』은 1장을 마무리 하기 전부터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강력하여 몰입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표면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과 생명의 존엄을 따져 묻는 윤리 소설이다. 전환점은 분명하다. “인어 기름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서사는 한 가지 질문으로 좁혀진다. 가족을 살리려는 마음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작가는 긴 설명 대신 인물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끝까지 따라가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 해보게 해준다.
이 책의 줄거리는 두 갈래로 흘러간다. 1902년 강원도 통천,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덕무와 딸 영실이, 막내 아들 영득이가 있다. 그리고 훨씬 이전 시대에 바다의 비밀을 마주친 소년.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듯 연결되면서,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탐욕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픈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끝내 금단의 바다로 들어간다. 한편 훨씬 이전 시대의 소년은 우연히 마주친 낯선 존재를 지켜 주려다, 그 선택 탓에 마을의 공포와 욕망의 표적이 되어 그 반발을 정면으로 맞는다. 이렇게 두 시간의 이야기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선의가 욕망으로, 연민이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이 시대를 달리해 반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중 구조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린다는 사실을, 두 서사가 한 결로 모여 또렷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초반의 몇 문장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하얀 찔레꽃 언덕에 어머니를 묻었다. “사람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던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땅속에 묻힌 엄마를 보며 서럽게 울던 영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실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묻는다. “어머이는 왜 나무를 좋아해?” 어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나무는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아. 태어난 땅에서 일생을 살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바람이 불면 지나갈 때까지 바람을 맞고, 눈이 내리면 녹을 때까지 가지 위에 소복하게 담아 둔단다. 태어난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살아 내는 거야.”
어쩌면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살리기 위해 내민 손이, 어느 순간 다른 생명을 해치는 손이 되지 않으려면,
어디에서 멈춰야 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공 영감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는 강치 가죽으로 돈을 벌며 바다를 함부로 대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 ‘바다의 벌’ 같은 일이 닥치자, 어부들 사이에서는 그럴 만했다는 말이 돈다. 공 영감이 강치로 이익을 취하던 모습은 현실의 역사와도 겹친다. 동해의 강치(독도강치)는 실제로 20세기 초 일본 오키 제도 어민들의 대량 남획과 가죽·기름 채취로 급격히 줄었고, 결국 20세기 중반 멸종했다. 소설은 이 사실을 일본이 강치를 끔찍하게 대량 학살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피바다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는 시대의 무력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소설은 한 사람 안에도 여러 얼굴이 있음을 보여준다. 탐욕적인 인물도 때로 주저하고, 헌신적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선택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쉽게 단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아이의 시선이 세계를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낼 존재’로 돌려놓는다. 나는 이 시선이 이야기의 심장이라고 느꼈다. 책은 내내 두 마음을 비교하게 한다. 하나는 ‘살리려는 욕망’, 다른 하나는 ‘살아 있게 두려는 사랑’. 작가는 이 차이를 몇몇 장면으로 차분히 보여 주며, 끝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욕망·자연·인간을 한자리에서 묻는다. 상업 판타지에서의 흔한 회귀·환생 같은 도식은 거의 쓰지 않고, 한국 설화의 결과 실제 역사·생태의 그늘을 차근차근 쌓아 미지의 생명을 불러낸다. 쫓고 쫓기는 장면도 과한 자극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침묵과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게 한다.
욕망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타자와 공존한다는 건 무엇인가. 내 선택의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책은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문장으로, 배우 출신 작가라는 선입견을 금세 잊게 만든다. 읽는 동안 독도 강치 멸종이나 바다 생태 파괴 같은 현실이 슬며시 겹쳐지지만, 작가는 설명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몇 개의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줘 독자가 스스로 지금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이 소설은 생명의 가치를 되묻게 하고, 욕망이 어떻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끝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인어 사냥』은 오래된 신화로 오늘의 윤리를 다시 묻는다. 어둠을 밀어내는 건 소유의 힘이 아니라 멈춤과 놓아줌의 태도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그 절제를, 소설은 마지막까지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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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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