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찜찜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 약간은 기분이 불쾌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가르쳤던 신앙과 소설에서 보여주는 참된 신앙의 모습이 다르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참된 신앙은 저자가 말하는 강자의 모습에 가까웠고, 저자는 그러한 신앙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저자는 여러가지 위협 앞에 굴복하지 않고 거침없이 순교를 택하는 사람들을 두고 그리스도의 영웅이라고 하고, 강자라고 한다. 그러한 신앙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야기의 시작부터 그러한 강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신앙으로 비롯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당시 유럽인의 눈으로 보면 세계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은 나라에서 페리이라가 배교를 강요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 개인의 좌절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신앙과 사상 면에서 굴욕적인 패배처럼 생각되었다.”(13) 일본에 선교사를 보낸 이유가 자신들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이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일본으로 떠난 선교사들은 풍랑을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일본에 도착하여 위험한 순간들을 만나기도 한다. 분명 어려운 순간들이었지만 그들은 신앙으로 잘 이겨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현지의 신자들이 순교를 당하는 모습에 마음이 위축되고, 동료가 순교를 당하고 함께 했던 신자들이 악명 높은 고문을 받으며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에 치를 떤다. 무엇보다 로드리고 신부의 마음을 괴롭게 한 것은 그 모든 순간에 느껴졌던 하나님의 침묵이었다. 영광스러운 모습이어야 할 순교의 장면이 바보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로드리고 신부는 선임자가 그랬던 것처럼 성화를 밟고 만다. 그동안 배교자를 혐오하고 겁쟁이를 무시했던 로드리고였는데 결국 자신도 그런 모습이 된 것이다.

 

놀랍게도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잘 알고 있다...” 이후 로드리고는 그토록 무시했던 배교자, 겁쟁이들과 자신이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동시에 하나 알게 된 사실, 그동안 자신의 나라에서, 우뚝 선 교회와 신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쳤던 신앙이 틀렸다는 것, 적어도 자신의 하나님과 그들의 하나님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괴로운 모든 순간을 통과한 뒤에 비로소 할 수 있었던 말이 매우 역설적이다.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 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행위를 따르며 배우며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295)

 

책의 제목이 <침묵>이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침묵하는 것과 같은 순간들을 통해 함께 하시고, 그 순간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내가 왜 이렇게 찜찜하고 기분이 불쾌하기까지 했는지 알았다. 제목부터 <침묵>이었고, 하나님이 정말 침묵하시는 순간들이 있고, 그러한 침묵에 굴복하는 순간 참 신앙의 모습이 나온다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반발심이 들었나보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나와 다른 모습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책을 읽는 것이 때로는 배울 것도 많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많아서 좋을 때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내가 인정하기 어렵거나, 내가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주장들을 담고 있는 책들은 더욱 그렇다. 이 책이 그랬다. 허나 예수님조차 하나님의 침묵에 놀라실 정도였는데 나라고 그것을 피할 도리가 있겠나 싶다. 그러고 보니 강자의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도리어 편한 길이란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순간들이 도처에 있는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말로 넘어가면 되니까 말이다.

 

로드리고 신부의 마음 속 깊은 곳을 휘저으며 생생하게 묘사했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일 수 있는데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새 마지막에 와 있었다. 결코 간단치 않은 여러 주제들을 다루지만 그중에서도 참된 신앙에 대해서 주인공의 강렬한 심리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구매하게 한 이 책,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래하는 페미니즘 - 여자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난 페미니즘 고전
스테퍼니 스탈 지음, 고빛샘 옮김, 정희진 서문 / 민음사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다보니 새해 첫번째 끄적이는 책이 또 페미니즘 관련이다. 제목이 흥미롭다. <빨래하는 페미니즘>. 중간에 페미니즘이 우리의 실생활, 예를들면 밥하고 빨래하는 것에 도움이 되냐는 질문이 있고 저자는 당연히 그렇다는 답을 재미있게 풀어간다. 거기에서 제목이 비롯된 것 같다.

이야기는 저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정신적, 체력적 한계를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글을 쓰는 전문인으로서 여성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체감하지 못했지만 결혼후, 특히 출산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때 다시 생각이 났던것이 페미니즘, 그중에서도 고전들이었다. 두 학교에서 2년에 걸쳐 페미니즘 고전에 관한 수업을 들었던 것들을 저자의 경험, 생각들로 덧입혀서 재미있게 풀어낸다. 책이 조금 두껍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는데, 저자가 워낙 글을 잘썼고, 저자가 실제로 공부하며 페미니즘을 통해 삶을 다시 해석하고 용기 백배 했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회식으로 말하자면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까?ㅎㅎ 저자가 페미니즘 다시 공부하면서 정말 좋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독서에 관한 책이다. 페미니즘 고전들. <제 2의 성 >, <여성의 신비>, <자기만의 방>, <젠더 트러블> 과 같은 책들 말이다. 저자는 오래 되어 시대에 맞지 않아 비판 받는 지점들이 분명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이 책들의 가치를 드러낸다. 이 부분이 저자의 특 장점인것 같은데, 책의 핵심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자신의 일상, 생각을 세밀하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각각의 책들의 주제를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을 한것이다. 그러면서 그 두껍고 어려운 고전들의 내용을 한, 두페이지로 언급하면서 그 책의 핵심과 그 주제가 자신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아주 쉽고도 공감이 가도록 제시한다.

이 책을 보면서 몇가지 생각이 났는데 먼저는 이 책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서 지나치게 무겁거나 비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가볍진 않았지만 우리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자신의 경험들과 고전해설을 통해 공감을 얻어낸다. 물론 나는 남자라서 좀 덜 했겠지만 이 책을 먼저 읽어본 청년들의 평이 이와 비슷했다. 그래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교수나 전문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분들이 일상과 페미니즘을 엮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면서 용기를 주고 때로는 반성할 수 있거나 사회의 굳어진 편견을 뚫어볼 수 있는 통찰을 제시하는 책들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작년에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주기는 했지만 뭐...여러 이유로 마음에 들진 않았다)

확실히 페미니즘이 일상을 새롭게 보는데 큰 도움이 되는데 그건 페미니즘이 세계관이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말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이 지나치게 남자중심, 가부장토대라는 뜻이다. 페미니즘이 빨래를 해줄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빨래-일상속에서 차별, 폭력으로 인하여 부당하게 감당하고 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행되어온 모든 일들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만약 그 반대편에서 억압하던 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반성하고 행동을 고칠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자신이 이해한 고전의 정수들을 전하면서 페미니즘을 그렇게 소개하는 것에 성공했다. 재미있게 읽었을 뿐 아니라 배우고, 익힐게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려줬다. 즐겁고 배움에 자극을 줬다는 점에서 추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자가 된다는 것 -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 로완 윌리엄스 신앙의 기초 3부작
로완 윌리엄스 지음, 김기철 옮김 / 복있는사람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자가 된다는 것은>, 로완윌리엄스, 복있는사람

 

2년 전이다. 그의 글을 첫 번째로 읽었던 때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을 읽으면서 그동안 익숙해 있던 주제들 세례, 성경, 성찬, 기도 에 대해서 이렇게 새로울 수가 있나 하면서 감탄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그런 주제들을 너무나 새롭게 다가왔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저자에게 있었다. 로완 윌리엄스는 어려서부터 현대철학과 신학을 가까이 했고, 동방교회를 주제로 학위를 받았고, 성공회 소속으로서 교회의 전통에 대해 박식하다. 그의 신학은 넓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배경이 진부해 보였던 주제들을 완전히 새롭게 했던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나에게 있었는데 어쩌면 기독교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너무나 좁고 얕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 주제들에 대해서 잘 몰랐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에는 개인적인 게으름 탓도 있겠지만 내가 속했던 교회나 학교가 워낙 다른 전통의 신학을 배척하는 분위기 탓도 있다.(언제까지 이 핑계를 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기본부터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 특별한 책이었고, 내가 속한 전통 뿐 아니라 다른 신앙 전통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로완 윌리엄스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에서 역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과 비슷하게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덕목들에 대해서 나눈다. 제자도. 믿음. 소망. 사랑. 용서. 거룩함....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이미 김이 빠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각 주제들에 숨을 불어 넣어 생기 있게 만든다. 제자도라는 정의부터 새롭다. “제자도는 드문드문 이어지는 간헐적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 관계를 가리킵니다....이런 의미에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쉬지 않고 바라보며 귀 기울여 듣는 일로 이루어지는 삶의 상태를 말합니다.”(26) 이것이 새로운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자()’에 대한 편견, 제자란 특정한 단계를 지나거나, 레벨에 오른 상태라는 생각을 흔들어 각성시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의 다음 내용들은 각각의 소주제들을 통해서 이 부분을 새롭게 진술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앞부분에서 제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간략한 서술을 마친 뒤, 믿음, 소망, 사랑, 용서, 거룩함 등의 중요한 덕목들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단연 거룩함이었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참여하는 일을 뜻합니다.”(86) “거룩함과 세상 속에 참여하는 일은 서로 상충하지 않으며...예수께서는 가장 깊이 참여하시고 인간의 경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십니다....거룩함을 우리 자신의 인간성이나 다른 사람의 인간성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로 여긴다면, 모든 것을 아주 심각하게 오해하게 됩니다.”(88) 짧은 문장들이 우리 교회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가서 제자 삼으라고 노래는 하지만, 철저하게 교회 안에 머물면서 밖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미 너무 많은 교회들에는 교회스러운사람들만 남아있는데, 많이 부끄러웠다. 마음이 조금 아팠다.

 

쉽지만,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그의 능력이 잘 드러낸 책이다. 무수한 교회들이 제자를 외치면서 역설적으로 자기 교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긴 이때, 우리의 생각을 흔들어주고,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책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을 참 많이 선물했었는데, 이 책도 그럴 것 같다.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김승철 지음 / 비아토르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후기는 다음에 남기고...지금 흔적을 남기는건 알라딘에서 내가 이 책을 첫번째로 읽었기 때문이다ㅋㅋㅋ 일빠!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쫓겨난 사람들 - 도시의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
매튜 데스몬드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쫓겨난 사람들-도시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 메튜 데스몬드. 동녘. 2016.

날이 춥다. 누가 12월 아니랄까봐 체감 온도 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늦은 저녁 퇴근하면서 바로 집으로 간다. 요즘 같은 날씨엔 길에서 스마트폰을 보지도 않고 종종 걸음으로 집에 가기 바쁘다. 도착해서 문 앞에서면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뛰는 소리, 노래 부르는 소리, 싸우는 소리. 아내가 조용하라고 소리 지르는 소리 ㅋㅋ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세 살 막내가 ”아빠~“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아내는 ”수고했어요~“ 하면서 반겨주고, 이미 아빠에게는 관심 없는 첫째, 둘째 아이는 서로 정신없이 놀기에 바쁘다. 문을 닫고 신발을 벗을 때쯤이면 안경에 김이 서린다. 안경부터 테이블에 벗어 놓고 안아달라고 서있는 아이를 안아주고, 인사를 나눈 뒤 옷부터 갈아입는다. 그러고 보니 막내는 집에서 반팔에 기저귀만 입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지낸다. 바깥이 영하 10도가 되어도, 눈, 비가 내려도 상관없다. 조금 오래 된 아파트이긴 하지만 다섯 가족이 살기에 불편할 것이 없다.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고, 긴장이 풀리며 세상에서 가장 편안 자세로 기대어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 집이 없으면 어쩌면 거의가 불가능한 일들이다.

<쫓겨난 사람들>은 제목부터 잔인하다. 책을 펴면 ”하늘에서 집세가 뚝 떨어졌으면 좋겠어“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이런 제목과 첫 페이지의 인용 구절만 봐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책의 부제처럼 도시의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고, 특별히 퇴거를 당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미국 밀워키의 한 빈민가에 들어가 현장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일들을 가능한 보이는 대로 서술한다.(그렇게 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가 2년 넘게 주목하며 지켜본 것은 집세 때문에 강제로 쫓겨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술과 약에 중독되어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시에 이곳에서는 똑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물론 많은 경우 (흑인이면서 나이가 어린) 아빠들은 폭력이나 마약과 관련하여 투옥되는 경우가 일수였고, 남겨진 엄마들과 아이들은 정부의 지원금과 어쩌다 얻은 일자리를 통해 겨우겨우 집세를 내고, 먹을 것을 사고, 가끔은 무리를 해서 조촐한 파티를 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삶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원금과 급여는 오랜 시간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그에 비해 집세는 어마어마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들이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많은 집세를 낼 수가 없어서 쫓겨나고, 또 쫓겨났다. 이렇게 퇴거를 당하면 없는 형편에 급하게 집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또 기록에 남아 이전보다 좋은 환경으로 이사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점점 더 열악한 곳으로, 집이라 부르기 어려운 곳으로 옮겨가고, 또 옮겨가는 것이다.

저자가 이렇게 ‘쫓겨난 사람들’과 동시에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상호작용하는 집주인들이다. 외부자 입장에서는 집주인들도 그들 나름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쫓아내고, 집세를 올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분명하게 임대업을 통해 가난한 세입자들의 돈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사람들을 두고 강력하게 비난한다. ‘벼룩의 간을 빼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라고.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임대업을 자신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전문적으로 집을 사 모으면서 월세를 받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금 오래 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집주인이 너무 많은 집세를 요구한다는 느낌이 들면 주변의 세입자들과 함께 저항하곤 했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터무니없는 집세를 요구하면 그냥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많아지고 전문화 되고 조직화 된 집주인들은 수많은 빈민들이 몰려 사는 슬럼가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귀신 같이 알고 있다. 그렇게 질 나쁜 집을 빌려주면서도 (특별히 유색인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정해져있다는 것을 이용해 다른 괜찮은 동네의 괜찮은 집들의 집세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의 집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대업을 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합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택 시장 내에서의 착취는 정부 지원 덕에 가능하다....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주고...보조금을 주고...집행관을 보내...강제로 내쫓는 것도...퇴거를 기록하고...공개하는 것도 모두 정부다“(415)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거의 몇 번의 기회를 통해서 얼마든지 지금의 모습과 다를 수 있었다. 강제로 퇴거 조치를 당하는 사람들이 한 해에 수백만 명에 이르는 지금과 같이 끔찍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와 관련하여 힘을 주어 말한다. “연방의 직접적인 주택 원조 지출은 총 402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지만, 주택 소유주 세금 혜택은 1710억 달러가 넘었다. 우리는 보편적인 주택바우처를 시행할 수 있는 돈의 세 배를 주택 담보대출 이자 감면과 자본 이익 배체 같은 방식으로 주택 소유주의 이익을 위해 지출하고 있다....만일 우리가 대부분의 공공자금을 이미 부유한 이들에게 지출하고자 한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을 솔직하게 털어놔야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도 더 이상은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는 정치인들의 헛소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에서 가난이 지속된다면 그건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이다....어떤 도덕률이나 윤리적 원칙, 성서의 어떤 말씀이나 성스러운 가르침을 소환해도 이 나라가 처하게 된 지금의 상황을 변명하지는 못한다.”(422)

이 책이 비록 저 멀리 떨어진 미국의 한 중간 규모의 슬럼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서술이었지만 그리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아마도 책의 대부분이 가난, 퇴거에 대한 학문적 분석이나 통계 수치들을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여러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무수한 통계와, 치밀한 분석 자료들, 그를 분석하여 분명한 대안들을 내어 놓는다. 중요한 건 이러한 마무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깊은 감동까지 주는 건 저자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수년 동안 슬럼가에서 살았고, 그것을 서술함에 있어서 자신의 시선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학문과 결합하니 묵직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 생생하게 다가온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실 강제 퇴거가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처럼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물론 무분별한 개발로 인하여 강제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있지만 미국처럼 수백만명씩 강제 퇴거를 당하는 수준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라면 집 때문에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그나마 전세 제도가 주거 안정을 도모했었는데, 그것마저도 반전세, 월세화 되면서 집 없는 사람들의 부담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독거노인이나 청년들의 경우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데, 서울에 사는 청년들 중 다섯 명중 하나가 주거 빈곤층이라는 조사들도 있을 정도이다. 저자의 말처럼 집은 생명과 행복의 기초라고 할 수 있고, 모든 삶이 평화롭게, 든든하게 뻗어 나아가는데 있어서 든든한 배경이 된다. 집 때문에 불안한 상황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개개인들이 집 때문에, 그리고 집 문제로 파생하는 무수한 문제들을 당할 위험에 처한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빠르게 해체 되면서 기본적인 치안조차 파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 역시 그러한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되는데 지금 이 책이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서 기뻐하는 사람은 소수인 반면, 그것 때문에 꿈마저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집을 포기하는 사람들. 이건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한다.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한다. 이건 자연스럽지도 않고 당연하지도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갖게 된 문제의식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올해 읽은 책 중에 단연 최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