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신을 따르는 친구였다고요. 당신의 약속 행진. 위험하고 위태롭고 결국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맹목적인 그 죽음의 약속에 좋아요, 좋아요를 모르핀처럼 톡톡 눌렀던 친구였어요. 라라라, 아아악. - P90

"그러시다면 음, 다시 돌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사정이 있어서요." - P95

"아니. 아직은 아닌데요. 곧 강도짓을 한다고 했어요.
강도라고." - P98

점원은 무슨 말이든 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자는 무서운눈으로 점원을 노려보며 검지를 올려 자신의 입술에 댔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그 신호에 점원은 말문이 막혔다. - P108

"장난이야."
모자는 응급 벨을 누르고 정신을 잃은 듯 쓰러졌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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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목소리를 확인한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들릴만큼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2층을 더 올라가야 하는 12층에 살았다. 이곳에선 흔히 있는 일이긴 했다. 이 소란에 아무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 앞집은 비어 있는 것이 확실했다. - P41

다혈질이거나 과격한 노인들이 채팅방에서 발언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호응이 없었다.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밥은 너무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들리는 얘기로는할머니 한 분이 식당 앞에 서서 ‘저 놈들이 노인네들 밥 굶기려고 밥값 올리지 말라고 한다.‘라고 주장하는 서글픈 시위도 있었다고. - P49

난 갑자기 이 모임의 유일한 남성 멤버인 할아버지가궁금해졌다. - P55

"그래. 다 사는 방법이 다르니까. 우린 친구랑 같이 다니는 걸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인생이 별거야? 내가 세계 구석구석을 다 다녀 봤는데 어디가 제일 좋았냐 하면 말 통하는 친구들하고 다닌 데였어. 난 지금 여기 이 사람들이 좋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그나마 건강할 때 옆에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는 게 최고지. - P56

• "아휴, H 할아버지가 문제야. 이분은 기타를 잡아 본 적도 없고 할머니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셔서 생활이 복잡하시다네. 그런데 기타라도 배워야 살 것 같다고 오셨는데." - P61

"회장은 죽어야 그만두는 거 아닌가?"
남편이 회장이 되었던 첫날을 상기하며 말했다.
실버아파트의 기타 동호회는 그랬다. 기타를 치러 모였지만 기타보다는 노래와 사람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었다. - P63

그렇지, 여긴 실버 카페지.
웬만한 일들은 그러려니 넘어가는 부분이 많은 사람들의 세계에 내가 살고 있었다. 복인지 화인지. - P69

"정말 갓난아기처럼 뭘 할 수가 없네요. 저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밥도 먹을 수가 없고 화장품을 바를 수도 없어요.
옷도 입지 못하겠으니 어떻게 교회를 가겠어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됐어요." - P77

아하, 이렇게 치매가 생기는가 보다! 너무나 생각이 복잡해서 도저히 풀릴 기미가 안 보일 때, 가위로 엉킨 실을 싹둑 잘라 버리듯 그렇게. - P93

"영감님들, 대벌레를 잡아야 나라도 있는 거요. 산에 이렇게 매일 오르면서 저 해충을 한 마리라도 잡아 봤어요? 나라가 산이고 산이 나라지 뭐. 산이 다 망가져도 나몰라라 할거요?"
드디어 나의 장군 할머니가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 P101

역시 이 아파트엔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얘기하자 남편이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답변했다.
"나한테도 아저씨라고 해."
무어라? 남편은 누가 봐도 할아버지인데 - P105

"곳곳을 다니면서 기도하고 있어요. 여긴 노인들이 많이 계신 곳이잖아요. 그분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죠. 이 산에 오르시는 모든 노인들을 위해서요. 저도 여기살거든요." - P113

나의 현재를 예쁘고 젊다고 봐 준 노인들은 분명히 나의시간을 지나간 분들이다. 그분들이 굳이 내게 말을 걸어온것은 늙음을 앞당기지 말라는 사인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사인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을까. 내일은 예쁘게 꾸미고 식당 앞에서 고운 할머니를 기다려 봐야 할 모양이다. - P125

앞으로는 절대 ‘할머니들은 다 똑같아‘라고 생각하거나얘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세히 보면 그들도 다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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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어가고 비는 자꾸 내렸다 우리는 작은 빛에 의지하여 어둠 속을 걷고 또 걸었고있다 - P53

종종 마당에 빛이 내려와 한동안 머물다 떠났다 자주 슬픔을 느꼈으나 까닭이 떠오르지 않았다 - P55

먼 곳에서 이름 모를 개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 P57

캐나는 개에게 밥을 주고 오래도록 개를 오래 쓰다듬었다 - P61

갈 곳 없는 새들이 저 하늘 위를 오가고 있다 - P65

품속에 있는 것은 오늘의 일당 나의 전 재산 그렇게 마음먹고 거리로 나선다 - P115

그러다 짧은 산책로를 벗어나면 멀어지는 사람들홀로 남는 개가 하나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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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앞집 주인을 봤지만 역시 뒷모습뿐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골프 가방을 끌고 다니는 키 큰 여인을복도 끝에서나 멀리서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어쨌거나 우리처럼 집에만 있는 분은 아니었다. - P39

기척이 나서 소파를 보니 정신을 차린 남편이 다시 책을 끌어다 보는데 그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 P45

당연히 승리한 식당은 설문 결과를 밝히는 대자보를 붙였다. 사족을 달아서.
‘7,000원으로 하자는 입주민도 있었으나 6,000원 쪽이좀 더 많아서 이리 결정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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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모두 죽을 거야."
아빠가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그것뿐이었다. - P11

"당신처럼 생각하던 밤이 내게도 있었소. 그 밤 역시 두번째밤이었소. 그때 노인이 내게 말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이와똑같은 전쟁이 있었다고. 그래서 더 슬프다며 노인은 울었소.
그 노인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이오." - P12

기억나니? 언젠가 두 개의 태풍이 동시에 올라오던 여름을. - P17

• 내가 외로울 때,
상관없는 사람은 몰라.
내가 외로울 때,
친구들은 웃어.
이 쿠모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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