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놓는다.•훌쩍 가까워진 혜수의 손에서 보송한 비누 냄새가났다. - P118
나 어릴 때 주공 아파트 살았다. 그때는 주공 아파트가우리 동네에만 있는 줄 알았어. 옆 동네 애가 주공 아파트 산다고 하면 어? 너도 주공 살아? 그랬지. - P119
혜수 덕분에 뿌듯해진 나는 나를 궁금해하지 않고 떠올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진경에게 괜히 우쭐거리고 뽐내고 싶어진다. 진경, 잘 지내니? 나는 너와 다른, 나와 다른 이 사람이 좋다. 그때와 다른 사람인 내가 좋다. - P121
나의 가장연한 부분은 남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다. 내 입안의 혀를 가장 자주 피 흘리게 하는 것이 입 밖에서 들어온 무언가가 아니라 입속 유난히 뾰족한 송곳니인 것처럼. 나를 다치게 하는 건 나다. 나에게 가장 날카로운 것도 언제나 나 자신. - P123
깍지 끼듯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바다 한가운데에 육중한 말이 헤엄치고 있었다 꽃을 물고 건너편으로강가에 앉아서가고 있었다 - P76
내게 이 말은 양방향이다 지구와 가까운 근미래의 슬픔을 뜻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따라 수원에 갔다가맨 처음 오래된 성을 본 곳이기도 하다 - P79
벌교처럼 다리를 활짝 벌린 채우리는 꼬막 같은 꼬마를 끌어안았지 - P81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건지 궁금한 준 이모에게 - P9
보내준 영상 받았어. 어디 있길래 글자 하나 없이 영상만 보낸거야? 혹시 인터넷도 안 되는 곳만 골라 다니는 거야? 그래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예전에 말해준 대로 아름답더라.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 메일도 너무 길게 쓰면 못 갈까 봐 여기서 줄일게. 꼭 다시 연락해줘. - P9
설마 번호를 바꿔가며 또 전화를 해올 줄은 몰랐다. 일주일 뒤,솔민은 일요일 아침 여덟 시 정각에 울리기 시작한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피곤한 직장인을 괴롭히는 사람이 많은지 생각하다가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P11
[제가 원하는 건 그냥 수녀회를 취재해주시는 것뿐이에요. 순수한 호기심. 궁금함. 수녀회의 일을 속속들이 알고 싶은 마음. 수녀님들의 멋진활동을 알리고 싶은 마음. 미놋으로 하실 필요도 없어요. 멀쩡한 본업이 있으시잖아요.] - P13
싫어하는 마음은 쓰나미 같다. 잔잔한 것 같다가 순식간에 높아진 수위로 거세게 모든 것을 덮친다. 일단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하면 처음 싫어하게 된 이유로부터 그사람의 전체로 번져간다. 입는 거 씹는 거 걷는 거 웃는거 말하는 거 하나하나 거슬린다는 것을 안다. 나도 싫어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으므로. - P114
그 순간 어떤 자신감이 생긴 나는 다 읽은 혜수의 글을다시 건네주며 그럴까?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민 손을덥석 잡는 순간의 쾌감은 잘 마른 얼음을 밟아 깨는 순간의 쾌감과도 닮아 있었다. 혜수는 내가 건네는 종이를 박력 있게 잡으며 말했다. - 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