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홍 지음 / 부크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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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문장이 길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망설임이 너무 익숙해서였다.

‘행복할 거야’라고 말해 놓고도 바로 뒤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라고 붙이는 마음.

딱 그 정도의 거리감으로 나는 요즘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 이야기가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조용히 옆에 앉아 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읽는 내내 느낀 건, 이 책이 어떤 결론을 급하게 꺼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무조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도 않고, 마음먹으면 다 된다는 식으로 등을 세게 밀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가 왜 자꾸 멈칫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조심스럽게 만드는지 그 이유를 먼저 바라본다.

그래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왜 이걸 이렇게까지 참고 있었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책이 내 마음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다시 보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책 속 이야기들은 대단한 사건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라서, 나도 이런 날 많았는데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 좋았다. 특별한 일이 있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니라,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에도 분명히 무게가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삶이 거창한 순간들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담담한 문장들이 계속 상기시킨다.

중간중간 마음에 콕 박히는 말들이 있었다.

특히 “우리는 다 알면서도 못 한다”는 식의 결을 가진 문장들은 괜히 뜨끔하게 만들었다.

늘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생활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채였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시작을 너무 크게 잡아서라고 말해 주는 쪽에 가깝다.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시작하려다 보니, 결국 시작을 미루게 된다.

그러고는 “왜 나는 이것도 못 하지?” 하면서 나 자신을 더 몰아붙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자주 반복하던 그 흐름이 떠올라서 공감이 되기도 했다.

관계에 대한 부분에서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잘해주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오히려 말이 거칠어지거나 기준이 높아지는 순간이 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 정도는 알아주겠지’ 하면서 함부로 굴게 되는 날도 있고.

이 책은 그런 지점을 정확히 건드린다.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걸 하라는 말보다, 상처가 되는 말을 줄이는 게 먼저라는 식이다. 칭찬을 쌓는 것보다 비난을 참고, 배려에 조건을 붙이기보다 상대가 편안해질 수 있는 거리를 남겨두는 것. 그런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교훈처럼 들리지 않고, 실제로 내가 해봤던 실수들 위에 조용히 얹히는 느낌이라 오래 남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 책이 ‘혼자 단단해지는 삶’을 멋지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버티는 힘을 의지력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누군가의 존재가 만들어 주는 여백을 중요하게 다룬다.

힘든 날에 대단한 해결책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주는 한 사람만 있었어도 견딜 수 있었던 순간들.

그런 장면들이 떠올라서 책을 덮고도 한참 생각이 이어졌다.

이 책의 구성도 글이 길지 않아서, 어느 날은 몇 장만 읽고 덮어도 충분했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긴 글을 따라갈 힘이 없을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럴 때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필요할 때 다시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읽고 나서 남은 생각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는 늘 나 자신에게만 유독 엄격했고, 그 엄격함을 성실함이라고 착각해왔다.

그런데 성실함이란 이름으로 나를 계속 조여 오면,

결국 남는 건 지친 마음뿐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조용히 보여줬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잘해내는 것보다 오늘을 무사히 지내왔다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 책은 무언가를 대단히 바꿔주지 않는다. 대신 내 하루에 붙어 있던 불필요한 힘을 조금 풀어준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얼마나 자주 나를 몰아세웠는지,

얼마나 자주 스스로에게 허락을 미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엔, 내 생활을 통째로 고치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오늘만큼은 내 마음을 조금 덜 다그쳐 보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그 정도 변화면 충분하다고, 이 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같다.


'부크럼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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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 - 우리 삶에 사랑과 연결 그리고 관계가 필요한 뇌과학적 이유
벤 라인 지음, 고현석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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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가 자연스러운 가치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이상하지 않다.

『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는 바로 이 익숙한 풍경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정말 인간은 혼자여도 괜찮도록 만들어졌을까?

이 책의 저자는 뇌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뇌가 애초에 ‘사회적 연결’을 전제로 설계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외로움을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감정쯤으로 여기지만, 뇌는 외로움을 전혀 다르게 처리한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뇌가 보내는 위험 신호다.

배고픔이 몸을 살리기 위한 신호이듯, 외로움은 다시 사람 쪽으로 돌아오라는 생존 경고다.

이 책에 소개된 실험 하나가 인상 깊다. 불안한 공간을 피해 안전한 곳에 머물던 쥐가, 다른 쥐가 있는 위험한 공간을 향해 움직이는 실험이다. 쥐는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상호작용을 선택했다.

이 실험은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체 전반이 ‘연결’을 보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뇌가 생존을 위해 붙잡는 방향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인류 역사에서도 고립은 가장 가혹한 벌이었다. 독방 감금이 육체적 고문보다 더 큰 고통을 준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현대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사회적 고립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도하게 분비시키고, 염증 반응을 높이며 심혈관 질환과 우울증 위험을 키운다.

혼자가 편하다는 느낌 뒤에, 뇌는 ‘안전하지 않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가 왜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아지는지도 설명한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웃고 공감할 때, 뇌에서는 도파민·옥시토신·세로토닌 같은 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들은 안정감과 만족감을 만들어 낸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즐거워서 이 물질이 나오는 게 아니라,

뇌가 ‘살아남기 좋은 행동’을 했다고 판단해 보상을 주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점 더 고립을 선택한다.

스마트폰과 SNS는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표정·목소리·몸짓 같은 중요한 신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뇌는 정보를 주고받는 것보다 ‘함께 존재하는 느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메시지는 많아도 마음은 비어 있을 수 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인간관계를 무조건 늘리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향성과 외향성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어떤 성향이든 연결 없이 건강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고독은 쉼이 될 수 있지만, 고립은 뇌를 서서히 지치게 만든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 거창하지 않다.

한 달에 한두 번 오프라인 만남을 갖는 것,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친절과 감사 표현을 자주 하는 것.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나 짧은 대화조차 뇌에는 긍정적인 신호가 된다.

친절과 감사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뇌에 ‘지금은 안전하다’고 알려주는 방법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

관계는 나를 소모시키는 일만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는 구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혼자가 편하다고 느낄 때조차, 뇌는 여전히 연결을 기다리고 있다.

『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는 이렇게 말하는 책이다.

우리는 혼자 살아남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사람과 연결될 때, 가장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더퀘스트 출판사의 오퀘스트라 2기'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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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202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황승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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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라는 제목을 보고 있으니, 밭농사와는 또 어떤 사연이 얽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귀농 이야기일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가족 이야기나 사람 이야기가 가득할 것 같은 책이었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그저 ‘시골에서 농사짓는 가족의 일상’ 정도를 떠올렸는데,

이 책은 80살이 넘은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며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좀 더 가까워지는 과정과,

행복한 일상에 대해 알려주고, 일상의 경험으로 삶에서 깨달은 바를 알려 주는 이야기다.

“정 붙이면 어디든 고향인겨. 재미나지 뭘.”

이 말은 저자가 부모님께 군산으로 이사해서 우리 같이 살면서, 밭도 조금 일구면 어떨까하고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 나왔다. 오래 살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면 오히려 외롭고 적적해질 거라는 오빠의 걱정도 있었고, 그 마음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고향을 떠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그 걱정을 툭 내려놓게 하듯, 정만 붙이면 어디든 고향이 된다고 말했다.

“재미나지 뭘.” 하고 덧붙이는 그 한마디가, 이사도 새 시작도 겁내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이어지는 문장들에서 아버지는 ‘늙음’도 비슷한 방식으로 말한다. 늙음이란 관념이고, 노인이냐 아니냐는 연금 탈 때 말고는 사실 의미가 없다고. 중요한 건 오늘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내일 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는지라는 것이다. 그 말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이를 숫자로만 재단하던 내 기준이 조금 흔들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이 이야기에서 늘 먼저 길을 내는 사람처럼 보인다. 망설임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걱정하기 전에 할 수 있는 걸 챙겨두는 사람. 그래서 ‘엄마 아빠의 특별한 귀농’은 말로만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현실이 되었고, 결국 우리는 땅을 사기로 마음을 모은다.

마트에서 햇반이나 사던 저자가 스스로 땅을 다 사다니, 그 말 한마디에 스스로도 놀란 설렘을 숨기지 못한다.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룬 것 같고, 안 될 것도 같았지만 달려드니 또 되는 게 신기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가 된 셈이라며, 마르크스 얘기까지 꺼내는 대목에서는 기분이 묘해진다. 이제는 부모님 주택을 팔아 그림 같은 집을 지을 거라고, 엄마 아빠의 소중한 꿈을 이루어 드린 것 같아 뿌듯했다고도 적는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다. 이 선택의 중심에는 늘 아버지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군산으로 내려올 결심을 하고 나서 아버지는 오빠에게 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가족이 있고 잘 벌어 먹고 살지만, 네 동생은 혼자서 저렇게 자주 아프고 하니 나랑 네 엄마가 내려가서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건 해줄라 헌다.” 그리고 “내 비록 늙었어도 부모로서 저 혼자 먹고 살아갈 가장 편한 길이 뭔지를 가서 해놔야 하지 않겄냐”라고. 결국 텃밭은 텃밭이 아니었다. ‘텃밭을 가장한 과년한 딸 노후대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람들이 던지는 “참, 효녀네”라는 칭찬이 부끄러워진다.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몸’의 차이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일이 없으면 몸이 굳어버려 못 쓴다며 늘 적당한 노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아빠에게, 밭일은 어쩌면 소일거리일지 모른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그 소일거리조차 고된 노동이 된다. 같은 밭, 같은 일인데도 몸이 다르면 일이 달라진다. 그래서 ‘사이보그 가족’이라는 제목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보청기와 임플란트, 철 같은 보조 장치를 달고 살아가는 몸들. 완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몸들이다.

밭에서는 내가 생각보다 훨씬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자주 확인한다. 요즘은 검색하면 다 나온다지만, 현실에서는 포털 지식이 쓸모없을 때가 생긴다. 정보 공급자와 수급자 사이에 깊고 넓은 상식의 차이가 있고, 세상은 ‘같은 언어 다른 생각’이라는 함정투성이이기 때문이다. 밭 앞에 서면 나도 딱 그런 모습이 된다. 평생 직장생활하고 은퇴한 남성이 사회에 나오면 초등학생이나 마찬가지라더니, 내가 그랬다. 그래도 또 하나 배운다. 몰라도, 서툴러도, 살아가며 배우면 된다는 것을.

이장님을 찾아 시골 마을 골목길을 헤매던 날에는, 뜻밖에도 내가 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저 골목 귀퉁이쯤에서 두리번거리던 내가 서 있었다. 내 것이었던 적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 오래된, 나에게도 있었나 싶은 잊고 있었던 나의 동심.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생긴다.

“그때 못 찾은 보물 말이야. 걱정 마. 항상 네가 보물이었어. 너 꽤 괜찮게 살았거든.” 밭으로 내려온 길이 단지 이사나 귀농의 길이 아니라, 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여행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밭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밭농사도 다르지 않았다. 병원 드나드느라 밭에 조금 덜 다녀간 것이 이렇게 큰 표시가 날 줄이야.

흙은, 땅은, 농사는 진짜 거짓말을 안 한다. 완벽하게 정직하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도 있다. 일 시키는 직장 상사도 없고 지긋지긋한 야근도 없다. 땅은 내가 땀 흘린 만큼의 먹거리를 내어준다.

작물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상추만 해도 청상추, 적상추, 잎이 너풀거리는 꽃상추가 있고, 우리 밭의 청상추는 초록초록하고 조직이 얇아 야들야들해서 어지간한 화초보다도 이쁘다고 말하게 된다. 파종 방법이 작물마다 다 다르다는 사실도 신기하다. 시금치는 흩어 뿌리고, 고구마는 줄기로 심고, 마늘은 통마늘 알로 심는다. 옥수수도 옥수수알로, 땅콩도 땅콩 알로, 감자는 통감자를 조각 내 싹 난 곳이 위로 가게 심는다. 특히 감자나 마늘처럼 이게 먹으면 음식이고 심으면 종자가 되는 순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죽은 것 같은 것이 어떻게 땅속에 들어가서 싹을 틔울까.

그저 음식 재료로만 보이던 것들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니, 우리 영장류들이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농사가 늘 따뜻한 일만은 아니다. 농사라는 게 식물을 다루는 일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고라니도 쥐도 생각할 일이다. 생명을 기르면서도 생명을 내치기도 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건 결국 좋은 것만 택하는 일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까지 함께 감당하는 일이라는 걸 배운다.

이 책은 여기서 땅이라는 존재를 더 크게 묻는다. 땅에 주인이 있고, 그것을 돈 주고 사고판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도 납득하기 어렵다. 토지는 공기처럼 애초에 있는 것인데, 그 소유권만으로 생산의 대가를 엄청나게 가져가는 것이 정당한가. 전기, 수도, 도로 같은 공공재보다 더 초 공공재가 있다면 인간이 창조하지 않은 공기와 땅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아도,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렇게 많이 가져도 되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도나 욕망만큼 도덕과 만족도 중요한 가치가 아니냐고, 화자는 계속 스스로에게 묻는다. 순진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질문이다.

이야기는 다시 가족으로 돌아온다. 공장이 불에 타 가산이 기울었을 때도, 전염병이 돌아 닭과 돼지를 모두 살처분해야 했을 때도, 아빠는 꿋꿋이 버텨냈다. 일터에서 생 손가락 두 개를 잃고도 “손톱 덜 깎아서 좋지. 뭐~”라고 말하던 사람. “바쁘면 좋은 거여.”라고 말하는 이유도, 결국은 언제든 자기 앞가림은 할 줄 알고 남에게 신세는 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활신조 때문이었다. 한편 엄마와의 대화에서는 보청기라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면 누구라도 지치고, 목소리가 커지고, 결국 짜증이 난다. 잘못은 내 빠른 말과 신호 없이 본론부터 나와버리는 대화법인데도, 별수 없이 엄마에게 실망을 흘려보내고 마는 나. 그 생각이 고약해서 나 자신에게도 실망한다. 그래서 다시 다짐한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자, 엄마의 얼굴과 입을 보고 말하자, 그리고 감사하자. “엄마, 내가 더 잘할게. 엄마를 답답해해서 오늘도 미안해.”

후반부로 가면, 혼자 사는 삶과 관계에 대한 고민도 이어진다. 누군가의 ‘가족의 탄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상실’일 수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관계를 범주화하고, 선택과 집중을 고민하고, 진한 우정보다 느슨한 연결을 선호하게 된다. 취향을 기반으로 한 관계의 힘을 믿고, 예비 무연고자—비혼 독거인—가 서로를 준가족의 울타리에 담을 방법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고양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존재의 체온. 그 체온이, 밭이 땀 흘린 만큼만 정직하게 내어주던 먹거리처럼, 조용히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가 끝에 가서 조용히 남기는 말은 분명하다.

삶은 완벽해질 수 없고, 가족은 늘 복잡하며, 몸은 쉽게 고장 난다.

그래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일 하고 싶은 것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이다.흙처럼 정직하게 사람답게 살아보려는 이 기록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푸른향기 서포터즈15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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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거 같아? 엄마는 인생을 뭐라고 생각해?"
"인생이 뭐가 있니? 목숨 붙었으니 사는 거지."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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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 만화 금방울전 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5
고윤 지음 / 윌북주니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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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울전』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조선 후기 세책방 문화 속에서 탄생한 인기 소설이다. 오늘날의 만화 카페나 소설 대여점과 비슷한 세책방에서 독자들은 더 자극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원했고, 이 작품은 그러한 요구에 맞춰 전국의 재미있는 이야기 요소들을 모아 만들어졌다. 부모와의 이별, 수많은 시련, 괴물 퇴치, 공주와의 만남, 사랑과 혼인까지 모두 담긴, 말 그대로 당대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총집합된 이야기였다. 게다가 판본이 여러 가지여서, 어떤 결말에서는 주인공이 하늘로 올라가고 어떤 결말에서는 현실에 남는 등, 독자들이 결말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 또한 컸다.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각자의 해석과 기대를 허용하는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이미 이 작품은 열린 서사에 가까웠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주인공, 금령과 해룡이 있다. 금령은 사람이 아닌 ‘방울’에서 태어난 신비한 존재로, 겉으로는 해룡을 돕는 조력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이야기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다. 직접 앞에 나서 싸우기보다는 상황을 읽고 판단하며, 지혜와 책임감으로 위기를 돌파한다. 이는 힘보다 선택과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인물 설정이기도 하다. 반면 해룡은 ‘바다의 용’이라는 이름과 달리 삶의 시작부터 고난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부모와 헤어지고 도적 장삼에게 거두어지지만, 그의 아내 변씨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이런 시련들은 해룡을 무너뜨리기보다는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된다. 『금방울전』은 해룡을 통해 조선 후기 독자들이 열광했던 ‘시련을 견디며 점점 강해지는 영웅’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장삼과 변씨 같은 인물들은 단순한 악역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혈연 중심 사회와 가부장적 가족 제도 속에서 생겨나는 불안과 폭력을 상징하는 존재로, 특히 변씨는 개인의 악이라기보다 당시 사회 구조가 만들어 낸 인물처럼 읽힌다. 그래서 『금방울전』의 갈등은 선과 악의 단순한 대립을 넘어, 조선 후기 사회가 안고 있던 불안과 균열을 함께 드러낸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오락성과 함께 현실을 비추는 기능도 동시에 수행한다.

해룡이 괴물 금돼지를 물리친 뒤 만나는 금선공주 역시 중요한 인물이다. 공주와의 혼인은 겉보기에는 성공과 행복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작품은 결혼 이후의 삶이 결코 편안하지 않다는 점도 함께 보여 준다. 왕실의 일원이 된 해룡은 자유를 잃고, 전쟁에 나서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금방울전』은 ‘결혼=행복’이라는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 삶이 특정 지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흔들리고 선택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고전 소설의 대표적인 재미 요소들이 촘촘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신적인 존재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적강 설정, 변신을 통해 성장 단계를 드러내는 구조, 계모 설화를 바탕으로 한 가족 갈등, 지하 세계의 마귀를 물리치는 대적 퇴치 장면까지, 여러 고전 서사의 장점들이 한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자를 교훈으로 몰아가기보다, 이야기에 먼저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이 만화는 고전의 재미만 살려 두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읽는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중간중간 낯선 표현이나 어려운 어휘는 뜻을 짚어 주는 방식으로 이해를 돕는다. ‘원흉’, ‘추포하다’, ‘세평’, ‘긍휼히’, ‘치하하다’, ‘부마도위’, ‘적장’, ‘전멸하다’, ‘순무어사’처럼 고전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일상에서는 낯선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고, ‘오비이락(烏飛梨落)’ 같은 사자성어도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풀어 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서에서 끝나지 않고,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어휘 감각까지 넓어지게 만든다. 고전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내용’보다 ‘언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만화는 그 진입장벽을 부드럽게 낮춰 준다.

금령이 왜 하필 ‘방울’로 태어났는지도 중요한 해석의 지점이다. 방울은 예부터 제사나 의식, 무속, 불교에서 신성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귀신을 쫓고, 신의 힘을 빌리며, 깨달음을 일깨우는 상징이 바로 방울이다. 불교의 금강령 역시 그러한 의미를 지닌다. 금령이 방울로 태어났다는 설정은, 이 인물이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신과 인간, 현실과 비현실을 잇는 매개자임을 상징한다.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방향을 비추고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금령의 역할은 더욱 또렷해진다.

이야기 구조 또한 의미심장하다. 금령과 해룡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수많은 사건을 겪고, 불행과 행운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이는 삶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으며, 굴곡 속에서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특히 금령이 금돼지에게 잡혀 먹히는 장면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해룡을 성장시키기 위한 선택이자 이야기의 균형을 위한 희생이다. 이 장면을 통해 『금방울전』은 영웅이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역할과 선택이 맞물려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다.

결국 『금방울전』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영웅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지며, 고난은 벌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고, 행복과 불행은 어느 한쪽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태도로 삶을 건너가느냐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과 맥락은 책의 마지막에 실린 「미요의 신비한 고전썰」을 통해 한 번 더 정리된다. 이 코너는 『금방울전』을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의 독서 문화와 사회, 그리고 오늘날에도 유효한 삶의 질문을 품은 이야기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만화는 고전을 쉽게 풀어낸 데서 그치지 않고, 왜 지금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금방울전』은 과거의 이야기를 빌려, 지금 우리의 삶과 태도를 조용히 되묻는 고전이다.

'윌북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실 해룡과 금령은 특별해서 저랑 무슨 상관인가 싶었거든요.
하지만 계속되는 어려움 앞에서도 걱정만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의지와 용기로 부딪치며 성장하는 두 사람이 멋졌어요.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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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 만화 사씨남정기 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4
해랑 지음 / 윌북주니어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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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사이에서 말 한마디가 엉뚱하게 전달되고, 그 뒤로는 뭘 해도 오해가 풀리지 않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단톡방에서 내 말만 자꾸 나쁘게 받아들여지거나, 내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커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라는 한마디로 해명조차 막혀버리는 순간 말이다. 회사나 모임에서도 누군가가 먼저 색안경을 씌우면, 그다음부터는 평소와 똑같이 행동해도 “역시 저 사람은 그래”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억울해서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더 변명처럼 들리고, 결국 다수의 분위기가 한 사람을 조용히 밀어내 버린다.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사씨남정기』가 생각보다 깊게 와 닿을 거라 믿는다. 이 이야기는 악한 사람 한 명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사실보다 분위기가 앞서 진실이 왜곡되는 순간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사씨남정기의 줄거리를 짧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정실부인 사씨(사정옥)는 바르고 단정한 사람이다.

남편 유연수의 집안을 묵묵히 돌보며, 자기 자리를 지켜 온 인물이다.

하지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첩을 들이게 되고,

교씨(교채란)가 들어오면서 집안의 균형은 서서히 무너진다.

교씨는 사랑과 권력을 혼자 차지하려고, 사씨의 말과 행동을 ‘조금씩’ 비틀어 퍼뜨린다.

평범한 말은 무례로, 작은 실수는 악의로, 침묵은 죄로 바꿔 놓는 식이다.

그 조각들이 쌓이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서서히 돌아선다.

처음에는 설마 싶던 일들이 쌓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씨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의심부터 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로 진실은 묻힌다.

결국 사씨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몰려 집에서 쫓겨나 남쪽으로 보내진다.

더 잔인한 장면은, 교씨가 자기 아이의 죽음마저 사씨의 탓으로 돌리는 대목이다.

유연수 역시 그 거짓을 바로 보지 못하고 판단을 미루다,

가정과 자신을 모두 무너뜨리는 선택을 하고 만다.

이 만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이 복잡한 사건을 어려운 고전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으로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씨는 단순히 착해서 참는 인물이 아니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기 마음의 중심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유연수의 뒤늦은 후회를 따라가다 보면, 믿는다는 건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남는다.

『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시리즈답게, 이 이야기는 현실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친구들과의 오해로 마음이 무너진 아이 미요가 고전책방을 통해

사씨남정기의 세계로 들어가 답을 찾아가는 설정 덕분에,

이 고전은 그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이야기가 된다.

책 마지막에 실린 ‘미요의 신비한 고전 썰’ 코너는 이 이야기를 한 번 더 깊게 정리해 주는 부분이다.

이 코너에서는 『사씨남정기』를 쓴 김만중의 삶을 간단히 소개한다.

억울한 정치 싸움으로 남쪽에 유배된 김만중은,

직접 말할 수 없었던 현실의 문제를 소설 속 이야기로 옮겼다.

그래서 사씨의 남쪽 추방은 단지 소설 속 설정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현실과 겹쳐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고전 썰’은 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사씨는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았을까,

왜 유연수는 그렇게 쉽게 거짓을 믿었을까.

그 답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정실과 첩의 위계가 분명했던 사회 구조와

권력을 가진 사람의 판단이 곧 진실이 되던 시대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사씨의 침묵은 약함이 아니라, 그 시대에서 자신의 결백을 지키는 방식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덧붙인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 보면, 『사씨남정기』가 전하려는 말은 분명하다.

선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언제나 믿음을 얻는 것은 아니고, 진실은 종종 사람들의 분위기에 가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해와 침묵의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의 중심을 붙들고 있다면, 끝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진실도 어느 순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이 만화는 사씨를 그저 불쌍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으로 보여 준다.

누군가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쉽게 증명할 수 없는 진실을 조급해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의 중심을 지켜 내는 태도. 그 모습이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읽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실이 언제 드러날지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는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모두가 등을 돌린 것처럼 느껴질 때, 나마저 나를 의심해 버리면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니까.

아마 이런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오해받고, 고립되고, 믿음을 잃는 순간을 반복해서 겪는다. 『사씨남정기』는 그 반복되는 마음의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 내며, 그럼에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래된 고전이면서도, 지금 읽어도 여전히 나의 이야기처럼 남는다.

'윌북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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