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때의 그것과 닮았다. ‘술‘과 ‘설‘은 모음의 배열만 바꿔놓은 꼴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 ‘설‘을 연기하던 나는 어느덧 크게도 아니고 자그마하게 ‘설‘을 푸는小설가가 되었다. - P271

에서 나는 자꾸 조갈이 난다. 오늘은 또 누구와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 설을 풀 것인가. 그 누구는 점점 줄어들고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몇번 입술을 깨물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나란 인간은(A와 마찬가지로) 결코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가없다. - P272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만이 상대방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달리 말하면 이것은 막연한 ‘거예요‘와 분명한 ‘알겠어요‘의 차이이기도 하다.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어야 한다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권여선의 소설은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다.
요즘의 나에게 문학과 관련해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없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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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는 (스스로 원했든 그렇지 않든) 현재 할리우드의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자 이후 세계의 변화를 예고하는 분기점이 되었다. 아마 제이, 제삼의 <기생충>이 나올수도 있을 거다. 다만 그게 한국 영화일지는 모르겠고, 꼭한국 영화일 필요도 없다. 한편 봉준호 자신은 이 기분 좋은소란이자 기적 같은 만남을 뒤로하고, 뚜벅뚜벅 자신의 호흡으로 영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다음 최고작을 기다리면 족하다. - P287

오리지널 왕도道 판타지를 극장에서 마주하는 기쁨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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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란 말이야, 우리 김가는 이렇단 말이야. - P192

아마 당시에 과외가 허용되었다면 혜련이 경안에게 그런 부탁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랬다면 산도적이 그들의 학교에부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서른두살에 다시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은 과외금지 조치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 P193

"우리 아줌마들은 그런 거 없어. 위스키에 고추장찌개가 어때서? 우리 저번에는 위스키에다 뭐 먹었더라, 선미야? 되게 이상한거였는데?"
"멍게였나? 낙지였나?" - P195

이렇게 낮게 속삭이듯 말하고 선미는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갔다. 블라우스와 치마가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것이 그나마 선미에 대한 경안의 참을 수 없는 경멸감을 다소 누그러뜨려주었다. - P207

그녀가 꼼장어집에서 그를 생각하고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접질린 그녀의 발목을 잡던 뻐근한 악력이나 그녀를 부축해 계단을내려가던 그의 돌 같은 어깨와 가슴의 근육, 짙은 땀냄새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심하고 정교한 젓가락질이었다. - P222

"장어 사준대서 가보니 꼼장어네. 꼼장어면, 꼼장어, 해야지 왜씨발 그걸 장어래냐고? 윤선생, 내가 꼼장어 먹고 몸보신한다는 얘기는 듣다듣다 첨이야. 끝까지 아주 큰 놈으로 달래는 거 보라고.
꼼장어가 커봐야 꼼장어, 꼼장어 크면 장어 되냐고?" - P233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 P242

오래된 얘기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
"악덕과 악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하마르티아(hamartia) 때문에"
(『시학』 13장) 불행에 빠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마르티아‘란 원래
‘화살이 과녁을 비껴가는 일‘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① 단순한판단 착오나 실수인지, ②주인공의 도덕적 · 성격적 결함인지가 불분명하여 여전히 논란거리다." 일단은 전자로 볼 여지가 더 크다. - P243

물론 인간은 때때로 다른 인간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잔혹한 농담을 하는 인생의 입을 영영 틀어막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 P248

이미 오래전에 빅터 프랭클 같은 이는 인간은 이성으로 사유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받는 인간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더 중요한 측면이라고 과감하게 말하면서 ‘호모 파티엔스(homo patiens)‘라는 명칭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나는 「봄밤」과 「이모」 같은 소설을 읽으며 ‘호모 파티엔스‘를 달리 번역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고통은 ‘고통을 받다‘라는 형태로만 사용되는데 이 경우 인간은 고통에대해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것으로만 이해된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해내기도 한다. 환자(patient)는 견디는(patient) 사람이다. - P259

페소아는 『불안의 책』에 이렇게 적었다. "자유란고립을 견디는 능력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살 수 있다면, 즉 돈이나 친교, 또는 사랑이나 명예, 호기심 등, 조용히 혼자서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들을 해결하려고 다른 사람들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 당신은 자유롭다. 만일 혼자 살 수 없다면당신은 노예로 태어난 사람이다. 아무리 고귀한 영혼과 정신을 갖고 있다 해도 혼자 살 수 없다면 당신은 귀족적인 노예, 지적인 노예일 뿐이고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이런 자유를 그는 처음으로 누리고자 했을 것이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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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질러 가는 영화를 바라볼 수밖에 - P173

우연 뒤에 필연이 보인다 - P209

다만 <염력>이란 작대기 자체에대한 호불호를 잠시 젖혀두고서라도 그 주변의 물결의 형태에 대해서는 좀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창작자에겐 고약한 말이 되겠지만 어쩌면 창작자의 본질은 실패를 통해서 새어 나오는 법이다. 연상호는 꾸준히 실패한다.
그리하여 길을 잃지 않고 전진한다. - P221

그 감정이 거기에 있다홍상수 초심자가홍상수 초심자를 위해 쓴 가이드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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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나자 경안은 기분이 이상했다. 그들을 만나고 싶은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혜련이 왜 자기가 결혼하지 않았을 줄 알았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경안은 창문을 열고 담배를피웠다. 그들이 이렇게 제멋대로인 게 불쾌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했다. 어쨌든, 하고 경안은 담배를 눌러 껐다. 셋의 만남은 자기손을 떠난 문제였다. - P184

그들은 여전히 예쁘고 늘씬했다. 혜련은 세트를 만 길고 풍성한까만 머리에 흑백 바둑판무늬 재킷을 입고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슬림한 흰 반바지에 발목까지 둘둘 감기는 검정 가죽끈 샌들을 신었다. 선미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단발머리에 차이나칼라의 은회색 블라우스를 입고 진회색 플레어스커트에 회색 구두를 신었다. 둘 다 키는 예전부터 컸으니 말할 것도 없고, 혜련은 한눈에도더 아름다워진 게 느껴졌고 선미는 귀엽던 태를 벗고 우아해졌다. - P187

그냥이 어딨냐 말이야, 그냥이? 수학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세상천지에 그냥이 어딨냐 말이야, 그냥이?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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