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싸우는가 - 싸울 수밖에 없다는 착각 그리고 해법
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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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블랫먼의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싸우는가?”

저자는 우간다 북부와 시카고 갱단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폭력을 통해, 사회의 성공이란 단순히 부의 증가가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집 앞에 앉아 평온히 쉴 수 있고, 경찰이나 법원을 찾아 정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고향에서 쫓겨나지 않는 일상적인 안전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쟁을 국가 간 대규모 전투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마을과 씨족, 갱단과 종파, 정당과 국가 등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지는 폭력적 갈등을 모두 전쟁으로 본다. 사실 대부분의 적대적 집단조차도 실제로는 나란히 살아간다. 그런데 왜 어떤 사회는 타협에 실패하고 폭력으로 치닫는가?

블랫먼이 제시하는 답은 다섯 가지다.

첫째, 견제되지 않은 이익이다.

권력자가 전쟁의 대가를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을 때, 자신의 이득만 보고 무모한 선택을 한다.

둘째, 무형의 동기다.

복수, 명예, 종교적 열망 같은 가치가 현실의 피해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셋째, 불확실성이다.

상대의 힘과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선제공격이 합리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넷째, 이행 문제다.

상대가 미래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은 오늘의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섯째,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는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착각하면서 협상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잘못된 인식’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본문에서는 심리학적 편향들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지식의 저주’(내가 아는 만큼 상대도 알 거라 가정), ‘사후 확신 편향’(결과를 알고 나서 그 결과가 당연했다고 믿음), ‘허위 합의’(상대도 내 판단과 같을 것이라는 착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오류는 우리가 적의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해의 손길조차 속임수로 해석하게 만든다. 결국 갈등은 힘의 충돌 이전에 인식의 충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은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평화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도 이야기한다. 흔히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를 전쟁의 직접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것들이 단지 갈등을 악화시키는 연료일 뿐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다섯 가지 전쟁 동기를 약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다. 그가 말하는 보호 장치는 네 가지다. 첫째, 서로 얽혀 있을수록 전쟁 비용이 커지는 상호의존. 둘째, 권력자의 오판을 막는 견제와 균형. 셋째, 협상이 폭력보다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규칙과 집행. 넷째, 갈등이 폭발하기 전에 막는 개입. 이 네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전쟁은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 된다. 평화는 우연이 아니라 세심한 관리와 설계의 결과라는 점이 강조된다.

책의 후반부는 평화를 향한 구체적 길을 보여준다. 지난 300년 동안 서서히 진행된 참정권 확대와 정치권력의 분산은 폭력을 거치지 않고도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인쇄기와 같은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 신세계라는 대안적 공간, 군사기술의 변화, 새로운 생산 방식 등이 대중의 협상력을 높였다. 그 결과 엘리트들은 양보를 선택했다. 재무부나 관료제 같은 제도를 마련하고, 의회와 지방정부로 권력을 쪼개고, 도로·보건·학교 같은 공공재를 제공했다. 내부의 투쟁은 때로 격렬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협상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평등과 안전, 강력한 국가는 바로 이 과정 속에서 태어났다.

물론 취약한 사회에 사는 이들에게 수 세기를 기다리라는 말은 공허하다. 그들은 지금 당장 평화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조금씩 평화를 만들어가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고. 완벽한 해법은 없지만, 과학이 발전해온 길처럼 평화 역시 실험과 수정, 보완을 거듭하며 조금씩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전쟁을 인간 본성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제도와 인식의 실패로 설명한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고 현실적이다. 전쟁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편향과 오해 속에 살아갈 때 이미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전쟁 연구서이자 평화를 위한 실용적 안내서다.

영웅적 덕목이 아니라 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인식의 장치를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평화의 길임을 강하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은?'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갈등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적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않는 재주, 그래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는 커녕 혐오스러운 외집단에 대한 편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견해를 확증하는 고집스러운 성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 확증 편향, 동기화된 추론 등 우리에게 내재한 편향성이 복합되면서, 신중하게 반응하며 양측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책을 찾으려는 우리의 의욕을 위축시킨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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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지적이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문장 필사책
박경만 지음 / 책글터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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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만의 『인생에서 지적이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문장 필사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고 삶의 태도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평소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필사를 해왔는데, 이 책은 그런 습관을 한 권 안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준 느낌이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좋은 문장을 만나면 오늘 하루의 완성이며 다시 시작이다”라고 고백한 부분은 깊은 공감을 주며 곱씹을수록 울림이 있었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글쓰기에 관한 조언이었다. “사물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볼 것을 명심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그 대상 자체를 정확히 보지 않는다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라는 구절은 글쓰기가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임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필사가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본질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언어를 길러내는 훈련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책 속에서 인용된 파스칼의 구절 또한 오래 남았다. “사악한 인간들은 그 어떠한 진리를 알고 있어도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 있을 때에만 이것을 인정한다. 그 외의 경우에는 이 진리를 버린다.” 이 문장은 진리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내려는 용기라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 스스로는 과연 얼마나 일관되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저자가 전혜린을 회상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학창 시절 우연히 집어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고백은, 나 역시 살면서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흔들었던 경험과 겹쳐졌다. 전혜린처럼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강렬한 힘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루소의 『에밀』에서 발췌한 “인간의 정신적 고통은 전부 다 자신의 생각 속에 있다. (…) 시간이나 죽음은 우리의 약이나 다름없다.”라는 구절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실제 사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통찰은 일상과 직결되는 메시지였다.

필사는 이런 문장을 내 안에 각인시키는 행위이고, 쓰는 과정은 곧 마음을 단단히 다지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공자의 가르침, 롤로 메이의 철학,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가 이어진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신의와 절약, 사랑을 강조했고, 롤로 메이는 인간이 본성을 실현할 때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밀 쿠에는 “나는 날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라는 자기 암시를 통해 확신과 믿음을 키울 것을 권한다.

짧은 문장이지만 삶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이런 꾸준한 반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가 강조한 ‘삼다(三多)’, 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평소 책 읽기는 이어가고 있었지만, 나만의 글쓰기를 소홀히 했던 것이 아쉽게 다가왔다. 그래서 앞으로는 틈새 시간을 내어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고, 그 속에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지적이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문장 필사책』은 그저 명문장을 모아둔 책이 아니다.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고, 필사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우는 책이다.

읽는 동안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다시 써보고 싶게 만들었고,

책을 덮고 나서는 그 문장들을 머릿속 깊이 새겨두고 싶어졌다.

결국 필사는 글을 옮겨 적는 일이 아니라, 나의 삶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성찰의 행위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책글터(세이코리아)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117>
기쁨은 행복과는 달라서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는데, 이 기쁨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완수하는 데서 동반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나 존엄성을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값있게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맛보는 것이다.
- 롤로메이(미국 심리학자)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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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기는 세일즈 - SNS로 억대 매출을 만든 워킹맘의 실전 전략
윤도연 지음 / 노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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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연의 『끌어당기는 세일즈』를 읽으면서, 처음엔 단순히 세일즈 노하우를 담은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은 물건을 잘 파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어떻게 삶의 고난을 버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가에 관한 기록에 가까웠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명함을 돌리고, 추운 겨울 복조리를 팔던 이야기,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맞으며 뛰어다니던 순간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그때는 단순한 경험이었겠지만, 뒤돌아보니 그것이 집안 어딘가에서 이어져 내려온 기질임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도전 정신, 이모의 사업적 감각이 그녀 안에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삶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은행에 다니던 시절, 알 수 없는 아픔이 찾아와 결국 퇴사하고, 인도로 선교 활동을 떠났던 경험은 그녀를 다시 숨 쉬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부모의 말과 행동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고, 회사에 복귀했지만 끝내 다시 그만두게 되었다. 분가를 결심하고도 남편의 실직 소식에 절망했을 때, 읽는 나까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다. 메리케이를 시작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관심이 없던 동생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언니와 함께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두 자매가 함께 메리케이를 다니게 된다. 샘플을 나눠주고, 거절을 견디고, 때로는 삼각김밥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힘들었을 텐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순간조차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이 대목에서 힘들었던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전환점은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병원 침대에 누워 울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다섯 살 아들의 “엄마, 죽으면 안 돼요”라는 말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 장면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수술은 성공했고, 살아남은 이후 그녀는 가족과 자신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그 뒤로는 예전처럼 몸을 갈아 넣는 방식 대신, 온라인으로 고객과 소통하며 더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찾아갔다.

책에는 세일즈 현장에서 얻은 깨달음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무작정 들이대는 영업 방식 대신, 작은 샘플 하나에도 진심을 담아 고객과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았다는 이야기. 메리케이가 한국 철수를 진행하던 순간에 성형외과에 스카웃을 받아 일할 때 고객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직접 지방 흡입 수술을 받는 경험, 중국 고객과의 상담을 위해 매일같이 중국어를 공부한 노력, 그 모든 과정이 단순한 영업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돕는 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녀의 세일즈는 단순히 판매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고객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방식이었다. 그녀의 세일즈는 끌어당김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억지로 밀어붙이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진정성을 느낀 고객이 먼저 다가오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후반부 내용 중에 와닿은 부분은 ‘끌어당김의 법칙’이었다. 부정적인 말이 불행을 끌어오듯, 긍정적인 상상과 언어가 기적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전한다. 저자가 핑크색 표지의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간절히 그렸고, 결국 그 꿈을 현실로 만든 이야기는 마치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세일즈를 단순히 ‘물건을 파는 일’이라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은 이 책을 읽고 완전히 깨졌다. 그것은 결국 사람과의 신뢰를 세우는 일이고, 자신을 세상에 당당히 드러내는 일이었으며, 끝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처럼, 그녀의 인생은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결국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끌어당기는 세일즈』는 영업인을 위한 책으로만 보기엔 아깝다. 삶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특히 “성격은 선택할 수 없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는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나 역시 저자의 실천력을 보면서 작은 일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일을 작게나마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다. 그런 힘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세일즈를 시도하고 있지만 자꾸 벽에 부딪히는 느낌처럼 막막하다면 저자의 경험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노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업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내 길을 내가 결정하는 여정이다. 실패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방향을 조정하고 더 나은 전략을 발견하게 해주는 과정이다. 나는 늘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안에서 길을 찾았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신뢰를 택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 선택을 변함없이 이어갈 것이다.
이제 나는 단순한 판매자를 넘어, 삶의 변화를 제안하는 리더로 자리하고 있다. 잠재의식의 힘을 강조한 조셉 머피의 말처럼, "우리가 집중하는 것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된다. 내가 믿는 방향, 내가 선택한 길, 내가 책임지는 태도…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 또한 그렇게 만들어질 것이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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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으른입니다, 게으른 - 갓생에 굴하지 않는 자기 존중 에세이
김보 지음 / 북라이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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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의 『나는 으른입니다, 게으른』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독특한 에세이다.

이야기 속에는 ‘느긋하지 않은 나무늘보 게으른’과 ‘방심하지 않는 토끼 부지런’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독자들이 마치 동화책을 읽듯 가볍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캐릭터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웃음이 나올 때도 있고, 그 너머에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자기 고백과 진지한 성찰이 숨어 있기도 하다.

저자는 스스로를 주저 없이 “게으른 사람”이라 부르지만, 그 게으름을 단순히 나태함이나 불성실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기질, 결핍,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은 우리가 흔히 ‘꾸준함’이라고 부르는 덕목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와 닿은 부분이기도 했다. 본문 발췌 내용은 이렇다.

결국 ‘꾸준함’이란 별로인 나를 견디는 힘에 가깝지 않을까.

마음만큼 안되는 하찮은 수행 능력, 대중없는 컨디션의 편차와 그럼에도 주제도 모르고 치솟는 기준의 역치, 그 모든 나의 못난 부분을 감내하는 일 말이다.

니체는 말했다. 슬픔은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할 때 온다고. 만사가 게을러지고 귀찮다면 마음이 추한 것과 가깝다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악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건 내가 아니라고 현실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창피한 내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근사한 내가 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 p43

이와 같이 저자는 꾸준함이란 탁월함의 증거라기보다 오히려 ‘못난 나를 견디는 힘’에 가깝다고 고백한다.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능력, 들쭉날쭉한 컨디션, 기준만 높아져 가는 욕심 같은 것들을 감내하는 과정이 바로 꾸준함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꾸준함은 번쩍이는 재능보다도 자기혐오와 추함을 이겨내는 버팀목에 가깝다. 글을 쓰면서도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면 전부 지워버리는 습관을 고백하는 부분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공감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런 못난 순간들이 쌓여 근사한 나를 만든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전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게으름’을 정의하는 방식이었다.

저자는 게으름이란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각자의 기질과 결핍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무기력해서 게으른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지나친 완벽주의 때문에 게으른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벌였다가 금세 질려서 그만두고,

누군가는 시작하기 전 예열만 오래 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낸다.

결국 게으름은 특정한 태도가 아니라 다양한 결핍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누가 진짜 게으른가”라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심리학자 칼 융의 ‘투사’ 개념을 끌어오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결핍에는 관대하면서 자기 결핍만을 게으름이라 비난한다고 지적한다.

게으름이란 결국 자기 단점을 투사한 그림자라는 해석이다.

작가는 또 ‘예열형 게으름’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쓴다.

초밥을 먹을 때 가장 맛있는 조각을 마지막에 남겨두듯,

일을 시작하기 전 나름의 의식을 치르며 시간을 끄는 자신의 모습을 설명한다.

문제는 예열이 길어지다 보면 시작도 못한 채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예열조차 자신을 달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관성’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의지 없음’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번아웃조차 삶을 사랑했기 때문에 겪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무기력은 실패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신호이며,

자고 일어나면 다시 조금은 나아진다는 깊은 깨달음도 건넨다.

책은 슬럼프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슬럼프가 미운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섭섭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성과가 없을 때, 왜 보상이 주어지지 않냐는 억울함이 슬럼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몸이 아픈 만큼 근육이 붙듯, 마음에도 알이 배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결국 참고 이어나가는 것만이 슬럼프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한다.

“아, 슬럼프 맛있다!”라고 외치는 유머러스한 태도는 자기혐오 대신 자기 화해의 길을 보여준다.

책의 후반부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조건과 사회적 성공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흔히 어른이라면 자기통제력을 갖추고 ‘해야 할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호기심과 재미를 잃지 않는 자신을 긍정한다.

최고가 되려면 한 우물을 깊게 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도 이의를 제기하며,

여러 우물을 조금씩 파는 ‘다능인(Multipotentialite)’의 가능성을 옹호한다.

한 우물만 고집하다가 좌절하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편이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능인은 급변하는 시대에 오히려 더 적합한 존재라는 점에서,

작가의 게으름 역시 다른 가능성을 향한 움직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저자는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자유’라고 답한다.

경제적 자유든, 전문적인 자유든, 인간은 결국 제한을 벗어나고 싶은 존재라는 것이다.

게으름조차 그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모습일 수 있다.

『나는 으른입니다, 게으른』은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대신,

그 안에 숨어 있는 자신을 돌아볼 실마리를 보여준다.

자기혐오와 싸우기보다 자기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게으름은 죄책감으로만 소비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나를 이루는 결핍의 모양을 이해하는 길이자 자유를 향한 또 다른 몸부림일 수 있다.

이 책은 자기계발식 성실 담론에 지친 사람들,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자책하며 불안에 시달려본 사람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게으름’은 더 이상 부끄러운 단어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북라이프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결국 ‘꾸준함’이란 별로인 나를 견디는 힘에 가깝지 않을까.
마음만큼 안되는 하찮은 수행 능력, 대중없는 컨디션의 편차와 그럼에도 주제도 모르고 치솟는 기준의 역치, 그 모든 나의 못난 부분을 감내하는 일 말이다.
니체는 말했다. 슬픔은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할 때 온다고. 만사가 게을러지고 귀찮다면 마음이 추한 것과 가깝다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악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건 내가 아니라고 현실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창피한 내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근사한 내가 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작가가 되는 일도 글을 잘 쓰는 일보다는 혹평과 무관심을 견디는 일에 가깝겠지. 어쩌겠는가? 나는 몇 줄 곧잘 써 내리다가도 누구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면 금방 전부 지워버리고 며칠은 아무것도 못 쓰는 사람인 걸. 그런 못난 글이나 쓰는 내 모습이 못 견디게 싫은 걸.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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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 - 멈춘 사유의 감각을 되살리는 51가지 철학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편역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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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짧은 평>

<우선 짧은 평>

이 책은 깊이가 남다르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삶이라는 공간을 철학적 시선으로 세밀하게 관찰해낸 기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에 가깝다. 단순히 표현력이 뛰어난 데 그치지 않고,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다시 사유할수록 더욱 깊은 맛이 배어난다.

철학서 가운데서도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읽다 보면 “아, 내가 말하고 싶었던 문장이었어. 이거야! 이거!”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이 온다. 통찰력과 표현력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서가에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본문 리뷰>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는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현대 시대에 다시 불러온다.

쇼펜하우어는 언제나 문제적 철학자로 불렸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추구해야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는가”라는 전통적인 물음보다,

“어떻게 이 불합리한 현실의 굴레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극단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 인물이었다. 편역자 김욱은 “그의 철학은 한 시대의 몰락을 예견한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잉태하려는 희생적 반전이었다”고 해설한다.

실제로 쇼펜하우어의 생애는 철저한 절망의 연속이었다. 상공인의 아들로 태어나 철학자의 뿌리를 의심해야 했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덤덤했던 어머니를 보며 사랑의 허망함을 깨달았으며,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자신의 사유 속에서 끝없는 고독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 절망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었다. 그는 절망 속에서 삶의 본질을 꿰뚫고자 했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흔히 ‘절망의 철학’으로 불리지만,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세계관을 예비하는 낙관적 토대였다.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중심 개념은 ‘의지’다. 모든 생명은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갖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지가 불행의 근원이다.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새로운 욕망을 낳고, 결코 끝나지 않는 사슬로 인간을 묶어버린다. 그는 이 구조 속에서 고통을 해방하려면 ‘불필요한 욕망’을 제거하고 ‘순수한 욕망’만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에게 잠재된 본능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는 것이라는 그의 사유는 지금도 강렬하다.

책 속의 본문은 이러한 사유를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한다. 그것은 재물일 수도, 명예나 권력일 수도, 때로는 단지 고통 없는 하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갈망은 곧 고통의 씨앗이다.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또 다른 욕망을 낳고, 결코 종결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우리가 느끼는 공허와 반복되는 결핍의 근원을 날카롭게 찌른다.

성취는 순간의 위안일 뿐이며, 그 직후에는 또 다른 결핍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는 존재다.

이 통찰은 독자로 하여금 일상의 불안을 근본적 차원에서 성찰하게 만든다.

또 다른 부분에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고독과 단절을 이야기한다.

탁월한 정신은 다수 속에 섞이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차갑고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자신을 지켜내려 한다.

그는 “삶의 본질이 고통임을 꿰뚫어본 자는 선택의 순간마다 쾌락보다 고통을 택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고통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존재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통로다.

그래서 노년의 철학자는 타인에게 설득이나 가르침을 베풀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이렇게 고백한다.

“어떤 이들은 고통을 싫어하고, 어떤 이들은 고통을 사랑한다.

나는 그 누구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다만 고통 속에 진실이 있음을 깨달은 자들 곁에서 함께 침묵하고 싶다.”

이 말은 철학이 삶의 지혜가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쇼펜하우어에게 철학은 추상적인 사유가 아니라, 고통의 심연을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이었다.

또한, 이 책은 지식과 학문의 한계도 지적한다.

그는 “오늘날 학문은 기억보다는 기록에, 체험보다는 인용에 의존한다”고 비판한다.

고통 없는 지식은 피상에 머물 뿐이며, 진정한 앎은 언제나 고통의 심연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유는 전문 지식에 안주하는 사람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고통 속에서 생각하는가, 아니면 남이 쓴 문장을 되풀이하며 안주하는가?

책 말미에 실린 또 다른 구절은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종류의 신선한 발언이나 참다운 사상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설령 바보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도 과소평가하지 말라.

진리는 그 출처가 어디든 여전히 진리다.” 이 구절은 철학적 진리가 누구의 입을 통해 전해지든 본질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 지식의 권위가 무너지고, 다양한 경로에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는 철학적 고통을 단순히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것을 삶의 진실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축복된 서사로 보지 않았다.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불행이며,

인간은 충동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그의 선언은 냉혹하다.

그러나 그 냉혹함 속에 담긴 진실은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삶을 더욱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은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강렬한 울림을 준다.

그것은 철학이 추상적 개념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실천적 지혜라는 사실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고통이야말로 진실이며, 환희는 환상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 결론은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을 인정하고 견디는 가운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는 바로 그 고통의 철학을 통해 우리를 다시 삶의 본질로 불러낸다.


'북피티 @book_withppt'님을 통해

'레디투다이브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인생은 궁극적으로 비극이다. 고귀한 정신을 가진자는 이런 사실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분리해 인식하고,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감각을 불편함이 아닌 필연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은 다수와 섞이지 못하며, 어쩌면 스스로 섞이기를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단절은 인간의 타고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진정한 철학자는 그것을 고통이 아닌 숙명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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