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 역사적 자료에 기초한 초대교회 모습 1세기 기독교 시리즈 1
로버트 뱅크스 지음, 신현기 옮김 / IVP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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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자료에 기초한 초대교회 모습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는 깜짝 놀랄 정도로 책이 얇다. ‘역사적 자료에 기초한이란 말이 주는 뉘앙스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습이 왜 이렇고, 어떤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본문에도 없고 심지어 어떤 참고자료도 붙여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불친절한 책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짧지만 소책자에 가까운 이 책에 담긴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일상에서 분리되지 않은 모습으로 예배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는 집에서, 먹고 마시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상과 종교적인 행위가 구분이 되기 힘들 정도로 밀착되어 있었다는 것을 푸블리우스라는 한 사람이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경험한 짧지만 인상적인 예배 이야기 한 편을 통해서 보여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워낙 많은 사람들의 평을 읽었고, 대부분이 칭찬 일색이었기 때문에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야기가 워낙 짧은데다 어려울 것도 없고 지극히 평범해서 금방 읽고 조금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게 뭐지? 솔직히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1세기 교회의 예배 이야기>라는 제목이 너무 거창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내가 왜 그렇게 이 책을 평범하게 읽었고, 조금은 실망스럽게 읽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선은 푸블리우스가 경험한 예배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어쩌면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 있고, 기도를 하고, 찬송도 하고, 2부 순서처럼 교제의 시간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내가 초대 받아 가서 함께 즐겁게 교제하는 것도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예배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고, 일상도 크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크게 색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고, 새로운 통찰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평범한 예배와 일상의 친교의 모습이 합쳐지는 것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집에서 가족들과 예배하거나, 가끔 교회의 소그룹 멤버들이 예배하는 경우들이 있지만, 그러한 모임들은 엄연히 주일 11시 오전 예배’로 대표되는 소위 '공예배'에 그 중요성을 비교하기 어렵다. 삶이 예배이고, 가정교회를 추구하고 표방하는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분명 교회 건물에 모여서 목사를 스피커로 두고 다른 여러 격식을 차린 예배 모임이야 말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그야말로 성수주일의 핵심이 아니었던가? 그만큼 예배의 자리는 일상과 특별하게 달랐고, 더욱 거룩해야 하는 자리였다. 예배를 목숨 걸고지켰던 만큼 그러한 예배의 모임은 점점 일상의 모습과 달라졌고, ‘평범할 수 없는 모임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점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명시적으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삶에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일상을 예배화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어떤 친교 모임에서 환대를 받고, 서로 음식을 먹고 마시는 중에 하나님을 높이고, 그러한 중에 서로에 대한 끈끈한 책임감을 엿보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푸블리우스가 경험하는 예배와 지금 내가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있는 예배의 자리와 일상의 자리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다르다. 예배의 자리도 지극히 개인화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데 커다란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푸블리우스가 경험한 예배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1년에 한 번, 혹은 두 번에 걸쳐 전도 집회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많은 교회들의 예배가 그들이 부르짖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과 얼마나 배치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몇 번식 곱씹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지만, 반복해서 이 책을 읽으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예배와 나와 교회의 예배를 비교하며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책이 얇아 다행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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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양장) IVP 모던 클래식스 3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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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까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IVP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IVP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에서 세 번째 책이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기독교 사회참여>의 고전이라 알려져 있는 이 책은 시편의 매력적인 한 구절을 제목으로 쓰고 있을 뿐 아니라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가 웃으며 서로를 안고 있는 사진으로 표지를 디자인했다. 모던클래식에 들어갈 정도의 책이라는 점, 그리고 제목과 멋있는 디자인, 그리고 평판.... 많은 점들이 책을 집어 읽고 싶게끔 만들었다.

 

이 책은 저자가 1981년 네덜란드의 자유대학에서 열린 카이퍼 연속 강좌를 했던 내용들을 다듬어 출판한 것으로, 개혁주의 전통에 기독교인들의 사회 참여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열정적으로 강변한다.

 

1장은 개혁주의 노선에는 초기부터 세계 형성적 기독교의 면을 강조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세계 형성적이란 신자들이 내세 지향적인 신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세속 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개혁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2장은 근대 사회가 폭력을 행사하여 얻은 자유위에 세워져 있고, 지금도 일부 권력자들이 합법적인 폭력과 억압을 통해 대다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밝힌다.

 

3장은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창조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현실 세계를 변혁하고자 개혁신학과 해방신학의 통합적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더욱 큰 관점이란 다름 아닌 샬롬의 관점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모든 관계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되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현실을 볼 때 너무나 큰 문제들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4장에서 6장까지를 통해 불평등을 심각하게 보여주는 빈곤의 문제’, 세계를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게 하는 민족주의의 문제’, 절대 다수의 시민들을 아름다움에서 격리시켜버린 도시의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7장과 8장에서 예배와 학문의 주제를 통해 지금까지 개신교 진영의 예배와 학문이 교회, 성도들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반성한다. 이어서 담대한 도전을 하는데, 선포 중심의 예배를 좀 더 카톨릭화 해야 한다는 것과 실천 지향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현재의 선포 중심의 예배가 성례전적인 면을 많이 잃어버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소망마저 앗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과 이웃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은 학문들은 교회가 스스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샬롬의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격리시킨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책에 대한 칭찬이 워낙 대단했고, 앞서 말한 것처럼 제목과 표지가 매력적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봤으나, 기대만큼 만족스럽진 않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저자의 주장이 최근 성서학자들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주 읽고 접한 주제이다 보니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기독교 철학자로서 빈곤과 민족주의, 도시의 문제가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 즉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있다는 분석을 잘 했지만 다른 사회학 책들이 보여주는 치밀한 분석이나 구체적인 예들을 다양하게 제시하진 않았다. 물론 저자는 처음부터 책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루지 않겠다고 말을 했지만, 굵직한 문제들을 조금은 지루하게 전개했다.

그러나 이 책이 30년도 전에 출간이 되었으나 여전히 급진적(개신교 진영에서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으로 다가오는 내용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배와 학문에 대한 저자의 일갈이었다. 선포 중심의 예배, 실천에서 동떨어진 학문 추구가 초래하는 결과는 생각보다 끔찍한데, 역설적으로 공허한 메시지를 양산하게 했고, 결국 공적인 예배와 삶 전반에 기쁨과 소망을 약화시켜 영적인 힘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너무나 동의가 되고,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말씀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자기주장만 가득한 설교가 얼마나 많고, 성찬을 비롯한 여러 성례전적 요소들을 대거 축소시키며 사라진 기쁨과 소망을 찬양과 기도(라고 적었지만 노래와 자기 암시에 가깝다)로 메꾸면서 이웃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종교 행위만 남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저자가 명문화하진 않았지만 모두 목회자 중심의 목회, 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틀에 갇혀 성도들에게 그 틀을 강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까지 차단하는 경우를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조금은 딱딱하고 지루했지만, 저자는 개혁신학의 범주 안에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전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주장은 마음을 움직인다. (나와 같이) 개혁신학의 범주에 있으면서 다른 신학과 신앙에 대해 접할 기회가 거의 없거나 적었던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고, 특히나 개혁 신학에 대해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읽어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예쁘고, 내용도 묵직한 만큼 집에 한 권쯤은 있어도 좋은 책,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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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5월의 광주를 알고 싶어 읽은 세 권의 책.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소년이 온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전남대학교병원.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우연히 김oo 환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5·18이 끝났지만 여전히 휠체어에 앉은 채였다.”(106)

 

1980년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열흘간의 전남대 병원의 상황을 의사, 간호사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이다. 강경진압 초기 곤봉에 맞거나, 대검에 찔려 병원에 실려 온 사람들 발포 이후 수많은 총상 환자들이 밀려왔다는 이야기들을 여러 명의 사람들의 증언으로 기록한 사람들 각자의 느낌을 살려 생생하게 들려준다. 또한 계엄군이 병원에 최루탄을 던지고, 사격한 일을 목격한 여러 사람들을 통해 몇몇 사람들이 아직도 당시의 강경진압, 특히 시민들을 향한 발포가 자위권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말해준다. 병원 안에서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당시 병원 밖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병원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원 안에서 목격하고 치료한 끔찍한 환자들, 손을 써볼 틈도 없이 죽어갔던 무수한 환자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들만으로도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체 무시무시한 폭력의 희생자들이 되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병원에서의 이야기다 보니 급하게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 위험한 상황 중에 자발적으로 헌혈에 나선 시민들의 이야기, 무질서 속에서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청소를 했던 의사들의 이야기 등은 생지옥과도 같은 현장에서 시민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당시 병원에서의 끔찍한 경험으로 기억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의사, 반대로 당시 목격한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괴로워하고 있는 의사들도 있다는 증언들은 805월의 광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2-30대 시절 병원에서 근무하다 약 10일간의 야전병원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놓은 책으로서 여전히 꿈틀되는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과 그에 동조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거 아니라고말해주는 중요한 역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지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감동적으로 보고 난 뒤 읽은 두 번째 805월의 광주에 대한 책. 워낙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채식주의자>로 스타가 된 한강도 잘 모르고 읽었다. 한강은 국가 폭력으로 희생당한 사람들, 여전히 그 피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소년이 온다>6개의 이야기, 서로 다른 사람들의 시점으로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말해준다. 친구를 먼저 보내고 난 자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너무 어이없고, 끔찍하게 죽어 죽어서도 괴로워하고 있는 이, 죽진 않았지만 억울하게 잡혀서 고문당해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 너무 힘들지만 그때의 기억을 살리고, 알려야 한다는 양심에 사로잡혀 여전히 고생하는 이....이들의 이야기는 805월의 광주에서 일어났던 국가폭력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너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말해준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해준다. “저는 그 폭력의 경험을, 열흘이란 짧은 항쟁 기간으로 국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체르노빌의 피폭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몇십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162) 805월 광주를 접하면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작가 한강의 작품, 그리고 <채식주의자>보다 이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한 책이 <소년이 온다>이다. 너무 거대한 국가에 대한 질문을 폭력에 희생당한 개인들의 입장에서 풀어나간 책으로서 당시의 참상을 알릴뿐 아니라 우리가 그 끔찍한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이 시대의 양심이 아니겠냐고 호소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적잖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고마움을 표하는데, 나 역시 805월의 광주가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를 이 책으로 알 수 있었기에 저자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 창비

 

1985년 책이 처음 나오면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이 30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당시엔 여러 여건상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책이 나왔다면 이번 개정판에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군의 기록, 재판, , 외신의 기사들을 포함한 805월 광주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을 참고해서 후주만 70페이지에 이를 정도다. 저자들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79년 부마항쟁과 10.26사태로부터 5.18 민주화운동 직전까지의 나라, 그리고 광주의 상황들, 518일부터 527일 강제진압까지의 자세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항쟁 이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과제들에 대하여 말해준다. 당시 신군부를 반대하며 일어난 전국적인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북한의 남침 위협을 들먹이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의 정부 차원의 이야기 뿐 아니라, 현장에서 곤봉에 맞고, 대검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광주 지역을 봉쇄하며 오가는 차량을 습격하고, 사격하며 학살을 저질렀던 일, 군부대간 오인 사역으로 적잖은 군인들이 죽은 사건, 파도파도 계속 나왔던 암매장 된 시신들,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여태 이런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사실에 많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군부대와 경찰들 내에서도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나름 애를 쓴 사람들, 헌혈과 밥짓기, 차량 동원을 통하여 어떤 식으로든 폭도와 같은 군인들에게 저항했던 이야기들은 마음을 뜨겁게 하기도, 그리고 슬프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사진 자료들도 나오는데, 516일 저녁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횃불 시위를 하던 사진은 여러 가기를 생각나게 했다. 무엇보다 얼마 전 있었던 촛불 시위, 특히 횃불을 들고 나왔던 사람들이 오버랩되었다. 당시에 횃불이 서울에서도 일어났다면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 났을지에 대한 생각,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사람들이 횃불을 들어야만 했던 상황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등... 워낙 생생한 증언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출간 당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영향력을 줬을 뿐 아니라 876월 항쟁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들이 개정판을 썼던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어떠한지를 알려줄 뿐 아니라, 그에 대하여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넘어넘어>를 다시 써야 한다는 성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의 탄압을 뚫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넘어넘어>초판을 썼듯이, 보수정권의 역사 왜곡과 과거 회귀를 저지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5·18의 진실을 다시 알리기 위해 개정판을 써야 한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됐다.”(583) 805월의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에 이 책은 큰 도움을 준다. 집에 비치해 놓고 자료집으로 들춰 볼 수도 있는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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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20
곤살로 모우레 지음, 알리시아 바렐라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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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읽기 아까운 책 소개

얼마전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란 책을 읽었다. 온통 그림 뿐이지만 뒷부분에 그림 설명이 친절하게 있으니 읽었다고 하는게 맞는 것 같다. 작가는 공원에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묘사하며 각 사람에게 사연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림으로. 그림에는 십여명의 사람들이 있고, 고양이, 강아지, 두더지, 새들이 등장한다. 한장, 한장씩 넘길때마다 각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고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지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함께 축구를 하거나 혼자 조깅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에 주목해서 책을 넘기다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데 글이 전혀없는 그림만으로 이야기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참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책을 그렇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다 읽고난 뒤에는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그림을 봤다. 그렇게 여러번을 반복해서 보면서 마지막에는 그림의 설명을 읽었다. 그림의 설명이란 등장인물의 이름과 간단한 소개 그리고 그림에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왜 이런저런 행동을 했는지에 다해서 말해준다. 놀랍게도 이 설명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니 감정이 이입이 되면서 각각의 인물들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이 아이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흠...저 할머니가 정말 힘들었겠다..처럼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공원의 풍경을 그리면서 사람들을 자세히 보았던 것 같고, 각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깊이 느낀것 같다. 그리고 공원의 풍경과 각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세상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름과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그림과 이야기로 표현하려 했던것 같다. 만약 아니더라도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냥 스치는 사람들도 참 귀하다는 평범한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이 하나 있었는데, 아이들의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었다.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나보다 훨씬 자세하게 보고 있었다. 특히 둘째가. 아내 말로는 글을 익히기 전이라 그림을 더 자세하게 보는 것 같다는데...여튼 놀라웠다.

마지막으로 공원에 물고기, 그것도 붉은 물고기가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거나, 회복하거나, 자신감을 갖게 되는데 읽고 난 뒤 한참을 지나 생각해보니...기독교적 메타포가 있나보다 싶었다. 물고기. 붉은색. 그리고 사랑...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한번 읽어봐도 좋을것 같고, 그림 좋아하거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봐도 좋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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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지음, 송경진 옮김 / 메가스터디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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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로 스멀스멀 알려지더니, 대선 이후 모 후보가 전면에 그 개념을 내세우면서 모두가 의지와 상관없이 대중화 되었다. 그러나 4차 산업명이 무엇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 막연할 뿐이다. 아마도 이 책은 그러한 분위기를 틈타 마케팅을 한 책 같다. 나도 매체를 통해 하도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도대체 제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골라 읽었다. 저자는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이다. 그가 2016년 포럼에서 제시한 주제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이었는데 그것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1부에서 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통해 그것의 정의와 핵심 기술, 그리고 그 영향력의 범위에 대해서 말하고, 2부에서는 1부에서 말한 핵심 기술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각각의 예상되는 긍정적인 부분들과 부정적인 부분들, 그리고 예측하기 힘든 요소들까지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한 1차 산업혁명, 전기와 생산 조립의 출현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2차 산업 혁명, 반도체와 PC, 인터넷 발달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이라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을 특징으로 하는 것을 제 4차 산업혁명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4차 산업혁명이 이전의 산업혁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범주와 발전 속도를 갖는다는 것이고, 거의 모든 영역들이 융합되는 새로운 차원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기술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충분한 준비조차 할 틈 없이 그것을 맞이하게 될 것인데, 그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미 시작한 이 혁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러한 제 4차 산업 혁명은 저자의 주장처럼 광범위하게 급격한 발전 속도로 나타날 것이라면 이에 대응하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조직의 리더들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이러한 변화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중시해야 하고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포용력이 있어야 함을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지적, 정서적, 영적, 신체적 능력이 새로운 산업 혁명을 대처하는데 필수적인 능력이 될 뿐 아니라 이끌 수 있는 필수 능력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2부에서 각각의 기술들이 만들어낼 긍정적인 효과들, 부정적인 효과들 중에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기술들이 실현되는 각각의 영역에서 나타날 부정적인 효과들이 있을 것인데, 그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지적이었다. 대표적인 부정적인 효과들은 매체에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는 일자리 감소나 사생활 침해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해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이 훨씬 복잡해지고 모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이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각각의 경제 주체들이 하는 분야는 지극히 전문화 되었고, 동시에 단순해졌다 할 수 있는데, 그와 동시에 그 단순한 일들이 연결되어 진행이 되는 과정은 실타래처럼, 그물처럼 더욱 복잡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피해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지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그것을 규명하기 위해서 또 다른 전문가들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 말한 것이다. 이미 시작한 급격한 변화를 중지시킬 수 없다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러한 변화 가운데 피해자로 전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에 책임이 있는 정부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하겠다. (물론 저자는 이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4차 산업 혁명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어떤 전문가들은 그것은 허상이라고 말하기까지 할 정도다. 물론 저자 역시 4차 산업 혁명에 대해 자세한 정의를 내리거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 깊이 논의를 하진 않는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막연하게나마 들어보았을 법한 내용들을 정리한 수준에서 책을 썼다. 아마도 책을 읽기 전에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누구 말처럼 이 책은 빠르게 대강 나온 것 같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서평을 읽는 것이 관련 주제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 크게 기대는 하지 말고, 4차 산업 혁명에 대해 간단한 소개 정도를 받는다는 차원에서 읽으면 나름 정리는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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