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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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고대 철학자 12명(소크라테스, 소포클레스, 플라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플루타르코스, 키케로,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아리스토파네스)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다시 묻는 인생 기술 안내서다. 이 책은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시대를 어떻게 버티고 걸어가야 하는지, 각 철학자의 삶과 문장을 빌려 아주 구체적인 삶의 태도로 보여준다.

그래서 제목도 ‘최고의’가 아니라 ‘최선의’ 철학이다. 남을 이기는 비법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어떻게든 성실하게 살아내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생각의 틀을 건네준다.

이 책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예전에 읽었던 《소크라테스의 변론》, 《향연》, 《파이돈》을 다시 떠올리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때 읽은 건 원전에 아주 가깝게 옮긴 번역본이라 문장 이해가 어렵고, 논리 전개도 낯설어서 솔직히 전체 내용을 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최선의 철학》에서 만난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쉽게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어려운 개념 설명을 최대한 줄이고, 대화 장면과 핵심 질문을 일상적인 말로 풀어줘서 “소크라테스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했구나” 하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예전에 분명 읽었던 내용인데, 이번에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소크라테스 파트의 시작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곧바로 연결된다.

저자는 AI 시대에는 질문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곧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같은 AI를 쓰더라도,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얻는 답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한 철학자를 불러온다.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이라는 횃불을 들고 진리를 좇아간 사람이었고,

바로 그 질문들 때문에 재판에 서게 되었고, 끝내 독배를 마시며 생을 마감한 인물이기도 하다.

책은 소크라테스의 삶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꼭 필요한 핵심만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는 석공인 아버지와 산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직접 돌을 다듬는 일을 했고, 마흔이 지나서야 비로소 철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하던 철학은 우리가 떠올리는 어려운 학문과는 달랐다. 아테네 거리 곳곳을 걸어 다니며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묻고, 다시 되묻는 것이 전부였다. 여기서 중요한 비유가 바로 산파다. 산파가 아이가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듯, 소크라테스 역시 질문을 통해 사람들 안에 이미 있는 생각과 진실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이끌었다. 이 때문에 그의 대화법을 ‘산파술’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는 그 방식으로 평생 진리를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은 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중심으로 그의 질문법을 보여준다. 법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화려한 말로 꾸미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말을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겠다고 했다. 당시 법정에는 웅변가들이 과장된 수사와 눈물 섞인 호소로 배심원을 움직이는 문화가 있었다는 배경까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 때문에, 왜 소크라테스의 태도가 특별한지 쉽게 이해된다. 감정을 자극해 사람을 움직이는 대신,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평범한 말을 택했다. 이 한 가지 태도만으로도 그의 품격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재판 장면에서는 멜레토스와 주고받는 문답이 특히 또렷하게 살아난다. 소크라테스는 “정말 내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면, 그 피해가 결국 내게 돌아올 텐데 굳이 그럴 이유가 있겠느냐”, “새로운 신을 믿는다고 고발해 놓고, 동시에 나는 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느냐” 하고 집요하게 되묻는다. 저자는 이 대화를 풀어 설명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먼저 말의 뜻을 분명히 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고, 그다음에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따져 묻는 질문, 말 속에 깔린 전제가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 마지막으로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하는지 끝까지 따라가 보는 질문을 차례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정리한다. 한마디로, 흐릿한 말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의미와 근거를 끝까지 밝혀 내는 ‘질문의 기술’이 이 짧은 재판 장면 안에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 있다. “워딩이 흐리멍덩하면 세상도 흐리멍덩해진다.” 말이 애매하면 생각도 흐려지고, 결국 사회 전체가 서로 오해하고 헛도는 밤을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 “근거를 알려 달라”고 말하면 괜히 까다롭고 분위기 망치는 사람 취급을 받기 쉽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를 떠올리면, ‘이건 충분히 물어봐도 되는 질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수가 맞다고 하는 결정은 과연 정말로 옳은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수가 찬성하고 인정한다고 해서, 그 결정이 자동으로 합리적이고 정의롭다고 볼 수는 없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이라면 진짜로 옳은 선택이 아니어도 그 방향을 택하기 쉽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래, 그게 맞지” 하고 동의해 주면 죄책감은 더 줄어들고, 나중에는 우리가 한 결정이 원래부터 옳은 거였어라고 믿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주로 ‘집단사고’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의견을 불편해하고,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비판을 삼가다 보니, 집단 전체가 위험하고 왜곡된 결정을 향해 한꺼번에 달려가는 현상이다. 여기에 “남들이 다 그러니까 나도 맞겠지”라는 ‘동조 효과’,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자기정당화’까지 더해지면, 누가 봐도 이상한 결정인데도 아무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게 된다.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어쩌면 너무 옳은 말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반감을 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질문은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던 생각 속 모순을 하나씩 찔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불편함과 반감이 쌓인 사람들이 결국 다수의 힘으로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진짜 생각과 가능성을 깨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 깊은 마음보다 당장의 불편함이 먼저 느껴졌을 것이다. 질문을 듣는 그 순간, 불편함을 잠깐 견디고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었다면, 각자의 불안한 현실과 미래 속에서 자기만의 답을 찾는 기회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의 나를 솔직하게 마주보는 태도에서 배울 수 있는 게 훨씬 많다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오늘날의 SNS 현실과도 자연스럽게 겹쳐 보여준다. 이슈가 하나 터지면 인플루언서들이 피라냐 떼처럼 몰려들어 대상을 물어뜯고, 그 과정을 통해 조회수와 수익을 끌어올린다. 누가 처음 말을 꺼냈는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제대로 확인되기도 전에 이미 한 사람이 절벽 끝까지 몰려가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남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조롱이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그럴수록 더 자극적인 말과 행동이 반복되는 구조를 보면,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과도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을 떠올리다 보니, 최소한 이런 일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제도와 법, 그리고 “거기까지만 하자”,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단단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소크라테스 파트가 이 책의 시작을 알렸다면, 나머지 11명의 철학자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삶을 비춰준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통해서는 신념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의 무게와 책임을 떠올리게 하고, 플라톤의 《메논》에서는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모른다고 인정하고 계속 배우려는 초보자의 용기를 강조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일기 같은 글을 따라가다 보면, 혼란스러운 마음을 스스로 달래고 다잡는 연습이 왜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같은 이름은 역사와 서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버티고 선택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결국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세네카와 키케로, 플루타르코스와 아리스토파네스는 각각 인간관계, 말하기와 글쓰기,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비추는 법, 세상을 비틀어 보는 유머와 비판적 상상력 같은 주제를 던진다. 각각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건져 올린 핵심을 오늘의 언어로 쉽게 풀어 줘서 부담 없이 읽힌다.

전체적으로 문장은 어렵지 않고, 예시도 현대인의 일상과 가깝다. “멈춤 버튼 증후군”처럼 OTT 영상의 일시정지 버튼에서 출발해 삶의 불안과 회피를 설명하는 부분도 그렇다. 저자는 긴 기자 생활을 마치고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다시 묻게 된 개인적인 경험이 책의 바탕에 깔려 있어서, 추상적인 철학 설명이 아니라 실제 삶의 고민에서 나온 문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고, 어른이 읽어도 “맞아, 나도 이런 고민 했지” 하며 공감할 만한 지점이 많다.

물론 각 철학자마다 깊이 있게 파고드는 전문 연구서는 아니다. 한 사람의 사상을 끝까지 따라가는 대신, 12명의 철학자에게서 “지금 내게 필요한 질문”을 하나씩 건져 올려 주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오히려 입문서로는 더 적절하다. 여기서 관심이 생기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때 원전이나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면 “최선의 삶”이라는 말이 아주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작은 질문들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멈추고 싶고, 피하고 싶고, 남들 눈치 보느라 입을 다물고 싶은 순간에도, 한 번쯤 소크라테스처럼 조용히 되물어 보는 것. “정말 그런가?”, “나는 왜 그렇게 믿는가?”, “이 선택이 나와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런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 나만의 “최선의 철학”을 만들어 가는 힘이라는 걸 이 책이 알려주고 있다.


'창비교육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소크라테스는 이어 자신이 어떻게 명성을 얻었고, 자신에 대한 비방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고발인들의 프레임(frame)을 본격적으로 반박하기에 앞서 자신의 프레임부터 보여주는 것입니다. 상대방 프레임부터 말한 뒤 반박하면 그 프레임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프레임을 먼저 분명하게 제시해야 상대방 프레임에 맞설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철학 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 계기를 ‘델포이의 신탁’에서 찾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카이레폰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가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물었는데, 그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신탁에 곤혹스러움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혜롭기로 이름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지혜롭지 않음’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처음엔 정치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들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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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들 - 주석 스님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주석 지음 / 담앤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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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등바등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기분이 조금 가라 앉고 있는 시점에 집안 문제까지 겹쳐 머릿속은 복잡하고 스트레스도 쌓였다.

그때 우연히 『주석 스님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 순간들』을 읽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딱 맞게 찾아온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뒤엉킨 마음을 다독여 주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스님이 조용히 써 내려간 일기 같은 소박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글을 읽다 보면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은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책의 초반에서 스님은 위로가 되는 음식을 이야기한다.

꽁꽁 언 항아리에서 막 꺼낸 얼음 박힌 동치미, 여름날 할머니가 된장을 풀어 설렁설렁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 시험 보러 가는 아침마다 어머니가 싸 주시던 도시락. 이 음식들은 그저 추억 속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지친 마음을 붙잡아 주는 힘이 된다고 스님은 말한다. 우리에게도 힘들 때 문득 떠오르는 음식이 하나쯤은 있다. 사실 그 음식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간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학창 시절, 밥을 나누는 일을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고 여겨서 함부로 누구와 밥을 먹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지금도 의무적으로 어울려야 하는 식사 자리는 조금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따뜻한 음식을 볼 때 누구와든 그 온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 마음까지 서늘해지는 때, 마음 끓이지 말고 냄비에 따뜻한 찌개를 한 번 끓여 먹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사람을 향한 스님의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힘 나눠 갖기”에서 스님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돌아본다.

내가 더 옳다는 힘, 내가 더 잘 안다는 힘, 내 말이 무조건 맞다는 고집 같은 것들.

수행자라고 해서 이런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 힘을 조금씩 빼 보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내 목소리를 낮추고 상대의 말을 들어 보면, 그제야 상대의 아픔이 들리기 시작한다.

내 손의 힘을 조금 빼고 상대의 손을 잡아 보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이 전해진다.

큰 돌과 작은 돌이 서로를 품고 쌓여 오래 버티는 돌담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힘을 나누어 가질 때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잔잔하게 남는다.

스님이 운영하는 ‘쿠무다(KUmuda)’라는 공간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이곳은 전통적인 사찰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 공간을 지향한다. 종교 시설을 이렇게 열어 두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의 책임이 아닐까라고 스님은 말한다. 절이 기도만 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들러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스님은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소개했는데, 정작 소개받은 사람은 별로라고 느끼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한다. 스님은 그 이유를 “업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와 그 사람은 비슷한 업의 틀을 가지고 있어 잘 맞지만, 다른 사람과는 그 틀이 잘 맞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상대를 내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할 때 관계는 서서히 틀어지고 멀어진다.

그래서 타인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이해’와 ‘거리 두기’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장자의 글을 인용하며,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을 살면서 완벽하게 맞는 사람과 상황은 거의 없고, 우리는 맞추어 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님은 ‘오해’에서 숫자 몇 개를 덜어내고 ‘이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고 제안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한 번 숨을 고른 뒤 상대를 바라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조금씩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가르침”에서는 양관 선사와 말썽 많은 양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모두가 양자를 쫓아내자고 말할 때, 양관 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에 짚신 끈을 매어 주다가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을 본 양자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을 바꾸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스님은, 때로는 소리 높여 비난하는 말보다, 말없이 지켜보는 눈빛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연민할 때, 굳어 있던 마음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게 된다.

스님은 벽에 걸린 그림도 앉아서 볼 때, 서서 볼 때, 누워서 볼 때가 다르고, 내가 가진 고정된 시선을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선입견을 품은 채 사람을 대하면, 상대가 아무리 좋은 행동을 해도 그 선입견의 틀을 거의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좋지 않은 카르마가 계속 쌓이고, 그 카르마가 또 다른 카르마를 만들어 결국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엔 좋은 마음이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거 아니까 생각해보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인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순간 지나간다.” 라는 말이었다.

지금 현실이 희망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끼며, 불행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있다면, 이 문장은 작은 숨 구멍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어둠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지나가고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결국 지나간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너무 깊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짧은 문장을 가슴속에 새겨 두는 사람들도 많았으면 한다.

스님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낭중지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 같은 한자 성어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결국 튀어나오고, 아무리 화려한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하며, 어떤 권력도 십 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여러 장면에서 되새기게 한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에 가깝다. 힘든 시간도, 억울한 순간도, 부끄러운 실패도 결국은 지나가는 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스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과 직접 쓴 시들이 함께 엮여 있는 산문집이다.

책 곳곳에서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리해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고, 말은 한 번 더 삼켜 보고 내보내야 하며, 섣불리 상대를 판단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로 스님은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를 말한다.

나만 깨닫는 길이 아니라, 나도 깨닫고 상대도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삶, 나와 타자가 함께 성숙해지는 삶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한 번 정해진 대로 굳어 있는 그림이 아니라, 수많은 순간들이 모여 계속해서 모양을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나간 일에 마음을 너무 끓이기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따뜻한 찌개 한 냄비를 끓여 먹는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소박하고 평범한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삶 전체가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서 있을지도 모른다.

'담앤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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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화문(口是禍門)이니 필가엄수(必加嚴守)하라.’는 말은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입에서 나오는 말로 시작되는 것이니 우리의 입을 엄하게 지키라는 뜻이다. 부처님과 조사(祖師)스님(불교에서 법맥을 잇는 중요한 승려)들은 물론 세상의 모든 성인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사실 이런 말씀이 아니어도 우리는 눈을 뜨면서 시작해 눈 감을 때까지 하루에도 수없이 말로 인해서 생겨나는 문제를 겪고 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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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일력 365 - 전국민 경제 멘토 박정호 교수가 들려주는 하루 한 장 경제수업
박정호 지음 / 이든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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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일력 365 – 전국민 경제 멘토 박정호 교수가 들려주는 하루 한 장 경제 수업』은 제목 그대로 “오늘의 경제가 내일의 통찰이 되게 하는” 책이다. 책을 받아 펼쳐보니,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구조가 아니라 책상 위에 세워두고 달력을 넘기듯 매일 한 장씩 보는 일력형 경제 교양서였다. 책상이 아니어도 자주 머무는 공간, 자주 마주치는 자리에 올려두고 그날의 페이지를 한 번 넘기기만 하면 되니 부담이 적다. 그렇게 매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책이다.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월급만으로는 미래를 대비하기 어려운 시대, 투자가 일상이 된 시대”라고 규정한다. 100세를 넘어 120세까지 바라봐야 하는 시대에 투자는 더 이상 일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 속에서 다뤄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답이 거창한 투자 스킬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급변하는 시장과 신기술, 국제 정세까지 쫓아가야 할 정보는 끝이 없지만, 결국 성과를 만드는 힘은 ‘좋은 습관’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작지만 꾸준히 반복되는 선택이라는 메시지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 철학은 책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홀수 달에는 과거 오늘 실제로 일어난 경제 사건이, 짝수 달에는 경제 사상가와 투자 대가들의 명언이 실려 있다. 과거의 사건은 오늘을 해석하는 기준점이 되고, 명언은 내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씩 틀어준다. 한쪽에는 ‘사건’이, 다른 한쪽에는 ‘문장’이 놓이며 한 해를 지나는 동안 경제를 ‘흐름’과 ‘생각’이라는 두 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실제로 며칠 동안 책을 탁상에 세워두고 사용해보니, 이 책의 매력은 깊이보다는 ‘리듬’에 있다. 하루 분량은 짧다. 간단한 사건 설명, 짧은 해설, 생각거리 한두 줄이면 끝나는 날도 많다. 하지만 바로 그 덕분에 ‘매일’이라는 약속을 지키기가 쉽다. 퇴근 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눈앞에 세워진 일력의 글은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한 장을 읽게 되고, 그 작은 행동이 반복되며 일종의 패턴이 만들어진다. 경제 공부를 위한 별도의 시간을 쪼개기보다, 생활 속으로 슬며시 들어와 버리는 구조다.

내용 역시 단순한 연표가 아니다. 사건이 당시 시장과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흔들었는지 간단히 짚어 주고, 명언 페이지에서는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 같은 투자자부터 다양한 경제 사상가와 경영자들의 문장을 만나게 된다. 어떤 날은 내 상황과 딱 맞아 마음에 오래 남고, 어떤 날은 크게 와닿지 않는 문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조차 “왜 오늘은 이 말에 반응하지 않을까?”를 돌아보게 해서 결국 나를 점검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꾸준히 펼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경제 뉴스를 보는 눈이다. 예전에는 기사 제목만 훑고 지나가곤 했는데, 이제는 책에서 다뤄진 과거의 사건과 자연스럽게 이어서 생각하게 된다. “그때도 금리 인상이 심리를 이렇게 흔들었지. 지금과 어떤 점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를까?” 같은 질문이 떠오르면서, 숫자와 그래프만 보이던 경제가 사람들의 선택과 심리가 얽힌 이야기로 느껴진다.

물론 한계도 있다. 하루 한 장이라는 형식 때문에 어떤 날은 “조금만 더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구체적인 투자 전략이나 치밀한 실전 노하우를 기대한다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정답을 알려주는 교과서가 아니라, 생각의 스위치를 켜주는 일종의 “알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책이 공부와 판단을 대신해주지는 않지만, 오늘 무엇을 더 찾아볼지, 어떤 키워드를 더 깊이 들여다볼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읽는 방식도 각자 만들 수 있다. 그날의 사건이나 문장을 읽고 관련 뉴스나 자료를 찾아보거나, 마음에 남는 문장을 따로 적어 두는 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 한 달이 끝날 때 인상 깊었던 페이지만 모아보면 그 달 내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한 단어들이 드러난다. 금리, 인플레이션, 실업률일 때도 있고, 심리, 기대, 버블일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경제를 읽는 일은 세상의 불안과 기회를 읽는 동시에, 그때그때의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박정호 저자는 여러 경제 교양서와 강연으로 이미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의 다른 책들이 한 번에 몰아서 읽는 경제 개론서라면, 『경제 일력 365』는 한 해 동안 곁을 지키는 동행자에 가깝다. 설명이 과도하게 전문적이지 않아 경제·투자 입문자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고, 무엇보다 “경제는 결국 습관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실제로 체험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두꺼운 이론서를 펼칠 여유는 없지만 경제 감각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은 꽤 현실적인 선택이다. 책상 한쪽에 조용히 세워 두고 “오늘도 한 장 넘겼다”는 소소한 성취를 쌓다 보면, 경제와의 거리는 분명 조금씩 좁혀진다.

나에게 『경제 일력 365』는 경제를 어렵게 느끼던 내가,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작은 반복을 통해 점점 경제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부담 없이 습관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경제 이야기를 접하게 해주는, 친절한 입문서 같은 존재라고 느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경제 분야의 책들을 한 걸음 더 편안하게, 그리고 조금 더 자주 찾아 읽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든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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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보는 기술 - 역술가 박성준이 알려주는 사주, 관상, 풍수의 모든 것
박성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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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보는 기술』은 사주·관상·풍수를 바탕으로 운의 흐름을 읽는 법을 일상 속 눈높이에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성준은 이전에 무속인 연애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된 분이다. 그때부터 차갑게 웃지도 않으면서 할 말은 또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에 남기도 했다. 요즘에는 강남, 이수지 같은 유튜브 채널에도 종종 나오는데, 화면 속에서 늘 같은 톤으로 담담하게 팩트를 말하는 모습이 꽤 기억에 남는다. 방송, 상담, 풍수 컨설팅 현장에서 30년 넘게 활동해 온 사람답게, 사주나 관상을 그냥 운세 풀이가 아니라 사람과 상황을 읽어내는 기술처럼 설명해 주는 점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책의 초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운이 좋아질 때 나타나는 변화와 신호’ 를 매우 구체적으로 다룬 부분이었다. 저자는 흔히 말하는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이 오기 직전 오히려 시련이 끼어드는 현상)’를 운의 교체기인 ‘교운기’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운이 바뀌는 시점에는 주변 사람들이 먼저 달라진다고 한다. 새로운 멘토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이 나타나거나, 반대로 인연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한다. 퇴사·이혼처럼 환경이 재배치되는 일도 모두 새 운을 맞이하는 과정으로 읽어 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감각이 달라지는 변화인데, 예전 같으면 불안했을 일을 담담히 넘기고, 갑자기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거나, 집을 정리하고, 돈을 쓰는 기준이 바뀌는 등의 변화가 그 신호라고 한다.

저자는 『삼명통회』를 인용하며, 이런 큰 변화는 대개 10년 단위의 대운이 바뀌는 전환기에 몰려 있으며, 과거의 힘들었던 시기를 연도별로 기록해보면 비슷한 숫자의 나이대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조언한다. 명리의 십성은 성향을 이해하는 간편한 도구로 소개되는데, 비견은 자존심, 겁재는 경쟁심, 식신은 분석력, 상관은 표현력 등으로 풀어주어 독자가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손쉽게 짚어볼 수 있다.

돈과 관계를 엮어 설명하는 부분도 설득력 있다. 명리에서 ‘재성’은 돈뿐 아니라 소유·연애·인연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라, 남성의 경제운과 연애운이 동시에 움직이는 이유를 이 흐름으로 설명한다. 지갑 속 지폐를 가지런히 관리하는 남자는 대체로 사람도 소중히 대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반대로 돈을 구겨 넣고 다니는 사람은 관계에서도 가벼울 수 있다는 저자의 생활감 넘치는 예시가 인상적이다.

관상 파트에서는 『마의상법』의 “觀人之貌, 先看氣色 관인지모, 선간기색 = 사람을 볼 때는 먼저 기색을 보라)는 구절을 앞세워, 첫인상을 관찰하는 방식부터 귀상·부상·악상·빈천상·고상·수상·요상·위상 등 여덟 가지 상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는 곧 얼굴보다 마음의 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육천상(六賤相,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남 험담을 일삼는 자, 아부에 능한 자 등)을 통해 태도와 말버릇이 결국 그 사람의 ‘진짜 관상’임을 강조한다. 표정이 전부가 아니며 잘 웃는 사람이 반드시 선한 것도 아니고, 무표정한 사람이 반드시 차가운 것도 아니라는 대목은 사람을 볼 때의 관점을 다시 세워 준다.

후반부에서는 작은 변화에서 큰 결과를 읽어내는 견미지저(見微知著)의 태도를 소개하며 전조를 읽는 힘의 중요성을 말한다. 운이 좋지 않을 때는 무리한 도전보다 공부·독서·베풂으로 기운을 순환시키는 것이 최선이라 조언한다. 명리에서 재성은 막힌 기운을 터주고 귀인을 불러오는 힘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데, 흉운일수록 나누고 베푸는 게 실질적 해법이라는 점이 특히 인상 깊다.

풍수 파트에서는 부자 동네가 왜 산 중턱에 많은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고, 원룸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인테리어 방향을 제시한다. 바람·햇빛·시야·지세의 균형을 이야기하며 집의 크기가 아니라 자연의 흐름에 나를 맞추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운명을 보는 기술』은 운명을 바꿔주겠다는 약속 대신, 사람·공간·상황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스스로 흐름을 읽는 감각을 키워주는 책이다. 사주·관상·풍수를 믿는 정도를 떠나 내 삶의 패턴을 한 번쯤 점검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유용한 책이다.


'페이지2북스/포레스트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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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火旣濟卦 수화기제괘 · 『주역』
이미 이룬 일에 집착하지 말고
새 시작을 준비하라.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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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좀 아는 특별반 아이들 나무클래식 12
설흔 지음, 인디고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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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감 먼저]

이 책은 처음부터 약간의 혼란을 준다.

시작하자마자 이야기를 쓴 작가가 실제 저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때문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동공지진)

서문에 있는 내용이 이 책의 스토리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인지,

정말 사실인지 구분이 안 가는거다. 내가 삻에 찌들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건가?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더 의문이 들었던 걸 애필로그에서도 프롤로그의 연장선에서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럼 진실이었던 건가. 나를 알쏭달쏭하게 했던 책이다.

[본문 리뷰]

별관 특별반 공지가 떨어지면서, 교장이 ‘죄인’이라고 지목한 다섯 학생이 별관 301호에 모여 앉는다. 분위기는 처음부터 벌점과 벌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선생은 첫마디로 방향을 바꾼다. 이 수업은 누구를 심문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약용의 실수를 함께 살펴보며 각자 자신의 습관과 실수를 돌아보는 자리라고 말한다. 위인의 업적을 줄줄이 외우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 정약용이 어디에서 흔들리고 무엇을 후회했는지를 따라가며 “나는 어떤가”를 생각해 보자는 제안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곧 교실은 질문과 토론이 오가는 공간이 된다. 한 학생이 “왜 하필 정약용입니까?”라고 묻자, 선생은 “정약용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답한다. 특별반 학생들은 토끼·하이에나·까마귀·올빼미·나무늘보 같은 동물 별명으로 불리며 각자의 성격을 드러낸다. 하이에나가 빈정대는 말로 수업 흐름을 깨도, 선생은 큰소리로 혼내기보다 차분히 개념을 바로잡는 쪽을 선택한다. 궁금한 게 많지만 늘 망설이는 토끼에게는 “궁금한 건 죄도, 실수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손을 들 용기를 북돋운다. 이 반에는 또 하나의 규칙이 생긴다. 열심히 토론하되 서로의 감정은 건드리지 말자는 약속이다. 그래서 이 교실에서는 날 선 질문이나 비아냥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 뒤에 금방 실수를 인정하고 짧게 사과하며 다시 대화를 이어 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수업이 깊어질수록 아이들은 ‘행간 읽기’를 배우게 된다. 선생과 학생들은 정조가 내린 교지를 함께 읽으며, 겉으로 보이는 문장뿐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뜻을 짚어 본다. 교지에는 “기이한 것에 힘쓰며 새로운 것을 구하였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를 고치지 않고 있다”는 표현과 함께 정약용을 금정 찰방으로 내려보내라는 명이 적혀 있다. 아이들은 곧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왜 ‘천주교’라는 말을 직접 쓰지 않았을까?”

선생은 당시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서 민감한 금기였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글씨를 똑바로 쓰라고 여러 차례 명했는데, 정약용은 여전히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썼다. 그래서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라는 표현에는 왕의 명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태도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그러나 선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정약용이 실제로는 천주교 문제에 연루되어 있었음에도 정조가 교지에서 ‘천주교’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이유를, 정조가 그를 아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조는 정약용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죄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진짜 이유인 천주교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이유인 ‘기이한 것에 힘썼다’, ‘서체를 고치지 않았다’를 내세워 좌천을 결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겉으로는 서체와 태도를 문제 삼는 듯하지만, 그 뒤에는 정약용을 지키려는 정조의 복잡한 마음이 숨어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선생은 글을 읽을 때 적힌 문장만 보고 끝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왜 하필 이 단어를 골랐는지, 무엇을 일부러 빼고 말했는지, 그 행간과 맥락,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언어의 탐정이 되라”는 주문을 건넨다. 정조의 글뿐 아니라 앞으로 읽게 될 정약용의 글도 이런 태도로 읽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알려 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정약용의 내면을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세찬 바람이 불었다. 나무가 흔들렸고 말이 울었다”로 시작되는 대목에서, 정약용은 과거 급제의 들뜬 마음과 관직에서의 허영 속에서 어느새 ‘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수오(守吾)―나를 지킨다”라는 한마디가 바람을 타고 귀를 파고든다. 그는 임금에게 회초리를 맞은 일을 단순한 벌이 아니라 자신을 깨우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돌아가면 서재의 이름을 ‘수오’라고 짓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가자, 길이 멀다.” 이 짧은 문장은 이후 이야기를 움직이는 심장처럼 계속 뛰어, 이 소설이 위대한 업적의 나열이 아니라 실수 속에서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곧 ‘나를 지키는 공부’에 관한 이야기임을 보여 준다.

선생이 제목을 붙인 여섯 편의 글은 모두 정약용이 남긴 반성문이다. ‘함부로 뱉은 말 한마디’는 말이나 글 한 줄이 다른 사람의 명예와 불행을 바꿀 수 있으니 입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혼자 잘난 체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병’은 잘못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화내고 변명하게 되는 마음을 보여 주며,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개과(改過)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볍고 하찮은 재주’는 남에게 자랑하려고만 쓰는 글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를 깨닫게 하고, ‘마음의 병’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내 안의 수많은 문제를 알아채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에겐 관대하고 남에게는 칼 같은 성격’에서는 남의 흠을 꼬집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너그럽게 보라고 권하고, ‘무조건 돌진하는 버릇’은 노자의 말처럼 겨울 시냇물 건너듯 조심조심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이 글들을 읽는 동안, 궁금한 점을 묻고 잘못 말한 부분을 바로잡으면서 수업은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침소봉대, 오불관언 같은 사자성어도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장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된다. 정약용의 삶에서 특히 중요한 두 번의 고비, 1795년 금정 찰방으로 좌천된 때와 1801년부터 18년 동안 이어진 유배 시기 역시 이런 반성문과 연결되며, 선생은 이 시기들이 정약용이 자신을 가장 깊이 돌아본 시간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독서 방식과 토론은 후반부의 글쓰기 과제로 이어진다. 학생들은 500쪽이 넘는 정약용 보고서를 받은 뒤, 그 안에 정리된 여섯 가지 ‘실수증’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그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의 관점으로 자리를 옮겨, 정약용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편지나 조언 형식으로 써 본다. 정조의 눈으로, 고을 백성의 눈으로, 동료 학자의 눈으로, 때로는 가족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것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정약용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 정도로만 감상하는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의 실수와 고민을 내 시선으로 다시 이해해 보는 사람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지금 어떤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까, 오늘 밤 내 노트에 무엇을 고쳐 써 볼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묻게 된다.

이 모든 장면이 모여 전하는 메시지는 크지 않지만 단단하다. 실수는 숨겨야 할 흠이 아니라 고칠 기회라는 것, 잘못을 지워 버리려 하지 말고 기록하고 인정하고 다시 시도해 보는 루틴이 곧 성장의 기술이라는 것, “궁금한 건 죄도, 실수도 아니다”라는 말처럼 질문은 배움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틀린 점을 지적하더라도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쓰는 연습이 결국 말의 온도를 바꾸고, 관계를 지키는 힘이 된다는 사실도 이 책은 교실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놓는다.

마지막에 남는 단어는 결국 하나다. 수오(守吾), 나를 지킨다는 말이다. 이 책은 완벽을 목표로 삼는 건 애초에 환상에 가깝다고 말해 준다. 우리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진짜 힘은, 완벽을 흉내 내려는 욕심이 아니라 실수를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인정하고, 고쳐 쓰는 습관, 곧 수오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괜히 펜이 잡힌다. 오늘의 실수 한 가지를 적고, 그 옆에 내가 배운 점을 한 줄로 쓰고, 내일은 무엇을 조금 다르게 해 볼지 작은 행동 하나를 정해 보고 싶어진다. 질문은 배움의 출발이 되고, 사과는 관계를 지키는 기술이 되고, 고쳐 쓰기는 나를 지키는 연습이 된다. 길이 멀어 보여도 괜찮다. 그 길 전체가 결국 나를 지키는 길, 곧 수오의 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천천히 깨닫게 해 준다.


'나무를심는사람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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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흔히 그러듯 성찰, 수양, 인간적 색채 등의 미려한 단어들로 포장했습니다만 제 생각에 그런 거창한 표현들이 말하는 바는 한 가지입니다. 정약용도 여러분처럼 실수했으며 그 실수에 대해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고 후회하고 반성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우리가 특별 수업에서 다룰 정약용은 위대한 다산 선생이나 초인 정약용이 아닙니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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