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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싸우는가 - 싸울 수밖에 없다는 착각 그리고 해법
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5년 8월
평점 :

크리스토퍼 블랫먼의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싸우는가?”
저자는 우간다 북부와 시카고 갱단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폭력을 통해, 사회의 성공이란 단순히 부의 증가가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집 앞에 앉아 평온히 쉴 수 있고, 경찰이나 법원을 찾아 정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고향에서 쫓겨나지 않는 일상적인 안전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쟁을 국가 간 대규모 전투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마을과 씨족, 갱단과 종파, 정당과 국가 등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지는 폭력적 갈등을 모두 전쟁으로 본다. 사실 대부분의 적대적 집단조차도 실제로는 나란히 살아간다. 그런데 왜 어떤 사회는 타협에 실패하고 폭력으로 치닫는가?
블랫먼이 제시하는 답은 다섯 가지다.
첫째, 견제되지 않은 이익이다.
권력자가 전쟁의 대가를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을 때, 자신의 이득만 보고 무모한 선택을 한다.
둘째, 무형의 동기다.
복수, 명예, 종교적 열망 같은 가치가 현실의 피해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셋째, 불확실성이다.
상대의 힘과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선제공격이 합리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넷째, 이행 문제다.
상대가 미래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은 오늘의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섯째,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는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착각하면서 협상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잘못된 인식’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본문에서는 심리학적 편향들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지식의 저주’(내가 아는 만큼 상대도 알 거라 가정), ‘사후 확신 편향’(결과를 알고 나서 그 결과가 당연했다고 믿음), ‘허위 합의’(상대도 내 판단과 같을 것이라는 착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오류는 우리가 적의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해의 손길조차 속임수로 해석하게 만든다. 결국 갈등은 힘의 충돌 이전에 인식의 충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은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평화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도 이야기한다. 흔히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를 전쟁의 직접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것들이 단지 갈등을 악화시키는 연료일 뿐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다섯 가지 전쟁 동기를 약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다. 그가 말하는 보호 장치는 네 가지다. 첫째, 서로 얽혀 있을수록 전쟁 비용이 커지는 상호의존. 둘째, 권력자의 오판을 막는 견제와 균형. 셋째, 협상이 폭력보다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규칙과 집행. 넷째, 갈등이 폭발하기 전에 막는 개입. 이 네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전쟁은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 된다. 평화는 우연이 아니라 세심한 관리와 설계의 결과라는 점이 강조된다.
책의 후반부는 평화를 향한 구체적 길을 보여준다. 지난 300년 동안 서서히 진행된 참정권 확대와 정치권력의 분산은 폭력을 거치지 않고도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인쇄기와 같은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 신세계라는 대안적 공간, 군사기술의 변화, 새로운 생산 방식 등이 대중의 협상력을 높였다. 그 결과 엘리트들은 양보를 선택했다. 재무부나 관료제 같은 제도를 마련하고, 의회와 지방정부로 권력을 쪼개고, 도로·보건·학교 같은 공공재를 제공했다. 내부의 투쟁은 때로 격렬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협상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평등과 안전, 강력한 국가는 바로 이 과정 속에서 태어났다.
물론 취약한 사회에 사는 이들에게 수 세기를 기다리라는 말은 공허하다. 그들은 지금 당장 평화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조금씩 평화를 만들어가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고. 완벽한 해법은 없지만, 과학이 발전해온 길처럼 평화 역시 실험과 수정, 보완을 거듭하며 조금씩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전쟁을 인간 본성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제도와 인식의 실패로 설명한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고 현실적이다. 전쟁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편향과 오해 속에 살아갈 때 이미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전쟁 연구서이자 평화를 위한 실용적 안내서다.
영웅적 덕목이 아니라 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인식의 장치를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평화의 길임을 강하게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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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싸우는가>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은?'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갈등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적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않는 재주, 그래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는 커녕 혐오스러운 외집단에 대한 편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견해를 확증하는 고집스러운 성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 확증 편향, 동기화된 추론 등 우리에게 내재한 편향성이 복합되면서, 신중하게 반응하며 양측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책을 찾으려는 우리의 의욕을 위축시킨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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