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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영화 속 기후환경 빼먹기
루카 지음 / 글씨앗 / 2026년 1월
평점 :

빙하가 무너지고, 해류가 멈추고, 동물과 식물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장면은
더 이상 영화 속 상상만으로 치부하기 어려워졌다.
기록적인 폭염과 한파,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이변,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의 출현은
이미 현실의 뉴스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묻기 시작한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아온 재난은 정말 허구일까, 아니면 가까운 미래의 예고편일까.
루카의 『재난영화 속 기후환경』은 바로 이 불안한 질문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재난 영화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기후과학과 생태계의 질서를 차근차근 짚어 주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재난 영화는 왜 늘 지구의 끝을 이야기할까?
거대한 해일이 도시를 삼키고, 빙하가 무너지고, 인간은 얼어붙은 세상에서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장면들을 출발점 삼아 영화 속 재난이 어디까지 상상이고 어디부터 현실과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영화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장면 뒤에 숨어 있는 기후 변화와 생태계의 변화 과정과 과학적 배경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책의 첫 부분에서는 영화 〈투모로우〉를 통해 기후 재앙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영화에서는 북대서양 해류가 멈추면서 지구가 순식간에 빙하기로 들어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영화처럼 단 며칠 사이에 지구 전체가 얼어붙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그 배경이 되는 과학적 현상, 즉 폴라 볼텍스와 북대서양 해류 순환 같은 실제 기후 시스템을 설명하며 우리가 이미 극단적인 기상이변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수십 년 사이 극한 한파와 폭염이 증가하고 있으며, 해류 순환 역시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설명은 영화적 상상을 현실의 문제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이 책은 재난 영화를 과장된 허구로만 보지 않게 만든다.
오히려 영화가 현실의 경고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지구 역사 속 빙하기와 대멸종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구는 이미 여러 차례 빙하기와 생물 대멸종을 겪었고, 과학자들은 지금 이 시대를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작점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그 위기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인간은 지구 전체 생물량에서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인간이 길러 온 가축까지 포함하면 지구 동물 생물량의 대부분을 점유하게 된다. 한 종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때 생태계의 균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책의 중반부에서는 자연이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늑대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인간 사회 가까이 내려오는 이유도 결국 인간이 서식지를 파괴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자연은 인간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반응할 뿐이라는 메시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부분에서 내가 가장 깊이 읽은 대목은 범고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범고래를 오래전부터 매우 똑똑하고 지능이 높은 동물이라고 생각해 왔다.
실제로 범고래는 돌고래과에 속하는 해양 포유류로, 매우 높은 지능과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진 동물로 알려져 있다. 무리를 이루어 협력 사냥을 하며 지역과 집단에 따라 서로 다른 사냥 방식과 의사소통 체계를 갖는 독특한 문화를 지닌 종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그래서 범고래를 떠올리면 강력한 포식자, 때로는 먹이를 몰아붙이고 괴롭히는 잔혹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소개되는 범고래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인상과는 조금 달랐다.
죽은 새끼를 며칠 동안 물 위로 떠받치고 다니며 쉽게 놓지 못하는 행동, 가족 단위의 유대 속에서 드러나는 애도의 장면은 범고래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다.
단순히 무서운 포식자가 아니라, 높은 지능과 함께 깊은 유대와 감정까지 지닌 존재일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면서도 묘한 감동을 주었다. 강한 존재의 또 다른 얼굴을 본 느낌이었다.
또 하나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사람의 신경계를 교란해 극단적인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 〈해프닝〉처럼 식물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설정은 처음에는 황당한 상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은 실제 자연 속에도 강력한 독성을 지닌 식물이 존재하며, 일부는 심장과 신경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투구꽃에 들어 있는 아코니틴, 자살 나무로 불리는 식물의 치명적인 독성 물질, 환각과 방향 감각 상실을 유발하는 성분들에 대한 대목은 읽는 내내 서늘한 기분을 남겼다.
평소 식물을 조용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여겼던 나에게, 식물 역시 살아남기 위해 정교하고 강력한 방어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자살을 유발할 정도로 위험한 식물 이야기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지를 돌아보게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은 자연이 인간에게 복수한다는 말이 사실은 충분히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자연은 인간을 향해 분노를 품는 것이 아니라, 훼손된 환경과 깨진 균형에 따라 반응할 뿐이다. 숲이 사라지고 서식지가 잘게 끊기면 야생동물은 먹이를 찾아 인간의 공간 가까이로 밀려오고, 기후 변화가 심해질수록 생태계의 질서도 함께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결국 인간의 삶을 다시 위협하는 재난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영화 속 장면과 연결해 보여주면서, 오늘의 기후 위기가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현실임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재난영화 속 기후환경』은 재난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물론이고,
환경과 과학을 어렵게 느끼는 독자에게도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영화 속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후 변화와 생태계 붕괴, 인간의 책임과 선택이라는 더 큰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영화는 이미 끝났지만 현실의 지구는 아직 결말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재난을 구경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어떤 미래를 써 내려갈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으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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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마루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꼭 그렇지도 않아. 식물들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식물을 몰아내는 전략을 쓰기도 하거든. 앞에서 말한 화학적 방어를 곤충이나 미생물이 아니라 다른 식물을 견제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걸 타감작용Allelopathy이라고 불러. 영어 단어를 풀어보면 접두어 ‘alle-‘는 ‘서로’를, 접미사 ‘-patchy’는 ‘영향,작용‘을 뜻하지. 따라서 타감작용이란 말은 한 생물이 분비한 물질이 다른 생물의 발아, 생장, 생존, 생식 등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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