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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이네이스 1~3 세트 - 전3권 ㅣ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아이네이스』는 나라의 탄생이 사랑과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보여준다.”
고전은 왜 지금 읽을 가치가 있을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펼치면 답이 선명해진다.
이 작품은 한 영웅이 도시를 세우는 신나는 모험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의 전설이 한 사람의 마음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들려주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서구 비평사에서도 이 작품을 새롭게 읽기 시작한 시점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서구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이전에는 호메로스의 모방으로 폄하됐지만, 이제는 ‘단순한 모방 이상의 일’로 본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영웅 아이네아스를 중심으로 읽는 해석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오비디우스가 시도한 디도의 시점은 베르길리우스의 의도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시선을 전환하면, 『아이네이스』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한 사건을 어떤 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일깨우는 작품임을 알게 된다.
이 번역본은 라틴어 원전의 12권을 4권씩 묶어 총 3책으로 완역한 열린책들 판본이다.
역자는 라틴 서사시의 헥사미터 운율을 우리말에서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한 줄 18자 내외로 옮겼다.
우리말 어순에 맞추면서도 원문의 어휘·구성·시행 순서를 최대한 보존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인물·지명·신화 설명과 원문 행 번호, 촘촘한 주석이 함께 실려 있어, 원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길을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작품의 작가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70년 만투아 근교에서 태어나, 『목동가』와 『농경가』로 이름을 알린 후 마지막 11년을 『아이네이스』 집필에 바쳤다. 그러나 기원전 19년, 작품의 무대를 직접 답사하려 떠난 여행에서 병을 얻어 브룬디시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완성 원고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뜻으로 친구 바리우스와 투카가 편집만 마친 채 지금까지 전해졌다. 그래서 작품 곳곳에는 사건의 흐름에 비해 길거나 미묘하게 이질적인 부분들이 남아 있는데, 이는 결함이라기보다 완성을 향해 치열하게 공사 중이던 흔적으로 보는 편이 맞다.
1권 (원전 1~4권)
이야기는 유노의 질투가 부른 폭풍 속에서 시작된다. 난파한 아이네아스 일행은 카르타고에 표착하고, 여왕 디도의 환대를 받는다. 그는 불타는 트로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회상한다. 목마 속임수, 라오쿤의 경고, 프리아모스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를 어깨에 메고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떠나는 장면은 이 서사의 정서를 단번에 압축한다. 이어지는 여정에서 그들은 폴리도로스의 음산한 표징, 잘못 해석한 신탁, 예언자들의 경고와 불길한 예언을 거쳐 시칠리아로 향한다. 4권에서 서사는 가장 비극적인 고비를 맞는다. 유노와 베누스가 꾸민 함정 속에서 아이네아스와 디도는 사랑에 빠지고, 디도는 그 관계를 혼인으로 믿는다. 그러나 아이네아스는 “로마의 운명이 나를 부른다”며 떠나고, 디도는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장면은 국가적 소명과 개인의 사랑이 어떻게 양립할 수 없는지를 보여 준다.
2권 (원전 5~8권)
시칠리아에서 아이네아스는 부친 앙키세스의 1주기를 기리는 장례 경기를 연다. 배 경주, 권투, 활쏘기, 소년 기마대 등 다양한 종목은 공동체가 애도를 의례로 승화해 결속을 다지는 과정을 그린다. 이어 쿠마이로 향한 아이네아스는 시빌라의 안내로 저승을 여행하며, 엘리시움에서 아버지에게 로마의 미래와 후손들의 영광을 듣는다. 7권부터 무대는 라티움으로 옮겨지고, 라티누스 왕은 아이네아스에게 딸 라비니아를 주려 하지만, 유노가 보낸 알렉토가 이를 방해해 전쟁의 불씨를 지핀다. 아이네아스는 에우안드로스와 동맹을 맺고, 젊은 팔라스가 그와 함께 전장에 나선다. 베누스가 불카누스에게 부탁해 만든 새로운 무장은 아이네아스의 사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다.
3권 (원전 9~12권)
아이네아스가 부재한 틈에 트로이군은 포위당하고, 니수스와 에우리알로스가 목숨을 건 돌파를 시도하다 전사한다. 아이네아스가 돌아와 전세를 뒤집지만, 팔라스가 투르누스에게 쓰러진다. 분노한 아이네아스는 메젠티우스를 무찌르고, 그의 아들 라우수스와의 싸움에서 인간적인 슬픔과 전쟁의 잔혹함이 교차한다. 11권에서는 잠시 휴전 속에 장례가 치러지지만, 여전사 카밀라가 창에 맞아 전사하며 다시 전투가 격화된다. 12권에서 마침내 아이네아스와 투르누스가 일대일 결투를 벌이고, 양 진영은 승자의 조건을 따르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전투 끝에 쓰러진 투르누스를 살리려던 아이네아스는 팔라스의 허리띠를 보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를 죽인다. 장엄하지만 씁쓸하게 끝나는 결말은, 로마의 영광이 결코 값없이 얻어진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번역본의 진짜 매력은 원문 헥사미터의 리듬을 살린 18자 구성에 있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원래 시의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한 줄에 비슷한 길이의 글자를 맞춰 읽기 좋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운율 덕분에 서사시의 장중함이 문장 호흡에 그대로 살아나고, 촘촘한 각주와 인명·지명 설명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해설은 베르길리우스의 생애와 집필 과정, 미완성 원고의 사정까지 꼼꼼하게 짚어 주어 작품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감상하고 해석하는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아이네이스』는 영웅을 미화하기보다 국가의 영광 뒤에 가려진 희생과 상실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로마의 찬가이자 동시에 한 도시의 탄생이 누구의 삶 위에 세워졌는지를 끝까지 묻는 기록이기도 하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고전을 완역으로, 운율의 호흡까지 느끼며 읽고 싶은 분
- 로마사·신화, ‘국가와 개인’의 문제에 관심 있는 분
- 서사시가 지금-여기의 질문과 만나는 지점을 찾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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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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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인스타 @hagonol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