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 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작품이라 해서 시작했는데 두 번째 권과 세 번째 권은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은 거였다. 그것 참. 오늘 매우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마지막 몇십 페이지를 보는 동안은 잊을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매우 좋지 않은 일에 더해 기분이 더 나빠지려고 한다. 쳇.
보통 어떤 작가를 처음 읽을 때 ‘최고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먼저 읽고 처녀작은 읽지 않는 편이다. 나는 결국 작가보다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고 처녀작이란 미숙함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번역 출간된 걸 4, 5, 3 순으로 읽었는데 결국 1, 2도 읽겠다는 예감이 든다... 쳇. ‘추리소설’이라고 태그를 달고 저장해두긴 하는데 이 시리즈는 추리도, 스릴러도 아니고 그저 범죄소설도 아니다. 도시를 날 것으로 보여주는, 쓸쓸한 하드보일드다.
북유럽 범죄 소설의 전범을 만든 시리즈라는데. 요 네스뵈 류처럼 피 튀기는 장면이 거의 없고(물론 사건은 끔찍하지만 끔찍하지 않은 살인 사건이란 없을 테니까), 매우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 그리고 주인공이 마르틴 베크 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팀’이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에 따른 역할 분담도 맘에 들고.
어렸을 때 아마 계몽사 문고판으로 맨처음 읽었을 것이다. 못생기고 마르고 심술궂은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그 당시에도 어 이 얘기 뭔가 좀 특이한데, 싶었었다. 동화라면 보통 주인공은 착하거나 순진하거나 진짜 가여운 처지에 있거나 하지 않나? 그런데 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어서 자신이 얼마나 고약한 아이인 즐고 모른다고 작가는 틈틈이 알려 준다...아무튼 나는 어쩐지 이 이야기에 쏙 빠져버렸고 메리 레녹스와 콜린과 디콘은 커서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이야기의 시대에서는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데 걱정도 하고 말이다.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교보클래식’의 한 권으로 냈다는 걸 알고 그런 기억들이 한꺼번에 살아났다. 읽으면서 보니 내 기억 속의 이야기와 거의 100% 같았다! 계몽사 문고판 책이 없어도 기억 속에 있으니 상관없긴 하지만 언제든 내킬 때 다시 펼쳐볼 수 있게 된 것도 좋다.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