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 상위 노출되는 상품 키워드 골라 꾸준히 팔리는 숏폼 마케팅까지!
이경근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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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비슷하다.

“사업자 등록은 꼭 해야 하나요?”, “자본금은 얼마나 필요하죠?”, “하루에 몇 시간 투자해야 하나요?”, “CS나 반품은 어렵지 않을까요?”, “회사 다니면서도 가능할까요?”

이경근의 《된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는 이런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하며, 왜 ‘지금, 스마트스토어’인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한다. 읽다 보면 저자와 1:1 멘토링을 받는 듯한 감각이 든다.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로 설득하고, 사업자 등록처럼 손이 가는 절차도 “따라 하면 되는” 단계로 풀어놓아, 처음인 사람도 2주면 스토어를 만들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준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온라인 쇼핑의 일상화를 짚는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하루 배송’을 당연하게 만들었고, 지마켓·옥션·11번가·컬리·카카오 등도 저마다의 무기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네이버 역시 쇼핑 채널을 고도화하며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 이 과밀한 시장에서 굳이 스마트스토어여야 하는 이유를 책은 숫자와 실행 동선으로 차근차근 보여준다. 핵심은 단순하다. 초보가 시작하고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채널이라는 점. 브랜드가 없어도, 큰 자본이 없어도 계정 개설·상품 등록·첫 판매까지의 길이 단순하고, 네이버 검색·블로그·카페·숏폼으로 이어지는 자연 트래픽 덕분에 다양한 고객군을 만날 수 있다. 블로그에서 스토어로 넘어가는 흐름도 같은 네이버 안에서 이뤄져 광고처럼 이질감이 없다.

비용 구조는 특히 초보 친화적이다. 책의 예시에 따르면 스마트스토어의 기본 판매 수수료는 창업 첫해 6.63% 수준이며, 통상 10~15%대인 타 플랫폼 대비 부담이 절반 가까이 낮다. 매출 구간이 커질수록 4.98%~5%대로 내려가는 사례도 소개한다. 정산도 빠르다. 구매확정이나 리뷰가 등록되면 다음 날 정산되고, 확인이 없어도 배송 완료 +8일에 자동 정산되어 발송 후 약 열흘 내 현금이 돈다. 여기에 ‘빠른정산’(3개월간 월 20건 이상·반품률 20% 미만)을 충족하면 집화 +1영업일에 정산된다. 초반엔 2주치 매입자금이면 돌리고, 세 달 차부터는 4일치 운전자금만 있어도 운영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본이 얇은 첫 창업자에게 이보다 현실적인 안전망은 드물다.

이 책은 기초 행정도 안내한다. 온라인 판매자는 사업자 등록과 통신판매업 신고가 필수다.

미등록 상태에서도 스토어 개설은 가능하지만 월 거래 20건을 넘기면 판매가 제한되고,

무엇보다 네이버 광고를 쓸 수 없어서 성장의 벽을 만난다.

사업자 유형은 간이와 일반으로 나뉘며, 간이과세자는 연 매출 1억 4천만 원 이하일 때 신청 가능하고 부가세 신고가 연 1회로 간단하며 세율도 낮다. 다만 세금계산서 발행이 어려워 B2B가 많으면 일반과세가 낫다. 주소지는 자택을 써도 되지만 노출이 꺼려지거나 임대 조건상 곤란하면 연 20~30만 원대의 비상주 사무실을 임대해 임대차계약서와 전대동의서로 증빙하면 된다. 전 과정은 홈택스에서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복잡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2주면 끝낼 수 있다는 메시지로 독려한다.

이 책의 장점은 운영 방법을 아주 쉽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1회차부터 14회차까지 무엇을 해야할지 날짜별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사업자 등록과 스토어 개설, 스토리·한줄소개 신청으로 시작해, 데이터랩에서 키워드를 조사하고 커뮤니티 홍보를 진행한다. 첫 상품을 등록한 뒤에는 광고 없이도 첫 판매를 노리는 결제 동선을 세팅하여 실습하고, 고객 문의 응대 매뉴얼을 정리하며, 상세페이지를 다듬는다. 정산표와 세금 대비 체계를 잡고, 쇼츠를 촬영해 업로드하며, 상위 리뷰 열 개를 분석해 좋은 문장을 모으고,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구매 멘트를 설계한다. 환불·교환 안내문을 정비하고 공급처 세금 정산 계획을 세운 뒤 자동화까지 연결한다. 각 장 끝에는 체크리스트가 붙고, 글로 막히면 QR로 연결되는 유튜브 강의를 바로 볼 수 있으며, 업무 일지와 정산표 같은 서식은 자료실에서 내려받아 손으로 쓰며 실행하도록 유도한다.

실무 파트는 디테일 해서 좋다. 상세페이지는 미리캔버스로 로고와 배너, 홈 프로모션을 빠르게 만들고, 본문은 문제 제기–해결–증거–제안–확신의 흐름으로 구성한다. 첫 상품은 수동 등록으로 구조를 몸에 익힌 뒤 반품안심케어 같은 네이버 내 신뢰 서비스와 연동해 노출과 전환의 신호를 강화한다.

검색 노출은 데이터랩으로 구매 의지가 뚜렷한 롱테일 키워드를 잡고, 제목·옵션·속성값을 일관되게 맞춰 적합도를 끌어올린다. 광고는 하루 1만 원 이하의 소액으로 탐색–수렴–증액의 사이클을 돌리며 클릭률과 전환, 비용 비중을 기준으로 키워드와 소재를 교체한다. 광고는 하루 1만 원 안에서 작게 시험하고, 반응 좋은 것만 남기며, 괜찮으면 조금씩 키운다. 클릭률·전환·비용을 보며 키워드와 문구를 바꾸다 보면, 광고는 매출을 내는 수단이 아니라 상품과 상세페이지를 계속 배우고 고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요즘 유입의 핵심인 숏폼은 이 책이 가장 자신 있게 다루는 분야다. 스마트폰 하나와 캡컷만 있어도 10분 안에 편집을 끝내는 루틴을 만들 수 있고, 촬영 전에 메시지를 삼각형 콘티(도입–핵심–행동요청)로 단순화하면 영상 완성도가 눈에 띄게 올라간다. 도입에서 관심을 붙잡고, 본문에서 장점이나 해결책을 한 문장으로 보여 주며, 마지막에 무엇을 클릭해야 하는지를 또렷하게 말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제목·설명·해시태그를 구매 맥락에 맞춰 세팅하면 조회수가 자연스럽게 늘고, 영상 속 버튼이나 고정 댓글을 이용해 스토어로 넘어가는 길(CTA)을 매끄럽게 연결할 수 있다. 한 번 만든 원본은 규격만 바꿔 숏츠·릴스·틱톡에 재활용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을 쓰면, 같은 노력으로 더 많은 노출을 만들 수 있어 시간 대비 효율이 크게 좋아진다.

이 책은 판매 버튼을 누른 뒤가 진짜 운영의 시작이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정산표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흐름을 주 단위·월 단위로 확인하고, 부가세·종소세 같은 기본 신고 일정을 미리 캘린더에 넣어 페널티를 미연에 방지하라고 권한다. 클레임과 환불은 그때그때 감으로 대응하지 말고, 상황별 응대 문장 템플릿을 마련해 두면 감정소모가 줄고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 별점이 떨어졌을 때는 사후 보상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문제 원인을 파악해 상세페이지와 배송·포장 기준을 함께 고치는 회복 시나리오를 실행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구매 이력에 따라 고객을 태그로 분류하고, 재구매 시점에 감사 메시지나 간단한 사용 팁을 보내면 이벤트 없이도 손님이 다시 돌아온다. 책은 이런 루틴을 “운”이 아니라 “체계”로 만드는 과정을 여러 예시로 보여 준다.

초보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에도 현실적으로 답한다. 시작 자본은 위탁 구조를 쓰면 50만 원 안팎으로도 가능하다. 재고를 미리 사지 않아도 되니 초기 부담이 적다. 마진은 플랫폼 수수료와 광고비를 제하면 대체로 20% 내외로 형성되는데, 이 숫자는 상품군과 경쟁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소액 광고로 테스트하면서 페이지와 가격을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 운영 시간은 하루 1~2시간 루틴으로도 충분하지만, 문의가 몰리는 날이나 신상품 등록이 있는 날은 더 필요한 게 정상이다. 촬영 장비는 별도로 살 필요 없이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고, 반품과 CS는 공급처와 정보를 공유하며 표준 절차+템플릿을 쓰면 어렵지 않다. 직장인이 부업으로 시작하려면 근로계약서의 겸업 조항을 먼저 확인하고, 세금은 연말정산과 종합소득세 신고로 정리하면 실무상 무리 없이 운영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알려 준다.

결국 이 책은, 스마트스토어의 장점인, 낮은 수수료와 빠른 정산이 주는 현금흐름의 안전망, 네이버 검색·블로그·카페·숏폼으로 이어지는 자연 유입의 통로, 14회차 실행 계획표와 체크리스트로 대표되는 운영의 길을 차근차근 제시하며 초보를 설득한다. 읽고 나면 막연함이 사라진다. 오늘 무엇을 먼저 실행하면 될지, 내일 무엇을 고칠지, 다음 주에는 어떤 실험을 할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시작을 고민 중인 사람에게는 왜 지금 시작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고, 이미 시작한 사람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을 잡아준다. 두려움의 대부분은 모름에서 온다. 이 책은 그 모르는 부분을 상세한 설명과 구체적인 방법으로 알려주어 두려움을 지워 준다. 오늘 한 시간, 계획표의 한 칸을 채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며 이 책을 시작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도전해 보시길 바란다.


'이지스퍼블리싱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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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쓰다 고전 : 고전 같은 것 몰라도 살기는 살겠지만 - 논어, 채근담, 손자병법 백일 필사 1
주순진 기획 / 아템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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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순진이 기획하고 엮은 《인생 쓰다 고전》은 논어, 채근담, 손자병법이라는 고대의 문장을 원문(한자) 그대로 실어 두고, 그 아래에 지금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를 담백하게 풀어 쓴 책이다. 고전을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살아보는 태도’로 끌어내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첫 장은 《논어》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소인을 꾸짖지 않는다. “소인은 군자와 다른 종족이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고민이 많다는 건 아직 성장 중이라는 뜻이라는 해석이 마음에 남는다. 고전 속 군자상이 늘 현실과 멀게 느껴졌지만, 이 책은 군자처럼 살라가 아니라 소인답지 않은 소인이 되자고 권한다.

공자 말씀 가운데, 먼저 마음의 품에 대해 묻는다.

— 原文: 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 독음: 자왈 군자 탄탕탕 소인 장척척

— 뜻: “군자는 마음이 넓고 태연하지만, 소인은 늘 근심하고 조급하다.”

여기서 ‘탄탕탕’은 넓고 평탄하여 거리낌이 없는 마음, ‘장척척’은 자주 근심으로 좁아지는 마음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 글에서 우리는 오르내리며 배우는 존재이고, 여유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태도라는 것을 알려준다.

비교 대신 성찰을 권하는 구절도 이어진다.

— 原文: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 독음: 자왈 견현 사제언, 견불현 이 내자성야

— 뜻: “좋은 사람을 보면 그와 같아지길 생각하고, 좋지 않은 사람을 보면 스스로를 돌아본다.”

저자는 먼저 ‘견현’, 즉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부터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지혜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관찰과 공부,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다.

부러움과 열등감으로 타인을 보지 말고, 배움의 거울로 삼으라는 제안이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는 가르침도 또렷하다.

— 原文: 子曰 君子恥其言而過其行

— 독음: 자왈 군자 치기언 이 과기행

— 뜻: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다짐과 선언이 넘쳐나는 시대에, 결국 타인을 설득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말이 앞서면 언젠가 그 공백의 대가를 치른다. 공자가 경계한 것은 남을 속이는 수사보다, 자기 삶을 속이는 태도다. 그래서 저자는 “말을 줄이고 일상을 보정하라”는 실천으로 논어를 현대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채근담》이 알려주는 단 하나의 태도: 반성할 줄 아는 사람

“늘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은 매일 부딪치는 일이 모두 자신을 단련하는 약이 되고, 남을 탓하는 사람은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마다 그 마음이 자신을 해치는 창과 칼이 된다.” 채근담은 날카로운 처세의 기술서라기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매뉴얼에 가깝다. 인생은 풀뿌리를 씹듯 질기고 쓰다. 그러나 그 쓴맛을 씹어내는 동안에 사람은 단단해진다. 책은 고통과 기쁨이 서로를 갈고닦을 때 오래 가는 복이 되고, 의심과 믿음이 서로를 시험할 때 비로소 참된 지식이 된다고 말한다. 검증 없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고, 의심 없는 지식은 깊지 않다는 간명한 결론으로 삶의 균형을 가르친다.

《손자병법》에서 배우는 리더십 — 덕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장수가 경계해야 할 다섯 가지 위험이다. 죽기만을 각오한 무모함은 죽임을 부르고, 살겠다는 집착은 포로가 되게 하며, 성급한 분노는 계략에 빠지게 하고, 지나친 청렴은 외교적 모욕을 자초하며, 과한 자애는 군율을 흐트러뜨린다. 모두 좋은 덕목이지만 지나치면 약점이 된다. 손자는 덕과 전략의 균형, 감정과 원칙의 조절을 리더십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또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가르침은 전쟁술을 넘어 삶의 태도로 가르친다. 자기 자신도 모른 채 타인을 이기려는 싸움은 애초에 불리하다. 결국 이런 글들을 읽다 보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너는 너 자신을 잘 알고 있는가?”

우리가 고전을 꾸준히 읽는 이유는, 그 안에 매일 흔들리고 고민하는 우리를 다시 세워 주는 문장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논어의 군자도, 채근담의 지혜로운 사람도, 손자병법의 리더도 처음부터 흠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상적인 성인이 되는 일이 아니라 오늘 단 한 걸음이라도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는 것이다.

그 한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비교가 아니라 성찰에서 나온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질투하기보다 어떻게 닮아갈지를 생각하고, 모자란 모습을 보면 비난보다 먼저 내 안의 같은 약점을 찾는다. 누구나 실수하며 산다. 다만 실수 뒤에 고치려는 태도가 있느냐 없느냐가 사람을 가른다. 특히 실수란 대개 관계 속에서 일어나기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내 잘못을 수습하고 바로잡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인생을 운용하는 원리는 결국 균형과 절제다. 용기·자비·청렴 같은 덕목은 모두 소중하지만, 어느 하나에 치우치면 장점이 약점으로 바뀐다. 상황을 읽어 강할 때는 강하게, 물러날 때는 단호히 물러날 줄 아는 조절력이 진짜 힘이다.

그래서 고전은 외워두는 문장이 아니라 살아보는 태도다. 말로 앞서기보다 행동으로 증명하고,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다듬는 자세다. 겉으로는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워 보여도 안쪽의 중심을 세워두면 갑작스러운 흔들림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고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벽이 아니다. 작은 실천의 누적, 오늘의 한 걸음이다.

'교유당(아템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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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씀하셨다.
"군자는 늘 마음이 여유로워 태연자약하고
소인은 언제나 고민한다."

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자왈 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 坦蕩蕩(탄탕탕)은 넓고 평탄하며 거리낌이 없는 마음 상태를 뜻하고,
長戚戚(장척척)은 늘 걱정하고 조급해하며 마음이 좁은 상태를 말합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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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구르미
남궁용훈 지음, 노은주 그림 / 태인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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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구르미』를 읽는 동안 나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동심을 천천히 되찾는 느낌을 받았다.

책 속 ‘구르미’가 올려다보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떠올리면, 길가의 민들레를 발견해 괜히 기분이 밝아지던 순간,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날 이유 없이 뛰어보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장미와 민들레, 낙엽 냄새가 가득한 비밀의 정원, 거미줄이 걸린 폐가의 이미지들은 과장되지 않은 문장으로 또렷하게 다가오고, 그 장면들이 내 기억 어딘가와 닿으면서 마음의 문부터 열리게 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를 넘어, 어른이 된 나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순수를 조심스럽게 깨워 주는 책처럼 읽힌다.

간략히 줄거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상상을 좋아하던 아이 ‘은주’는 어느 날 민들레 홀씨를 따라 달리다 낙엽 더미에 넘어진 순간, 플라타너스 냄새와 거미줄 낀 폐가가 있는 ‘비밀의 정원’을 마주한다. 두려움과 설렘이 한꺼번에 밀려온 그 경험은 오래 남는다. 시간이 흘러 IMF로 집안이 흔들리고 아버지가 쓰러지자 은주는 가장이 되어 유년의 세계를 깊이 묻어 둔다. 마음이 메말라갈 무렵, 사람들의 소음에서 멀어지고 싶어 외딴 바람꽃섬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구름 같은 아이 ‘구르미’를 만난다. “사랑은 뭐야?”, “이름을 붙이면 왜 특별해져?” 같은 단순하지만 깊은 질문을 통해 은주는 잊고 지낸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민들레 ‘링크’와 구르미가 서로의 꿈을 나누는 장면을 통해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는 사실과 ‘꿈은 마음 안에 바람을 만든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산정에서 구름 품에 안기듯 구르미의 존재를 다시 느끼며, 누군가를 안아주는 사랑은 결국 ‘나 자신’을 먼저 안아주는 데서 시작함을 배운다. 그렇게 은주는 잃어버린 유년의 호흡과 성인의 책임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장면은, 구름을 닮은 아이인 ‘구르미’와 민들레 ‘링크’가 나누는 말들이었다. 날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문 뒤에 숨어 있던 구르미에게 어느 날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날지 못해도,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란다.”

짧은 한마디인데, 마음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어른이 되어 하루를 버티다 보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성과를 내야 한다, 남들만큼 올라가야 한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가 있다. 이 책은 그 생각을 바로잡아 준다. 잘해내기보다 먼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 바탕이 없으면 꿈은 쉽게 힘을 잃고, 출발도 전에 지치거나 시작하고도 금방 꺾인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게 됐다. 마음을 돌봐야 할 때조차 ‘쓸모가 있는가’만 따지며 나를 평가하던 습관, 틈만 나면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태도. 그때 구르미의 장면이 분명하게 일러준다. 먼저 나를 안아 줄 수 있어야 그다음이 있다

오래 남은 또 한 가지는 이름 붙이기다. 구르미가 민들레에 ‘링크’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민들레는 더 이상 ‘그냥 꽃’이 아니다. “이름을 붙이면 특별해진다”는 말은, 사실 내가 보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는 뜻이다. 꽃 하나, 마음 하나, 사람 하나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 주면, 그 대상은 다른 사람에게 여전히 ‘그냥’일지라도 내게는 더 이상 ‘그냥’일 수 없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시선이 머물고,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서 애정과 책임이 자란다.

결국 이 두 장면은 하나로 이어진다. 먼저 나를 인정할 것, 그리고 소중한 것들의 이름을 불러 줄 것. 이 두 가지가 갖춰질 때 우리는 비교에서 한 걸음 물러나고, 꿈은 비로소 힘을 얻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음속 바람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불어온다.

민들레 ‘링크’와 ‘구르미’가 “함께 하늘을 날자”고 꿈을 나누는 순간도 오래 남는다. 마지막 민들레 홀씨가 흩어질 때, 구르미가 그 홀씨를 살짝 쥐자 몸이 함께 떠오르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 마음이 빛이 되어 방향을 잡아 주고, 그 빛을 따라 움직일 힘이 뒤따른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혼자만 품을 때보다 누군가와 말로 나눌 때 꿈은 더 커지고, 시작선 앞에서 발을 떼기가 한층 쉬워진다. 구르미가 떠오른 까닭도 새 재능이 생겨서가 아니다. 완벽한 준비가 갖춰져서도 아니다. 작지만 분명한 희망이 꿈을 이루게 해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꿈’은 거창한 결말의 이름이 아니라 오늘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시작 버튼에 가깝다. 꿈을 떠올리고, 그 한 줄을 누군가와 나누는 순간 우리는 이미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힘이 생긴다.

또 하나는, 주인공의 “더 많이 물어봤어야 했는데”라는 짧은 고백 부분이다. 어쩌면 누구나 경험하는 익숙한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반가운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도, 어렵게 시간을 맞춰 마주 앉았을 때도, 우리는 종종 듣기보다 먼저 말부터 꺼낸다.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할 수도 있고, 정작 묻고 싶던 질문은 삼킨 채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그 뒤늦은 후회가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깊이 새기고, 다음 만남에선 제대로 실행해보고자 한다. 눈앞의 사람에게 최대한 집중해보기로.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던지, 한 눈을 파는 행동을 피하고 최대한 집중해보자는 생각이다. 판단이나 조언을 서두르기 전에 안부나 궁금한 건 충분히 물어 볼 것. 헤어진 뒤 “그때 그걸 물을걸”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의 대화에 머물 것!

이 책은 읽는 내내 떠올려지는 풍경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책이다. 플라타너스 낙엽의 냄새, 거미줄이 빈 창을 메운 장면, 바람이 훅 스치며 하얀 구름이 안기듯 몰려오는 순간 같은 것들이 과장되지 않은 문장으로 차분히 다가온다. 문장 자체가 어렵지 않아 누구나 무리 없이 읽을 수 있고, 그 쉬움이 가볍다는 느낌보다 읽는 사람이 동심을 생각하듯 순수한 시절로 데려다 주는 책이다.

이 책 『안녕, 구르미』는 어른이 된 후 잃어버린 마음의 온도를 되찾는 이야기다. IMF 이후 가장이 된 은주는 외딴섬에서 구름 같은 아이 ‘구르미’를 만나고, 이름을 불러 주는 일과 먼저 들어 주는 일이 어떻게 상처를 덜어내는지 배운다. 민들레 ‘링크’와 구르미의 대화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인정해야 꿈도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보여 준다. 꿈을 함께 말로 나누는 순간 마음에 바람이 일고, 그 바람이 다시 한 걸음을 밀어 준다. 결국 이 책은 잊어버린 나를 부르고(호명), 안아 주고(인정), 함께 꿈을 말하는 일(희망의 공유)이 삶을 움직인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해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태인문화사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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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민들레가 따뜻하게 말했다.
"구르미야, 너는 너다운 너를 사랑하면 돼. 친구들처럼 될 필요는 없어."
그러고는 구르미를 포근히 안아 주었다.
민들레 ‘링크’와 구르미는 친구가 되었다. 구르미는 매일 문설주에 기대어 앉아 링크와 함께 하늘을 보았다.
둘은 서로의 꿈 이야기를 나눴다.
구르미는 하늘을 나는 꿈을, 링크는 희망이 필요한 친구에게 날아가는 꿈을, 그렇게 그 둘은 서로, 서로의 꿈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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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케빈 J.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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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생기나?”라는 질문에 차근차근 답한다. 저자는 유전자를 완성된 설계도가 아니라 실행되는 프로그램에 비유한다. 프로그램이 돌아가면 세포와 신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그 과정에서 몸과 뇌가 스스로 모양을 잡아 간다. 이 발달 과정에는 작은 우연과 변수가 많아서, 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뇌의 배선과 성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쌍둥이·입양 연구는 두 가지를 함께 보여 준다. 유전이 분명히 영향을 주지만, 환경과 발달의 우연이 그 위에 결을 더한다는 점이다. 같은 수업을 들어도 어떤 학생은 금방 이해하고, 어떤 학생은 시간이 더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정답 하나를 모두에게”보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과 속도를 찾는 쪽이 효과적이다. 심리 특성이나 지능, 성적 지향처럼 복잡한 특징을 한 방에 결정하는 단일 유전자는 거의 없다. 보통은 많은 유전자가 조금씩 작용하고, 성장 과정의 경험이 더해져 결과가 확률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개인의 성격이나 성취를 유전 정보만으로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확률을 이해하고 환경을 맞춤 설계하는 일이다. 선택적 번식으로 온순한 개체를 골라 키운 여우 실험은, 행동을 고르면 외형·생리까지 함께 변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행동도 유전과 발달이라는 바탕 위에서 바뀔 수 있다는 것. 다만 “한 가지 요인만 찾으면 다 해결된다”는 식의 단순화는 경계해야 한다. 신경발달장애에 대해서도 책은 스펙트럼의 관점을 제안한다. 자폐 스펙트럼·조현병 등은 진단 이름이 달라도 겹치는 유전·발달 경로가 있을 수 있고, 문제가 생긴 발달 시점에 따라 겉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낙인을 줄이고, 사람마다 필요한 맞춤 지원을 찾게 해 준다. 결론은 명확하다. 유전은 출발선의 방향을 조금 정하고, 발달과 경험이 실제 경로를 바꾼다. 개인차는 정상이며, 예측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교육·채용·정책은 획일 기준보다 개인 맞춤 설계로 움직여야 한다. 개인에게도 실전 조언은 같다. “왜 나는 다를까?”에서 멈추지 말고, 어떤 조건에서 내가 가장 잘 배우고 성장하는지를 찾고 그 방법을 꾸준히 반복하라. 그게 평균을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


'오픈도어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이다. 이는 그야말로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부터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 와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 에 이르기까지 저명한 사상가들은 그 주제에 주장을 한마디씩 제기해 왔다. 사람마다 선천적 차이가 있다거나, 모든 사람이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 오로지 경험으로 심리 상태를 색칠해 간다고 말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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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 영국 - 인류 역사와 문화의 새로운 발견 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손봉기 지음 / 더블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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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영국편》은 유물과 인물을 통해 사람을 보게 만든다. 전시된 그림·조각·도구를 단순한 설명으로만 다루지 않고, 그 물건을 만들고 붙잡고 살아낸 이들의 마음과 선택, 그리고 그 시대의 공기까지 함께 불러낸다. 그래서 진열장 속 한 점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과거로 들어가는 작은 문처럼 느껴진다. 그 문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잠시 들여다본다.

이 책은 먼저 대영박물관으로 데려가 중동·이집트·그리스‧로마·아시아·유럽 전시관을 자연스럽게 거닐게 한다. 그중 첫번째 장소는 55번 전시실(중동 전시관)이었다. 여기서 만난 것은 아시리아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의 점토판 도서관이다. 종이가 없던 시대, 사람들은 설형문자를 점토판에 새겨 기록을 남겼고, 그 결과 13만 점에 이르는 점토판이 그들의 생활과 생각을 지금까지 전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길가메시 서사시』 11번 점토판이다. 기원전 7세기의 홍수 이야기가 적혀 있어 성서의 노아 이야기보다 약 400년 앞선 기록임을 보여 준다. 서사의 중심엔 친구 엔키두의 죽음 이후 영생을 찾아 나선 길가메시가 있다. 그는 불로초를 손에 넣지만 뱀에게 빼앗기고, 마침내 깨닫는다. 영원을 좇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최선이라는 사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메소포타미아가 전하는 메시지는 Carpe Diem(카르페 디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다.

이집트 전시실에서는 내세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그들이 꿈꾼 곳은 멀고 낯선 천국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자리였다. 결국 잘 산 하루를 쌓는 일이 최고의 준비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리스 전시실의 파르테논 조각과 오디세우스 항아리는, 신의 영생보다 유한한 인간의 시간을 사랑했던 태도를 보여 준다. 늙고 약해지는 한계가 있으니 더 뜨겁게 사랑하고 더 깊게 행복을 느껴야 한다. 여기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해진다. 박물관은 완벽한 과거를 쌓아 두는 창고가 아니라 지금을 더 잘 살기 위한 힌트를 주는 곳이란 것을.

로마 편은 인물의 궤적으로 읽힌다.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외치며 로마로 진군했지만 끝내 원로원 회의장에서 암살당한다. 유언에 따라 조카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유산을 잇는다. 처음엔 카이사르의 부관 안토니우스와 공동 통치를 택하지만,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며 이집트에 기울자 민심은 돌아선다. 옥타비아누스는 최고의 장군 아그리파를 앞세운 해전 승리로 정국을 뒤집고, 로마의 첫 황제가 된다. 그는 힘을 과시하기보다 무상 곡물 배급, 경기와 공연, 도시 정비로 시민의 일상을 바꾸었다. 그래서 “흙더미 위의 로마를 대리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말이 생겼다. 그러나 화려함 이면에는 늘 불안이 있었다. 토가 속에 갑옷을 입고 호위병 10명을 상시 대동했던 습관이 그것을 말해 준다. 임종 직전의 한마디인, “내 연극이 볼 만했습니까? 마음에 들었다면 박수를.”이란 말을 통해 평생 황제라는 역할을 완벽히 해내기 위해 애쓰면서도 한 사람으로서는 외로웠던 마음을 조용히 드러낸다.

두 번째 무대인 V&A에서는 아름다움이 생활 속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배운다.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궁전을 지나며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을 소개한다. 앨버트는 1851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성공시키고, 그 수익으로 로열 앨버트 홀과 과학·자연사·V&A가 이어지는 ‘박물관 지구’를 닦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도 빅토리아는 뜻을 이어 공간을 완성했다. 좋은 문화 공간은 우연이 아니라 오랜 준비와 애정의 결과라는 점이 또렷해진다.

정문 안에서는 데일 치훌리의 거대한 유리 샹들리에가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한쪽 눈을 잃은 뒤 비대칭과 불규칙을 자기 언어로 만든 작가답게, 9미터가 넘는 유리의 소용돌이가 로비 전체를 빛과 그림자로 물들인다. 지하로 내려가면 고딕의 창문 트레이서리가 돌로 만든 레이스처럼 서 있다. 데번셔 사냥 태피스트리는 귀족의 사냥 장면과 의복, 문장(‘많은 욕망’), 희귀 모피까지 한 폭에 담아 신분·취향·권력을 ‘보여주고 공유’하던 방식을 설명한다. 지금의 SNS처럼 자신을 알리고 지위를 확인받는 매체였던 셈이다.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카스트 코트였는데, 이름 그대로 진본이 아니라 석고로 본뜬 복제품을 모아둔 전시실이다.

(영단어 ‘CAST’는 쇠를 녹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굳혀서 만드는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진본이 아니라 복사본을 뜻한다.) “왜 복제품을 모아두었을까?”라는 의문은 곧 풀린다. 유럽 전역을 직접 여행하며 공부하기 어려웠던 시절,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명작을 실물 크기로 본떠 한자리에 모아 둔, 교육을 위한 공공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트라야누스 승전비 복제는 실물을 그대로 세울 수 없어 상·하부로 나눠 전시하고, 2층 난간에서 위쪽 장면까지 보게 했다. 다뉴브강 도하→전투→승리 의식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전쟁 자랑이 아니라 로마는 이렇게 기억되고 싶다는 기억의 설계가 보인다. 옆의 미켈란젤로 ‘다비드’ 석고본은 아래에서 올려다볼 것을 계산해 머리와 손을 조금 크게 만든 비례, 보수적 시선 때문에 덮개를 씌웠던 일화까지 알려 준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시대의 시선을 함께 읽을 때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본 조반니 볼로냐의 〈블레셋인을 죽이는 삼손〉은 나선처럼 치솟는 소용돌이 구도 덕분에 어느 각도에서도 긴장이 흐른다. 굳게 다문 입, 힘줄 선 팔, 발목을 붙잡고 매달린 상대의 절박한 표정과 같은 감정이 돌 속에 선명하게 비춰진다.

이 책을 덮고 나면 핵심이 또렷해진다. 물건을 보면 사람이 보이고, 과거를 보면 오늘이 보인다. 메소포타미아는 지금을 사는 용기, 그리스는 유한함을 사랑하는 태도, 로마는 힘과 품위의 균형, V&A는 아름다움이 일상에서 자라는 과정을 가르친다. 그래서 박물관은 오래된 것을 모아 두는 창고가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선택을 묻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기억을 나눠 주며, 우리가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살아갈지 결심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박물관은 과거의 끝이 아니라 오늘을 더 잘 살도록 연결해 주는 시작점임을 이해하게 된다.

'더블북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영단어 ‘CAST’는 쇠를 녹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굳혀서 만드는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진본이 아니라 복사본을 뜻한다. 17세기 산업혁명으로 부유해진 영국에서는 귀족 자제들을 중심으로 그랜드 투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견문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멀리 그리스까지 방문하는 일종의 유학이었다. 하지만 문화적 변방에 위치했던 영국에서 이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물리적, 경제적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 공부할 수 없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유럽의 주요 유적지와 유물을 본뜬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런 복제품을 모아놓은 V&A 전시실이 바로 카스트 코트다. 이곳에서 인기 있는 작품은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승전비와 빅토리아 여왕이 이탈리아로부터 선물 받은 석고 주조물을 똑같은 크기로 복제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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