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때의 그것과 닮았다. ‘술‘과 ‘설‘은 모음의 배열만 바꿔놓은 꼴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 ‘설‘을 연기하던 나는 어느덧 크게도 아니고 자그마하게 ‘설‘을 푸는小설가가 되었다. - P271

에서 나는 자꾸 조갈이 난다. 오늘은 또 누구와 술을 마시고 누구에게 설을 풀 것인가. 그 누구는 점점 줄어들고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몇번 입술을 깨물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나란 인간은(A와 마찬가지로) 결코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가없다. - P272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만이 상대방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달리 말하면 이것은 막연한 ‘거예요‘와 분명한 ‘알겠어요‘의 차이이기도 하다.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어야 한다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권여선의 소설은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다.
요즘의 나에게 문학과 관련해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없다. - P2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