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주의적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다. 똑같은 문제가 그것을 괴롭힌다. 즉복음이 성경 안에 깊이 박혀 있고 성경 전체는 영감되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복음으로부터 교리를 유추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이 점은 판넨베르크가 성령이 성경의 권위의 근거라는 것을 부정할 때 특히 문제가 된다. 그는 성경의 권위의 기초를 성경 안에 있는 복음과 사도들이 성경을 썼다는 사실에 둔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지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 P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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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관계를 가지는 대상은 모든 배아, 심한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 노년의 병을 앓는 모든 사람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존엄성이 존중될 때 그들안에서 영예롭게 되고 영광을 받는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 없이는 하나님의형상이 모든 사람 안에서 존중되지 못할 것이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공리주의적 판단 기준에 의해 밀려나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경외속에서는 무가치하고 사랑받을 자격 없는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P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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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은 우리의 영역이나 능력을 벗어나는 과업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당신"(Thou) 안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이지, 다른 종교들에서처럼 동물의 모습이 아니다.…추상적 - 절대적, 형이상학적, 무한적등 형태도 아니고, 자율적 인간이라는 그리스의 신인(神人)도 아닌, 타자를위해 존재하는 사람, 그런 이유로 십자가에 달린 존재다. - P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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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능은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기꺼이 사람이 되시고 고난까지 받으시는 능력이다...라고 하나님의 전능함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도신경 강의 준비할때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굳이 포기해야 했을까...싶네요.


과정 신학에 대한 나의 비판은 이 신학의 하나님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 화이트헤드의 문구대로 "고난의 동반자"
이지만, 또한 어떤 위대한 성취를 통해 고난을 상쇄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직설적으로 말해, 과정 신학의 하나님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중에서 일으킨 하나님이 아니다. - P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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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키는 내슈빌에서 틸리히의 강연을 들은 한여자가 그녀의 친구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을 말한다. "나는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그는 강의 내내 나에게 직접말하고 있었어."
-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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