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차이는 도대체 뭔가. 왜 규희와 너는 진짜 못하는 일을 나는종종, 자주, 제법 즐기며 하고 마는 걸까. 나는 규희가 사라지고나서야, 여기에 없고 나서야 규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너를이루는 조각과 내 조각들을 맞춰보고 비교한다. 화가나서 던지기도 하고 소중하게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기이한 모양의 성을 쌓는다. 그게 규희가 떠난 뒤 내가 유일하게 몰두하는 일이다. - P67

손동씨, 너무 마음에 들려고 하지 말고 - P133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저도 할 거예요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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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내도 할 만큼 했다! 대체 뭘더해야되는데? 그냥 자살하까?" - P53

"삼성? 가기 전까진 좋았제. 꼴통이 드디어 사람 구실하겠다구 가족끼리 잔치까지 벌였으야. 근디 막상 가보니깐 장난이 아니여. 하루죙일 여덟시부터 열시까지 라인서 빵이 치는데 죽겄드라. 연봉이라도 쎄믄 몰겄는디 초봉 3500 받고 할짓은 아니다 싶드라고. 연봉이 팍팍 오르는 것도 아니구. 게다가 구미 거기 주변에 뭐가 있느냐. 죄 논밭인데 돈 벌어봐야쓰잘데도 없고, 기숙사도 규정 허벌나게 빡세서 함부로 나가기도 힘들어부러. 게다가, 어휴. 선배라는 것들이 삼성 부심은또 오지게 부려요잉. 회사가 시키면 군말 없이 하는 게 삼성맨이라나. 누가 들으면 즈덜이 이병철 이건흰 줄 알겄어 기냥." - P57

"아부지, 꼭 나을 낍니더. 꼭."
그제야 아버지는 다 쉰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옹알댔다.
"내는 아직 못 죽는다………… 두 달 더 채워야 된다……."
부자간 대화는 거기서 끝. - P61

2021년 6월, 건설 근로자 공제회라는곳에서 문자가 왔다.
법이 바뀌면서 아버지의 퇴직금을 받아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일한 기간은 딱 십 개월. 제대로 된 일이라곤 안 해봤던 아버지는 노가다판에서라도 일 년을 꼭 채워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눈가가 매워졌다. - P64

그땐 도저히 이성의 줄자를 갖다댈 수가 없었다. - P72

"행님, 차만 비싼 게 더 싸게 먹힙니다. 차가 좋으면 나머진짜가리라도 다 믿어주거등. 요요 시계, 가방, 지갑, 구두, 벨트, 싹 다 짭퉁이라예. 메이드인 차이나! 일마들 정가 주면 오천 넘어갈걸?" - P79

그제야 동생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이유를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화려하게 놀기 위해 노력한다. 그 나름 멋진 삶의 방식 아닌가. 헤어지는 길에 돈을 뽑아 동생에게 20만원을 건네주었다. 재밌는 경험 시켜줘서고맙다는 인사에 동생은 씩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짝퉁이 아니라 진퉁이었다. - P83

불행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옮겨가겠지. 그럴바에 살아남아 불행과 싸워 이기는 게 낫지 않을까.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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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교사 입장에서 핼러윈처럼 소품이 많이 필요한행사는 무척 번거롭습니다. 적어도 몇 주 전부터 밤잠을 설치며 행사를 준비해야 하죠. 물론 우리 유치원이 더 유난이긴 해요. 간판에 ‘프리미엄‘이 붙은 영어유치원이거든요. - P9

싶은저는 그날 집에서 엄마에게 악을 지르며 떼썼어요. 다음 날은 다른 티셔츠를 입었지만, 참담한 기분은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힘겹게 등교한 후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옛날 교실들은 뒷문 옆에 꼭 거울이달려 있었거든요. 문득 돌아본 거울 안에 제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 P11

제 품에 남은 건 유령의 허물 같은 흰 천뿐이었어요. 그리고 천마저도 손안에서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죠. 이게, 핼러윈 실종 사건의 전말입니다. - P15

옥주는 집에 들어오기 전 마주했던 낯선 눈을떠올렸다. 석류알처럼 붉은 눈과 쓰레기 더미를 뒤질 만큼의 허기를 상상했다. - P25

저걸 어떻게 한담. - P33

상처 치료는 금방 끝났다. 의사는 당분간 상처 부위에절대 물이 닿으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진통제와 소염제를처방해주었다. 그러면서 피곤한 목소리로 옥주를 문 개가광견병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옥주는사람이 광견병에 걸리면 죽을 때까지 갈증에 시달린다는사실을 처음 알았다. - P35

옥주는 자신이 언제든지 먹힐 수 있다는 걸알았다. 자신이 키우는 건 말 안 듣는 손주나, 길고양이 같은 게 아니었다. - P41

"관 짝이 메마른 걸 봐서는 물이 고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확인했으니 다시 덮을까요?"
옥주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 P47

냉동고 정리를 끝낸 후에, 옥주는 석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올라가자. 가서 과일이나 먹자."
석류가 옥주의 손을 붙잡았고, 둘은 함께 지하실 계단을 올랐다.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왔다. 석류는 텔레비전 앞에 누워 꾸벅꾸벅 졸았다. 옥주는 늦여름의 습기를 느끼며 흉터가 남은 팔로 과일을 씻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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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떤 것도 완벽한장점이 되지 못하고 완벽한 단점이 되지 않는다. 하나를잃었다면 얻는 것도 있을 테니까. - P106

그렇다고 또 너무 휴식에만 집중하면 금방 감을 잃는다.
공들였던 마감을 끝내고 나면 스스로에게 주는 휴가라고생각하면서 며칠 동안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면서 쉬기도하는데 어째서 휴식시간은 ABC 초콜릿을 까먹는 것처럼금세 사라지는지. 아무 생각 없이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봉지를 거의 다 먹어 버렸……………... - P107

꼭 써야 한다고 생각되는 구절이 떠오르는 경우가 아니면메모는 거의 하지 않는다. 안 한다기보다는 못 한다는 게맞겠다. 글을 쓰는 게 직업이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다하더라도 아무 말이나 막 쓰지를 못하겠다. 나 혼자 보는메모라 할지라도 비문인지 아닌지, 너무 상투적이진 않은지생각하게 된다. 좀 이상한 강박인가.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단상을 적는 일에도 자기검열을 하다니. - P109

시는 주로 장면에서부터 출발한다. 인상 깊었던 정황,
충격받았던 장면을 그림을 그리듯이 사진을 찍듯이 써내려고 한다. 마주하기 어려운 순간이라도 최대한 이성의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장면을 완성한다. - P111

떠내려 온 하얀 나, 하얀 이름으로 채워져 바다를 따라 삼천킬로를, 삼천 시간을 흘러온 하얀나, 검은 모래 해변에 당도하여 목이 터져라 울어 버린 하얀 나, 너무 많은 하양, 빛을 안지못하는 나, 튕겨 내는 하얀 나, 근육이 없는 하얀 나, 부서지는하얀 나, 너무 많은 나, 너무 많은 나, 너무 많은 하얀, 하얗고무수한 나 - P120

지금의 나는 도시에서의 나라는 한 페이지를 덮은 뒤의나. 제주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인구수가 적은 지역에 살고있는 나. 내 시가 변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주에서쓰는 시에는 필연적으로 기후, 식물, 동물과 같은 자연이등장하게 되었다. 개념이 아니라 실제의 자연으로, 내가 보고느낀 자연이. - P122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알게되면 알지 못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 P125

동물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졸리면 졸리다, 배고프면배고프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한다. 동물은 어두운 시간이오면 제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잠을 잔다. 사람은 어두운 시간동안 나약한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려 거짓말을 꾸며 댄다.
거짓말을 꾸밀 시간에 낱말 퍼즐을 맞춘다면, 그 시간에 세계수도를 외운다면 어떨까. 차라리 그 시간에 연필을 반듯하게깎는다면. - P129

다행히 인생은 일상보다 길다. 깊고 어두운 웅덩이에빠졌다고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다시 기어 올라가면된다. 한 발 한발 천천히 올라가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면된다. 강렬했던 여름의 끝자락, 극적인 화해를 이뤄 내자선물 같은 가을이 도래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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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아들딸들은이미 여러분의 통제를 벗어나 있으니.
당신들의 오래된 길은 급격히 낡아가는 중그러니 손 내밀지 않을 거라면 부디 새 길에서 비켜서주시길.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 P188

촛불의 나날들을 지나고 있다.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밤, 서울 광화문까지는 못 가고 광주 5·18광장에 나갔을 때, 무대에 올라와 자유 발언을 한 이들 중 나를 가장 감동하게 만든 것은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이었다. 이렇게 엉터리인 나라에서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나왔다는 말을듣다가 나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울컥하고 말았다. - P189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스승을 찾는 거지요." 자신을찾아온 후배 시인 이우성에게 이성복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작가를 스승으로 택한다는 건 배우자를 택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해요. 스승이 없으면 헤매게 돼요." (『극지의 시 글을 웬만큼 써서나름의 요령이 생기면 스승의 자리가 슬그머니 없어진다. ‘스승께서 이 글을 보면 뭐라 하실까?‘ 이렇게 자문하게 만드는 ‘글쓰기의초자아‘가 잊힌다는 것이다. 어디 글쓰는 사람만의 일일까. 자신감이 좀 붙으면, 예전에 두려워하던 이가 귀찮아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무렵이 가장 바쁜 때다. 그러나 그것은 잘되고 있는 게 아니라 헤매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만 그것을 모른다. - P207

결국 우리는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허덕이다가 죽음과 더불어놓여난다는 뜻일까. 비관적이다. 사실 이성복은 내내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고 허무에 빠지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은 없다. 그의 비관주의는 평론가 김현이 명명한 대로 ‘따뜻한 비관주의‘다. 여기서 따뜻하다는 것은 달콤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약하지 않다는 뜻이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무한화서』) 바로 이것이다. 생을싫어할 자격이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여운이 따뜻한 것이다. - P210

서둘지 말고, 바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 이 셋은 자주 엉킨다.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은데,
이룬 것이 너무 없어 당황스러울 때, 그때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위험한 때다. 김수영이 걱정한 것도 그것이지 않을까. 빨리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마음에 지면 나를 잃고 꿈은 왜곡된다. - P228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 택하였고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 P241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한번 놓친 길은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 시는 말하지만, 작품은 길과 달라서, 우리는 시의 맨 처음으로 계속 되돌아가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남김없이 다 걸어도 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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