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동물수첩 - 인생에 꼭 한번, 사막여우와 카피바라에게 말 걸기
박성호 지음 / 몽스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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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의 『여행가의 동물수첩』은 여행가로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만난 동물들과, 그 동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자신을 비추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여행기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풍경보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나’에 대한 성찰이 중심에 있다.

저자는 원래 사람을 대하는 데는 서툴지만, 동물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고백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동물과 있을 때 그는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동물은 어릴 적 상상력과 호기심을 끌어내고, 세월 속에서 각지고 메마른 마음을 단순하고 순수하게 되돌려준다. 도시의 삶 속에서 효율과 합리성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규격 외의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동물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틀이 깨진다.

작가는 ‘여행가’라는 직업을 스스로 정의한다.

그는 단순히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순록이 계절 따라 5,000km를 걸으며 머물지 않는 것처럼, 여행가 역시 끊임없이 움직이며 경험을 나누어야 한다고 믿는다.

광산 갱도에서 사파이어를 캐고, 사바나 원주민과 함께 사냥을 나서고, 한 번 사는 인생에서 다양한 삶의 순간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 그의 목표는 공항과 비행기 타는 법을 알려주는 안내자가 아니라, 주저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본 코브라 부리는 할아버지의 장면이 그랬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이국적인 볼거리 같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 숨어 있었다. 피리 소리에 이끌려 카메라 셔터를 누른 여행객은 곧바로 할아버지의 위협과 요구에 시달리며 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 모습을 보며 작가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대담함과 생존력을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쌍한 여행객들에게 연민을 품었다. 여행은 이렇게 뜻밖이면서도 거칠고, 인간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게 만든다.

사막여우 이야기는 이 책의 따뜻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사막여우를 “우주에서 가장 귀여운 생명체”라고 부른다. 귀여움은 질투와 증오까지 무너뜨리는 힘을 가진다. 동물은 욕망과 감정을 숨기지 않고 열렬히 표현하며 살아간다. 그 단순하고 솔직한 모습은 마치 인간 마음속의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내려온 존재 같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백지로 비워지고, 마음속 불순물이 걸러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작가는 동물처럼 ‘투명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착함과는 다른,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는 태도를 말한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만난 ‘구김 없는 어른’의 이야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신기한 동물들의 짓궂은 장난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그 아이의 모습은, 작가에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법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자신이 점점 웃음을 감추고 살아왔음을 인정하며, 행복한 순간만큼은 다시 아이로 돌아가 체면과 가식을 벗어던지고 웃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 발랄한 웃음소리는 고요한 숲속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만약 그 웃음이 없었다면 그날은 이토록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 하루는 여행 중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책 마지막 에필로그 글에서, 저자는 동물이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존재라고 말한다.

동물은 불안과 외로움을 부추기는 어두운 상상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으로 가득 찬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그것은 ‘희망’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과 같다.

두 발로 걷는 고슴도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하루가 가벼워지고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여행가의 동물수첩』은 여행지에서 만난 동물을 통해 단순함과 투명함, 그리고 잊고 살았던 감정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행가로서의 삶과 태도, 낯선 세계에서의 관찰, 그리고 동물이 주는 위로와 영감을 모두 담아낸다. 읽고 나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동물이 건네는 무심한 힘과 그 힘이 불러오는 상상과 희망은, 잠시나마 우리를 ‘규격 외’의 자리로 데려가 진짜 나를 만나게 한다.


'몽스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신기한 동물들의 짓궂은 장난과 까르르 하는 그 애의 웃음소리에 나는 진심으로 멋진 하루라고 생각했다. 행복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시원 상큼한 형태인 것 같았다. 세상이 반짝반짝 눈부셨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푸르고 싱그럽게 느껴졌다. 숲속 어디선가 진줏빛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나 나쁘고 악한 기운을 한껏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도 또렷이 기억되는 행복의 순간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행복은 슬픔이나 좌절만큼 날카롭지 않아서 깊이 파고든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저 포근히 공기를 감싸고 있다가 향기 정도만 어렴풋이 남을 뿐이다.
하지만 그날의 행복은 맑고 선명했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 뛰어든 것처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뻿뻿이 굳은 목석이라는 게 아쉽긴 했지만.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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