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마에서 바다까지 (오디오북, 신곡 음원 수록)
정중식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9월
평점 :

도마 위에 올라선 물고기 한 마리.
칼날은 번뜩이고, 시선은 차갑다.
이 이야기는 물고기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을 버티는 우리의 모습과 자꾸 겹쳐진다.
『도마에서 바다까지』는 상처 입은 한 물고기가 도마를 벗어나 바다로 향하는 여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물고기의 모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은유적으로 담겨 있다.
도마 위는 당장의 현실이고, 바다는 포기할 수 없는 미래다.
저자 정중식은 이 두 지점 사이를 오가는 생의 몸부림을 음악과 글, 그림으로 엮어 한 권에 담아냈다.
그는 이 책을 ‘음악동화’라고 부른다. 직접 만든 노래가 글과 그림을 만나 하나의 장면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정중식은 인디 뮤지션이자 음악가로 먼저 알려진 인물이다. 2015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7’에 출연해 TOP4에 오르며 ‘중식이 밴드’로 이름을 알렸다. 현실의 삶을 솔직하게 노래하고, 일상의 결핍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 공감을 얻어 왔다. 그런 정체성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는 노래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정리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음악으로만 표현했다면 미처 지나쳤을 감정과 순간들을 훨씬 더 다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책의 <여는 글>에서 ‘도마’는 삶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무대 위 도마 위, 그 위에서 물고기는 춤을 춘다. 날 선 회칼과 번뜩이는 칼날은 관중의 눈빛과 닮아 있고, 그 위에 선 존재는 매 순간 아찔함 속에서 몸을 움직인다.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공존하는 자리다. 그곳에서 즐기기란 쉽지 않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 “도마 위에 오르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도마는 누군가의 시선과 평가 속에 그대로 노출되는 자리다.
그렇다면 『도마에서 바다까지』에서 저자가 말하는 도마 역시, 삶이 판단받고 시험대에 오르는 현실을 뜻하는 게 아닐까. “칼날이 관중의 눈빛과 닮아 있다”는 문장은 그 의미를 분명히 한다.
칼날은 생존의 압박이고, 관중의 시선은 결과를 요구하는 눈빛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도마 위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물고기가 생존을 위해 버텨야 하는 자리,
즉 당장의 현실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서도 쉽게 내려올 수 없고, 벗어나기도 어려운 자리다.
우리는 그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티기 위해, 혹은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그럼에도 물고기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물고기는 절망과 상처를 안은 채 더 큰 물,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진다.
그 도약은 여유에서 나온 선택이 아니라, 그 자리에 더는 머물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결단이다.
바다는 도피처가 아니라, 숨을 돌리고 다시 살아가기 위한 방향이다.
상처 난 몸 그대로라도, 다시 물로 돌아가려는 선택이다.
그리고 중반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더욱 깊어진다.
떠내려가는 물고기 앞에 새가 등장하고, 새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궁창에서 살아있는 것은 너와 나뿐이구나…”
이 한마디를 계기로 이야기는 결을 바꾼다. 단순히 떠내려가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아직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이후 새, 고양이, 큰 쥐와의 대화는 같은 질문을 서로 다른 언어로 반복한다. 이렇게까지 찢어지고 부러진 상태에서도, 왜 끝내 살아가려 하는가.
물고기는 물살에 휩쓸리고,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며 바위에 부딪혀 몸이 깨지고 찢어진다.
분노를 쏟아내며 “차라리 끝내버려라” 같은 말까지 내뱉지만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흘러가고, 부딪히고, 떠밀리면서도 존재는 이어진다.
그리고 통증이 다시 느껴지고, 배고픔과 갈증이 찾아오는 순간, 물고기는 깨닫는다.
아직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건 결국 다시 움직이게 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말해주는 핵심은 강한 의지가 아니다.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어서 버티는 게 아니라, 아프고 배고프고 아직 느낄 수 있으니 몸이 먼저 움직인다는 것이다. 도마를 벗어나려는 물고기의 여정은 멋진 결심의 결과라기보다, 상처 입은 상태에서도 계속 반응하며 움직이게 되는 삶의 모습에 가깝다. 이 책은 삶을 잘 선택해서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흔들려도 몸이 멈추지 않는 한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의지와 무관하게 떠밀리며, 쉽게 상처 입는 현실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 속 삶은 종종 시궁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핵심은 분명하다. 삶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살아 있는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는 사실이다.
이 메시지가 더 크게 남는 이유는, 희망이나 긍정을 앞세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로 대신 지금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짚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위로라기보다 현실을 똑바로 확인하게 만든다.
추천사에서 말했듯, 이 책의 미학은 ‘결핍의 블랙홀을 채워주는 즐거운 불편’에 있다.
현실적 피폐 속에서도 고함 대신 휘파람을 불게 만드는 태도, 초라한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견디는 자세가 이 책 전반에 흐른다.
저자는 자신의 결핍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결핍을 그대로 꺼내 쓰고, 노래하고, 그려서 보여준다.
이 태도는 독자에게 어떤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살아온 한 사람의 기록을 내밀 뿐인데, 그 기록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 상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떤 물살에 떠밀려 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결핍이 단순한 부족함이 아니라,
삶을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책 곳곳에는 노래 가사와 음악, 영상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QR코드가 실려 있어 읽는 경험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추천사에서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언급한 ‘블루스’ 역시 이 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블루스가 고통에서 출발했지만 신음으로 끝나지 않았듯, 저자 역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되 “괜찮아질 거야!” 같은 막연한 긍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현실의 무게와 해학 사이를 오가는 불협화음 같은 진실이 담겨 있고, 그 진실은 어떤 순간에는 통쾌하게, 어떤 순간에는 조용한 위로로 남는다.
후반에는 저자의 일기장 형식의 글도 등장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생이 변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문장은 평범하지만 날카롭다. 아무리 두렵고 불확실해도 결국은 움직여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말은, 도마 위에서 바다로 향했던 물고기의 이야기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도마에서 바다까지』는 잘 정돈된 해답을 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읽는 어느 순간에는 불편함이 따라오기도 하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살아 있음의 증표로 남는다. 도마 위에서 춤추던 물고기가 결국 몸을 던져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그 순간처럼, 이 책은 불안과 절박함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도 끝내 앞으로 가려는 마음을 오래도록 우리 안에 남긴다.
ㅡ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힘찬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무대 위 도마 위, 그 위에서 춤 추는 물고기 ㅡ 날 선 회칼과 번뜩이는 칼날이 관중의 눈빛과 닮아있다. 매 순간이 아찔하다. 그 위에서 즐기기란 쉽지 않다. 설렘과 두려움,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의 마음일까? 무대 위에서도, 그 길로 향하는 길목에서도, 그 작은 무대에서 떨어져 더 큰물에서 놀기를 희망했다. 도마 위에서 춤 추다가 물고기는 몸을 던져 뛰어내렸다.
202409 중식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