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
이정우 지음 / 투래빗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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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가보면 어떤 그림 앞에는 사람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서라도 보려고 한다.

예전의 나는 그 이유를 단순히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니까”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정작 내가 질문했어야 했던 것은 ‘왜 그 그림이 처음부터 유명해졌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이유였다.

이 책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을 읽고 나니, 그 줄의 길이는 명성의 부산물이 아니라 철저한 기획과 설득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작가의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대를 읽는 눈, 자신을 어떻게 보이게 할지에 대한 전략, 그리고 관객을 납득시키는 명분이 모여 이름값을 만든다.

이정우의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은 바로 그 지점을, 미술사의 장면들을 통해 한 편의 브랜드 연대기처럼 보여준다.

그 첫 페이지를 연 인물은 바로 렘브란트였다. 그는 남들보다 훨씬 짧은 도제 과정을 거치고 스무 살 무렵 과감히 공방을 열었다. 당시 초상화의 유행은 보석과 비단, 서재 소품으로 신분을 과시하는 방식이었지만, 렘브란트는 장식을 덜어내고 인물의 눈빛과 표정을 섬세하게 담았다. 외교관 하위헌스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그 당시 고민하던 마음이 눈에 잘 드러난다”고 적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그는 스물일곱에 서명을 관습적 성(姓) 표기 대신 이름 하나로 밀어붙이며 ‘Rembrandt’에 묵음 d를 얹었다. 철자 하나가 로고가 되었고, 로고는 곧 브랜드가 되었다. 무엇보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상징하는 그의 연출력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그 그림은 단체 기념사진처럼 모두를 한 줄로 세워 균등하게 보이게 하던 관례를 깨고, 실제 해부 수업 장면을 무대처럼 구성한다. 시신이 중앙에 놓이고, 어떤 이는 책을 펼쳐 비교하고, 또 다른 이는 몸을 기울여 손가락 근육을 들여다본다. 당시 관례대로라면 복부부터 해부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렘브란트는 ‘도둑의 손’이라는 사연에 맞춰 손에서 시작하는 장면을 택한다. 죄와 지식의 긴장이 한 지점에 모이도록 시선을 설계한 셈이다. 관객은 초상을 ‘얼굴의 기록’이 아니라 ‘사건의 한 장면’으로 읽기 시작한다. 바로 이 대목이 렘브란트가 초상화에 스토리텔링을 본격적으로 주입했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

물론 그의 선택이 언제나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야경, 1642》에서 그는 민병대를 이상화하지 않고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며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현실의 장면으로 보여줬다. 후원자들은 위엄 있는 집단 초상을 기대했지만 화면에 담긴 것은 권위의 허술함이었다. 결국 주문이 줄었고, 가족과 재산을 잃는 시련이 겹친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꾸준히 그렸다. 말년의 자화상들에서는 비싼 직물의 광택도 화려한 소품도 사라지고, 거친 붓질과 꺼지지 않는 눈빛만이 남는다. 팔릴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면서도 자화상을 계속 그렸다는 사실은 그의 열정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말해 준다. 그는 자화상을 홍보가 아니라 탐구의 장으로 삼았고,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이 남았는가”를 끈질기게 묻는 그 진정성이 훗날 낭만주의의 재발견과 오늘의 경매가까지 이어진 동력이라는 해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미지를 언어처럼 쓰는 법을 아는 화가였다. 어린 시절 얼굴 신경 마비로 말하기가 어려웠던 그는 “그림이 나의 목소리였다”고 회상한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에서 그는 칼을 들어 올리는 형제들의 결연함과 함께, 화면 한쪽에 주저앉은 여성들을 배치해 전쟁의 슬픔을 동시에 보여준다. 충성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면서도, 그 이면의 상처를 지우지 않는 구성이 이미지의 설득력을 높인다. 또한, 《마라의 죽음》에서는 현장의 피, 흩어진 서류, 지도를 과감히 비워내고 욕조의 마라만 남겨 신성한 침묵이 감돌게 했다. 덜어냄으로 격을 높이고, 정적 속에서 메시지를 크게 만든다.

나폴레옹과 함께한 작업에서는 ‘황제 마케팅’의 교과서가 펼쳐진다. 알프스를 넘는 장면에서 원래 타고 넘었던 노새는 역동적인 명마로 바뀌고, 거센 바람결은 망토를 끌어올려 장군의 손짓을 부각한다.

바위에는 ‘BONAPARTE’를 크게 새기고, 아래에 한니발과 카롤루스 대제의 이름을 더 낮고 투박하게 새겨 비교의 프레임을 만든다. 심지어 실제로 불참했던 나폴레옹의 어머니를 《대관식》의 관중석에 앉혀 ‘기억되길 바라는 역사’를 구성한다. 사실 여부를 넘어 이미지가 현실을 재단하는 힘—다비드는 권력이 원하는 ‘명분을 시각화’했다.

마르셀 뒤샹은 질문의 방향을 바꿔 버렸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가?”라고. 소변기에 ‘R. Mutt’라는 가명을 적어 출품한 《샘》은 선택과 맥락이 오브제를 예술로 전환시킬 수 있음을 천연덕스럽게 증명한다. 유치해 보이는 언어유희 《L.H.O.O.Q》, 여장한 분신 ‘로즈 셀라비’, 가짜 향수 《아름다운 숨결》에 이르기까지 그는 공산품, 정체성, 말장난을 섞어 ‘브랜드가 욕망을 어떻게 설계하는가’를 연출했다. 그가 깨뜨린 것은 재료 선택의 규범만이 아니다. 감상법 자체가 바뀐다. “이게 예술이냐”라는 불쾌감, 당혹, 웃음을 포함한 모든 반응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뱅크시가 경매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파쇄했을 때, 우리는 그 장난 속에서 치밀한 기획과 미디어를 다루는 솜씨를 읽을 수 있다. 뒤샹은 여기에 더해, 방식으로 놀라게 하는 것을 넘어서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근본 질문 자체를 흔들며 판을 바꿨다.

이 책은 과거와 동시대를 한 줄로 엮어 보여준다. 렘브란트가 서명 하나로 브랜드를 만들었다면, 반 고흐는 동생 테오와의 편지를 통해 작업의 서사를 축적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꽃 캐릭터를 가장 ‘핫한’ 셀럽들과 결합시켜 작품에 동시대성을 주입했고,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파괴하는 이벤트로 악동 캐릭터를 고도화했다. 표면적으로는 디테일, 감동, 트렌드, 스캔들처럼 전략이 제각각이지만, 그 안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철저한 분석, 분명한 포지셔닝, 관객을 납득시키는 명분, 그리고 그 명분을 반복 가능한 형식으로 축적하는 꾸준함이다. 책이 다룬 열한 명의 예술가는 각기 다른 시대와 조건 속에서 학자, 컬렉터, 대중을 동시에 설득해 왔다. 그 설득의 언어가 바로 브랜딩과 스토리텔링이다.

이 책을 읽고 전시장을 찾는다면, 먼저 이렇게 물어보자.

이 작가는 지금 내게 무엇을 보게 하려는가?

왜 꼭 이 방식이어야 했는가? 그 선택을 지탱하는 명분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렘브란트의 화면에서는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드는 시선의 배치가 보이고, 다비드의 빈 배경은 <마라의 죽음>에서 처럼, 피와 소품을 과감히 지워 마라의 얼굴·손·편지에 시선을 고정시켜 화면을 성화처럼 엄숙하게 만든다. 이것은 정치적 사건을 숭고한 희생으로 ‘기억되게’ 편집하는 연출인 셈이다. 뒤샹의 ‘장난’은 단순한 파격이 아니라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근본 질문을 우리에게 되돌리는 정확한 기획으로 읽힌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우리들의 일상에도 옮겨오게 된다.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 캡션 한 줄, 이력서의 문장 하나에도 묻는다.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것인가. 어떤 기호와 톤을 반복해 나의 이름값을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다.

결국 이 책이 건네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명작은 우연히 탄생하지 않는다. 재능 위에 기획이 있고, 기획을 떠받치는 명분이 있으며 그 명분을 관객의 언어로 번역하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예술은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보게 만드는 방식’이고, 줄을 서게 만드는 힘은 그 방식을 얼마나 일관되고 설득력 있게 축적했는가에서 나온다. 피카소의 말처럼 “평범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면, 우리가 훔쳐야 할 것은 형식이 아니라 원리다. 시대를 읽는 눈, 포지셔닝의 결단, 덜어냄과 더함의 정확도, 그리고 무엇보다 명분. 이 책은 그 원리를 이야기로 보여주며 다음 전시장 앞에서 우리가 조금 더 오래 멈춰 설 이유를 만들어 준다.


'투래빗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렘브란트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야경,1642>은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정점에 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 그의 브랜딩에 균열을 가져온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원래 제목은 <프란스 바닝 코크와 필럼 판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로, 민병대의 모습을 그린 단체 초상화입니다.
당시 민병대를 그리는 건 전통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도시를 지키는 민병대원은 대부분 지역 내 부유한 유력 인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전쟁 같은 국가적 위기가 없었지만, 민병대의 권위는 여전히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민병대는 당시 가장 강력한 입지의 예술가, 렘브란트에게 단체 초상화를 의뢰하게 됩니다. 렘브란트는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로 단체 초상화를 성공시킨 전례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사람들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렘브란트 역시 이 그림에만 무려 1년 반이라는 시간을 공을 들였지만, 사람들이 예상한 결과물은 아니었습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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