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 만화 사씨남정기 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4
해랑 지음 / 윌북주니어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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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사이에서 말 한마디가 엉뚱하게 전달되고, 그 뒤로는 뭘 해도 오해가 풀리지 않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단톡방에서 내 말만 자꾸 나쁘게 받아들여지거나, 내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커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라는 한마디로 해명조차 막혀버리는 순간 말이다. 회사나 모임에서도 누군가가 먼저 색안경을 씌우면, 그다음부터는 평소와 똑같이 행동해도 “역시 저 사람은 그래”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억울해서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더 변명처럼 들리고, 결국 다수의 분위기가 한 사람을 조용히 밀어내 버린다.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사씨남정기』가 생각보다 깊게 와 닿을 거라 믿는다. 이 이야기는 악한 사람 한 명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사실보다 분위기가 앞서 진실이 왜곡되는 순간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사씨남정기의 줄거리를 짧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정실부인 사씨(사정옥)는 바르고 단정한 사람이다.

남편 유연수의 집안을 묵묵히 돌보며, 자기 자리를 지켜 온 인물이다.

하지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첩을 들이게 되고,

교씨(교채란)가 들어오면서 집안의 균형은 서서히 무너진다.

교씨는 사랑과 권력을 혼자 차지하려고, 사씨의 말과 행동을 ‘조금씩’ 비틀어 퍼뜨린다.

평범한 말은 무례로, 작은 실수는 악의로, 침묵은 죄로 바꿔 놓는 식이다.

그 조각들이 쌓이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서서히 돌아선다.

처음에는 설마 싶던 일들이 쌓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씨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의심부터 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로 진실은 묻힌다.

결국 사씨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몰려 집에서 쫓겨나 남쪽으로 보내진다.

더 잔인한 장면은, 교씨가 자기 아이의 죽음마저 사씨의 탓으로 돌리는 대목이다.

유연수 역시 그 거짓을 바로 보지 못하고 판단을 미루다,

가정과 자신을 모두 무너뜨리는 선택을 하고 만다.

이 만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이 복잡한 사건을 어려운 고전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으로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씨는 단순히 착해서 참는 인물이 아니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기 마음의 중심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유연수의 뒤늦은 후회를 따라가다 보면, 믿는다는 건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남는다.

『미요의 신비한 고전책방』 시리즈답게, 이 이야기는 현실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친구들과의 오해로 마음이 무너진 아이 미요가 고전책방을 통해

사씨남정기의 세계로 들어가 답을 찾아가는 설정 덕분에,

이 고전은 그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이야기가 된다.

책 마지막에 실린 ‘미요의 신비한 고전 썰’ 코너는 이 이야기를 한 번 더 깊게 정리해 주는 부분이다.

이 코너에서는 『사씨남정기』를 쓴 김만중의 삶을 간단히 소개한다.

억울한 정치 싸움으로 남쪽에 유배된 김만중은,

직접 말할 수 없었던 현실의 문제를 소설 속 이야기로 옮겼다.

그래서 사씨의 남쪽 추방은 단지 소설 속 설정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현실과 겹쳐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고전 썰’은 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사씨는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았을까,

왜 유연수는 그렇게 쉽게 거짓을 믿었을까.

그 답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정실과 첩의 위계가 분명했던 사회 구조와

권력을 가진 사람의 판단이 곧 진실이 되던 시대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사씨의 침묵은 약함이 아니라, 그 시대에서 자신의 결백을 지키는 방식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덧붙인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 보면, 『사씨남정기』가 전하려는 말은 분명하다.

선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언제나 믿음을 얻는 것은 아니고, 진실은 종종 사람들의 분위기에 가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해와 침묵의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의 중심을 붙들고 있다면, 끝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진실도 어느 순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이 만화는 사씨를 그저 불쌍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으로 보여 준다.

누군가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쉽게 증명할 수 없는 진실을 조급해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의 중심을 지켜 내는 태도. 그 모습이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읽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실이 언제 드러날지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는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모두가 등을 돌린 것처럼 느껴질 때, 나마저 나를 의심해 버리면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니까.

아마 이런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오해받고, 고립되고, 믿음을 잃는 순간을 반복해서 겪는다. 『사씨남정기』는 그 반복되는 마음의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 내며, 그럼에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래된 고전이면서도, 지금 읽어도 여전히 나의 이야기처럼 남는다.

'윌북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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