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구르미
남궁용훈 지음, 노은주 그림 / 태인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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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구르미』를 읽는 동안 나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동심을 천천히 되찾는 느낌을 받았다.

책 속 ‘구르미’가 올려다보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떠올리면, 길가의 민들레를 발견해 괜히 기분이 밝아지던 순간,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날 이유 없이 뛰어보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장미와 민들레, 낙엽 냄새가 가득한 비밀의 정원, 거미줄이 걸린 폐가의 이미지들은 과장되지 않은 문장으로 또렷하게 다가오고, 그 장면들이 내 기억 어딘가와 닿으면서 마음의 문부터 열리게 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를 넘어, 어른이 된 나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순수를 조심스럽게 깨워 주는 책처럼 읽힌다.

간략히 줄거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상상을 좋아하던 아이 ‘은주’는 어느 날 민들레 홀씨를 따라 달리다 낙엽 더미에 넘어진 순간, 플라타너스 냄새와 거미줄 낀 폐가가 있는 ‘비밀의 정원’을 마주한다. 두려움과 설렘이 한꺼번에 밀려온 그 경험은 오래 남는다. 시간이 흘러 IMF로 집안이 흔들리고 아버지가 쓰러지자 은주는 가장이 되어 유년의 세계를 깊이 묻어 둔다. 마음이 메말라갈 무렵, 사람들의 소음에서 멀어지고 싶어 외딴 바람꽃섬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구름 같은 아이 ‘구르미’를 만난다. “사랑은 뭐야?”, “이름을 붙이면 왜 특별해져?” 같은 단순하지만 깊은 질문을 통해 은주는 잊고 지낸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민들레 ‘링크’와 구르미가 서로의 꿈을 나누는 장면을 통해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는 사실과 ‘꿈은 마음 안에 바람을 만든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산정에서 구름 품에 안기듯 구르미의 존재를 다시 느끼며, 누군가를 안아주는 사랑은 결국 ‘나 자신’을 먼저 안아주는 데서 시작함을 배운다. 그렇게 은주는 잃어버린 유년의 호흡과 성인의 책임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장면은, 구름을 닮은 아이인 ‘구르미’와 민들레 ‘링크’가 나누는 말들이었다. 날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문 뒤에 숨어 있던 구르미에게 어느 날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날지 못해도,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란다.”

짧은 한마디인데, 마음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어른이 되어 하루를 버티다 보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성과를 내야 한다, 남들만큼 올라가야 한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가 있다. 이 책은 그 생각을 바로잡아 준다. 잘해내기보다 먼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 바탕이 없으면 꿈은 쉽게 힘을 잃고, 출발도 전에 지치거나 시작하고도 금방 꺾인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게 됐다. 마음을 돌봐야 할 때조차 ‘쓸모가 있는가’만 따지며 나를 평가하던 습관, 틈만 나면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태도. 그때 구르미의 장면이 분명하게 일러준다. 먼저 나를 안아 줄 수 있어야 그다음이 있다

오래 남은 또 한 가지는 이름 붙이기다. 구르미가 민들레에 ‘링크’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민들레는 더 이상 ‘그냥 꽃’이 아니다. “이름을 붙이면 특별해진다”는 말은, 사실 내가 보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는 뜻이다. 꽃 하나, 마음 하나, 사람 하나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 주면, 그 대상은 다른 사람에게 여전히 ‘그냥’일지라도 내게는 더 이상 ‘그냥’일 수 없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시선이 머물고,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서 애정과 책임이 자란다.

결국 이 두 장면은 하나로 이어진다. 먼저 나를 인정할 것, 그리고 소중한 것들의 이름을 불러 줄 것. 이 두 가지가 갖춰질 때 우리는 비교에서 한 걸음 물러나고, 꿈은 비로소 힘을 얻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음속 바람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불어온다.

민들레 ‘링크’와 ‘구르미’가 “함께 하늘을 날자”고 꿈을 나누는 순간도 오래 남는다. 마지막 민들레 홀씨가 흩어질 때, 구르미가 그 홀씨를 살짝 쥐자 몸이 함께 떠오르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 마음이 빛이 되어 방향을 잡아 주고, 그 빛을 따라 움직일 힘이 뒤따른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혼자만 품을 때보다 누군가와 말로 나눌 때 꿈은 더 커지고, 시작선 앞에서 발을 떼기가 한층 쉬워진다. 구르미가 떠오른 까닭도 새 재능이 생겨서가 아니다. 완벽한 준비가 갖춰져서도 아니다. 작지만 분명한 희망이 꿈을 이루게 해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꿈’은 거창한 결말의 이름이 아니라 오늘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시작 버튼에 가깝다. 꿈을 떠올리고, 그 한 줄을 누군가와 나누는 순간 우리는 이미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힘이 생긴다.

또 하나는, 주인공의 “더 많이 물어봤어야 했는데”라는 짧은 고백 부분이다. 어쩌면 누구나 경험하는 익숙한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반가운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도, 어렵게 시간을 맞춰 마주 앉았을 때도, 우리는 종종 듣기보다 먼저 말부터 꺼낸다.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할 수도 있고, 정작 묻고 싶던 질문은 삼킨 채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그 뒤늦은 후회가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깊이 새기고, 다음 만남에선 제대로 실행해보고자 한다. 눈앞의 사람에게 최대한 집중해보기로.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던지, 한 눈을 파는 행동을 피하고 최대한 집중해보자는 생각이다. 판단이나 조언을 서두르기 전에 안부나 궁금한 건 충분히 물어 볼 것. 헤어진 뒤 “그때 그걸 물을걸”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의 대화에 머물 것!

이 책은 읽는 내내 떠올려지는 풍경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책이다. 플라타너스 낙엽의 냄새, 거미줄이 빈 창을 메운 장면, 바람이 훅 스치며 하얀 구름이 안기듯 몰려오는 순간 같은 것들이 과장되지 않은 문장으로 차분히 다가온다. 문장 자체가 어렵지 않아 누구나 무리 없이 읽을 수 있고, 그 쉬움이 가볍다는 느낌보다 읽는 사람이 동심을 생각하듯 순수한 시절로 데려다 주는 책이다.

이 책 『안녕, 구르미』는 어른이 된 후 잃어버린 마음의 온도를 되찾는 이야기다. IMF 이후 가장이 된 은주는 외딴섬에서 구름 같은 아이 ‘구르미’를 만나고, 이름을 불러 주는 일과 먼저 들어 주는 일이 어떻게 상처를 덜어내는지 배운다. 민들레 ‘링크’와 구르미의 대화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인정해야 꿈도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보여 준다. 꿈을 함께 말로 나누는 순간 마음에 바람이 일고, 그 바람이 다시 한 걸음을 밀어 준다. 결국 이 책은 잊어버린 나를 부르고(호명), 안아 주고(인정), 함께 꿈을 말하는 일(희망의 공유)이 삶을 움직인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해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태인문화사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때, 민들레가 따뜻하게 말했다.
"구르미야, 너는 너다운 너를 사랑하면 돼. 친구들처럼 될 필요는 없어."
그러고는 구르미를 포근히 안아 주었다.
민들레 ‘링크’와 구르미는 친구가 되었다. 구르미는 매일 문설주에 기대어 앉아 링크와 함께 하늘을 보았다.
둘은 서로의 꿈 이야기를 나눴다.
구르미는 하늘을 나는 꿈을, 링크는 희망이 필요한 친구에게 날아가는 꿈을, 그렇게 그 둘은 서로, 서로의 꿈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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