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관계를 가지는 대상은 모든 배아, 심한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 노년의 병을 앓는 모든 사람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존엄성이 존중될 때 그들안에서 영예롭게 되고 영광을 받는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 없이는 하나님의형상이 모든 사람 안에서 존중되지 못할 것이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공리주의적 판단 기준에 의해 밀려나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경외속에서는 무가치하고 사랑받을 자격 없는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P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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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은 우리의 영역이나 능력을 벗어나는 과업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당신"(Thou) 안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이지, 다른 종교들에서처럼 동물의 모습이 아니다.…추상적 - 절대적, 형이상학적, 무한적등 형태도 아니고, 자율적 인간이라는 그리스의 신인(神人)도 아닌, 타자를위해 존재하는 사람, 그런 이유로 십자가에 달린 존재다. - P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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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능은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기꺼이 사람이 되시고 고난까지 받으시는 능력이다...라고 하나님의 전능함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도신경 강의 준비할때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굳이 포기해야 했을까...싶네요.


과정 신학에 대한 나의 비판은 이 신학의 하나님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 화이트헤드의 문구대로 "고난의 동반자"
이지만, 또한 어떤 위대한 성취를 통해 고난을 상쇄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직설적으로 말해, 과정 신학의 하나님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중에서 일으킨 하나님이 아니다. - P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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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키는 내슈빌에서 틸리히의 강연을 들은 한여자가 그녀의 친구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을 말한다. "나는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그는 강의 내내 나에게 직접말하고 있었어."
-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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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버는 혹시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두가지의 악 중에서 더 작은 악에 참여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용서가 있을 것을 확신했으며, 히틀러와 그의 주축국들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이 바로 그런 필요악이라 보았다. 그렇다면 기독교 사회 윤리는 실천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완벽한 것을 성취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이상주의적 확신이어서는 안 된다. 현실에 대한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타협은 정의를 위해 필연적인 한, 기독교적 미덕이다. 니버의 제자들은 실천적 기독교사회 윤리에 대한 이 접근법을 "기독교 현실주의 (Christian realism)라고 불렀다. 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비관주의라고 불렀다. 니버 자신은 그것을 예언자적이라고 불렀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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