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삼국지 -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기는 신개념 삼국지
tvN STORY 〈신삼국지〉 제작팀 지음, 김진곤 감수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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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 중 하나다. 2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이어진 후한 말의 혼란, 위·촉·오 삼국 시대, 그리고 서진의 통일까지는 수많은 영웅들의 세력 다툼, 치열한 전략, 배신과 의리, 이상이 얽혀 있다.


《신삼국지》는 tvN STORY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프런트 출판사가 책으로 엮은 작품이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뿐 아니라 진수의 정사 《삼국지》까지 함께 다루어, 역사와 소설을 균형 있게 보여준다. 덕분에 독자는 같은 사건이 역사서와 소설에서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는지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설 속 도원결의는 의리의 상징이지만, 책에서는 불안한 정세 속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맺은 현실적인 동맹으로도 설명한다.

책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다. 황건적의 난, 동탁의 전횡,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 적벽대전 같은 굵직한 전투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선택과 심리를 풀어낸다. 동탁이 여포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명마 적토마와 보물을 주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설득하는 장면,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한 뒤 《삼십육계》의 ‘주위상계(走爲上計, 불리하면 달아나는 것이 최선)’로 목숨을 구하는 장면처럼, 병법과 속뜻까지 곁들여 설명한다. 덕분에 독자는 ‘도원결의(桃園結義)’, ‘허장성세(虛張聲勢)’ 같은 사자성어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삼국지의 큰 줄기는 간단하다. 황건적의 난 이후 조조, 유비, 손권이 각자 세력을 키우고,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을 거쳐 위·촉·오 삼국이 형성된다. 유비 사후, 제갈량이 북벌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263년 사마씨 가문의 위나라가 촉을 멸망시킨다. 이후 사마염이 조위를 대신해 서진을 세우고, 280년 오나라까지 병합하며 통일을 완성한다.

《신삼국지》를 읽다 보면, 각 장면마다 나관중이 쓴 서사와 정사의 기록이 나란히 제시되어 서로 다른 내용과 해석을 비교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역사서적의 시선과 서사의 시선을 오가며 읽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삼국지가 수백 년 동안 변주되며 사랑받아온 이유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은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의(義)’라는 가치를 중심에 둔다. 유비·관우·장비의 의형제 결의, 제갈량의 충성, 손권의 정치적 선택, 조조의 현실주의적 판단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리를 해석한다. 이를 선악 구도로 단순화하지 않고, 인간이 처한 상황과 선택의 문제로 풀어내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고전 해설서를 넘어 인간 본성과 권력, 관계의 본질을 다루는 인문서에 가깝다.


흥미로운 장치도 많다. ‘침GPT’ 코너는 독자의 질문에 답하듯 인물과 사건을 풀어주고, ‘신삼국지’ 코너에서는 현대의 사례와 언어로 고대 사건을 해설한다. 덕분에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부록 ‘기묘한 삼국지’에서는 본편에서 다루지 못한 영웅들의 숨겨진 모습과 엉뚱한 일화를 소개해, 삼국지를 잘 모르는 독자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


결국 《신삼국지》는 역사와 소설, 사실과 상징을 모두 품은 책이다. 초심자에게는 사건과 인물, 배경을 쉽게 알려주고, 여러 번 삼국지를 읽은 독자에게는 역사와 소설의 차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삼국지가 단순한 옛날 영웅담이 아니라, 오늘날의 권력·이상·의리와 생존 사이의 갈등을 비추는 거울임을 보여준다.


'프런트페이지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매관매직(벼슬이나 관직을 돈 주고 사는 것)을 일삼던 십상시들이 죽임을 당한 십상시의 난 이후, 기사회생으로 목숨을 구한 황제와 원소는 다시 수도 낙양으로 돌아오고 있었죠. 그런데 낙양에 도착할 무렵, 수천의 군사를 대동한 한 남자가 황제 일행을 막아섭니다. 황제가 앞에 있는데도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말이지요. 다들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니 있을 때, 황제 소제의 동생이자 겨우 아홉 살에 불과한 진류왕이 그 남자를 향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가를 호위하러 왔는가, 핍박하러 왔는가?"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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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 스파이크 제로 - 서울대 내과 명의 조영민 교수의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는 법
조영민 지음 / 서삼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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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 교수의 『혈당 스파이크 ZERO』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생활 습관이

혈당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 근거와 실제 사례로 풀어낸 책이다.]

핵심 주제는 ‘혈당 스파이크’다.

식사 후 혈당이 급격히 올라갔다가 빠르게 떨어지는 이 현상은 일시적인 불편함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당뇨병, 심혈관 질환, 비만, 만성 피로 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이 책은 위절제 수술을 받은 한 환자의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위 유문이 제거된 탓에 탄수화물이 한꺼번에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면서 빠르게 흡수되고,

혈당이 급격히 상승했다가 과도한 인슐린 분비로 급격히 떨어지는 전형적인 ‘혈당 롤러코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환자는 하루 여섯 번으로 식사를 나누는 방식과, 탄수화물 흡수를 억제하는 약물(아카보스)을 활용해 증상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혈당 스파이크가 식사 패턴, 음식 종류, 소화 속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혈당 스파이크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정제 곡물과 당분이 많은 음식의 과다 섭취다.

둘째, 식이섬유가 부족하거나 소화가 지나치게 빠른 음식으로 인한 위 배출 속도 증가다.

셋째, 운동 부족과 비만으로 인한 인슐린 작용 저하다.

넷째, 인슐린 분비 자체의 이상이다.

저자는 이 각각에 대해 대응책을 제시한다.

복합 탄수화물과 통곡물을 선택하고, 단백질과 건강한 지방, 식이섬유를 함께 섭취해 흡수를 늦추며,

규칙적인 운동으로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생활 습관의 힘이다.

핀란드에서 진행된 ‘생활 습관 교정 치료’ 연구에서는 체중 5% 감량, 지방과 포화지방 섭취 줄이기,

식이섬유 섭취 늘리기, 주 150분 이상 운동하기 등 다섯 가지 목표 중 네 가지 이상을 지킨 사람에게서는 당뇨병이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대로 한 가지도 지키지 않은 사람의 40%는 당뇨병이 생겼다. 저자는 약물 치료보다 생활 습관 변화가 비용과 부작용 모두에서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임을 강조한다.

운동에 대해서는 ‘신체 활동’과 ‘운동’을 구분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가벼운 산책은 신체 활동이지만, 심박수를 높이고 숨이 찰 정도의 활동이 되어야 운동이다. 빨리 걷기, 조깅, 수영, 줄넘기 같은 중강도 운동은 하루 30분, 주 5일이 기본이고, 고강도 운동은 하루 15분씩 주 5일이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틀 연속으로 쉬지 않는 것’이다. 운동 후 인슐린 감수성 증가는 24~72시간 지속되지만,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탄수화물 섭취에 대해서는 무조건 줄이는 방식이 아닌, 좋은 탄수화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제 곡물은 도정 과정에서 식이섬유, 비타민, 미네랄이 제거되어 혈당을 빠르게 올린다. 반면 통곡물은 소화와 흡수가 천천히 이루어져 혈당 변화를 완만하게 하고 장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저자는 “탄수화물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책에는 절제와 균형의 철학도 담겨 있다. 파라셀수스가 남긴 “모든 것은 독이며, 용량이 약과 독을 가른다”는 말처럼, 먹는 양과 강도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 오키나와의 ‘복팔분’ 문화, 즉 배가 80% 찼을 때 식사를 멈추는 습관 역시 과식 방지와 장수의 비결로 소개된다.

저자는 역사 속 사례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세종대왕이 물을 많이 찾고 고칼로리 식사를 즐겼다는 기록을 근거로, 현대인들이 세종대왕처럼 운동 부족과 과식의 생활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혈당 스파이크 ZERO』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혈당 관리와 건강은 하루아침의 노력이 아니라, 식사, 운동, 생활 전반에 걸친 꾸준한 습관에서 비롯된다. 정제 탄수화물 대신 통곡물, 규칙적인 운동, 식이섬유와 단백질의 조화, 적당한 식사량, 그리고 균형 잡힌 생활이야말로 혈당 스파이크를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 책은 의학적 설명과 실천 방법이 균형 있게 담겨 있어, 읽는 즉시 ‘오늘부터 무엇을 바꿀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만든다. 읽고 나면 혈당 스파이크라는 개념이 단순한 의학 용어가 아니라, 매일 실천해야 할 건강 수칙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서삼독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일본 오키나와는 세계적인 장수 지역으로 유명하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가 ‘복팔분’이라는 철학이다. 말 그대로 배가 80% 정도 찼다는 느낌이 들면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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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이네이스 1~3 세트 - 전3권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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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는 나라의 탄생이 사랑과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보여준다.”

고전은 왜 지금 읽을 가치가 있을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펼치면 답이 선명해진다.

이 작품은 한 영웅이 도시를 세우는 신나는 모험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의 전설이 한 사람의 마음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들려주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서구 비평사에서도 이 작품을 새롭게 읽기 시작한 시점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서구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이전에는 호메로스의 모방으로 폄하됐지만, 이제는 ‘단순한 모방 이상의 일’로 본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영웅 아이네아스를 중심으로 읽는 해석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오비디우스가 시도한 디도의 시점은 베르길리우스의 의도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시선을 전환하면, 『아이네이스』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한 사건을 어떤 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일깨우는 작품임을 알게 된다.

이 번역본은 라틴어 원전의 12권을 4권씩 묶어 총 3책으로 완역한 열린책들 판본이다.

역자는 라틴 서사시의 헥사미터 운율을 우리말에서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한 줄 18자 내외로 옮겼다.

우리말 어순에 맞추면서도 원문의 어휘·구성·시행 순서를 최대한 보존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인물·지명·신화 설명과 원문 행 번호, 촘촘한 주석이 함께 실려 있어, 원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길을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작품의 작가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70년 만투아 근교에서 태어나, 『목동가』와 『농경가』로 이름을 알린 후 마지막 11년을 『아이네이스』 집필에 바쳤다. 그러나 기원전 19년, 작품의 무대를 직접 답사하려 떠난 여행에서 병을 얻어 브룬디시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완성 원고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뜻으로 친구 바리우스와 투카가 편집만 마친 채 지금까지 전해졌다. 그래서 작품 곳곳에는 사건의 흐름에 비해 길거나 미묘하게 이질적인 부분들이 남아 있는데, 이는 결함이라기보다 완성을 향해 치열하게 공사 중이던 흔적으로 보는 편이 맞다.

1권 (원전 1~4권)

이야기는 유노의 질투가 부른 폭풍 속에서 시작된다. 난파한 아이네아스 일행은 카르타고에 표착하고, 여왕 디도의 환대를 받는다. 그는 불타는 트로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회상한다. 목마 속임수, 라오쿤의 경고, 프리아모스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를 어깨에 메고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떠나는 장면은 이 서사의 정서를 단번에 압축한다. 이어지는 여정에서 그들은 폴리도로스의 음산한 표징, 잘못 해석한 신탁, 예언자들의 경고와 불길한 예언을 거쳐 시칠리아로 향한다. 4권에서 서사는 가장 비극적인 고비를 맞는다. 유노와 베누스가 꾸민 함정 속에서 아이네아스와 디도는 사랑에 빠지고, 디도는 그 관계를 혼인으로 믿는다. 그러나 아이네아스는 “로마의 운명이 나를 부른다”며 떠나고, 디도는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장면은 국가적 소명과 개인의 사랑이 어떻게 양립할 수 없는지를 보여 준다.

2권 (원전 5~8권)

시칠리아에서 아이네아스는 부친 앙키세스의 1주기를 기리는 장례 경기를 연다. 배 경주, 권투, 활쏘기, 소년 기마대 등 다양한 종목은 공동체가 애도를 의례로 승화해 결속을 다지는 과정을 그린다. 이어 쿠마이로 향한 아이네아스는 시빌라의 안내로 저승을 여행하며, 엘리시움에서 아버지에게 로마의 미래와 후손들의 영광을 듣는다. 7권부터 무대는 라티움으로 옮겨지고, 라티누스 왕은 아이네아스에게 딸 라비니아를 주려 하지만, 유노가 보낸 알렉토가 이를 방해해 전쟁의 불씨를 지핀다. 아이네아스는 에우안드로스와 동맹을 맺고, 젊은 팔라스가 그와 함께 전장에 나선다. 베누스가 불카누스에게 부탁해 만든 새로운 무장은 아이네아스의 사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다.

3권 (원전 9~12권)

아이네아스가 부재한 틈에 트로이군은 포위당하고, 니수스와 에우리알로스가 목숨을 건 돌파를 시도하다 전사한다. 아이네아스가 돌아와 전세를 뒤집지만, 팔라스가 투르누스에게 쓰러진다. 분노한 아이네아스는 메젠티우스를 무찌르고, 그의 아들 라우수스와의 싸움에서 인간적인 슬픔과 전쟁의 잔혹함이 교차한다. 11권에서는 잠시 휴전 속에 장례가 치러지지만, 여전사 카밀라가 창에 맞아 전사하며 다시 전투가 격화된다. 12권에서 마침내 아이네아스와 투르누스가 일대일 결투를 벌이고, 양 진영은 승자의 조건을 따르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전투 끝에 쓰러진 투르누스를 살리려던 아이네아스는 팔라스의 허리띠를 보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를 죽인다. 장엄하지만 씁쓸하게 끝나는 결말은, 로마의 영광이 결코 값없이 얻어진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번역본의 진짜 매력은 원문 헥사미터의 리듬을 살린 18자 구성에 있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원래 시의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한 줄에 비슷한 길이의 글자를 맞춰 읽기 좋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운율 덕분에 서사시의 장중함이 문장 호흡에 그대로 살아나고, 촘촘한 각주와 인명·지명 설명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해설은 베르길리우스의 생애와 집필 과정, 미완성 원고의 사정까지 꼼꼼하게 짚어 주어 작품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감상하고 해석하는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아이네이스』는 영웅을 미화하기보다 국가의 영광 뒤에 가려진 희생과 상실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로마의 찬가이자 동시에 한 도시의 탄생이 누구의 삶 위에 세워졌는지를 끝까지 묻는 기록이기도 하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고전을 완역으로, 운율의 호흡까지 느끼며 읽고 싶은 분

- 로마사·신화, ‘국가와 개인’의 문제에 관심 있는 분

- 서사시가 지금-여기의 질문과 만나는 지점을 찾는 분


'열린책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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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 위픽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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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일단 마음 먹고 칼을 집었으면 - 파쇄』는 장편소설 『파과』의 외전이자,

주인공의 10대 시절 한 장면을 담은 단편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시대적 배경은 1963~1965년 정도라고 한다.

그 시기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의 나이나 직업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읽다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하게 된다.

이야기는 깊은 산속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손과 발이 결박된 채 깨어난다.

시야는 가려져 있고, 풀잎의 촉촉함과 흙 냄새, 공기의 온도, 새소리만이 이곳이 어디인지 짐작하게 한다. 실장이라는 인물은 무사한지, 소리를 내야 할지, 숨죽여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시각이 차단된 채 청각과 촉각에만 의지하는 상황이 나까지 숨을 죽이게 만든다.

주인공은 묶인 손을 풀기 위해 돌로 결박을 풀고 있을 때,

스륵— 젖은 바지 위로 발목에서 다리를 따라 천천히 올라오는 감촉이 느껴진다.

반가운 마음에 하마터면 “실장님” 하고 부를 뻔했다는 대목에서, 나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의 손길이 아니라 뱀의 포복이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공격으로 간주되어 물릴 수 있고, 독사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주인공은 어깨가 들썩이지 않도록 호흡을 줄이며 버틴다.

뱀은 그녀의 몸을 젖은 나무나 바위로 여겼는지 나른하게 몸을 옮기고, 머리부터 기다란 몸통이 옆구리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다.

그 순간, 나 역시 숨을 멈춘 채 이 상황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랐다.

나는 그 순간 그녀와 같이 그곳에 함께 존재했다.

그 공포와 막막함이 온전히 나에게 느껴졌는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 극한의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된 경위를 재빠르게 파악하기 위해

산장에 오게 된 첫날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산장에서 함께 있는 ‘그’라는 인물이 ‘실제 현장’에서는 총보다 이걸 더 쓰게 될 거라며 칼을 들어 보인다.

그 말투나 몸짓이 내일 날씨는 맑고 구름 한 점 없겠다고 하는 예보 같은 톤이어서 위협 비슷한 무언가도 읽어내지 못하고, 와서 자세히 보라는 뜻인 줄 알고 무심코 몇 발 걸음 다가가는데, 칼날이 눈앞의 허공을 사선으로 가른다. 그 순간 나 조차도 덜컥 겁이나며, 이 인물이 결코 안전한 존재가 아님을 경각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총과 칼을 다뤄야 하는 상황과 ‘실제 현장’에서 이것들이 쓰인다는 말 때문에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한 지점이다.

그 이후에도 그녀를 단련시키기 위한 다양한 훈련이 병행된다.

처음 위험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자로,

주인공을 훈련시키기 위해 특별 지시를 받은 인물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는 그녀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인한 존재로 만들어야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예상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으로 그녀를 몰아넣는 것도, 모든 것이 계획된 훈련 과정의 일부였다.

그 공간은 매 순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곳이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녀는 간첩을 처리하기 위해 정부가 비밀리에 길러낸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것!

물론 책에서 그런 설정을 명시하진 않았다.

그저 읽는 과정에서 시대적 배경과 훈련의 성격이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상상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점차 자각하는 듯했다.

앞으로 수많은 시체의 산을 쌓을 손, 자르고 찌르고 태우는 불모의 손.

과녁이 아닌 생명을 쏘고, 빼앗고, 파괴하는 삶이 시작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 손은 무언가를 죽임으로써 무릎 아래 깔린 사람을 살려내기도 할 것이다.

폭력과 구원, 파괴와 보호가 한 손 안에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그녀를 흔들었다.

평범했던 과거와는 영영 결별하게 될 예감, 그리고 자신이 침몰하게 될 높은 확률을 직감하면서도 그 길을 받아들여야 함을 인지했다.

작가 구병모는 이 주인공을 완전무결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은 유해한 감정과 건강하지 않은 사고도 품은 채 살아간다.

오히려 그 결격이 주인공을 매력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래서 독자는 이 인물을 단순히 ‘킬러가 되어가는 과정’으로만 보지 않고,

불완전한 모습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점은, 간첩이나 강인한 상대를 제거해야 하는 킬러와 같은 설정이라면 흔히 남성 캐릭터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나약하다고 여겨지는 고정관념을 깨고,

오히려 남성과 동등하게 — 혹은 그 이상으로 — 극한의 상황을 돌파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단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의 장에서도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스스로의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다.

결국 『파쇄』의 주인공은 성별에 구속되지 않는 힘과 결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복합적인 면모를 끝까지 증명해낸다.


'최규리 북스타그램 @guulyy_'님을 통해

'위즈덤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앞으로 수많은 시체의 산을 쌓아나갈 손, 자르고 찌르고 태워버릴 불모의 손, 과녁 아닌 생명을 쏘고 나서야 악탈과 섬멸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길 없는 삶을 시작했음을 알게 되고 지나온 보통의 시간과 평생을 걸쳐 이별하게 되리라는 예감, 높은 확률로 예정된 자기 침몰의 방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죽임으로써 무릎 아래 깔린 사람을 살려낸 손이라는 총체적인 아이러니가 콧속을 시큰하게 찔러오다 뒤흔든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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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한국사
김재완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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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역사를 알아야 할까?

사람들은 쉽게 과거를 잊는다.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로 인해 어떤 흐름이 생기고 또 무엇이 무너졌는지에 대해 무심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 과거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은 자리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아는 일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우리가 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의 태도다.

『기묘한 한국사』는 바로 그 시작점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역사 속 장면들을 다시 들춰 보여준다.

단순한 사건이 아닌, 흥미진진한 사람의 이야기로 말이다.

책의 첫 장은 <세한도> 이야기로 시작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에서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한 폭의 수묵화.

소나무와 찻나무 몇 그루, 그리고 조촐한 초가 한 채.

누구에게는 단순한 그림이지만, 이 그림은 이후 조선, 청나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현대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림은 이상적을 통해 북경으로 전해졌고, 청나라 문인들의 제시가 더해지면서 14미터가 넘는 ‘길이의 사연’이 된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학자의 손에 들어갔고, 그것을 다시 한국으로 되돌리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결정이 더해지면서, <세한도>는 한 점의 예술작품을 넘어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유산이 된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단순히 설명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마음과 가치—‘염치’—에 주목한다. 손창근 옹이 그림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며 보여준 그 염치는, 이 책 전체를 꿰뚫는 중심 단어로 작용한다.

그 다음 장에서 다루는 건 <정감록>이다.

금서였지만, 수백 년 동안 민중 사이에서 비밀처럼 전해지던 예언서다.

“정씨 성을 가진 도인이 나타나 나라를 다시 세울 것이다”라는 이 한 문장은

조선 후기 백성들의 절망과 희망, 좌절과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정감록>은 단순한 허무맹랑한 예언이 아니라, 왕조가 더 이상 백성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던 시기에,

사람들이 그 허전한 자리를 스스로 메우기 위해 만든 하나의 ‘이야기이자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학농민운동, 미륵신앙, 예언자 민담 등으로 확장되며 조선 말기 민중의 심리적 기반이 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단연 조선 궁중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지밀나인’으로 대표되는 궁녀들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읽혔다.

궁녀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입궁해 생을 거의 궁궐에서 마무리했다.

‘상궁’이라는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감정도, 욕망도, 연대도 철저히 조절해야 했고,

때로는 다른 궁녀들과의 감정적 유대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다.

책에서는 궁녀들 사이의 관계, 정서적 애착, 그리고 여성 간의 동성애적 감정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짚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조선의 궁궐이라는 공간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과 삶이 충돌하는 복잡한 사회이자,

겉으론 고요하지만 속으론 늘 긴장감이 흐르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한 책에서는 세종대왕의 무덤과 관련된 전설도 소개된다.

지관이 말하길, 그곳에 묻히면 ‘장손이 끊긴다’ 했지만, 세종은 그 말을 무시하고 묻힌다.

결과는 문종의 단명, 단종의 폐위와 죽음, 그리고 세조(수양대군)의 왕위 찬탈로 이어진다.

세조는 왕이 된 뒤에도 밤마다 나타나는 현덕왕후의 귀신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부분은 단순한 괴담처럼 읽히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조카를 죽였고, 형의 자리를 빼앗은 자의 불안과 죄의식이 무형의 존재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느껴졌다. 권력의 이면에 자리한 두려움, 그 어두운 감정을 귀신이라는 형상으로 구현한 대목이었다.

그리고 사육신과 생육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저 ‘의리로 죽은 충신’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그들의 선택이 이 책을 통해 다시 읽히면서 조금 더 무겁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김시습은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노량진 돌무덤에 안치하고 삭발한 채 세상과 멀어져 떠돌며 살아간다. 그는 더 이상 유교의 세계에 자신을 둘 수 없었고, 글을 쓰는 행위로 시대를 이겨내려 했다. 그가 남긴 『금오신화』는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한국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게 된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광개토대왕비 해석을 둘러싼 논쟁,

묘지 자리를 두고 벌어진 산송(山訟, 조상의 묘를 둘러싼 소송),

조선 후기 묘지 분쟁이 살인까지 번진 사건,

홍범도 장군의 생애와 망명 이후 이야기, 경종 독살설,

조선 최고 부자가 겸한 뜻밖의 직업들 등

익숙하지만 쉽게 지나쳤던 역사적 장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스토리였고,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역사들은 새롭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그 안에서 살아 있던 사람들의 감정이 더 또렷하게 읽혀지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그 시대 인물이 나눴을만한 대화체 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글이 어렵지 않게 술술 읽혀지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부분마다 질문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았던걸까?

부당함을 그저 인정하며 살았던걸까? 반발심은 없었던걸까?

힘든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등등

『기묘한 한국사』는 결국, 역사라는 큰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마음, 끝까지 버티려 했던 자존 같은 것들을 잊지 않게 만든다.

시간이 흘러도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흥미진진한 책이다.

또한, 재미있는 역사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믹스커피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마늘은 양기를 돋우는 최악의 음식으로 내시에게 엄격히 금기했으니, 내시가 되지 않으려는 자들에겐 최고의 음식임을 참고하기 바란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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