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아주 짙었다. 티셔츠 위에 후드 티를 입고 점퍼까지걸쳤는데 그 속으로 안개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 P263
"유자가 지긋지긋했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 P264
"이거 따가시면 카페 메뉴에 유자차도 생기는 거예요?" "유자차는 집집마다 너무 흔해서 여기서 팔긴 좀 그렇고, 유자스콘이라도 만들어볼까 싶어요." - P269
"실컷 밟아둬. 이제 영영 밟을 일 없는 흙이니까."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 리조트가 들어서면 흙은 시멘트에덮여 다시는 해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 P272
"일이 초 찍은 걸 얻다 쓰냐." "쓸 데가 없나? 이거 매일 일 초씩 찍어서 한 달 치 만들면꽤 근사하다? 삼촌도 <애프터 양>이라는 영화 한번 봐봐. 내인생 영환데." - P277
"너 우리 문재 좋아했구나. 어떡하지, 미안해서. 나에게는 하나도 웃을 일이 아니었고 세상이 다 무너지는일이었기 때문에 숙모의 웃음소리가 아주 사악하고 가혹하고원망스럽게만 들렸다. - P279
"내가 어렸을 때 말이야, 옆집에 살던 아줌마를 정말 싫어했어. 매번 귀찮게 말을 걸고 이상한 농담을 하고 주책맞고 하여튼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그런데 크고 보니까 내가 그 사람을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이젠 그 사람을 안 싫어해. 못 싫어해.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싫어해? 너도 날 계속싫어하려면 조심해. 나처럼 되지 않도록." - P281
"사는 게...... 너무 달아......‘ - P283
"아까 낮에 가르쳐준 거……… 라이브 포토. 내가 그동안 사진을 다 라이브 포토로 찍었더라. 그걸 이제야 알았네. 동영상을 하나도 안 찍어놓은 게 너무 후회됐었는데." - P285
사장은 삼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삼촌도 그런 사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 가졌다가 한 번에 모든 걸 잃은 사람과 처음부터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괴로울까. 나는 막 잠에서 깬 척 몸을 일으켰다. - P291
사는 게 너무 달아서 때론 숙모와 문재 오빠에게 미안해졌다. 달고 따뜻한 걸 우리만 계속 먹는 것 같아서. 숙모를 몰래 찍은동영상이 있다는 걸 삼촌에게 말하지 못했다. 어쩐지 선뜻 삼촌에게 그 영상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사람은 지극히 행복할 때느닷없이 슬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지만. - P293
"진짜 달아."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P294
망한 인생의 천재 소설가 김지연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다른 말을 찾기는 어렵다. - P297
개인적인 무능력, 불성실, 불운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개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강도 높은 활동과 참여를 요구하고 그러면서도 안정된 삶의 기반을 갖추기 어렵게 되어있으며 심지어 "원래 자신의 몫인 그 돈"을 애초에 주지 않거나 빼앗아가는 계기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의 인생이라도 망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러느라 사랑이니뭐니 하는 것도 이번 생에는 다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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