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롤랜드의 오른쪽 손가락 두 개는 다시 자라지 않았다. 다른 세계에서 기계팔이라도 얻길 바랬는데. 7부나 되는 여정 중 고작 2부에서 이런 일이 ㅠㅠㅠ. 자기 주인공을 이렇게 모질게 굴리는 작가도 드물다. 프로도도 몸이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찢겨서 만신창이가 된 적은 없잖아!3부로 간다.
˝나는 아무래도 서부는 싫다. 말려죽일 것 같은 햇볕과 습기 없는 더위와 (무더위도 나쁘겠지만, 뭐) 널부러진 주제에 비윤리적 일들은 기승을 부리는(선후가 뒤집힌 건가?).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것이 힘들고 지겹다. 스티븐 킹이 살라고 해서 사는 것이겠지만 롤랜드랑 모든 인물이 불쌍하다. - 2009년 장마 여름 휴가 끝의 메모.˝라고 책 뒷면 속표지에 메모가 남겨져 있다. 아니 그런데, 다크 타워가 사실은 이런 이야기였단 말인가?! 8년 만에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에 끙, 하면서, 그냥 글자 읽고 책장만 넘기는 수준이라도 읽어 버리겠다고 나름 비장한 각오까지 했는데. 걱정과는 반대로 흥미로웠고 즐거울 때도 있었다. 음. 일종의 즐거운 반전. 스티븐 킹 소설 중 읽은 것이라곤 <리타 헤이우드와 쇼생크 탈출> 뿐이고, 호러 장르에는 아예 취미가 없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애초에 우리나라 번역본이 나오자 곧 사들인 이유는 ‘<반지의 제왕>과 서부를 결합한 판타지‘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맨 위에 쓴대로 서부가 지겨워서 결국 1부를 다 읽지도 못하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 버렸었다. 그 때의 지겨움이 아직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지금 이렇게 읽어낸 건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나? 아무래도 그때보다는 일상에 여유가 생겨서 속이 좀 넓어졌나? The man in black fled across the desert, and the gunslinger followed. 이제 2부로 간다!
다시 생각해 보면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세계에서는 진정으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으며 종종 이 소설에서처럼 대충 되는 일조차 하나도 없게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해도 부패한 시스템은 건재하며 부패가 오히려 그것들의 일용할 양식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스템 안에서 그들의 양식을 거부하면서 뭔가를 해보려는 개인들의 실패는 예상되는 것이어야만 하겠다.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지만 그 길은 개인을 아무 곳으로도 데려다주지 않는다. 영화는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도 다음 달에 영화관에 걸리나보다. 이완 맥그리거는 맘에 들지만 나오미 해리스라니...
정말 오랜만에 읽은 르 귄. 그런데 기억 속 르 귄의 어떤 소설보다 아니 내가 읽은 모든 소설 중에서도 단연 무섭도록 폭력적이고 슬픈 소설이다. 모든 폭력은 데이비드슨이라는 인물에 압축되어 있어서 그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장이 특히 읽기에 괴로웠다. 이 ‘사내‘의 폭력은 ‘사내란 다른 사내를 죽일 때와 여자를 덥칠 때 진정한 사내다‘라는 폭력이다. 그 폭력은 물리적 힘(결국 폭력)이 최종적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믿음(!) 위에서 더욱 극단까지 몰아친다. 그런데 그는 왜, 어떻게 그런 인간이 되었을까? 답은 소설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어쩌다 보니 그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인생 역정(?)에 -자세하게 서술된 건 없지만- 무슨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사내‘로서 그런 생각과 태도를 체득한 것이다. 만일 애스시인들이 그보다 훨씬 큰 체격에 육체적 힘을 휘두르는 존재들이었다면 그는 기꺼이 그들의 충실한 종이 되었겠지. 물리적 힘의 크기가 다른 존재들 사이에 수평적인 관계란 있을 수 없다. 꿇리거나 꿇거나 둘 중 하나이다. 나는 ‘남자‘라는 존재를 이해한 적이 없다. 그저 나와 같은 생물학적 종인 인간으로서 마음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 ‘인간‘이 자신이 ‘남자‘라고 주장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러려니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라고 생각해왔다. ‘여자‘를 무시하고 더군다나 폭력적인 ‘남자‘라면 어떤 식으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 같아 딱하게 보기도 했다 (물론 폭력 자체에 대해서는 책임을 확실히 물어야 하고). 그런데 르 귄이 보여주는 이 데이비드슨이라는 자칭 ‘사내‘는 그런 류의 폭력적인 남자가 아니다. 그에게 폭력은 수직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는 당연한 수단이다. 내가 그동안 ‘남자‘를 너무 순진하게 봐 온 것이 아닌지 진심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