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읽은 르 귄. 그런데 기억 속 르 귄의 어떤 소설보다 아니 내가 읽은 모든 소설 중에서도 단연 무섭도록 폭력적이고 슬픈 소설이다. 모든 폭력은 데이비드슨이라는 인물에 압축되어 있어서 그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장이 특히 읽기에 괴로웠다. 이 ‘사내‘의 폭력은 ‘사내란 다른 사내를 죽일 때와 여자를 덥칠 때 진정한 사내다‘라는 폭력이다. 그 폭력은 물리적 힘(결국 폭력)이 최종적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믿음(!) 위에서 더욱 극단까지 몰아친다. 그런데 그는 왜, 어떻게 그런 인간이 되었을까? 답은 소설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어쩌다 보니 그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인생 역정(?)에 -자세하게 서술된 건 없지만- 무슨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사내‘로서 그런 생각과 태도를 체득한 것이다. 만일 애스시인들이 그보다 훨씬 큰 체격에 육체적 힘을 휘두르는 존재들이었다면 그는 기꺼이 그들의 충실한 종이 되었겠지. 물리적 힘의 크기가 다른 존재들 사이에 수평적인 관계란 있을 수 없다. 꿇리거나 꿇거나 둘 중 하나이다. 나는 ‘남자‘라는 존재를 이해한 적이 없다. 그저 나와 같은 생물학적 종인 인간으로서 마음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 ‘인간‘이 자신이 ‘남자‘라고 주장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러려니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라고 생각해왔다. ‘여자‘를 무시하고 더군다나 폭력적인 ‘남자‘라면 어떤 식으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 같아 딱하게 보기도 했다 (물론 폭력 자체에 대해서는 책임을 확실히 물어야 하고). 그런데 르 귄이 보여주는 이 데이비드슨이라는 자칭 ‘사내‘는 그런 류의 폭력적인 남자가 아니다. 그에게 폭력은 수직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는 당연한 수단이다. 내가 그동안 ‘남자‘를 너무 순진하게 봐 온 것이 아닌지 진심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