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어른의 부머 경제학 - 인구감소 시대, 새로운 부의 법칙
전영수 지음 / 라의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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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아닌 힘, 베이비부머의 재등판이 시작된다”


요즘 한국 사회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침체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얽힌 복합불황 속에서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는 말을 더 이상 푸념이 아닌 생존의 감각처럼 내뱉는다. 특히 부동산, 금융, 교육, 일자리 등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인식은 전 세대를 가로질러 무력감으로 번진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막막함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희망의 중심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금의 위기를 단지 경기 침체로만 보지 않는다. 이면에는 저출산, 고령화, 인구 절벽이라는 구조적 인구 위기가 깊게 깔려 있다. 일본이 이미 겪어온 ‘잃어버린 30년’의 그림자가 이제 한국 사회를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은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고령화 속도는 그 어떤 선진국보다도 빠르다. 출산율을 높이자는 당위론은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정작 실효성 있는 대책은 드물다.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 소멸, 인구 공동화 현상이 곳곳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 책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단지 출산율의 문제가 아니다. 생산가능인구의 급감, 즉 일하고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의 감소가 핵심이다. 고령자는 늘고, 청년층은 줄고 있으며, 경제의 중심을 떠받칠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저자는 주목해야 할 집단으로 1955년~1974년 사이 출생한 1,700만 명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제시한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들은 ‘짐’이 아니라 ‘힘’이다. 단순히 은퇴를 기다리는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건강하고, 일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경험과 숙련도를 갖춘 강력한 경제 주체다. 실제로 이들은 여전히 왕성한 소비층이며, 은퇴 이후에도 사회 참여에 대한 욕구가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들을 ‘뒷방 늙은이’로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경제의 전면에 세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책은 5가지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1. 후속세대 출생 증가

2. 노동수입 및 이민 확대

3. 생산현장에 로봇 확대 도입

4. 비경제활동인구의 완전 소환

5. 평생근로와 계속고용


이 가운데 가장 손쉽고도 확실한 해법은 다름 아닌 ‘평생근로와 계속고용’이다. 생각만 바꾸면 곧바로 실행 가능한 카드이며, 별다른 재정 부담 없이도 당장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베이비부머를 퇴장시킨다면, 경제 활력은 사라지고 복지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일한다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근로소득이 생기고, 소비 여력도 유지되며, 연금 재정에 대한 불안도 줄어든다. 어떻게 봐도 이 구조는 손해가 없다. 오히려 노동력, 소비력, 세대 간 균형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단순한 이론 제시에서 그치지 않는다.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낸다. 바로 생활, 건강, 관계, 유희, 희망이다. 이 키워드들은 복지나 은퇴 설계가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중심축으로 베이비부머를 재배치하기 위한 구조 개편의 핵심 축이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고령자 지원책이 아닌, 미래형 인구 전략이라고 본다.


결론은 분명하다. 인구 문제는 인구 카드로 풀어야 하며, 한국 사회는 이제 베이비부머를 다시 부르고, 다시 세워야 할 때다. 이들을 짐으로 여긴다면 사회는 짓눌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힘으로 바꾼다면, 한국은 다시 경제 활력을 되찾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방향을 바꿀 기회다. 베이비부머의 등판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시작이 될 것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라의눈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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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압박은 3가지로 정리된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수천, 수만 가지 요소가 있지만, 얼추 정리하면 1. 저성장 2. 재정난 3. 인구병의 3대 약재로 요약된다. 셋은 구조적인 연결고리와 파괴적 영향력을 갖는다. 상호 연결고리를 이해하면 크게는 미래사회의 작동 질서를, 작게는 시장주도의 소비판도를 추출하는 힌트를 찾을 수 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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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력 - 인생에 건강이 짐이 되지 않게
박민수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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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박사의 『혈관력』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책이다. 건강을 다룬 책은 많지만, 이 책처럼 ‘혈관’ 하나에 집중해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책은 드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조용히 잠식하는 혈관 문제의 실체를 파고 들었다. 특히 질병을 피하는 것만이 아닌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 건강한 장수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혈관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실천적인 방법들을 100가지 질문과 답변으로 풀어내 이해를 쉽게 돕는다.

혈관은 인체에서 가장 먼저 노화가 시작되는 장기로, 조용히 나빠지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는 영역이다. 40대만 되어도 혈관은 이미 20대보다 훨씬 더 손상되어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증상을 느끼기 전까지는 혈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갑작스레 닥치기 마련이다. 심근경색, 뇌졸중, 고지혈증, 고혈압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들은 오랜 시간 쌓여온 혈관 손상의 결과로 찾아온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이들 질환이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병’이라는 사실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인체의 혈관 길이는 10만km에 달하며, 그중 95% 이상이 모세혈관이다. 이 거대한 혈관 네트워크가 하루도 빠짐없이 순환하며 온몸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하며 면역세포를 실어나른다. 우리가 마시는 물, 숨 쉬는 공기, 섭취하는 음식물까지 모두 혈관을 거쳐야만 비로소 생명 활동이 가능해진다. 이런 혈관이 막히거나 탁해지면 생명은 균열을 맞는다.

저자는 혈관력을 단순한 질병 예방 차원이 아닌 생명 유지의 핵심 역량으로 설명한다. 혈관은 기르고 돌보는 개념으로 이야기 한다. 혈관은 바꾸거나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것이다. 튼튼한 혈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식사, 물 마시는 습관, 운동, 스트레스 관리, 수면과 같은 생활 전반의 선택이 혈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혈관 건강이라 하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처럼 특정 질병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이 책은 혈관 건강을 보다 넓고 깊은 관점에서 바라본다. 혈관 문제는 단일 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의 균형과 회복력을 좌우하는 건강의 기초 체계다. 박민수 박사는 혈관이 깨끗하지 않으면 혈액도 탁해지고, 결국 건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혈관의 탄력이나 내벽 상태가 무너지면 그것이 면역력의 저하로 이어지고, 각 장기의 기능 장애까지 초래할 수 있다.

책은 총 100개의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혈관에 관해 사람들이 궁금해 할만한 내용을 짚어주며 동시에 그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음식이 도움이 되는지, 혈관에 좋은 운동은 무엇인지, 혈압과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다양한 주제가 정리되어 있다. 특히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명료하고 간결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혈관이라는 생물학적 요소를 단순한 의학 지식의 영역이 아닌 삶의 철학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혈관력은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혈관이 탁하다는 것은 곧 삶을 불균형하게 살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반대로 맑은 혈관은 균형 잡힌 삶과 직결된다. 혈관력은 건강뿐 아니라 생존과 행복을 지키는 근본적인 힘이라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서문에서 박민수 박사는 혈관 사고를 ‘인생을 순식간에 바꾸는 질병’이라 표현한다. 무서운 것은 증상이 없다가 한순간에 닥친다는 것이다. 뇌졸중, 심근경색, 협심증, 고지혈증 등 모든 질환의 바탕에는 혈관이라는 공통분모가 놓여 있다. 책에서는 흔히 말하는 뇌혈관 사고(CVA)라는 전문용어 대신 ‘혈관 사고’라는 표현을 쓰며 더 직관적이고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나아가 혈관 관련 질환은 단순한 의료 이슈가 아닌 삶 전체의 균형이 깨지는 현상임을 강조한다.

『혈관력』은 건강을 지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안내서다. 혈관을 돌본다는 것은 곧 삶을 돌본다는 의미다. 오늘 하루의 선택이 내일의 혈관을 만든다. 이 책은 그 단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진리를 일깨워준다. 단 한 번의 깨달음이 단 한 권의 책이, 당신의 혈관과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 책으로 시작될 수 있다!


'원앤원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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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은 되풀이된다 - 시장의 주기와 추세를 읽는 눈
홍춘욱 지음 / 포르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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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박사의 『돈의 흐름은 되풀이된다』는 반복되는 자산 시장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야말로 투자와 생존의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에 두고 있다. 단순히 경제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되풀이되는 흐름 속에서 무엇을 읽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그는 말한다. 이 책은 그런 감각을 기르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다. 따라서 자산 시장을 분석할 때에도 내수보다 외부 변수, 특히 ‘수출’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한국 시장에서 금리보다 수출의 변화를 주요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수출을 예측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다름 아닌 ‘미국 소비자들의 씀씀이’다. 미국의 개인 소비 지출(PCE)과 시간당 실질 임금 상승률은 한국 기업들의 실적에 선행 지표처럼 작동하며 이는 다시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특히 ‘채찍 효과(Bull Whip Effect)’라는 공급망 이론을 활용해 설명의 설득력을 더한다. 소비 단계의 미세한 변화가 유통 단계를 거치며 증폭되고, 제조업과 자본재 산업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미국 소비 시장의 흐름을 읽는 것이 곧 한국 자산 시장의 향방을 예측하는 키가 된다는 논리를 구축한다.


이러한 구조는 반도체 산업을 통해 구체화된다. 책에서는 인텔의 공동 창업자 밥 노이스가 주도한 ‘초저가 전략’을 중심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어떻게 ‘치킨 게임’식 가격 경쟁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생산 단가가 미래에 낮아질 것을 감안해 미리 가격을 인하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방식이다. 이 전략은 치열한 기술 투자와 설비 확충을 필요로 하고, 그로 인해 한국의 수출 기업은 항상 높은 실적 변동성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이 역시 자산 가격의 불안정성과 밀접히 연결된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지표와 데이터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심리, 특히 ‘내러티브’가 시장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경고한다. 로버트 실러의 이론을 인용하며, 시장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움직이고, 사람들은 진실보다 감정적으로 매력적인 이야기에 쉽게 휘둘린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책에서는 ‘베어스타운 투자 클럽’의 허상 사례를 통해, 감정에 기댄 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며, 결국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냉정한 대응’임을 일깨운다.


특이한 관찰 중 하나는 미국 소비 지표와 한국 부동산 가격 사이의 연동성이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흐름이 국내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미국 소비가 살아나면 한국의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이는 다시 고용과 임금 증가로 이어져 주택 수요 증가로 연결되는 흐름이 생겼다. 특히 서울처럼 집과 직장이 가까운 게 중요한 지역일수록, 미국 소비가 살아날수록 그 영향이 더 빨리 나타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미국 소비의 둔화 신호가 나타날 경우, 단순히 자산을 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산 구조를 점검하고 상황 변화에 맞춘 대응 전략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주택을 두 채 보유한 사람이라면 ‘똘똘한 한 채’가 아닌 자산의 매도 타이밍을 고려하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돈의 흐름은 되풀이된다』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닌,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미래를 읽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다. 이 책은 경제학 입문서이자 실용적인 투자 안내서이며 동시에 ‘성실한 공부’가 결국 투자의 본질임을 보여주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매일 읽고, 매일 쓰고, 매일 실패를 복기하며 감각을 기른 홍춘욱 박사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의 변화 서사이기도 하다.



'포르체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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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정보 통신 버블 붕괴와 2008년 서브프라임 모지기 위기를 예측한 경제학자이자 교수인 로버트 실러는 ‘내러티브‘에 주목하라고 조언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narrative란, 사람들의 귀에 착 달라붙는 허구가 섞인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점은 특정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확산된다는 점입니다. 내러티브의 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유명한 격언이 "친구가 부자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개인의 행복과 판단을 망치는 일은 없다"입니다.
이 격언을 잘 활용한 내러티브가 미국 소도지 베어스타운 투자 클럽의 성공 신화입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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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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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리네 발의 『스물두 번째 레인』은 물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조용히 건져 올리는 소설이다. 사랑과 책임, 상처와 용서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자, 자매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버텨낸 두 사람의 이야기다.

주인공 틸다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영장을 찾는다. 스물두 번째 레인을 따라 묵묵히 물살을 가르며 하루를 견딘다. 어쩌면 수영은 그녀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세 여성이 있다. 언니 틸다, 동생 이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다. 엄마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보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방식에 더 익숙한 사람. 자식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어느 순간엔 그것을 스스로 망쳐버린다. 다시 잘해보려는 마음은 있지만, 그 의욕은 금세 무너지고 만다. 아마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이 그녀를 다시 끌어당긴다.

틸다는 그런 엄마를 향해 분노하면서도, 완전히 미워하지는 못한다. 연민과 혐오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그녀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 동생 이다가 엄마에게 맞은 뒤의 모습을 보았을 때, 틸다 안의 분노는 한계에 다다른다. 결국 그녀는 차가운 얼음물 양동이를 엄마의 머리 위에 쏟는다. 책에서 엄마를 ‘괴물’이라 칭하는 장면은 감정의 극한을 드러내는 말이자 틸다의 절박한 외침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엄마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수긍한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는 자각이 들어 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분노보다도 깊은 연민이 차오른다. 그저 미워할 수만은 없는 불쌍한 어른의 초상이 거기 있다.

이다는 나이에 비해 많은 것을 느끼고 이해하는 아이이다. 눈치가 빠르고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읽어낸다. 언니 틸다가 누구에게 마음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조심스레 그 감정을 건드리기도 한다. 마치 언니를 살짝 밀어주는 것처럼. 그런 이다는 틸다에게 삶의 이유이자 중심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자매의 관계가 무척 부러웠다. 누군가를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지키고, 또 그 존재만으로 마음의 버팀목이 되는 관계가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단단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틸다는 타인과 감정적 거리를 두는 데 익숙하다.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람을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해왔다. 그런 그녀 앞에 빅토르가 나타난다. 처음엔 경계하며 거리를 두지만, 조금씩 그의 존재에 익숙해진다. 눈에 띄는 고백도, 화려한 감정 표현도 없다. 대신 아주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 틸다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 빅토르는 틸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곁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틸다는 그런 그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스물두 번째 레인』은 단지 가족의 붕괴를 그리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도 사랑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사랑은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것, 다친 마음 앞에 오래 머물러주는 것, 함께 침묵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 감정들이 이 책에는 고요하게, 하지만 깊게 흐르고 있다.

책을 읽으며 틸다와 동생 이다의 관계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자매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고, 빅토르와의 관계를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틸다의 감정선도 따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혼란 속에서도 물속을 헤엄치듯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틸다의 모습은, 대견하고 애틋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이 책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상처를 품고도 다시 나아가려는 모든 이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다산책방(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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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데?
긴 침묵이 이어진다. 내 질문에 대답을 얻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는데 그가 입을 뗀다.
빅토르 : "이런 외부인의 관점을 너희의 강점으로 인식하렴. 너희는 저 아래에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멋진 집이 없지만, 그럴수록 여기서 얻는 기회를 더 많이 이용하고 너희 자리를 찾아야 한다." 뭐 그런 종류의 말이었지.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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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행복 사전
김은아 지음, 하선정 그림 / 담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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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의 『앤의 행복 사전』은 ‘빨간 머리 앤’을 향한 오래된 애정과 깊어진 시선을 담아낸 책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앤의 세계를 이루는 가장 따뜻한 조각들—‘단어’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들여다본다. 이 책은 그녀가 앤에 대해 써온 세 번째 이야기다. 첫 책 『앤과 함께 프린스에드워드섬을 걷다』에서는 앤 이야기의 주요 무대인 섬의 풍경과 공간을 따라 걸었고, 두 번째 책 『친애하는 나의 앤, 우리의 계절에게』에서는 여덟 권의 앤 시리즈 속 문장을 통해 계절의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번 책 『앤의 행복 사전』에서는 앤이 사랑했던 ‘단어’들을 글감 삼아, 그 단어들 속에 깃든 감정과 삶의 태도를 따라가 본다.


작가는 처음엔 그저 앤과 루시 모드 몽고메리를 좋아하는 독자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그들을 좋아해온 마음은 이제 글이 되었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사람이 되었다. 앤에 관해서라면 어떤 이야기든 다 해보고 싶다는 그의 고백처럼, 이번 책에는 그동안 쌓여온 애정과 탐색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행복’, ‘설렘’, ‘용기’, ‘고요’, ‘그리움’처럼 앤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들을 모아,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앤의 언어’로 재해석해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해석서가 아니라 감성적인 문학 산책이자 사유의 여정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앤이 삶의 순간마다 얼마나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그 모든 순간에 이름을 붙여나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어떤 일에 설렘을 느끼고, 실패 앞에서도 배움을 얻고, 일상의 기쁨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앤의 모습은 단어 그 자체로 빛난다. 작가는 그런 앤의 삶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들을 수집해 풀어내며, 그 단어들이 결국 앤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든 힘이자, 독자들 각자의 삶을 환히 비춰주는 등불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앤이 사랑한 단어들은 단지 말의 조각이 아니라, 관계를 따뜻하게 만드는 표현이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였으며,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저자는 그런 단어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며,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거니?”라는 앤의 질문에 조용히 귀 기울인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자신만의 ‘행복 사전’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삶의 어느 페이지쯤에서 그 문장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앤의 행복 사전』은 앤의 시선으로, 앤이 사랑했던 방식으로, 우리 일상 속 단어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그 단어들 사이에는 계절의 흐름이 있고, 삶의 속도가 있고, 사랑과 우정의 온기가 있다. 결국 이 책은, 잊고 있던 일상의 즐거움과 관계의 따스함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조용한 사전이며, ‘자신’이라는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감성의 지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저마다의 ‘행복 사전’이 탄생하기를. 그리고 그 사전이 앤의 단어처럼 누군가의 삶을 비춰주는 말이 되기를, 작가는 조용히 기대하고 있다.


글 오른쪽에는 ‘은유 표현 글쓰기’라고 하여 글의 내용을 필사해볼 수 있는 페이지를 마련했다.

글을 따라 써보면서 앤이 삶을 사랑했던 방식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마지막에는 엄청 예쁜 컬러링북이 있어서 시간이 될 때 한번씩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이 너무 예뻐서 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때나 책상 한켠 어딘가에 세워 놓고 싶은 느낌이었다. 컬러링북에 있는 그림을 직접 한번 만나보시길 바란다.




'담다 2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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