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도둑 캐드펠 수사 시리즈 19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엘리스 피터스의 《성스러운 도둑》(원제 The Holy Thief)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열아홉 번째 장편소설로, 성스러움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도둑질과 살인, 그리고 성물(聖物, 종교적으로 신성시 되는 물건)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신념의 충돌을 예리하게 그려낸다. ‘성녀 위니프레드는 정말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욕망으로 오염된 신앙에서부터 연대의 가능성까지 인간 사회의 복잡한 관계와 윤리를 유려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폐허가 된 램지 수도원에서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슈루즈베리를 찾아온 인물은 부원장 헤를루인과 젊은 수사 투틸로다. 때마침 슈루즈베리에 큰비가 내려 강물이 범람하고, 수도사들은 귀중한 성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느라 분주하다. 그중에는 수도원의 수호성인 위니프레드 성녀의 성골함이 있었다. 그러나 홍수가 잦아든 뒤 성물 보관 상태를 점검하던 수도사들은 성골함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더 큰 비극은, 범인의 얼굴을 봤을 것으로 여겨지는 유력한 목격자가 끔찍하게 살해되면서 사건이 단순한 도난에서 살인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이 얽혀 있다. 수도원 사제들 간의 미묘한 긴장, 귀족과 하인 사이의 권력 구조, 그리고 여가수 달니와 젊은 수도사 사이의 섬세한 감정선까지, 각각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설계되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린다. 특히 투틸로는 음악적 재능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그의 과거와 행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기부금을 모으고 설교를 하며 사람들을 사로잡는 한편, 달니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한다.

사건이 복잡해지자 수도원장 라투루푸스는 ‘스트레스 비블리카’라는 성경 점괘 방식을 통해 신의 계시로 해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캐드펠은 이런 종교적 해석보다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눈빛과 침묵 속에서 진심을 읽는다. 그는 추리보다는 이해와 연민, 인간에 대한 통찰로 진실에 접근한다. 작품 속 다음과 같은 대사는 캐드펠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제게는 돌봐야 할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거짓말쟁이요, 도둑에 사기꾼이긴 하지만, 세상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불성실한 아이인 동시에 좋은 아이입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충격적이다. 성골함 안에는 위니프레드 성녀의 유골이 아니라, 콜롬바누스라는 젊은 죄인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이는 성물 도난이 단순한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은폐와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범인은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성물을 훔쳤고, 그로 인해 공동체 전체의 신앙은 깊은 상처를 입는다.

작품 속 대사들은 성과 속, 인간과 신앙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성녀님도 뼈를 두고 다투는 개들처럼 당신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들에게 진저리를 내실 거요.”

“만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라면, 그걸 왜 기적이라 부르겠소?”

“발견하는 건 도둑질이랑은 다르잖나.”

결국 성골함은 제자리를 찾지만, 독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 성스럽고 무엇이 속된가’라는 질문이다. 성스러운 것은 절대적으로 순수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속된 것도 반드시 타락한 것만은 아니다.

《성스러운 도둑》은 성물 절도와 살인이라는 미스터리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의 욕망, 신념, 연대, 그리고 용서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캐드펠은 법과 규율보다 인간적인 이해를 우선하며, 이를 통해 범죄 너머의 인간성을 드러낸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The Chronicles of Brother Cadfael)’는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생생한 캐릭터, 그리고 선과 악·삶과 죽음·신과 인간이라는 인간사의 난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역사추리소설의 고전이다. 그중에서도 《성스러운 도둑》은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인간사의 미묘한 심리를 촘촘히 엮어낸 수작으로, 미스터리의 재미와 함께 오래 남는 사유를 선사한다.

'공백작가 @gongbaek_bookdressup'님을 통해

'북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뭐든 하기로 마음먹으면 자신의 모든 것 다 바치며 임하는 사람이요.
하지만 스스로 확신과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하게 지금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 P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란의 여름 캐드펠 수사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엘리스 피터스의 《반란의 여름》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18번째 이야기로, 역사와 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역사추리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완간 30주년을 기념해 전면 개정판으로 출간된 이번 작품은 중세의 정치와 종교, 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얽힌 세계를 세밀하게 담아낸 지적인 미스터리다.

이번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인물과 사건을 치밀하게 엮어낸다. 웨일스 내부의 권력 다툼, 교회 조직의 변화, 그리고 각 인물이 마주하는 신념과 충성의 갈등이 중심에 놓인다. 캐드펠 수사는 사건 속에서 정의라는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관찰자로서 균열과 진실을 들여다본다. 덴마크인들과의 대치, 웨일스와 잉글랜드 간의 미묘한 신경전, 성직자의 결혼 문제 등 중세 교회의 갈등이 살인과 납치 사건의 배경이 되어 시리즈 중에서도 유난히 묵직한 긴장감을 만든다.

이야기는 교회의 사절로서 캐드펠이 마크 수사와 함께 웨일스를 찾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웨일스의 왕 오아인 귀네드는 암살 사건에 연루된 동생 카드왈라드르를 추방한 상태다. 카드왈라드르는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피신해 덴마크인들을 끌어들여 형에게 빼앗긴 영지를 되찾으려 한다.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경계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형제의 갈등은 긴장감을 높인다.

그 한가운데, 한 젊은 웨일스 여인이 사건의 중심에 선다. 그녀를 보호하려는 오아인의 뜻은 곧 정치적 파장으로 번지고, 이를 두고 주변 인물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힌다. 표면적으로는 실종 사건이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 충성, 사랑이 교차한다. 캐드펠과 마크 수사는 그녀를 지키려다 덴마크인의 포로가 되고, 이어지는 살인 사건은 숨겨져 있던 진심과 죄를 서서히 드러낸다.

이번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캐드펠이 중심에서 직접 지휘하기보다 한 발 물러서 관찰자의 위치를 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표정과 침묵 속에서 진심을 읽어낸다.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상대방이 스스로 선택하게끔 길을 터주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범인은 누구인가?’보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를 묻게 한다.

작품 속 가장 긴장감 있는 장면 중 하나는 캐드펠이 포로로 잡혔을 때다. 그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상대의 심리를 읽고 대화를 이끌어간다. 이 장면에서는 단순한 사건 해결 능력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드러난다. 또한 카드왈라드르가 명예와 충성을 말하면서도 권력욕을 숨기지 않는 모습은, 충성심이란 결국 개인의 이익과 맞아떨어질 때만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중세 웨일스라는 무대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잉글랜드 교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성직자의 결혼 문제, 종교 개혁 논의, 왕족 간의 권력 다툼, 귀족과 성직자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시대상은 이야기에 역사극 같은 밀도를 더한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촘촘하게 재현해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살아 숨 쉬는 역사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줄리언 크루소라는 젊은 여인의 실종 사건은 사랑과 보호의 복잡한 양면성을 드러낸다. 보호하려는 마음이 갈등을 부르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명분이 구속으로 변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사랑의 방식이 충돌하는 순간, 인물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캐드펠은 그 과정에서 정의와 연민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결말에 이르면 사건은 겉으로는 매듭지어지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사람을 지킨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캐드펠은 승리보다 평화를, 응징보다 이해를 선택한다. 처음엔 그 온건함이 답답하게 보일 수 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해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반란의 여름》은 화려한 반전이나 속도감 있는 전개보다, 서서히 스며드는 깊이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정치와 종교, 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얽힌 복잡한 세계 속에서, 인간의 두려움과 자존심, 사랑과 신념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슈루즈베리 수도원의 고요함과 웨일스의 여름 하늘은 책을 덮은 뒤에도 선명히 남아, 다시 한 번 캐드펠과의 여정을 꿈꾸게 한다.

'공백작가 @gongbaek_bookdressup'님을 통해

'북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눈앞에서 갑자기 예기치 않은 문이 열렸을 때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
이는 그동안 캐드펠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요하고 단단하게, 채근담 - 무너지지 않는 마음 공부
홍자성 지음, 최영환 엮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제목이 참 마음에 들어왔다.

고요하고 단단하게 ㅡ 이 ‘단단하다’는 말이 참 좋았다.

체력이 부족한 탓인지 멘탈이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요즘 이 단어가 가슴에 와닿는다.

어쩌면 그런 감정은 지금 내가 바라는 모습이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 책 명나라 말기 학자 홍자성이 400년 전쯤에 쓴 『채근담』에는 삶의 해답 같은 문장들이 가득했다.

채근(菜根), 채소 뿌리라는 소박한 이름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단단하게 버티는 삶의 힘 말이다.

이 책은 전집과 후집으로 나뉜다. 전집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후집은 한 발 물러서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준다. 말하자면 ‘바쁜 일상 속의 나’와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나’가 균형을 이루게 하는 책이다. 그 균형이 깨지면 우리는 쉽게 지치거나, 반대로 세상과 멀어져 버리기 쉽다.

읽다 보면 마음에 콕 박히는 문장이 많다. 예를 들어 이런 말이 있다.

“복잡함은 인간관계를 피로하게 만들고, 지나친 계산은 진심을 해친다.”

사람을 대할 때 이런저런 계산이 앞서면 더 불편해지고, 결국 관계가 금방 식어버린다.

차라리 조금 서툴러도 솔직하게 대하는 편이 오래 간다는 말이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막는 깨끗함보다 안에서 지키는 고요한 절제가 더 깊은 품격을 드러낸다.”

아무리 주변 환경을 바꿔도 내 마음이 시끄러우면 평화로울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건 내 안을 다스리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서 마주하는 쓴맛도 그냥 흘려보내지 말라고 한다.

듣기 좋은 말, 편안한 상황만 찾아다니면 마음은 자라지 않는다.

불편한 말, 거슬리는 일을 견디고 그 안에서 나를 다듬는 과정이야말로 참된 수양이라고 말한다.

또한, 뿌리가 없으면 꽃은 오래 피지 못한다.는 말도 참 좋았다.

업적이나 권력으로 얻은 명예는 잠깐은 화려해도 금세 시든다.

진짜 오래 가는 건 사람의 인품과 덕에서 나온 명예다. 남들이 잠깐 주는 박수보다, 오래 기억되는 신뢰를 쌓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은 치열함과 여유의 균형을 강조한다.

죽도록 달리기만 하면 마음이 메마르고, 반대로 여유만 누리면 발전이 없다.

뜨겁게 달리다가도 봄바람처럼 숨을 고를 줄 알고, 고요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오래간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요즘의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숨 돌릴 틈 없이 살아가다 보니 행복과 재미라는 단어가 점점 멀어지고, 마음이 마르고 건조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생기 있는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이 바로 그 변화를 시작할 때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고마운 문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움’에 대한 얘기도 참 인상 깊었다.

가득 찬 그릇은 아무것도 더 담을 수 없지만, 비워진 그릇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다 채우려고만 하면 쏟아지기 마련이지 않나?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인간관계에 관한 가르침도 빼놓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지만, 그걸 들춰내기보다 조용히 덮어주고 보완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고집 센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면 마음이 열리지만 거칠게 맞서면 더 단단히 닫히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험담과 아첨에 대한 경고도 인상 깊다.

험담은 결국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고, 아첨은 영혼을 해친다.

관계를 지탱하는 건 정직과 절제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고요하고 단단하게, 채근담』은 400년 전 쓰인 문장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 가득하다. 복잡한 마음을 단순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아 주는 구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위로나 방향이 필요할 때, 그 순간에 맞는 한 장을 꺼내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마음이 지치거나 산만해질 때, 이 책은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주는 벗이 되어줄 것이다.

고요하고 단단하게 — 그 말은 지금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자, 앞으로 지켜가고 싶은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 길 위에서 이 책이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리텍콘텐츠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062 치열함과 여유, 삶을 지탱하는 두 기둥
삶에는 긴장과 여유가 함께 흐를 때 비로소 균형이 생깁니다. 자신을 갈고닦고자 하는 치열한 마음은 성장의 불꽃이 되지만, 거기에 유연함과 소박한 즐거움이 더해질 때 그 불꽃은 타인을 따뜻하게 데우는 빛이 됩니다.

만일 고된 자기 수련에만 매몰된다면, 가을의 찬바람처럼 모든 것을 시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봄바람처럼 생기를 불어넣는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따뜻하게 변화시킵니다.

치열함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고요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사람,
그것이 진정으로 학문하는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 P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가의 동물수첩 - 인생에 꼭 한번, 사막여우와 카피바라에게 말 걸기
박성호 지음 / 몽스북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성호의 『여행가의 동물수첩』은 여행가로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만난 동물들과, 그 동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자신을 비추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여행기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풍경보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나’에 대한 성찰이 중심에 있다.

저자는 원래 사람을 대하는 데는 서툴지만, 동물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고백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동물과 있을 때 그는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동물은 어릴 적 상상력과 호기심을 끌어내고, 세월 속에서 각지고 메마른 마음을 단순하고 순수하게 되돌려준다. 도시의 삶 속에서 효율과 합리성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규격 외의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동물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틀이 깨진다.

작가는 ‘여행가’라는 직업을 스스로 정의한다.

그는 단순히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순록이 계절 따라 5,000km를 걸으며 머물지 않는 것처럼, 여행가 역시 끊임없이 움직이며 경험을 나누어야 한다고 믿는다.

광산 갱도에서 사파이어를 캐고, 사바나 원주민과 함께 사냥을 나서고, 한 번 사는 인생에서 다양한 삶의 순간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 그의 목표는 공항과 비행기 타는 법을 알려주는 안내자가 아니라, 주저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본 코브라 부리는 할아버지의 장면이 그랬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이국적인 볼거리 같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 숨어 있었다. 피리 소리에 이끌려 카메라 셔터를 누른 여행객은 곧바로 할아버지의 위협과 요구에 시달리며 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 모습을 보며 작가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대담함과 생존력을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쌍한 여행객들에게 연민을 품었다. 여행은 이렇게 뜻밖이면서도 거칠고, 인간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게 만든다.

사막여우 이야기는 이 책의 따뜻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사막여우를 “우주에서 가장 귀여운 생명체”라고 부른다. 귀여움은 질투와 증오까지 무너뜨리는 힘을 가진다. 동물은 욕망과 감정을 숨기지 않고 열렬히 표현하며 살아간다. 그 단순하고 솔직한 모습은 마치 인간 마음속의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내려온 존재 같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백지로 비워지고, 마음속 불순물이 걸러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작가는 동물처럼 ‘투명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착함과는 다른,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는 태도를 말한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만난 ‘구김 없는 어른’의 이야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신기한 동물들의 짓궂은 장난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그 아이의 모습은, 작가에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법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자신이 점점 웃음을 감추고 살아왔음을 인정하며, 행복한 순간만큼은 다시 아이로 돌아가 체면과 가식을 벗어던지고 웃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 발랄한 웃음소리는 고요한 숲속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만약 그 웃음이 없었다면 그날은 이토록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 하루는 여행 중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책 마지막 에필로그 글에서, 저자는 동물이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존재라고 말한다.

동물은 불안과 외로움을 부추기는 어두운 상상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으로 가득 찬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그것은 ‘희망’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과 같다.

두 발로 걷는 고슴도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하루가 가벼워지고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여행가의 동물수첩』은 여행지에서 만난 동물을 통해 단순함과 투명함, 그리고 잊고 살았던 감정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행가로서의 삶과 태도, 낯선 세계에서의 관찰, 그리고 동물이 주는 위로와 영감을 모두 담아낸다. 읽고 나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동물이 건네는 무심한 힘과 그 힘이 불러오는 상상과 희망은, 잠시나마 우리를 ‘규격 외’의 자리로 데려가 진짜 나를 만나게 한다.


'몽스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신기한 동물들의 짓궂은 장난과 까르르 하는 그 애의 웃음소리에 나는 진심으로 멋진 하루라고 생각했다. 행복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시원 상큼한 형태인 것 같았다. 세상이 반짝반짝 눈부셨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푸르고 싱그럽게 느껴졌다. 숲속 어디선가 진줏빛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나 나쁘고 악한 기운을 한껏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도 또렷이 기억되는 행복의 순간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행복은 슬픔이나 좌절만큼 날카롭지 않아서 깊이 파고든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저 포근히 공기를 감싸고 있다가 향기 정도만 어렴풋이 남을 뿐이다.
하지만 그날의 행복은 맑고 선명했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 뛰어든 것처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뻿뻿이 굳은 목석이라는 게 아쉽긴 했지만. - P2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같이 밥 먹고 싶은 아저씨 되는 법 - 김태균의 웃으면서 배운 인생 이야기
김태균 지음 / 몽스북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태균의 『같이 밥 먹고 싶은 아저씨 되는 법』은 유쾌한 문장 속에 삶과 관계에 대한 단단한 태도를 담아낸 책이다. 짧은 글이 대부분이지만, 그 안에는 웃음을 자아내는 위트와 곱씹게 되는 묵직한 메시지가 공존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은 특별한 재능이나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고, 마음을 표현하며, 주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 속에서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갔다 올게’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내용은 단 한 줄뿐이었지만, 이 짧은 문장이 유독 강하게 와 닿았다.

나는 이 말을 읽자마자 마치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나갔다 오겠다는 일상적인 인사가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안심과 믿음을 주는 말처럼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이 짧은 문장이 오히려 책 속 긴 글들보다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효도’라는 주제를 다룬 글들에선 공감이 가기도 하고, 저자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괜히 더 울컥해지기도 했다. “살아 계실 때 틈틈이 습관적으로 하는 것. 그래야 돌아가시고 나서도 틈틈이 습관적으로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라는 구절은,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말 걸고, 더 자주 안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느껴지던 부모님의 존재가 사실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짧고 명확한 조언이 가득하다.

‘자랑’ 편에서는 자랑을 참는 것이 곧 자존감을 지키는 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돈을 빌려줘야 할까요, 말까요?’ 편에서는 돈 문제로 관계가 흔들린다면 오히려 관계를 정리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혼자 있기’ 편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곧 나와 잘 지내는 시간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또한 ‘누룽지’ 편에서는 아플 때마다 엄마가 끓여주던 누룽지의 따뜻함을,

그리고 지금 아내가 그 맛을 이어주고 있다는 감사함을 이야기한다.\

여행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역시 집이 좋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와, 집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원인이 나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도 전한다.

‘미안해’라는 말은 그 순간에 바로 해야 한다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A씨의 반찬 투정’ 이야기를 통해 세상살이는 원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일깨운다.

‘매력’에 대해서는 타고난 성품과 환경, 성향, 재능, 그리고 살아온 삶이 만드는 것이며, 결코 흉내 낼 수 없다고 말한다. ‘감정 문제’ 편에서는 멀리해야 할 사람들의 특징을 나열하며, 자신이 그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인정하고 바꿀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사랑해’라는 말은 아끼다 후회하지 말고 마음이 있을 때 표현해야 한다고 따뜻하게 당부한다.

결국 『같이 밥 먹고 싶은 아저씨 되는 법』은 부모님, 가족, 친구, 동료 등 우리 일상 속 모든 관계를 다루며, 그 속에서 지켜야 할 태도와 습관을 짧고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약속을 지키고, 마음을 제때 표현하며,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는 과감히 정리하고, 스스로를 지켜주는 관계를 지키는 것. 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과 마음 씀씀이에서 우러나온다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이 책은 그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짧지만 오래 남는 글로 전한다. 웃으며 읽다가도 마음이 뜨끔하거나 울컥하는 순간이 있고, 책을 다 읽고 나면 부모님께 전화를 걸거나 찾아뵈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미뤄둔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몽스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문제) 다음 중 살면서 멀리해야 하는 사람을 고르시오.
1. 약속 시간에 자주 늦는 사람
2. 자기가 한 말을 못 지키는 사람
3. 남 얘기 안 듣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
4. 내 앞에서 남들 흉보는 사람
5. 자기 자랑하기 바쁜 사람
6. 당연한 듯이 얻어먹기만 하는 거지 근성이 있는 사람
7. 해달라고도 안 했는데 지적하고 충고하는 사람
8.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
(중략)

혹시 본인이 이 중에 한 가지라도 해당이 된다고 인정한다면
늦지 않았으니 자신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이 그런 사람이라고 솔직히 인정했기 때문에 당신은 바뀔 수 있어요. - P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