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아들딸들은이미 여러분의 통제를 벗어나 있으니.
당신들의 오래된 길은 급격히 낡아가는 중그러니 손 내밀지 않을 거라면 부디 새 길에서 비켜서주시길.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 P188

촛불의 나날들을 지나고 있다.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밤, 서울 광화문까지는 못 가고 광주 5·18광장에 나갔을 때, 무대에 올라와 자유 발언을 한 이들 중 나를 가장 감동하게 만든 것은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이었다. 이렇게 엉터리인 나라에서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나왔다는 말을듣다가 나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울컥하고 말았다. - P189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스승을 찾는 거지요." 자신을찾아온 후배 시인 이우성에게 이성복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작가를 스승으로 택한다는 건 배우자를 택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해요. 스승이 없으면 헤매게 돼요." (『극지의 시 글을 웬만큼 써서나름의 요령이 생기면 스승의 자리가 슬그머니 없어진다. ‘스승께서 이 글을 보면 뭐라 하실까?‘ 이렇게 자문하게 만드는 ‘글쓰기의초자아‘가 잊힌다는 것이다. 어디 글쓰는 사람만의 일일까. 자신감이 좀 붙으면, 예전에 두려워하던 이가 귀찮아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무렵이 가장 바쁜 때다. 그러나 그것은 잘되고 있는 게 아니라 헤매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만 그것을 모른다. - P207

결국 우리는 미끄러운 짬밥통 속에서 허덕이다가 죽음과 더불어놓여난다는 뜻일까. 비관적이다. 사실 이성복은 내내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고 허무에 빠지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은 없다. 그의 비관주의는 평론가 김현이 명명한 대로 ‘따뜻한 비관주의‘다. 여기서 따뜻하다는 것은 달콤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약하지 않다는 뜻이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무한화서』) 바로 이것이다. 생을싫어할 자격이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여운이 따뜻한 것이다. - P210

서둘지 말고, 바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 이 셋은 자주 엉킨다.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은데,
이룬 것이 너무 없어 당황스러울 때, 그때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위험한 때다. 김수영이 걱정한 것도 그것이지 않을까. 빨리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마음에 지면 나를 잃고 꿈은 왜곡된다. - P228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 택하였고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 P241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한번 놓친 길은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 시는 말하지만, 작품은 길과 달라서, 우리는 시의 맨 처음으로 계속 되돌아가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남김없이 다 걸어도 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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