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도둑 캐드펠 수사 시리즈 19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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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피터스의 《성스러운 도둑》(원제 The Holy Thief)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열아홉 번째 장편소설로, 성스러움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도둑질과 살인, 그리고 성물(聖物, 종교적으로 신성시 되는 물건)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신념의 충돌을 예리하게 그려낸다. ‘성녀 위니프레드는 정말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욕망으로 오염된 신앙에서부터 연대의 가능성까지 인간 사회의 복잡한 관계와 윤리를 유려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폐허가 된 램지 수도원에서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슈루즈베리를 찾아온 인물은 부원장 헤를루인과 젊은 수사 투틸로다. 때마침 슈루즈베리에 큰비가 내려 강물이 범람하고, 수도사들은 귀중한 성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느라 분주하다. 그중에는 수도원의 수호성인 위니프레드 성녀의 성골함이 있었다. 그러나 홍수가 잦아든 뒤 성물 보관 상태를 점검하던 수도사들은 성골함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더 큰 비극은, 범인의 얼굴을 봤을 것으로 여겨지는 유력한 목격자가 끔찍하게 살해되면서 사건이 단순한 도난에서 살인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이 얽혀 있다. 수도원 사제들 간의 미묘한 긴장, 귀족과 하인 사이의 권력 구조, 그리고 여가수 달니와 젊은 수도사 사이의 섬세한 감정선까지, 각각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설계되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린다. 특히 투틸로는 음악적 재능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그의 과거와 행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기부금을 모으고 설교를 하며 사람들을 사로잡는 한편, 달니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한다.

사건이 복잡해지자 수도원장 라투루푸스는 ‘스트레스 비블리카’라는 성경 점괘 방식을 통해 신의 계시로 해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캐드펠은 이런 종교적 해석보다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눈빛과 침묵 속에서 진심을 읽는다. 그는 추리보다는 이해와 연민, 인간에 대한 통찰로 진실에 접근한다. 작품 속 다음과 같은 대사는 캐드펠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제게는 돌봐야 할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거짓말쟁이요, 도둑에 사기꾼이긴 하지만, 세상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불성실한 아이인 동시에 좋은 아이입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충격적이다. 성골함 안에는 위니프레드 성녀의 유골이 아니라, 콜롬바누스라는 젊은 죄인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이는 성물 도난이 단순한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은폐와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범인은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성물을 훔쳤고, 그로 인해 공동체 전체의 신앙은 깊은 상처를 입는다.

작품 속 대사들은 성과 속, 인간과 신앙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성녀님도 뼈를 두고 다투는 개들처럼 당신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들에게 진저리를 내실 거요.”

“만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라면, 그걸 왜 기적이라 부르겠소?”

“발견하는 건 도둑질이랑은 다르잖나.”

결국 성골함은 제자리를 찾지만, 독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 성스럽고 무엇이 속된가’라는 질문이다. 성스러운 것은 절대적으로 순수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속된 것도 반드시 타락한 것만은 아니다.

《성스러운 도둑》은 성물 절도와 살인이라는 미스터리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의 욕망, 신념, 연대, 그리고 용서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캐드펠은 법과 규율보다 인간적인 이해를 우선하며, 이를 통해 범죄 너머의 인간성을 드러낸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The Chronicles of Brother Cadfael)’는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생생한 캐릭터, 그리고 선과 악·삶과 죽음·신과 인간이라는 인간사의 난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역사추리소설의 고전이다. 그중에서도 《성스러운 도둑》은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인간사의 미묘한 심리를 촘촘히 엮어낸 수작으로, 미스터리의 재미와 함께 오래 남는 사유를 선사한다.

'공백작가 @gongbaek_bookdressup'님을 통해

'북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뭐든 하기로 마음먹으면 자신의 모든 것 다 바치며 임하는 사람이요.
하지만 스스로 확신과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하게 지금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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