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의사의 말대로 되었다. 엄마는 복수가 차오르고 두통과 구토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섬망을 보는지허공을 향해 손짓을 하며 중얼거렸다. 휘파람을 불 때도있었다. 어쩌면 한숨을 쉬는 것인지도 몰랐다. 한숨은 때로 휘파람 소리처럼 들리니까. 좋은 꿈을 꾸는 중이라고말해준 사람은 영주 이모였다.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 같아서 조금 안심이 됐다. - P169

기숙사 생활은 삐걱거리는 옷장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곰팡내가 심해서 한참 환기를 한 후 엄마의 방식대로 서랍장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양말과 속옷을 작은 크기로 접어서 넣어뒀다. 한방에 배정받은 동기는 밤이 되자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기숙사의 허술한 냉방과쿰쿰한 냄새를 불평했다. - P173

"왜요?"
왜요는 일본 요고." - P174

"세 사람의 이름이 다 그런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언젠가 내가 묻자 엄마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내 이름은 경주였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가장 좋아하는지역의 이름을 따서 내 이름을 지었다. - P175

다시 만난 이후 이모가 이렇게 오래 입을 다문 건 처음이었다. 만약 뜨개질이 아니었다면 이모는 무슨 핑계로소란한 마음을 감추었을까.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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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거 말고 다른 건 안 필요해?
물건을 계산할 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어 놀란다그 사람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 P79

다음 장을 펼치는 대신다른 책의 아무렇게나 펼쳐진 곳을 읽었다 - P83

자켓의 규범 표기는 재킷이라고 한다 - P85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은 있다. - P87

살아라라는 말이 비겁하게 느껴질 때도 - P88

내게 날개가 없어서 다행이다날개가 있었다면 떼어내고 싶은 것이 하나 더 늘어났을지도 모르니까 - P91

무게는 항상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나왔다 - P94

나는 절반쯤은 개다. 나는 절반쯤은 풀꽃이고, 나는 절반쯤은 비 올 때 타는 택시. 나는 절반쯤은 소음을 못 막는창문이다. 나는 절반쯤은 커튼이며,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 나는 절반쯤은 벽. 나는 절반쯤은휴지다. 절반쯤 쓴 휴지다.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렸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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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걱정하든 그 이상을 쓰는 게 내 목표다. 아,
다음 안주는 뭐 쓰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 P9

어떤 성급한 동네 의사는 내가 네 살 때 기관지가좋지 않아 평생 바닷가에서 요양하며 살지 않으면 요절하기 십상이라는 망언을 해 우리 어머니를 기함하게 했다. - P17

그런 유치한 입맛을 가진 채로 나는 성년이 되었다. - P19

김밥은 너그러운 음식이다. 김과 밥만 있으면 나머지 재료는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김밥은 아름다운 음식이다. 재료의 색깔만 잘 맞추면 이보다 어여쁜 먹거리가 없다. 그래서 김밥에는 꽃놀이와 나들이의 유혹이 배어 있는지 모른다. 지참하기 간단해서가 아니라그 자체가 꽃밭을 닮아서.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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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고 기쁜 눈을 가진 캐릭터가 있는 옷을 입히고교실로 돌아왔다 - P75

그렇지만 조금 특이한 모양처럼 보이거나 보관하고 싶다면 누군가 가져가도 괜찮다.
엉뚱하거나 피상적인 격언을 새기더라도. - P71

이인분의 밥을 차리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지도않고말없이 식사를 하는 동안 - P59

그러나 진짜 화는 소리가 모두 사라지는 방에서 내기로했지. 그 전까지는 욕하고 소리쳐도 가짜라고. 우리의 진심을 아무도 모르게, 서로도 모르게 꺼내놓자고. 그러나우리는 같이 있을 것이고 그 장면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 P57

예측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했다.
미친놈이 그랬다고 했다. - P49

뜬금없이 흰 꽃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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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언젠가 식당을 차리게 된다면냄비국수와 김치볶음밥은 꼭 팔고 싶어요.
냄비국수는 1인 1냄비에 끓여내는 잔치국수로뜨거운 국물, 풍성한 고명에 매운 양념장을 곁들이고김치볶음밥은 제대로 불질을 해서 볶아김치는 쫄깃하고 밥알은 살아있을 거예요.
술꾼들을 위해 술도 팔고 싶지만, 모르겠어요.
다른 손님들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요.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내고 인터뷰나 낭독회 등에서 틈만 나면 술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주변 지인들이 작가가 자꾸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지면 좋을 게 없다고 충고했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앞으로 당분간은 술이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소설을 쓰겠다고 술김에 다짐했다. 그래서 그다음 소설을 쓰면서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 - P5

A와 B가 만나 자연스럽게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내용을 쓰다 화들짝 놀라 삭제 키를 누르거나 통째로 들어내는 일이 잦다보니 글의 흐름이 끊기고 진도가 안 나가고 슬럼프에 빠졌다. 모국어를 잃은 작가의 심정이 이럴까 싶을 정도였다. 다시 나의 모국어인 술국어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허벅지를 찌르며 참았다. 그 결과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가긴 했으나 밥만 먹고 나오는 장면으로 소설을 마감하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러자니 얼마나 복장이터지고 술 얘기가 쓰고 싶었겠는가.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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