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여름 캐드펠 수사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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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피터스의 《반란의 여름》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18번째 이야기로, 역사와 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역사추리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완간 30주년을 기념해 전면 개정판으로 출간된 이번 작품은 중세의 정치와 종교, 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얽힌 세계를 세밀하게 담아낸 지적인 미스터리다.

이번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인물과 사건을 치밀하게 엮어낸다. 웨일스 내부의 권력 다툼, 교회 조직의 변화, 그리고 각 인물이 마주하는 신념과 충성의 갈등이 중심에 놓인다. 캐드펠 수사는 사건 속에서 정의라는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관찰자로서 균열과 진실을 들여다본다. 덴마크인들과의 대치, 웨일스와 잉글랜드 간의 미묘한 신경전, 성직자의 결혼 문제 등 중세 교회의 갈등이 살인과 납치 사건의 배경이 되어 시리즈 중에서도 유난히 묵직한 긴장감을 만든다.

이야기는 교회의 사절로서 캐드펠이 마크 수사와 함께 웨일스를 찾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웨일스의 왕 오아인 귀네드는 암살 사건에 연루된 동생 카드왈라드르를 추방한 상태다. 카드왈라드르는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피신해 덴마크인들을 끌어들여 형에게 빼앗긴 영지를 되찾으려 한다.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경계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형제의 갈등은 긴장감을 높인다.

그 한가운데, 한 젊은 웨일스 여인이 사건의 중심에 선다. 그녀를 보호하려는 오아인의 뜻은 곧 정치적 파장으로 번지고, 이를 두고 주변 인물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힌다. 표면적으로는 실종 사건이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 충성, 사랑이 교차한다. 캐드펠과 마크 수사는 그녀를 지키려다 덴마크인의 포로가 되고, 이어지는 살인 사건은 숨겨져 있던 진심과 죄를 서서히 드러낸다.

이번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캐드펠이 중심에서 직접 지휘하기보다 한 발 물러서 관찰자의 위치를 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표정과 침묵 속에서 진심을 읽어낸다.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상대방이 스스로 선택하게끔 길을 터주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범인은 누구인가?’보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를 묻게 한다.

작품 속 가장 긴장감 있는 장면 중 하나는 캐드펠이 포로로 잡혔을 때다. 그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상대의 심리를 읽고 대화를 이끌어간다. 이 장면에서는 단순한 사건 해결 능력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드러난다. 또한 카드왈라드르가 명예와 충성을 말하면서도 권력욕을 숨기지 않는 모습은, 충성심이란 결국 개인의 이익과 맞아떨어질 때만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중세 웨일스라는 무대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잉글랜드 교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성직자의 결혼 문제, 종교 개혁 논의, 왕족 간의 권력 다툼, 귀족과 성직자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시대상은 이야기에 역사극 같은 밀도를 더한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촘촘하게 재현해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살아 숨 쉬는 역사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줄리언 크루소라는 젊은 여인의 실종 사건은 사랑과 보호의 복잡한 양면성을 드러낸다. 보호하려는 마음이 갈등을 부르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명분이 구속으로 변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사랑의 방식이 충돌하는 순간, 인물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캐드펠은 그 과정에서 정의와 연민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결말에 이르면 사건은 겉으로는 매듭지어지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사람을 지킨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캐드펠은 승리보다 평화를, 응징보다 이해를 선택한다. 처음엔 그 온건함이 답답하게 보일 수 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해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반란의 여름》은 화려한 반전이나 속도감 있는 전개보다, 서서히 스며드는 깊이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정치와 종교, 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얽힌 복잡한 세계 속에서, 인간의 두려움과 자존심, 사랑과 신념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슈루즈베리 수도원의 고요함과 웨일스의 여름 하늘은 책을 덮은 뒤에도 선명히 남아, 다시 한 번 캐드펠과의 여정을 꿈꾸게 한다.

'공백작가 @gongbaek_bookdressup'님을 통해

'북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눈앞에서 갑자기 예기치 않은 문이 열렸을 때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
이는 그동안 캐드펠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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