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시뻘건 김치제육볶음을 식판에 담지 않고, 누군가는 무국이 짜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 우리는밥을 먹으면서도 먹는 얘기를 계속했다. - P135

나는 평소에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 단 빵이나과자, 케이크 등을 잘 먹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은내가 술꾼이라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거라고 말한다. - P143

무를 채 썰어 생채로 무쳐놓으면, 고기 구워 먹을 때곁들여도 좋고 아무 때나 아무 반찬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도 좋다. 잘게 깍둑 썰어 담근 깍두기는 콩나물국에 어울리고, 큼직큼직 썰어 담근 깍두기는 고깃국이나 설렁탕에 좋다. 툭툭 칼로 빗금 치듯 삐져 새콤달콤하게 담근 무김치는 충무김밥의 필수 반찬이다. - P144

"아무리 봐도 비닐을 쓴 것 같지는 않은데요?"
"네?"
"암만 봐도 비니루 같지는 않다고요." - P148

나는 밥 한 숟가락에 조린 무한 점을 얹고 그 위에갈치를 얹는다. 햅쌀밥과 가을무와 갈치 속살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삼단 조각케이크를 나는 한입에 넣는다. 따로 먹는 것과 같이 먹는 건 전혀 다른 맛이다. - P152

그럼 어떻게 된 것일까? 한국인의 소금 섭취량이 별로 높지 않다는 얘기냐? 그건 그렇지 않단다. 박 셰프의 결론은 한국 사람들이 국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나트륨 섭취량이 세계 상위에 랭크돼 내려올 줄을모른다는 것이다. - P160

가끔 견딜 수 없이 어떤 국물이 먹고 싶어지는 때가있다. 무언가가 몹시 먹고 싶을 때 ‘목에서 손이 나온다‘는 말을 하는데, 그럴 때 내 목에서는 커다란 국자가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당장 그 국물을, 바로그 국물을, 다른 국물이 아닌 바로 그 국물의 첫맛을커다란 국자로 퍼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열광적으로 그리워하는 국물 중 하나가 감자탕이다. - P162

밤새 눈이 많이 내린 날 오래 찬찬히 내려 폭신하게쌓인 눈을 밟으며 나는 시장에 꼬막을 사러 간다. - P167

=연인들의 항해는 어느덧 끝이 나고, 작은 점처럼 멀어졌던 현실이 점점 거대한 해안선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기엔 온갖 비루하고 형이하학적인 문제들이들끓고 있는데, 음식도 그중 하나이다. - P170

나는 사람들을 가장 소박한 기쁨으로결합시키는 요소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놓고 둘러앉았을 때의 잔잔한 흥분과 쾌감,
서로 먹기를 권하는 몸짓을 할 때의 활기찬 연대감,
음식을 맛보고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의 무한한 희열.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과그보다 따뜻한 공감은 상상할 수 없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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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허공을 가른다. 낮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 P237

뭐하냐.
마당에 내어놓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종이비행기를 접고있을 때 종우가 왔다.
비행기 접어. - P240

종우의 물음에 지수는 곰곰 생각했다. 접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부엌 식탁 위에 올려져 있기만 했었다.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우는 그 고갯짓에 안심이 됐는지다시 종이배를 접기 시작했다. - P241

어젯밤에 비가 막 쏟아지니까, 누가 또 버리고 갔나봐. - P244

바닷가에 살면서 소금기가 섞인 바람을 많이 맞으면 피부가빨리 삭는 거야.
지수는 그 말이 종우가 여태 한 말들 중 가장 해괴하다고 생각했다. - P245

소금기가 가득한 바람은 양철 지붕도 자동차도 빨리 삭게만들어. 우리 할머니가 늙은 것도 다 소금 때문이야. - P246

멍청한게. 왜 넌 열심히 안사냐 - P250

며칠 뒤 바다에서 시신 한 구가 밀려왔다. 마을 사람은 아니었다. 낚시꾼이었다. 양식장이 망가지고 생선들이 모두 쏟아져나오자 그걸 낚으러 왔던 사람이라고 했다. 온몸에 흠씬 두들겨맞은 흔적이 있었다. - P258

계절은 흘러가지 않고 뚝뚝 끊어진 채 지나갔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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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물 더위가 가시고 가을바람이 불기만 하면너무 오랫동안 더운 음식을 못 먹고 지낸 나는 냄비국수를 해 먹고 말리라 잔뜩 벼른다. 식탐자는 맛에 대한욕망만큼 온도에 대한 욕망도 크다. 낮에는 여전히 찌는 날씨여도 이미 입속엔 가을이 깃들고 뜨거운 국물음식이 그리워진다. - P121

그릇에 담긴 국수 말고 나만의 냄비에 담긴 뜨거운 국수를, 살짝 숨이 죽은 쑥갓부터 건져 먹고 반숙인 달걀노른자를 호로록 먹고 양념장을 한꺼번에 풀지 않고조금씩 국수에 끼얹어 먹는 식으로, 그렇게 나만의 스타일로 먹고 싶다. - P125

물론 그 후로는 덤을 주지 않았다. 그때 그 유일무이한덤을 누가 먹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나는 아닌데. - P129

먹는 얘기에 관한 한 창작촌도 군대나 감옥에 뒤지지 않는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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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들과 화해하는 유일한 길은 그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다. 얼마간 떨어져 있다 보면 비몽사몽간에 우연히 옛 감정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 P48

주춤하거나 퇴색하지 않은 유일한 감정은 단순한 지적인 친밀감뿐이었다. 거기에 꾸민 친절은 전혀 없었다. - P51

우리의 짧은 인생은 영면으로 완결된다. ‘ - P63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삶에도 시작과 끝이 있음을 생각해 보는 것이리라 - P63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아무도 이 생각에는 연민이나 유감이나 반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 P65

우리는 니누스 왕의 전쟁과아사라코스와 이나코스 신의 전쟁을 기억한다. - P67

오, 마음이 강건한 그대여!
세상과 그대 사이에는깨기를 꺼리는 약속이 있다!! - P69

그렇다면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라습관적인 애착이다. 그냥 존재한다는 사실로는 "인간의 타고난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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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여름나기를 위한 비장의 나물 두 가지가있는데, 내 식으로 부르는 이름은 ‘까막고기‘와 ‘까죽‘
이다. - P108

그 후로도 작은언니는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렸는데,
까막고기의 기적을 경험한 어머니는 모든 병의 증상에 상관없이 까막고기를 열심히 만들어 먹였고, 이상하게도 까막고기를 먹은 작은언니는 어느 병에서건쉽게 회복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모두 까막고기를 즐겨 먹게 되었다. - P111

시래기나물은 콩나물이나 무나물처럼 간단한 나물을만들어 같이 비벼 먹어도 좋지만 나는 오로지 시래기나물만 넣고 비벼 먹는 걸 좋아한다. - P113

이 글을 읽고 그 맛이 너무 궁금하다며 부랴부랴 가죽장아찌를 만들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가죽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반짝 따고 억세어지면 못 먹는다. - P117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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