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여단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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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보다 재밌고 훌륭한 2탄. 무겁기는 해도 깔려서 헉헉댈 정도는 아니다.

육체와 따로 떨어져서 물리적 실체로 존재하는 의식. 지능은 있지만 자의식이 없어 이것을 결핍을 생각하고 간절히 원하는 외계종족. 75년의 인생의 경험과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의식을 지닌 우추개척방위군 병사와 완전히 발육된(!) 성인 신체에 오만가지 지식을 갖추고 세상에 나와서 경험을 통해 자기만의 자의식을 만들어 간다고 볼 수 있는 유령여단의 병사들. 자의식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우화라고 생각했다.

결국 중요한 건 ‘경험’이다. 실제로 어떤 사건을 몸으로 겪으면서 의식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다른 사건과 상황에서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할지를 결정하는 진정한 자의식이다. 어떤 두뇌에 순식간에 지식만 왕창 밀어넣는다고 해서 얻어질 수는 없는 것. ‘이상과 현실의 차이’와 좀 통하는 것이 있는 생각. 아무리 좋은 얘기, 조언을 들려주어도 결국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

이 시리즈가 넘 재밌어서 당분간 존 스칼지에게서 벗어날 생각이 들지 않네. 편식을 너무 오래 하면 부작용도 커질 텐데.

“어떤 생물이든 생존 본능은 있지. 두려움인 듯하지만 두려움은 아니야. 두려움은 죽음이나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이 아니야. 두려움은 네가 네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지식 때문에 생기는 거야. 두려움은 실존적이야.”
- p. 389.

#books #john_scalzi #the_ghost_brig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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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 샘터 외국소설선 1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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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이라고 해서 나이가 엄청 많은 작가가 쓴 진짜 노인들 이야기일거라 짐작하고 별 생각이 없었는데 최근 휴고상 본선 리스트를 훑어보다가 존 스칼지를 다시 발견. 최근 리스트에 오른 상호의존성단 이야기를 읽기 전에 가장 인기가 많은 이것부터 읽어보자고 그냥 집었는데.

정말 재밌다! 이건 밀리터리 SF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밀리터리’의 ‘ㅁ’도 좋아하지 않는데도 엄청 즐겁게 읽었다.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상한 모양의 외계인이 왕창 나오는데도 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작가의 유머가 이 모든 비호감적 요소까지 재미로 바꿔놨다! 읽다가 몇 번을 소리내어 웃었는지.

1. 아주 오래 전에 아마도 고딩이 시절에 주말의 명화 같은 데서 <줄리아를 아시나요? Who is Julia?>라는 영화를 봤다. IMDb를 찾아보니 1986년 영화였다. 영어 제목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깊이 각인된 영화다. 한 날 한 시 같은 장소에서 트럭에 치어 몸 전체가 심하게 다쳤지만 뇌는 멀쩡한 여자(줄리아)와 갑작스런 두통과 실신 후 다른 신체적 이상은 없지만 순식간에 뇌사에 빠져 버린 여자(메리). 두 사람은 같은 병원으로 이송되고 의사들은 메리의 몸에 줄리아의 뇌를 이식하기로 한다. 이 때 기증자는 메리. 깨어난 사람은 줄리아. 신체적인 모든 것은, 목소리까지도, 메리와 똑같지만 기억과 생각과 취향은 모두 줄리아이므로. 사고 전 줄리아는 미모에 부유하고 모든 사람에게 부러움을 사는 여자였지만 메리는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인 여자였다. 이제 옛날과는 다른 펑퍼짐한 몸매에 별로 우아하지 않은 목소리를 지니고 살아가게 된 줄리아. 줄리아는 주변 사람들 특히 남편이 자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남편과의 잠자리에서도 마치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는 듯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게다가 아내의 신체를 기증하기로 동의한 메리의 남편은 깨어난 줄리아가 메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어 줄리아를 납치해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기까지 한다. 그러나 메리의 집에서 역설적으로 줄리아는 자신이 메리가 아니고 줄리아임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뭐 이런 이야기.

소설을 읽고 영화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도 비슷한 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 뒷표지에도 써 있으니 (“지구에 묻고 온 아내가 날 구하러 왔다!”) 이 정도까지 얘기하는 건 스포가 아니겠지? 그런데 이 소설에서 ‘사고 후 아내’는 줄리아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물론 ‘사고’의 세부사항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선택을 하는 이유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나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과 경험이 그토록 중요한 거라면, 사람은 정말 바뀔 수 없다. 특히 나에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의 바뀐 나는 그런 척하는 나이거나 아예 내가 아니거나 그런 걸까.

2. CDF(우주개척방위군)는 75세가 지나야만 지원할 수 있다. 일단 지원하면 유전공학적으로 강화된 완전히 젊은 육체에 정신을 옮겨 우주군대에서 복무하게 된다. 2년 안에 전투 중 죽을 확률이 70%가 넘는 군인(물론 지원할 때 군인이 된다는 건 알려 줘도 죽을 확률에 대한 얘기는 해주지 않는다. 그랬다간 지원자가 엄청나게 줄어들 테니까). CDF가 굳이 노인만을 지원자로 받는 이유는 이 임무가 2년 생존률 30%가 안될 정도로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아무래도 젊은이보다는 자신의 삶을 거의 다 살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낫다) 노인의 인생의 경험과 그에 따라오는 삶에 대한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한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지원하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물론 전직, 이하 모두 동일), 유치원 선생님, 대학교수, 심지어는 상원의원까지, 은퇴 후 늙은 몸을 가지고 무기력하게 남은 생을 견디는 대신 젊어져서 모험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지원한다. 우리의 주인공 존 페리는 작가(정확히는 카피라이터)였다. 그럼 나는?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물론 노 쌩큐지. 군인 아니라 다른 거라면 좀 생각해 보겠지만, 그보다 편한 보직(?)이라면 경쟁률이 엄청 높겠지. 경쟁에 또 뛰어드느니 그냥 조용히 늙은 상태로 묻히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네들이 신경을 써야 [개척 행성에 애착을 느껴야] 하는 것은 자네들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 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CDF(우주개척방위군)가 노인들을 병사로 삼는 이유 중 하나다- 자네들 모두가 은퇴했으며 경제적인 방해물이라서 데려오는 게 아니다. 또한 자네들이 자기 목숨을 넘어서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 만큼 오래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네들 대부분은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과 손자들을 키워 보았을 것이고.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목표를 넘어서는 일을 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 스스로 개척민이 되어 본 적이 없다고는 해도 자네들은 개척행성이 인류에게 좋다는 사실과 개척민을 위한 싸움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 이런 개념을 열아홉 살짜리의 뇌에 박아 넣기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자네들은 경험으로 안다. 이 우주에서는 경험에 의미가 있다. “
- p 206

“날 괴롭히는 게 그건지도 몰라. 결과에 대한 감각이 없어. 난 방금 살아 있는, 생각하는 존재를 집어서 건물에 집어 던졌어. 그런데 전혀 괴롭지가 않아. 그게 괴롭지 않다는 사실이 괴로운 거야, 앨런. 행동에는 결과가 있어야 해. 최소한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하고 있는지, 훌륭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짓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야 해. 난 내가 하는 짓이 전혀 끔찍하지가 않아. 그게 무서워.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서워. 난 저주받은 괴물처럼 이 도시를 짓밟고 다녀. 그러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를. 난 괴물이야. 자네도 괴물이야. 우리 모두가 인간 아닌 괴물인데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도 안해.”
- p 270

“여기엔 안정적인 기반이 없어. 내가 정말로 믿을 만한 것이 없어. 내 결혼 생활도 누구 나처럼 오르락내리락이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바닥이 단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난 그 안정감이, 그리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그리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들에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의미인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가 포함되어 있어. 난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던 시간이 그리워. 날 인간답게 했던 부분이 그리워. 그게 결혼 생활에서 그리운 부분이야.”
- p 276

“”물체를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옮기는 것이 본래 일어날 법하지 않은 사건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보자고. (•••) 물리학 적으로는 그게[물체를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옮기는 것] 허용이 돼.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이것은 양자역학 우주이고, 실제적인 문제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론적으로는 거의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거든. 하지만 다른 모든 조건이 동등할 경우, 각각의 우주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사건을 최소한으로 막는 편을 선호해. 특히 원자 단위를 넘어서는 사건은.”

“어떻게 우주가 뭘 선호할 수 있지?”

에드가 물었다.

“자네 수학 실력으로는 몰라.”

앨런(이론물리학자)이 말했다.

(•••)

“하지만 우주는 어떤 것보다 다른 것을 선호 하지. 예를 들어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선호해. 광속은 변하지 않게 하는 쪽을 선호하고. 이런 조건도 어느 정도는 변화시키거나 망칠 수 있지만, 그건 공사가 커. 이것도 같아. 이 경우,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물체를 움직인다는 것이 너무나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으레 물체가 이동해 간 우주는 물체가 떠난 우주와 똑같은 거야. 있음직하지 않음의 보존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 pp 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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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폭스 갬빗 3 - 나인폭스 갬빗 3부작, 완결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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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 끔찍하게 지루했어서 이걸 이어서 읽어야 하나 했었는데 거의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어버렸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쓰지 그러셨어요! 1탄은 제다오 망령에 눌린 체리스, 2탄은 제다오인 척 하는 체리스를 따라 가는 단선적인 플롯으로 뭘 이렇게까지 복잡한 척 썼나 싶었는데. 이능력과 그 효과는 그냥 뜬구름 잡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도대체 뭐라는 거야 투덜거리면서 거의 제치다시피 했고. 그러나 3탄은 쿠젠-제다오(또 제다오!), 체리스, 보호령-협정국 3축의 이야기가 긴박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플롯도 흥미진진하고, 제다오, 체리스, 쿠젠은 물론 다른 인물들도 1, 2부보다 입체적이고, 무엇보다 헤미올라와 1491625라는 걸출한 서비터들이 읽는 것을 즐겁게 해준다. 작가의 플롯과 인물을 만드는 능력이 일취월장했다!

근데 플롯과 관계 없는 일화나 대화들은 정말 너무나 쓸데가 없다. 특히 성적인 묘사들은 뭐, 너무 빡빡한 이야기라서 중간중간 쉬어가는 코너야 뭐야. 클릭 수 올리려고 뽑은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 제목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문장들만 들어내도 분량이 1/5은 줄고 훨씬 밀도 높은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편집자였다면 다 쳐내라고 작가를 들들 볶았을 텐데.

한 사람의 영생을 위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잔인하게 도륙하면서 유지하는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쟁. 대안으로 민주정(어떤 대표자든 선거로 뽑는 체제)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전쟁이 끝난 후 민주정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뭉칠수록 힘이 강해지는 “역법”의 세계’에서 어떤 이점이 있고 아떤 식으로 실현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민주정의 핵심인 다양성은 역법의 적, 아닌가? 주의해서 봐야 할 인물은 슈오스 미코데즈. 속임수를 몇 겹으로 두르고 여차하면 누구보다도 단호한 수단으로 걸림돌을 제거하면서도 이런 수단이 전면적인 전쟁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결코 정의롭지 않고 오직 실용적이기만 한 마키아벨리적 리더. 민주정의 지도자로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이인 듯 하지만 협정국을 안정시키는 정치력은 누구보다도 출중한. 제다오가 사람이 되고 싶어한 여우라면 미코데즈는 그냥 여우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 알고 하는 노회한 정치가이다. 미코데즈가 알고 있는 것의 백 분의 일의 정보고 갖고 있지 못한 일반 대중은 그의 가치를 알 수도 평가할 수도 없겠지. 인류의 역사에 이런 정치가가 있었던가?

재밌게 읽었지만 휘발되고 말 즐거움 외에 뭔가 더 생각해볼 만한 것이 남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알고 보니 구미호는 두 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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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폭스 갬빗 2 - 나인폭스 갬빗 3부작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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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읽었는지 모르겠다(그러면 별점은 무슨 의미?). 대단히 지루했다. 이해할 수 있는 인물도 마음을 줄 수 있는 인물도 없고. 한 등장인물이 말 한 마디 하면 왜 이 말을 했는지 작가가 설명하고 다른 인물이 대답을 하면 또 이건 무슨 생각으로 한 대답인지 설명하고. 이러니까 지루하고 대화가 대화같지 않고. 더 큰 문제는 설명을 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다. 나의 총기가 겨우 여기까지여서인 건가...? 차라리 그냥 시간 낭비였다고 우기고 싶닷!

결국 ‘어느 편이 이겼나’만 알고. 꾸역꾸역 3탄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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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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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시급합니다>에서 ‘울분을 느낄 때’ 항목(?)에서 봤다. 갖고 있은 지는 아주 오래 됐고. 어떤 계기로 쌓았는지 잊었을 정도.

길지 않기도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니 놓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환하게 시작하는데 이야기가 뭔가 조금씩 삐걱거리면서 슬금슬금 무서워지는 스릴러 아니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그새 오소소 돋은 소름이 가라앉지 않는 이야기. 사이코패스 살인자 아들을 둔 엄마의 이야기 인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뮤지컬 <위키드>의 대사 (“사람들은 사악하게 태어나는 걸까요? 아니면 사악함이 그들을 덮친 걸까요? Are people born Wicked? Or do they have Wickedness thrust upon them?”)를 자꾸만 떠올리게도 하고.

<이 책이 시급합니다>의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우선 미혼이나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는 여성에게는 권하지 않는다고 썼다. 과연 내가 십 년 전에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더 무서웠을 것 같다. 그 때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지금의 나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해서 덜 무서운 것도 아니다. 어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악함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상상만 해도 떨린다.

나는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들 생각하는 것이 늘 이상했다. 당신 닮은 예쁜 딸, 잘 생긴 아들을 갖고 싶다, 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특히. 그건 뭔가, 예쁜 커튼이나 멋진 정원 같은, 집과 가정을 그럴 듯하게 만드는, 그런 걸 원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는 결코 내가 꿈꾸는 가정에 어울리는 것(!)을 내 마음대로 골라서 데려올 수 있는, 혹은 그렇게 빚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이는 내 유전자를 받아서 내가 뱃속에서 품고 키우기는 하겠지만 일단 세상으로 나오면 나와는 별개의 존재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노력하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는, 그저 다른 사람.

이 소설의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책임감 있는 부모, 대여섯은 되는 아이들이 커다란 집에서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을 갖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부부다. 그래서 (내켜하진 않았지만) 남편의 (부유한 여자와 재혼해서 부자가 된) 아버지의 도움으로 런던 교외에 커다란 집을 사고, 한두 해 터울로 다섯 명의 아이를 낳는다. 물론 그렇게 어린 아이들을 한꺼번에 다 키울 수 없으니 아내의 홀로 된 어머니가 거의 함께 살게 된다.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까지는 괜찮았다. 교외의 큰 집으로 부부의 친척(남편의 이혼한 부모와 각각의 배우자들, 누이, 아내의 자매들과 그 남편들과 아이들, 기타 등등)이 명절마다 큰 집에 모여 대가족의 화목함을 즐기고 부부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다섯 번째,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난폭하고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들이 태어난다... 해리엇은 남편이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 아이를 두려워하지만 결코 버릴 수는 없었는데 그녀의 이 결정 때문에(!) 결국 가족은 뿔뿔히 흩어지고 가족애도 희미해진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조차도.

이것은 물론, 아무리 이상한 자식이라도 어미라면 모성애로, 눈물로 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어머니를 정죄하는 이야기가 아니다(아니어야 한다!?). 자기들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화목한 대가족이라는 이상에 사로잡혀 아이를 마구 낳기만 한 부부가 벌을 받는 이야기도 아니다(아니어야 한다?!). 이것은 ‘이상’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계획과 실행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렇게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다섯째 아이 벤은 너무나도 이상하고 무서운 존재다. 해리엇은 마치 지금의 인류가 갈라져 나오기 전 원시인류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아이같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외모도 행동도 옛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 같은 아이. 정말 ‘사람’인가 싶은 아이. <케빈에 대하여>의 케빈처럼 사이코패스인 것이 아니라 아예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것 같은 존재. 이런 아이를 낳았다는 건 뭐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천재지변이다. 이런 아이가 태어나야 할 어떤 필연도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조물주(작가!)가 이 행복한 가정에 그냥 심술을 부린 건지도 모른다. 이래서야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도 다 부질없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의미보다 괴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인데 번역은... 영어는 잘 하지만 한국어로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의 번역인 듯 까끌거린다. 뒤에 붙은 작품 해설은 괜찮은데.

#books #theFifthChild #Doris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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