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좀 아는 특별반 아이들 나무클래식 12
설흔 지음, 인디고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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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감 먼저]

이 책은 처음부터 약간의 혼란을 준다.

시작하자마자 이야기를 쓴 작가가 실제 저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때문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동공지진)

서문에 있는 내용이 이 책의 스토리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인지,

정말 사실인지 구분이 안 가는거다. 내가 삻에 찌들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건가?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더 의문이 들었던 걸 애필로그에서도 프롤로그의 연장선에서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럼 진실이었던 건가. 나를 알쏭달쏭하게 했던 책이다.

[본문 리뷰]

별관 특별반 공지가 떨어지면서, 교장이 ‘죄인’이라고 지목한 다섯 학생이 별관 301호에 모여 앉는다. 분위기는 처음부터 벌점과 벌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선생은 첫마디로 방향을 바꾼다. 이 수업은 누구를 심문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약용의 실수를 함께 살펴보며 각자 자신의 습관과 실수를 돌아보는 자리라고 말한다. 위인의 업적을 줄줄이 외우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 정약용이 어디에서 흔들리고 무엇을 후회했는지를 따라가며 “나는 어떤가”를 생각해 보자는 제안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곧 교실은 질문과 토론이 오가는 공간이 된다. 한 학생이 “왜 하필 정약용입니까?”라고 묻자, 선생은 “정약용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답한다. 특별반 학생들은 토끼·하이에나·까마귀·올빼미·나무늘보 같은 동물 별명으로 불리며 각자의 성격을 드러낸다. 하이에나가 빈정대는 말로 수업 흐름을 깨도, 선생은 큰소리로 혼내기보다 차분히 개념을 바로잡는 쪽을 선택한다. 궁금한 게 많지만 늘 망설이는 토끼에게는 “궁금한 건 죄도, 실수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손을 들 용기를 북돋운다. 이 반에는 또 하나의 규칙이 생긴다. 열심히 토론하되 서로의 감정은 건드리지 말자는 약속이다. 그래서 이 교실에서는 날 선 질문이나 비아냥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 뒤에 금방 실수를 인정하고 짧게 사과하며 다시 대화를 이어 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수업이 깊어질수록 아이들은 ‘행간 읽기’를 배우게 된다. 선생과 학생들은 정조가 내린 교지를 함께 읽으며, 겉으로 보이는 문장뿐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뜻을 짚어 본다. 교지에는 “기이한 것에 힘쓰며 새로운 것을 구하였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를 고치지 않고 있다”는 표현과 함께 정약용을 금정 찰방으로 내려보내라는 명이 적혀 있다. 아이들은 곧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왜 ‘천주교’라는 말을 직접 쓰지 않았을까?”

선생은 당시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서 민감한 금기였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글씨를 똑바로 쓰라고 여러 차례 명했는데, 정약용은 여전히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썼다. 그래서 “비스듬히 기울어진 서체”라는 표현에는 왕의 명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태도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그러나 선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정약용이 실제로는 천주교 문제에 연루되어 있었음에도 정조가 교지에서 ‘천주교’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이유를, 정조가 그를 아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조는 정약용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죄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진짜 이유인 천주교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이유인 ‘기이한 것에 힘썼다’, ‘서체를 고치지 않았다’를 내세워 좌천을 결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겉으로는 서체와 태도를 문제 삼는 듯하지만, 그 뒤에는 정약용을 지키려는 정조의 복잡한 마음이 숨어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선생은 글을 읽을 때 적힌 문장만 보고 끝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왜 하필 이 단어를 골랐는지, 무엇을 일부러 빼고 말했는지, 그 행간과 맥락,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언어의 탐정이 되라”는 주문을 건넨다. 정조의 글뿐 아니라 앞으로 읽게 될 정약용의 글도 이런 태도로 읽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알려 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정약용의 내면을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세찬 바람이 불었다. 나무가 흔들렸고 말이 울었다”로 시작되는 대목에서, 정약용은 과거 급제의 들뜬 마음과 관직에서의 허영 속에서 어느새 ‘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수오(守吾)―나를 지킨다”라는 한마디가 바람을 타고 귀를 파고든다. 그는 임금에게 회초리를 맞은 일을 단순한 벌이 아니라 자신을 깨우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돌아가면 서재의 이름을 ‘수오’라고 짓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가자, 길이 멀다.” 이 짧은 문장은 이후 이야기를 움직이는 심장처럼 계속 뛰어, 이 소설이 위대한 업적의 나열이 아니라 실수 속에서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곧 ‘나를 지키는 공부’에 관한 이야기임을 보여 준다.

선생이 제목을 붙인 여섯 편의 글은 모두 정약용이 남긴 반성문이다. ‘함부로 뱉은 말 한마디’는 말이나 글 한 줄이 다른 사람의 명예와 불행을 바꿀 수 있으니 입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혼자 잘난 체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병’은 잘못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화내고 변명하게 되는 마음을 보여 주며,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개과(改過)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볍고 하찮은 재주’는 남에게 자랑하려고만 쓰는 글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를 깨닫게 하고, ‘마음의 병’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내 안의 수많은 문제를 알아채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에겐 관대하고 남에게는 칼 같은 성격’에서는 남의 흠을 꼬집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너그럽게 보라고 권하고, ‘무조건 돌진하는 버릇’은 노자의 말처럼 겨울 시냇물 건너듯 조심조심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이 글들을 읽는 동안, 궁금한 점을 묻고 잘못 말한 부분을 바로잡으면서 수업은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침소봉대, 오불관언 같은 사자성어도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장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된다. 정약용의 삶에서 특히 중요한 두 번의 고비, 1795년 금정 찰방으로 좌천된 때와 1801년부터 18년 동안 이어진 유배 시기 역시 이런 반성문과 연결되며, 선생은 이 시기들이 정약용이 자신을 가장 깊이 돌아본 시간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독서 방식과 토론은 후반부의 글쓰기 과제로 이어진다. 학생들은 500쪽이 넘는 정약용 보고서를 받은 뒤, 그 안에 정리된 여섯 가지 ‘실수증’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그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의 관점으로 자리를 옮겨, 정약용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편지나 조언 형식으로 써 본다. 정조의 눈으로, 고을 백성의 눈으로, 동료 학자의 눈으로, 때로는 가족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것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정약용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 정도로만 감상하는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의 실수와 고민을 내 시선으로 다시 이해해 보는 사람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지금 어떤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까, 오늘 밤 내 노트에 무엇을 고쳐 써 볼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묻게 된다.

이 모든 장면이 모여 전하는 메시지는 크지 않지만 단단하다. 실수는 숨겨야 할 흠이 아니라 고칠 기회라는 것, 잘못을 지워 버리려 하지 말고 기록하고 인정하고 다시 시도해 보는 루틴이 곧 성장의 기술이라는 것, “궁금한 건 죄도, 실수도 아니다”라는 말처럼 질문은 배움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틀린 점을 지적하더라도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쓰는 연습이 결국 말의 온도를 바꾸고, 관계를 지키는 힘이 된다는 사실도 이 책은 교실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놓는다.

마지막에 남는 단어는 결국 하나다. 수오(守吾), 나를 지킨다는 말이다. 이 책은 완벽을 목표로 삼는 건 애초에 환상에 가깝다고 말해 준다. 우리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진짜 힘은, 완벽을 흉내 내려는 욕심이 아니라 실수를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인정하고, 고쳐 쓰는 습관, 곧 수오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괜히 펜이 잡힌다. 오늘의 실수 한 가지를 적고, 그 옆에 내가 배운 점을 한 줄로 쓰고, 내일은 무엇을 조금 다르게 해 볼지 작은 행동 하나를 정해 보고 싶어진다. 질문은 배움의 출발이 되고, 사과는 관계를 지키는 기술이 되고, 고쳐 쓰기는 나를 지키는 연습이 된다. 길이 멀어 보여도 괜찮다. 그 길 전체가 결국 나를 지키는 길, 곧 수오의 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천천히 깨닫게 해 준다.


'나무를심는사람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전문가들이 흔히 그러듯 성찰, 수양, 인간적 색채 등의 미려한 단어들로 포장했습니다만 제 생각에 그런 거창한 표현들이 말하는 바는 한 가지입니다. 정약용도 여러분처럼 실수했으며 그 실수에 대해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고 후회하고 반성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우리가 특별 수업에서 다룰 정약용은 위대한 다산 선생이나 초인 정약용이 아닙니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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