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사람들 - 도시의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
매튜 데스몬드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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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사람들-도시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 메튜 데스몬드. 동녘. 2016.

날이 춥다. 누가 12월 아니랄까봐 체감 온도 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늦은 저녁 퇴근하면서 바로 집으로 간다. 요즘 같은 날씨엔 길에서 스마트폰을 보지도 않고 종종 걸음으로 집에 가기 바쁘다. 도착해서 문 앞에서면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뛰는 소리, 노래 부르는 소리, 싸우는 소리. 아내가 조용하라고 소리 지르는 소리 ㅋㅋ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세 살 막내가 ”아빠~“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아내는 ”수고했어요~“ 하면서 반겨주고, 이미 아빠에게는 관심 없는 첫째, 둘째 아이는 서로 정신없이 놀기에 바쁘다. 문을 닫고 신발을 벗을 때쯤이면 안경에 김이 서린다. 안경부터 테이블에 벗어 놓고 안아달라고 서있는 아이를 안아주고, 인사를 나눈 뒤 옷부터 갈아입는다. 그러고 보니 막내는 집에서 반팔에 기저귀만 입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지낸다. 바깥이 영하 10도가 되어도, 눈, 비가 내려도 상관없다. 조금 오래 된 아파트이긴 하지만 다섯 가족이 살기에 불편할 것이 없다.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고, 긴장이 풀리며 세상에서 가장 편안 자세로 기대어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 집이 없으면 어쩌면 거의가 불가능한 일들이다.

<쫓겨난 사람들>은 제목부터 잔인하다. 책을 펴면 ”하늘에서 집세가 뚝 떨어졌으면 좋겠어“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이런 제목과 첫 페이지의 인용 구절만 봐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책의 부제처럼 도시의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고, 특별히 퇴거를 당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미국 밀워키의 한 빈민가에 들어가 현장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일들을 가능한 보이는 대로 서술한다.(그렇게 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가 2년 넘게 주목하며 지켜본 것은 집세 때문에 강제로 쫓겨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술과 약에 중독되어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시에 이곳에서는 똑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물론 많은 경우 (흑인이면서 나이가 어린) 아빠들은 폭력이나 마약과 관련하여 투옥되는 경우가 일수였고, 남겨진 엄마들과 아이들은 정부의 지원금과 어쩌다 얻은 일자리를 통해 겨우겨우 집세를 내고, 먹을 것을 사고, 가끔은 무리를 해서 조촐한 파티를 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삶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원금과 급여는 오랜 시간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그에 비해 집세는 어마어마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들이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많은 집세를 낼 수가 없어서 쫓겨나고, 또 쫓겨났다. 이렇게 퇴거를 당하면 없는 형편에 급하게 집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또 기록에 남아 이전보다 좋은 환경으로 이사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점점 더 열악한 곳으로, 집이라 부르기 어려운 곳으로 옮겨가고, 또 옮겨가는 것이다.

저자가 이렇게 ‘쫓겨난 사람들’과 동시에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상호작용하는 집주인들이다. 외부자 입장에서는 집주인들도 그들 나름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쫓아내고, 집세를 올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분명하게 임대업을 통해 가난한 세입자들의 돈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사람들을 두고 강력하게 비난한다. ‘벼룩의 간을 빼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라고.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임대업을 자신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전문적으로 집을 사 모으면서 월세를 받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금 오래 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집주인이 너무 많은 집세를 요구한다는 느낌이 들면 주변의 세입자들과 함께 저항하곤 했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터무니없는 집세를 요구하면 그냥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많아지고 전문화 되고 조직화 된 집주인들은 수많은 빈민들이 몰려 사는 슬럼가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귀신 같이 알고 있다. 그렇게 질 나쁜 집을 빌려주면서도 (특별히 유색인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정해져있다는 것을 이용해 다른 괜찮은 동네의 괜찮은 집들의 집세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의 집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대업을 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합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택 시장 내에서의 착취는 정부 지원 덕에 가능하다....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주고...보조금을 주고...집행관을 보내...강제로 내쫓는 것도...퇴거를 기록하고...공개하는 것도 모두 정부다“(415)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거의 몇 번의 기회를 통해서 얼마든지 지금의 모습과 다를 수 있었다. 강제로 퇴거 조치를 당하는 사람들이 한 해에 수백만 명에 이르는 지금과 같이 끔찍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와 관련하여 힘을 주어 말한다. “연방의 직접적인 주택 원조 지출은 총 402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지만, 주택 소유주 세금 혜택은 1710억 달러가 넘었다. 우리는 보편적인 주택바우처를 시행할 수 있는 돈의 세 배를 주택 담보대출 이자 감면과 자본 이익 배체 같은 방식으로 주택 소유주의 이익을 위해 지출하고 있다....만일 우리가 대부분의 공공자금을 이미 부유한 이들에게 지출하고자 한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을 솔직하게 털어놔야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도 더 이상은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는 정치인들의 헛소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에서 가난이 지속된다면 그건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이다....어떤 도덕률이나 윤리적 원칙, 성서의 어떤 말씀이나 성스러운 가르침을 소환해도 이 나라가 처하게 된 지금의 상황을 변명하지는 못한다.”(422)

이 책이 비록 저 멀리 떨어진 미국의 한 중간 규모의 슬럼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서술이었지만 그리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아마도 책의 대부분이 가난, 퇴거에 대한 학문적 분석이나 통계 수치들을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여러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무수한 통계와, 치밀한 분석 자료들, 그를 분석하여 분명한 대안들을 내어 놓는다. 중요한 건 이러한 마무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깊은 감동까지 주는 건 저자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수년 동안 슬럼가에서 살았고, 그것을 서술함에 있어서 자신의 시선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학문과 결합하니 묵직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 생생하게 다가온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실 강제 퇴거가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처럼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물론 무분별한 개발로 인하여 강제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있지만 미국처럼 수백만명씩 강제 퇴거를 당하는 수준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라면 집 때문에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그나마 전세 제도가 주거 안정을 도모했었는데, 그것마저도 반전세, 월세화 되면서 집 없는 사람들의 부담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독거노인이나 청년들의 경우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데, 서울에 사는 청년들 중 다섯 명중 하나가 주거 빈곤층이라는 조사들도 있을 정도이다. 저자의 말처럼 집은 생명과 행복의 기초라고 할 수 있고, 모든 삶이 평화롭게, 든든하게 뻗어 나아가는데 있어서 든든한 배경이 된다. 집 때문에 불안한 상황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개개인들이 집 때문에, 그리고 집 문제로 파생하는 무수한 문제들을 당할 위험에 처한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빠르게 해체 되면서 기본적인 치안조차 파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 역시 그러한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되는데 지금 이 책이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서 기뻐하는 사람은 소수인 반면, 그것 때문에 꿈마저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집을 포기하는 사람들. 이건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한다.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한다. 이건 자연스럽지도 않고 당연하지도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갖게 된 문제의식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올해 읽은 책 중에 단연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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