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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으른입니다, 게으른 - 갓생에 굴하지 않는 자기 존중 에세이
김보 지음 / 북라이프 / 2025년 8월
평점 :

김보의 『나는 으른입니다, 게으른』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독특한 에세이다.
이야기 속에는 ‘느긋하지 않은 나무늘보 게으른’과 ‘방심하지 않는 토끼 부지런’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독자들이 마치 동화책을 읽듯 가볍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캐릭터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웃음이 나올 때도 있고, 그 너머에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자기 고백과 진지한 성찰이 숨어 있기도 하다.
저자는 스스로를 주저 없이 “게으른 사람”이라 부르지만, 그 게으름을 단순히 나태함이나 불성실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기질, 결핍,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은 우리가 흔히 ‘꾸준함’이라고 부르는 덕목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와 닿은 부분이기도 했다. 본문 발췌 내용은 이렇다.
결국 ‘꾸준함’이란 별로인 나를 견디는 힘에 가깝지 않을까.
마음만큼 안되는 하찮은 수행 능력, 대중없는 컨디션의 편차와 그럼에도 주제도 모르고 치솟는 기준의 역치, 그 모든 나의 못난 부분을 감내하는 일 말이다.
니체는 말했다. 슬픔은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할 때 온다고. 만사가 게을러지고 귀찮다면 마음이 추한 것과 가깝다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악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건 내가 아니라고 현실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창피한 내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근사한 내가 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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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저자는 꾸준함이란 탁월함의 증거라기보다 오히려 ‘못난 나를 견디는 힘’에 가깝다고 고백한다.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능력, 들쭉날쭉한 컨디션, 기준만 높아져 가는 욕심 같은 것들을 감내하는 과정이 바로 꾸준함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꾸준함은 번쩍이는 재능보다도 자기혐오와 추함을 이겨내는 버팀목에 가깝다. 글을 쓰면서도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면 전부 지워버리는 습관을 고백하는 부분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공감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런 못난 순간들이 쌓여 근사한 나를 만든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전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게으름’을 정의하는 방식이었다.
저자는 게으름이란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각자의 기질과 결핍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무기력해서 게으른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지나친 완벽주의 때문에 게으른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벌였다가 금세 질려서 그만두고,
누군가는 시작하기 전 예열만 오래 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낸다.
결국 게으름은 특정한 태도가 아니라 다양한 결핍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누가 진짜 게으른가”라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심리학자 칼 융의 ‘투사’ 개념을 끌어오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결핍에는 관대하면서 자기 결핍만을 게으름이라 비난한다고 지적한다.
게으름이란 결국 자기 단점을 투사한 그림자라는 해석이다.
작가는 또 ‘예열형 게으름’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쓴다.
초밥을 먹을 때 가장 맛있는 조각을 마지막에 남겨두듯,
일을 시작하기 전 나름의 의식을 치르며 시간을 끄는 자신의 모습을 설명한다.
문제는 예열이 길어지다 보면 시작도 못한 채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예열조차 자신을 달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관성’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의지 없음’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번아웃조차 삶을 사랑했기 때문에 겪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무기력은 실패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신호이며,
자고 일어나면 다시 조금은 나아진다는 깊은 깨달음도 건넨다.
책은 슬럼프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슬럼프가 미운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섭섭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성과가 없을 때, 왜 보상이 주어지지 않냐는 억울함이 슬럼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몸이 아픈 만큼 근육이 붙듯, 마음에도 알이 배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결국 참고 이어나가는 것만이 슬럼프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한다.
“아, 슬럼프 맛있다!”라고 외치는 유머러스한 태도는 자기혐오 대신 자기 화해의 길을 보여준다.
책의 후반부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조건과 사회적 성공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흔히 어른이라면 자기통제력을 갖추고 ‘해야 할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호기심과 재미를 잃지 않는 자신을 긍정한다.
최고가 되려면 한 우물을 깊게 파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도 이의를 제기하며,
여러 우물을 조금씩 파는 ‘다능인(Multipotentialite)’의 가능성을 옹호한다.
한 우물만 고집하다가 좌절하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편이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능인은 급변하는 시대에 오히려 더 적합한 존재라는 점에서,
작가의 게으름 역시 다른 가능성을 향한 움직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저자는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자유’라고 답한다.
경제적 자유든, 전문적인 자유든, 인간은 결국 제한을 벗어나고 싶은 존재라는 것이다.
게으름조차 그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모습일 수 있다.
『나는 으른입니다, 게으른』은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대신,
그 안에 숨어 있는 자신을 돌아볼 실마리를 보여준다.
자기혐오와 싸우기보다 자기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게으름은 죄책감으로만 소비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나를 이루는 결핍의 모양을 이해하는 길이자 자유를 향한 또 다른 몸부림일 수 있다.
이 책은 자기계발식 성실 담론에 지친 사람들,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자책하며 불안에 시달려본 사람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게으름’은 더 이상 부끄러운 단어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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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라이프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결국 ‘꾸준함’이란 별로인 나를 견디는 힘에 가깝지 않을까. 마음만큼 안되는 하찮은 수행 능력, 대중없는 컨디션의 편차와 그럼에도 주제도 모르고 치솟는 기준의 역치, 그 모든 나의 못난 부분을 감내하는 일 말이다. 니체는 말했다. 슬픔은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할 때 온다고. 만사가 게을러지고 귀찮다면 마음이 추한 것과 가깝다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악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건 내가 아니라고 현실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 창피한 내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근사한 내가 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작가가 되는 일도 글을 잘 쓰는 일보다는 혹평과 무관심을 견디는 일에 가깝겠지. 어쩌겠는가? 나는 몇 줄 곧잘 써 내리다가도 누구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면 금방 전부 지워버리고 며칠은 아무것도 못 쓰는 사람인 걸. 그런 못난 글이나 쓰는 내 모습이 못 견디게 싫은 걸.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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