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만난 하나님 - 한국교회에서 여성의 하나님을 말하다
강호숙 지음 / 넥서스CROSS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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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만난 하나님-한국교회에서 여성의 하나님을 말하다> 강호숙.

 

합동측 신학교에서 여성()학을 다년간 가르쳐 온 강호숙 교수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토대로 책을 냈다. 그동안 자신이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일들로부터 그동안 남성 중심적 혹은 가부장적으로 읽혀왔던 성경과 교회의 뒤쳐진 성윤리와 기독 여성의 일상과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냈다. 워낙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고, 남성 위주의 시각에 젖어있는 많은 교인들을 독자로 삼는 책이다 보니 쉽고,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상당수의 교회들이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동성애 반대, 혼전순결 말고는 성에 대해서 잘 가르치지 않는 상황이기에 이 책의 내용들은 어느 정도 유익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여성 목회자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사역들이나, 성폭력이나, 추행과 같은 일을 당했을 때, 신고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나, 이와 관련하여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은 많이 공감할 수 있었고, 남성 목회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저자가 주장한 부분들에 대해서 동의가 되고, 나름 필요한 내용들이라 생각을 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그것은 저자가 여성학을 신학적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했지만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책에서 구분한 남성과 여성의 특징들을 받아들인다든지, 사사 드보라를 두고 돌봄과 사랑이라는 모성적 리더십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였다고 언급한 부분은 잘 납득이 되질 않았다. 여성학이 우리에게 준 큰 유익이 여성을 그동안 주어져 있던 특정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한 것이고, 사람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일 텐데, 오히려 그러한 시각을 둔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쓰인 배경이 되는 교회들이나, 학교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알기에, 또한 그러한 분위기에서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하고, 그것을 위하여 여성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믿기에, 이 책이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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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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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책을 읽는 데 무려 두 달이나 걸렸다. 정말 헉헉 했다. 책이 어렵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넘어가질 않았다. 몇 번은 오가며 반복해서 본 것 같은데, 여전히 잘 넘어가질 않았다. 대강이라도 정리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냥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몇 개 추려보는 정도로 해보았다.

 

1. “제주의 관점-페미니즘은 수많은 타자들의 다른 목소리중 하나이다.”

-> 이 책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제주도민이 육지에 있는 도시들에 가는 것이 쉽지 않고, 그중에서도 대전이 특히 더하다는 건 생각도 못해봤고, 저자의 질문에 생각해보려 해도 짐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페미니즘이 많은 사람에게 그렇다. 나한테도 그랬고. 여성주의를 조금씩 배우면 배울수록 나란 사람은 이웃사랑과는 정말 거리가 먼 사람이란 걸 확인이 된다.

 

2. “여성주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더욱이 편안할 수는 없다. 다른 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여성주의뿐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 페미니즘은 배우면서 확 달라진 게 있는데, 생활이 불편해 졌다는 것. 하다못해 함께 하는 여자 청년들에게 인사도 버벅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걸핏하면 외모 칭찬을 했는데, 그걸 빼고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나도 모르게 불쑥 너 많이 예뻐졌다.’ 혹은 너 많이 살 빠졌다.’ 와 같은 말이 툭툭 튀어나와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3. “이처럼 질문은 묻는 자와 답하는 자 사이의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왜 그렇게 취업하려고 노력하니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 내가 이 부분을 읽고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신학대학원 다닐 때, 여자 전도사님들을 만날 때면 가끔 이렇게 물었는데....“전도사님은 왜 신학대학원에 왔어요?” 그럴 때면 항상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전도사님이 여기에 온 이유하고 같아요.” .

 

4.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 불편해도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려고 애쓰다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바로 옆에 있는 이웃조차 억압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아는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돌이켜서 영생을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5.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사유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 며칠 사이 미쓰 박논쟁이 치열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는데, 페미니즘 관련하여 논쟁이 일 때면, 나름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 심지어 지식인들조차 자신의 경험, 지식을 기준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어김없이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낼 때가 많은데, 문제는 누군가 그런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그들은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쓸데없이 논쟁이 확대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페미니즘은 지배 이념이 아니고, 대중매체도 그것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6. “스위트 홈과 자녀 양육이 소중하고 성스러운 일이라면 그것은 책임이라기보다 권리일 것이고, 남성들도 앞 다투어 참가해야 한다. 그러나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은 노동 시장에서 남성들이 듣는 가장 모욕적이고 비참한 욕이다.”

-> 많은 일들이 성별화 되어 있는데, 가사와 돌봄의 일이 더욱 그리하다. 나 역시 페미니즘을 배워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아내의 영역에 침범? 하고 있는데, 하지 않던 일을 하나 시작하는 것만 해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본다. 난 가정 일이 정말 신성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보니 내 생각과 나의 일상 사이에 괴리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7. “...‘페미니즘이 옳긴 하지만, 시기상조다 라거나,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 교회에서 페미니즘 모임을 시작한 이후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참 신기하다. 저자가 들은 얘기들을 거의 비슷하게 들었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런 모임은 오히려 공동체의 분위기를 해치거나,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얘기....내가 교회에서 수많은 성경공부, 여타 모임을 인도해보았는데,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성경을 인용하지 않아서 그런건가....

 

8. “...여성에게는 걸레라는 낙인과 추방이 기다린다. 남성이 더럽다고 간주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몸을 씻지 않아서거나 돈이나 권력 투쟁에서의 부정부패 때문이지, 섹스로 인한 규정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대개 성적인 측면이 연상된다.”

-> 처음에 이 부분을 읽고서는 헛웃음이 나왔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건 참 심각한 문제였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이 생각보다 깊게, 짙게 이 사회와 남자들에게 배어있다는 걸 적나라케 보여주는 고정관념이었다.

 

9. “‘남자는 참을 수 없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참는 남성은...폭발 직전일 것이다.”

-> 이런 얘기는 교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던가? 나도 이런 비슷한 얘기를 예전에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저자의 말처럼 여자들은 밤거리나 여행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등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억압해야 할 것이다.

 

10. “나의 변태는 곧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와 나는 연속선상의 한 몸인데, 어느 지점에서 그 몸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

->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공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내가 사는 거의 모든 삶의 현장에 페미니즘이 적용되지 않을 곳은 없었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어보자고 했던가? 지금처럼 페미니즘이 유행했던 적도 없었고, 앞으로 다시 이런 순간이 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 한 해 나름 시간 쪼개서 배우고, 실천해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도 이만큼 유익한 공부가 흔치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만큼 생각을 급진적으로 뒤흔드는 텍스트가 많지 않고, 생활 전반을 바꾸라고 도전하는 공부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찾자면 성경, 기독교가 내 인생에 그런 역할을 했는데, 페미니즘이 서른 중반을 넘어 마흔을 향해 가는 나를 향해 변화하라고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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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뒷조사 복음서 뒷조사
김영화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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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진 않더라도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마태복음 개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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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 삶과 죽음에 관한 김영봉의 설교 묵상
김영봉 지음 / IVP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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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피할 수 있는 사실인데, 장례식장에 가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 그곳에서는 유족들이건, 그들을 위로하러 가는 조문객들이건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더 이상 없는 고인에 대한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이 상황은 준비한다고 해서 준비가 되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를 읽어 보니 잘 준비된 장례 설교 한 편이 누구에게나 당혹스러운 이 상황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고, 서로가 위로를 나눌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사귐의 기도>,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등의 저서로 알려진 김영봉 목사의 장례 설교 모음집이다. 총 열 여섯 편의 장례 설교로 이루어져 있는데, 설교 한 편 한 편에 고인에 대한 사랑과 예의가, 유족들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특히 이 설교들은 평생 신실하게 살다 죽은 성도의 죽음으로부터 자살한 성도, 불신자 가족, 갑작스런 사고사까지....저자가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경험한 다양한 죽음 앞에서 저자가 한 교회의 목사로서 어떻게 최선을 다하고 섬겼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는 나이기에 이 설교들은 무척이나 유익하고, 감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수백 명의 성도들을 목회하면서 이토록 한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해석해 내는 저자의 헌신과 사랑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러한 설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평소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어쩌면 평생에 한 번일 수도 있는 모든 성도와의 개별적인 만남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너무나 바빠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치다 보니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잠간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 시대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목회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잠간 멈추어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한 편, 한 편 천천히 읽으려고 애를 썼고, 우리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나라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열여섯 편의 설교들 앞과 뒤로 죽음에 대한 저자의 묵상과 장례를 준비하는 방법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들도 목회자들에게 도전도 되겠지만,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직 읽어 보지 못한 분들, 특히 목회자가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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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 죄, 참회, 구원에 관하여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지음, 정다운 옮김 / 비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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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비아.

 

전도사 시절, , 고등부 아이들에게 지옥에 관한 설교를 했던 적이 있었다. 목회자가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고, 당시엔 특히나 지옥이 있는 것을 정말 믿는 것처럼 사역하고, 설교하라는 가르침에 참 많은 감명을 받고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지금도 동의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마침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도 하고, 열심히 준비도 했다. 나름 애써 준비한 설교를 아이들에게 하는 순간 내 마음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느낌은 너무 생생해서 잘 잊히지도 않는다. 내가 앞에서 말하면서도 내가 정말로 그렇게 믿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웠고, 듣는 아이들의 반응은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표정이기 보다는 차라리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모습과 가까웠다.

 

내가 지옥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 듣는 학생들에게 어떤 깊은 인상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말하는 나에게 조차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던 건데, 왜 그랬던 것일까? 아마도 지옥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너무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삶에는 엄연히 지옥을 상상케 하는 현실들이 존재하는데, 그러한 현실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했다. 비참한 현실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엇이 그렇게 비참한 삶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이다. 진짜 문제는 현실에 대한 무지가 설교 한 편을 망치는 것에서 그치는 것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알지 못하고, 그러한 삶을 강제하게 하는 죄의 악함이 얼마나 강한지를 똑바로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을 통하여 기독교가 말하는 어떠한 선한 영향력도 행사하기 힘들어진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 참회, 구원에 관하여>의 저자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는 나와 같은 수많은 설교자들이나 크리스천들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에 대하여 합당한 문제제기와 답을 한다.

 

죄와 구원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내 관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주류 교회에서 이 단어를 말하기 어렵게 된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고, 둘째는 이 단어가 사라졌을 때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저자는 죄와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주제에 대해서, 특히 죄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하면서 혹은 어려워지면서 지금의 상태, 즉 구원에 대해 말해도 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진단한다. 죄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니 죄로 인한 타락, 죽음에 대해서 말할 수 없고, 죽음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은총, 참회, 구원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기독교의 언어를 다른 종교들의 언어와 혼동하게 한 종교의 다원화(세계화), 모든 권위를 붕괴시킨 포스트모더니즘, 죄의 의미를 퇴색시킨 세속주의가 그렇다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기독교의 언어를 퇴색시킨 이러한 원인들을 적대시하고 물리쳐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러한 원인들이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더욱 다른 종교의 언어들을 익힐 필요가 있고, 죄의 경험과 그 여파를 생생하게 전해야만 한다. 또한 죄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이 시대에 성경이 말하는 죄의 의미를 되찾고,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류 기독교는 죄를 법률적인 의미 범법행위, 의학적인 의미 질병 정도로 축소하는 현상을 벗어나 성경,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참된 의 의미를 되찾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를 통하여 기독교인들은 생명을 갈급해 하는 사람들에게 은총과 구원이라는 언어를 찾아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죄는 무엇인가? 죄는 과녁을 빗나간 화살과 같아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반역하는 행위이다. 또한 죄는 하나님, 그리고 다른 사람과 깨어진 관계에 머무르기를 선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죄는 결국엔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기독교는 이렇듯 생명의 원천에서 분리시키는 모든 행위를 죄라 불러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죄는 단순히 성적인 범죄나, 주일 성수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돈을 벌고, 소비하고, 투자하는 방식에 있다.

이렇게 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우리와 이웃의 관계를 파괴하는 모든 행위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참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참회는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참회는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자리를 받아들이고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돕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참회가 관계를 회복한다는 결단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지적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누군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그 영향이 결코 개인, 스스로에게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 기독교회들은 죄를 내면화 시키면서 참회 역시 양심을 좀 편하게 만드는 정도로 만들었다. 설교자와 청중들이 서로 죄와 참회에 대해서 축소하기를 합의하면서 ’, ‘참회라는 언어 자체에 힘을 잃어버리는 수준까지 떨어지게 된 것이다. 죄를 말할 수 없는 교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미 우리가 목격하는 바와 같이 사람들은 있지만 서로가 함께 하지 않는, 그래서 하나님과도 함께 할 수 없는 무리들만 존재한다. 죄를 말하지 않으니 관계를 회복케 하는 참회도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 중에, 그래도 모범이 될 만한 몇 가지 예를 보여준다. 그것은 세이비어 교회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었던 진실과 화해 위원회. 그들이 어렵지만 괴로운 죄를 말하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한다. 이유는 진리가 그들을 자유하게 하고, 우리 사회에 무너진 관계들을 회복해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을 찾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한다.

 

우리는 그 회복이 우리 너머에서 우리에게로 찾아온 일임을 알고 있다. 회복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적으로 참여해야 하지만, 우리의 참여만으로는 이 사건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때로 너무나 놀라운 이 회복을 우리는 은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진정한 참회는... 하나님과 우리의, 또 우리 서로 간의 연합을 회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죄에 대해서 말하는 것,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 모두 기독교 주류, 보수적인 교회들에서는 그 가치를 애써 축소하고 있거나, 행위 구원으로 몰아가기까지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우리의 신앙에서 희미해지자, 우리는 신앙 자체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는 이러한 위기에 처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복음의 의미를 조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희망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삶의 방식 자체가 죄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내 죄로 인하여 깨어진 관계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을지, 적게 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아주 오래된 논쟁이 있다. 적게 말하든, 많이 말하든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바로 그 점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너무 적게 말하는 교회든, 많이 말하는 교회든 우리는 은혜, 구원이라는 놀라운 언어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죄를 바로 알고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교회의 언어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저자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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