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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나온 여자인데요 - - ROTC에서 육군 대위로 전역하기까지 MZ 여군의 군대 이야기
신나라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1월
평점 :

사는 동안 군대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나?
곰곰이 떠올려 봐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군대 이야기는 늘 주변에 있었지만, 대개는 남자들의 이야기였고 나는 그 세계를 듣는 쪽이었다.
그래서 『군대 나온 여자인데요』라는 제목을 봤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여군이 직접 쓴 군대 이야기라니.
게다가 나도 한때 경찰이나 군인을 꿈꿨던 사람이었기에,
가지 못한 길은 정리된 듯하면서도 한쪽 구석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여군의 삶이라는, 내가 한 번쯤 상상해본 세계를 가까이에서 확인해보는 기회처럼 느껴졌다.
책의 초반에는 저자가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게 된 배경이 나온다.
2010년도에 있었던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다.
그 시절, 주변 남자 선배들과 친구들이 하나둘 군 입대를 준비하고, 사회 전체가 불안과 긴장 속에 흔들리던 분위기 속에서 저자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거창한 애국심이나 영웅 서사가 아니라, “뭔가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감정이 더 크게 자리한다. 나는 이 대목이 좋는데, 어떤 큰 명분이 아니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선택이야말로,
우리가 현실에서 가장 자주 맞닥뜨리는 결심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겁과 망설임 속에서 한 걸음을 내딛고, 그 작은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꾸곤 한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ROTC 제도와 그 안에서 여성 후보생이 마주한 현실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이대 ROTC 나온 여자야’라는 말이 한때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지나 현실화 되었다.
여성 학군단이 생기고, 여성이 장교 후보생이 되는 길이 열리는 흐름 속에서, 저자는 가능해진 길에 올라탄다. 다만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곧 편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선발 과정에서부터 체력, 필기, 면접, 훈련의 기준이 놓이고, 여군 후보생은 지역별 인원 제한이 있어 더 경쟁이 치열하다는 현실도 드러난다. 여기서 ‘기회의 문이 열렸다’는 말이 얼마나 쉽게 “이제 다 공평해졌잖아”라는 말로 바뀌어 버리는지 떠올리게 된다. 문이 열렸다는 사실과 그 문 앞에서 누군가가 계속 밀려나는 일이 사라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저자는 후보생 시절을 지나 장교로 임관하며 군대라는 조직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그 과정이 인상적인 건,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 의미를 억지로 덧붙여 미화하지도 않고, 자극적으로 폭로하지도 않는다. 그냥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써 내려간다.
그 담담함 덕분에 ‘여군’이라는 수식어보다 ‘군인’이라는 역할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상명하복과 위계, 책임과 눈치, 말 한마디를 하기 전에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가늠하게 되는 분위기까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래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는데도 낯설지 않았다.
조직이 달라도 비슷한 공기가 있다. 군대의 위계가 회사의 위계로, 군대의 눈치가 직장인의 자기검열로 모양만 바꾼 채 이어지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지점은, 사람이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을 조용히 기록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누군가를 고발하거나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그 순간 어떤 기분이었는지,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지, 이후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담담하게 남긴다.
왕따와 가스라이팅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담담함이 얼마나 아픈지 안다. 폭력은 늘 소리부터 큰 게 아니다. 오히려 “별일 아니지?”라는 말로 포장된 작은 무시가 사람을 오래 갉아먹는다. 그리고 조직은 그 작은 무시를 문화로 만들어 버릴 때가 있다.
읽다 보면 “죽지 않고 제대하는 것이 목표였다”는 문장에서 멈칫하게 된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조직 안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장을 군대만의 이야기로만 읽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누군가는 “오늘만 넘기자”를 되뇌며 하루를 버티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게 목표가 되는 순간, 사람은 이미 크게 다친 상태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여군이라서 힘든 게 아니라, 군인이라서 힘들다는 말을 남긴다.
이 한 문장에 군 생활의 무게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여군에게만 따라붙는 시선이 없는 건 아니다.
‘엄마 같아라’, ‘누나 같아라’ 같은 말들은 친근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어느 순간 사람을 정해진 역할 안에 가두기도 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도 회사에서 무심코 ‘여직원’이라는 말을 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부르는 말 하나가 그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결국 가능성을 줄이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이 힘든 이야기만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저자는 군 생활 속에서도 숨 쉴 틈 같은 순간들을 기록한다.
창밖으로 내린천을 바라보던 시간, 진심으로 걱정해 주던 전우들, 같이 훈련을 버텨낸 동기들, 누군가 건네준 작은 친절 같은 장면들이다. 그 장면들은 군대라는 조직이 아니라 그 안의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나는 여기서 매번 비슷한 결론에 도착한다. 제도는 필요하지만, 사람을 다시 걷게 만드는 건 결국 한 사람의 태도다. “괜찮냐”는 한마디가 누군가의 생존이 되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군 생활의 끝이 다가오면서 저자는 전역 이후의 삶을 마주한다.
전역을 결심하고 나서는 미래가 갑자기 캄캄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군에 남아 더 진급하고 싶다는 상상도 했고, 훈육관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 파병을 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은 흐르고, 국방부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저자는 전역하게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년 4개월.
그 시간 동안 성별 때문에, 계급 때문에 겪었던 서러움과 억울함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더 오래 남는 기억은 의외로 괜찮았던 일들, 대화들, 웃음들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이 참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사람은 상처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건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있었던 웃음, 대화, 누군가에게 잠시 기대던 순간들이 결국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이어지는 에필로그의 제목은 ‘내가 더 사랑했다’다. 저자는 스무 살 무렵부터 군대 문화에 익숙한 채로 살아왔고(아버지가 직업군인이었기에), 울타리가 익숙하고 편했다고 말한다. 전역한 날엔 허전함에 눈물을 흘렸고, 사회에 던져진 뒤에는 하루하루 새로운 의욕을 만들어야 했다. 퇴직금을 까먹으며 지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을 통해 새로운 방향(공무원 시험 준비 등)을 모색하기도 한다. “전역하지 않았더라면 사회생활이 이렇게 자유롭고 즐겁다는 걸 몰랐을 것 같다”는 고백과 함께, 저자는 군이 남긴 상처도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군을 미워하지 않는다. 군이 나를 사랑한 것보다 내가 더 군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사랑했던 시간과 아팠던 시간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두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다음으로 걸어 나가는 일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군대 나온 여자인데요』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 그 조건이 무너질 때 개인이 얼마나 쉽게 고립되는지, 그리고 그 고립을 끊어내는 건 제도나 구호가 아니라 결국 곁에서 손을 잡아주는 한 사람의 진심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의 메시지는 세 가지로 남는다.
첫째, 여군이든 남군이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과 선택으로 그 자리에 선 사람이라는 것.
둘째, 성희롱과 모욕, 배제는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구조의 문제이며 침묵을 강요하는 문화가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
셋째, 그럼에도 삶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고 누군가는 끝까지 버텨 제자리를 찾아 나온다는 것.
이 기록은 누군가에게는 구조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군대라는 특정 공간을 넘어, 우리가 속한 어떤 조직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묻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무엇은 끝내 참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준다.
책을 읽고 나면 문장 하나가 남는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그다음은 더 잘 살아가려는 선택이 남는다는 것.
나는 그 문장을 이렇게 바꿔 마음에 적어 두었다.
“끝까지 버텨낸 사람에게 필요한 건 칭찬이 아니라,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해줄 조건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응원은, “조금만 더 참아”라고 등을 떠미는 말이 아니라, 정말 힘들 때는 빠져나올 수 있도록 출구를 함께 마련해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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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향기 서포터즈 15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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