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위도에 위치한 지대에는 하지를 전후한 몇 주간에 걸쳐 해질녘 어스름이 길고 푸르러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이 푸른 밤은 이 책에서 이야기될 시간의 많은 부분 동안 내가 살았던, 강렬한 빛과 함께 해가 저물면서낮이 끝나버리는, 아열대 캘리포니아에는 없고 지금 살고 있는 뉴욕에는 있다. - P7

이 책의 제목을 ‘푸른 밤‘이라 붙인 것은,
쓰기 시작했을 당시 내 마음이 갈수록 질병, 약속의 종말, 남은 날들의 감소, 쇠락의 불가피성, 빛의 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푸른 밤은 빛의소멸의 반대인 동시에 그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 P9

2010년 7월 26일.
오늘은 그 아이의 결혼기념일이었을 날이다. - P10

모두 다 그 아이의 선택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들인 감상적인 선택들이었다.
나 또한 기억하는 것들이었다. - P11

감상적인 선택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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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 P57

안녕하세요. 홍석주입니다.
들어와요. - P59

아, 맞다. 장대리, 아니, 장과장. 우리 그 지난달에 낸 책.
그거 여기 있나? 한번 보여주면 좋을 거 같은데? - P61

대충 짐작하고 있겠지만 편집 일은 교열 일과 많이 다를 겁니다. 우리 부서에서 일하게 된다면 어떨지 생각해봤어요?
본인의 강점이 뭐가 될 거라고 예상합니까? - P63

편집부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날 때까지도 석주는교열부로 출근하는 실수를 종종 했다. 이른 아침, 일층 교열부 사무실을 향해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이층 편집부로 발길을 돌리는 식이었다. 소속과 직무가 바뀌었지만 마음의 일부는 여전히 교열부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건 석주에게 제대로된 업무가 주어지지 않은 탓인지도 몰랐다. - P67

시간이 더 흐른 뒤, 석주는 그때의 그 감정, 자신보다 사수가 더 또렷하게 느꼈을 당시의 그 마음을 종종 떠올렸다. 그러면 풋내기에 불과했던 자신 안에 미약하게나마 편집자의마음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여•겨졌다. - P76

그해, 석주는 스물여덟 살이었으나 스스로 젊다고 여기지않았다. 차이와 비교에서 비롯된 갈급함이 석주를 한순간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 P85

오래도록 그녀에게 열정은 한순간 사람을 사로잡는 무엇이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는 것. 그 시절, 석주의 열정은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되고 있었다. - P87

하이쿠에서 딴 이름이네요. 한번 들은 사람은 절대 잊을 수없겠습니다. 선생님. - P91

그러나 그녀가 자각하지 못했던 어떤 애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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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석주가 적극적으로 손을 본 원고에 대해서는 지나치다고 질타했고, 석주가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원고에 대해서는 무성의하다고 호통쳤다. - P50

도대체 누가 알까 싶은 미세하게 틀어진 쪽 번호위치를 지적하고, 모든 도표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 P51

그는 석주가 찾지 못한 오식을 말없이 바로잡았고, 석주가 원고 귀퉁이에 적어둔 제안을 간결하게 수정했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교정지가 석주에겐 충고이고 질책이자 격려가 되었다. 표정도 말도 없는 그 교정지가 석주를 조용히 가르치는셈이었다. - P53

편집부에서 일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P55

무슨 일이든 모르는 채로 시작하는 법이지요. 일이란게 원래 그런 겁니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홍사원이 만들 수 있는책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봅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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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임이 돌아왔다. 요카타- 하고 기다란 숨을 뽑아내던이름 없는 할머니의 비밀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고양이의 흔적을 포착해냈던 우리 삶의 다정한 투시자. 살을 에는 차가움마저도 귓속말의 온기로 풀어낼 줄 아는 작가는 이제 팬데믹이라는 모진 상황을 통과해 더욱 끈질기게 세상을 바라본다. - P305

고양이에 대한 이 소설의 기초적인 밑그림은 이쯤에서 판가름이 난다. 우리가 믿을 수 있고 믿고 싶어하는 것. 보고 싶고듣고 싶지만 사라졌고,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은것. 그래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광장에 세워둔 그것. 즉, 고양이는 소망의 다른 이름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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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던 해, 홍석주는 대학에 입학했다.
소도시에 위치한 그 종합대학의 사학과는 인기 있는 과는아니었지만 문과대학 내에서 가장 오래된 학과 중 하나였다.

석주는 거의 매주 책을 대출했다. 책 가장 뒷면, 도서 대출카드에 이름과 날짜, 회원 번호를 쓴 뒤 사서에게 제출하고확인을 받는 방식이었다. 책이 귀한 시절이었다. 나달나달한책장은 낱장으로 분리되기 일쑤였고,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몇 페이지가 통째로 사라진 경우도 흔했다. 끝까지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책이 허다했지만 석주는 새로운 책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 P15

작품을 냉정하게 보라는 건 단점에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지점,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을발견하라는 의미기도 하죠. 좋은 점을 찾는 건 부족한 점을찾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부족한 부분에서 잠재성을 발견하는건 더 어려운 일이고요. - P25

점심값을 준다는 걸 깜빡했구나. 희주랑 같이 맛있는거먹고 들어와라, 졸업 축하한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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