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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싱 더 바운더리 - 마이너 서브컬처 매거진 밑바닥 생존기
푸더바 지음 / 자크드앙 / 2025년 9월
평점 :

이 책의 첫 느낌은 재미있을 것 같긴한데, 마이너의 느낌이 강한 책이라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였다.
읽다 보니 역시나 자주 사용하지 않는 용어들이 많이 나와서 찾아가며 봐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흐름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는 충분히 이해됐다. 처음엔 큰 기대 없이 넘겼지만, 읽을수록 저자가 직접 부딪쳐 얻은 체험의 내공이 촘촘히 쌓여 있는 책이라는 걸 실감했다. 말만 그럴듯한 이론이 아니라 직접 부딪쳐 얻은 결론들이라, 그만큼 신뢰도도 높았다.
푸더바(신차일)의 『푸싱 더 바운더리』는, 내가 오늘 당장 다룰 수 있는 방식으로 경계를 움직여 보자고 말하는 책이라 느꼈다. 요란한 방법 대신 아주 소박한 방법을 권한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나한테 먼저 묻고, 너무 큰 목표를 잘게 쪼개서 한 번 시험해 보라고 한다.
막상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만 주구장창 생각만하다 보면은 막상 시작도 하지 못하고 접는 경우가 많다. 완벽하지 않지만 작게라도 우선 실행해보는 것에서 달라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조금씩의 힘을 믿게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건 실패와 후회를 대하는 태도다. 이 책은 실패를 낙오의 표시로 보지 않는다.
실패를 후회로 묶어 두지 말고 다음 시도를 위한 참고자료로 남기라는 태도다. 후회도 마찬가지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감정은 아니지만, 후회라는 감정에는 분명히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후회가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선택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 책이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은 “콤플렉스를 숨길 게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다. 우리는 대개 약점을 감추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콤플렉스가 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힌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들이 스치듯 지나치는 마이너한 취향과 서브컬처를 정면으로 끌어와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다.
취향을 밖으로 꺼내 보니, 생각보다 같은 결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사이에서 이야기와 공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결국 메시지는 분명하다. 약점은 숨길 대상이 아니라 나만의 무늬가 되고, 마이너함은 혼자만의 고립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게 하는 신호가 된다.
정체성에 대해서도 책은 현실적이다. 내가 좋아하고 추천하는 작품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는 것.
매일의 작은 선택과 반복이 나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저자가 학생 때 늘 마시던 마인틴듀 음료 때문에 “그 음료 마시는 애”로 기억되었다는 일화는 사소해 보이지만 많은 걸 말해 준다. 반복되는 습관 하나가 인식의 지점이 되고, 그 인식이 쌓여 아이덴티티가 된다.
이 책이 내게 가장 크게 바꿔 준 건 ‘시작하는 법’이었다. 우리는 대개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멈추고, 완벽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는 조금 엉성해도 괜찮다고, 대신 자주·꾸준히 해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보니 의외로 반응이 더 잘 올라왔고, 미완에서 오는 불안은 다음 회차에서 보완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여유를 건네라 한다. 완벽을 전제로 삼는 사람에게 이 문장은 큰 위로로 다가온다. 요컨대 완벽함과 완성도는 출발의 조건이 아니라, 불완전한 시작을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보상이다.
그리고 저자는 ‘인풋’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룬다.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재료라는 뜻이다. 멋진 한 문장도, 기발한 한 장의 이미지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모아야 한다. 영화 한 편, 시 몇 편, 아카이브에 스크랩한 자료 몇 장, 해외 SNS에서 건져 올린 밈 하나. 양이 질을 압도한다는 다소 도발적인 말도 나온다. 허술한 조각이라도 많이 모이면 어느 순간 독특한 질감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표현의 문제도 피하지 않는다. 요즘처럼 모두가 모두의 말을 감시하는 분위기에서, 누군가에게 단 한 명의 불편함도 주지 않으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책은 여기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거나 폭력을 부추기는 표현은 당연히 안 되지만, “무조건 무해”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누구도 중요한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저자는 창작을 냉정하게 본다. 우리는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미가 ‘좋아요’를, 도발이 ‘조회수’를, 유익함이 ‘저장’을, 공감이 ‘공유’를, 통일감이 ‘팔로우’를 부른다. 하나의 게시물을 만들 때 이 신호 중 최소 2개는 만족하는 글을 설계하라고 조언한다.
캔슬 컬처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오래 남았는데,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쉽게 돌을 드는가. 나도 모르게 분노를 정의로 착각한 적이 많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온라인 공간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희석시키고, 대신 가학적인 만족만 남기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 한 사람의 삶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사람은 잘못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그런데 요즘의 분위기는 그 기회를 아예 없애 버린다. 반성할 틈도 주지 않고 밟아 버리는 일들이 반복된다. 처벌은 법의 몫이고, 반성은 개인의 몫이라면, 창작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물음을 우리 앞에 숙제처럼 남겨 둔다.
플랫폼의 무정함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인스타 계정이 블라인드 처리되어 노출이 끊기자,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차단이 풀린 뒤에는 안도감이 몰려왔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의 고통도 지금의 기쁨도 내 힘으로 바꾼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무너질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무서울 것도, 더 움츠릴 것도 없다는 사실도 함께 배운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니, 더 자주 쌓고 더 많이 시도해보자. 이 책이 말하는 진짜 용기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쌓는 사람에게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책이 끝내 강조하는 건 ‘대체 불가능함’이다. 남의 성공 공식을 흉내 내는 동안 우리는 금방 교체 가능한 부품이 된다. 저자는 자기만의 결, 자기가 가장 잘하는 감각으로 돌아오자 관객이 다시 모였다고 말한다. 창작에는 남들과 달라지려는 고통이 꼭 필요하고, 그 고통을 피하면 작품은 표면만 맴돌다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도용을 봐도 크게 화내지 않는다고 한다. 흉내만 내서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협업과 디렉팅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모든 걸 직접 할 필요는 없다.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제자리로 데려오고, 전체의 리듬을 맞춰 가는 능력. 프리랜서에게는 바로 그 역량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금세 무뎌지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늘 새로운 자극을 찾고, 그 자극을 좇아 또 도전한다. 이 과정에서 인정과 돈에 대한 솔직함도 숨기지 않는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죄책감으로 덮어두지 말고, 에너지로 바꾸어 설계를 고도화하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불안은 피할 대상이 아니라 기회다. 엉망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나누어 생활 방식을 고쳐 나가야 한다. 그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정말로 사람이 달라진다.
결국 『푸싱 더 바운더리』는 조금씩이라도, 멈추지 않고 가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다. 실패는 자책거리가 아니라 다음 시도를 위한 자료가 되고, 후회는 나쁜 기억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힌트가 된다. 숨기던 콤플렉스는 나만의 무늬가 되고, 엉성한 시작은 리듬을 만드는 추진력이 된다. 만드는 사람이라면 ‘재미·유익함·공감’ 같은 분명한 목표를 미리 정해 놓고 작업해야 하고, 여론의 파도나 캔슬 충동 앞에서도 선택의 주도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플랫폼의 정책 하나에 성과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그래서 더 자주 시작하고 더 많이 시험해 보는 쪽을 택한다. 남의 공식을 따라 하기보다 내 결을 세우고, 필요하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불러 함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인정과 보상은 목표가 아니라 따라오는 결과다. 오늘 할 일은 단순하다. 질문 하나를 정하고, 15~25분짜리 작은 실험을 해 보고, 짧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 작은 차이가 쌓이면, 어느 순간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분명히 달라져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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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드앙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돈이 다가 아니란 말은 돈을 벌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돈이 없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추하게 보일 뿐이다. 이미 도달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이 하는 말은 신빙성에서부터 큰 차이가 나니까.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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