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넘게 직장생활하며 번 돈을 스무 달 동안 다 쓰기로 작정하고 육십 년 묵은 폐가를 고쳐 세상 무엇과도 닮지 않은 가게를꾸렸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십년 넘게 반복되던 업무의 틀 바깥에 잠시 누워 그림책 속 생쥐 ‘프레드릭‘처럼 햇볕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 P9

삶은 느슨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마저도예기한 대로 흐르지만은 않았다. - P9

게다가 국회 정문 바깥은 엄밀히말하면 국회 출입 기자의 영역도 아니었다. ‘내 소관이 아니야‘라고자위하며 국회에서 불과 몇 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밤새 오들오들떨며 이야기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던 그들을 외면했다. - P17

정 이입되지 않겠다고 얼마나 다짐을 하고 갔던지 그 다짐을 어느 정도 이뤄내는 내 모습을 보면서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 P17

모든 게 불분명하기에 불현듯 불안감이 덮쳐오는 나날이 반복됐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따라 흘러보기로 했다. 흐르다보면 뜻밖의 강물을 만나거나 먼바다가 열릴 수도 있으니까. 그물살에 몸을 싣고 느긋한 마음으로 유영하다보면 어느새 성공이나인정욕구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내가 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 P21

그러다 번뜩 떠올랐다. ‘이야기를 찾아 항해하듯살 수는 없겠지만 나만의 방을 차려놓고 떠도는 이야기를 초대하며살 수는 있지 않을까?‘ - P24

우리는 대부분 안 해서 단념하지, 못해서 단념하지 않으니까. - P26

사는 동네를 옮기려면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옮겨야 한다. 머무는곳이 달라지면 사람의 생애도 뒤흔들리기 마련이니까. 나는 이제껏그런 변화를 거의 실감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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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로 나와서는 겨우 한달 남짓 산대요. 가끔은 궁금해요. 한달간의 생이 존재한다면, 나는 누구를 가장 먼저기억하고, 누구를 가장 마지막으로 떠올릴지. - P125

요즘은 사람을 만나면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들어요. 나한테 뭐 원하는 게 있어서 접근하는 건가 깔보는 건가 싶고, 별거 아닌 말에도 화가 나고. - P125

재하의 말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됐어.
그러지 말고 저기 서보세요. - P127

역광이 심해 누가 그애고, 누가 나인지 구분조차 어려웠다. 잘못 찍은 사진이었지만 누구도 다시 찍자고는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재하는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빛 아래 우리는 두점 그림자 같았다. - P129

창밖을 보았다. 버스는 탄천교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들었다. - P132

온전히 혼자 누리는 것만 같은 기이한 충만함에 잠기곤합니다. 특히 스트리트뷰 속에 정물처럼 멈추어버린 사람들의 표정과 마음을 더듬을 때면 잠잠히 흐르던 시간이그대로 고여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나 혼자천천히 누군가의 기억을 걷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 P136

이 사람은……… 제형이에요.
오호, 재하 상과 닮았어요.
그런가요?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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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진짜 가? 나를 버리고?"
독골댁이었다. 독골댁은 의자 밑에 말아놓았던 기저귀를 발로차며 불퉁거렸다. - P121

"같이 안 들어가고?"
"애 하나 주고 오는 게 뭐 어렵다구. 난 순경이라면 딱 질색이야. 발바닥 아파서 저기 가 앉아 있을라니까, 혼자 들어가서 저거하셔." - P123

순경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가방을 챙겨문을 나섰다. 문 옆에 걸린 해양경찰 팻말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독골댁은 어디로 갔는지 뵈지 않았다. 우선 독골댁부터 찾아야 했다. - P125

‘당연히 사랑했지. 당연한건 뭐하러 물어?‘
‘그러게, 당연한걸 왜 물었을까?‘ - P134

우리는 왜 그렇게 행복하기만 했던 걸까요.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에게 사랑스럽기만 했던 걸까요.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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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무덤덤해질 때 - P61

지금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고, 많이 간추려져서 나다움을유지하기 위해 따로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혼자 달리기를 할 때, 내가 나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는 감각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 - P61

K출판사의 제안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강점으로 생각해 그것을 활용하자는, 어찌 보면 안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산책 출판사에서제안한 방향은 내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저술업 초기에는 불안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사람들과 이야기나 고민을 나누고 싶고, 정보도 교환하고 싶고, 혼자인 것이 적적해 얼마간 사교 활동에 혹하게된다. 하지만 작가업을 오래하면 할수록 이 특수한 업종은 어디까지나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직업임을 알게 된다. 독자도 좋고, 동료 작가도 좋지만 근본적으로는………… - P119

그러니까 내 마음이 약간 애매하다 싶을 때는 지금이라도 당장 도망치는 것이 좋겠다. 책 같은 것은 쓰지 않고도 이 세상과 나 자신한테 이로울 수 있는 방법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어도 글을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절실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나로서도 말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늘고 길게 망해보기로 한다. - P121

글을 쓰려면 내 안에 무언가가 많아야 한다고 했는데,
내 안을 채우는 방법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길어 올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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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지어진 집,
그 집과 동갑내기인 라일락나무 - P33

이렇게 서재를 짓기로 하고 이름까지 정하는 사이 계절이 훅 바뀌었다. 어느새 봄이었다. 이듬해 봄이 열리기까지 일 년여. 그사이 해야 할 것들의 순서를 차근차근 정하기로 했다. 먼저 서울을 벗어나어느 도시, 어느 동네에 정착할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 P27

소망은 결심이 되었다. - P21

지금은 문화가 꽤 바뀌었다지만 당시만 해도 잘나가는 기자가 되는 암묵적인 공식이 있었다. 사회부 경찰기자가 특종을 많이 터뜨리거나 임무를 잘 완수해내면 주로 법조팀이나 정치부로 부서를 옮겼다. - P15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다가왔다. 가을이 되면 왜 책을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많아져 보이는 걸까? 나도 그랬는지 짧지도 길지도않은 생을 되짚어봤지만 딱히 계절과 독서의 명료한 상관관계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 P39

햇볕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 P5

남춘천역에 내려서 의암호로 흐르는 공지천을 따라 서쪽으로 이십여 분 그리고 이어지는 약사천으로 물길을 거슬러 십여분 걷다보면, 삼십 년 전 그려둔 그림처럼 낡고 더딘 동네가 나타난다. - P5

이 이야기는 육림고개에 다다르기 전, 그러니까 한줌의번잡한 세계라도 이르기 직전 나오는 언덕 끄트머리 샛길의 어느게에 관한 스무 달의 기록이다. - P6

목가적인 마을의 깊어가는 밤 풍경이 수채화처럼 걸린 창가를 바라보며 흔들의자에 앉아 밤새 책을 읽다 잠들 수도 있다. 북스테이‘인 셈인데 여느 곳과는 숙박 기준이 다르다. 며칠을 머물든숙박비를 당장 받지 않기 때문이다. 머물에 대한 대가는 오년 뒤에돈이 아닌 것들로 내면 된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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