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작은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던 영어 성경책이 있었는데공습 때 불이 붙어 일부가 불타버리고 말았단다. 아버지는 타버린 책장에 얇은 종이를 한 장 한 장씩 이어 붙이고소실된 글자들을 손으로 다시 써넣었다. 그 책을 어떤 미군이 우연히 보고는 아버지가 영어를 배울 수 있게 미국인 집에 일자리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아빠, 저거 세 권 다 읽는 거야?" 아버지는 웃으면서 맞다고, 이거 읽다가 저거 읽다가한다고 했다. 이해가 안 됐다. 책을 두 권 이상 동시에 읽을 수가 있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다음 권으로 넘어가는 거 아닌가? (정말 이상한 일은, 지금 내 침대 옆에 책이 네 권 있다는 사실이다. 최승자 에세이는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을 때 읽는다. 보르헤스 에세이는 조금 생각하고 싶을 때 읽는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수시로 들춰본다. 밤에 방 불을 끈 다음에는 전자책 단말기로 탐정소설을 읽는다. 어릴 때는 도저히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읽는게 당연하게 됐다.)
몇 년 뒤에 아버지에게 두 번째 뇌경색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문자 해독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렇게 평생 책만 보던 양반이, 책을 못 보게 됐다는게 너무 불쌍해서…." 엄마의 말꼬리가 울음에 뭉개졌다. 나는 감정이 다가오는 게 두려워 일부러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깟 책 좀 안 보면 어때. 평생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도 많은데."
사전은 엄밀하고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한편 구체성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사전은 마치 경전처럼 권위적으로 지시하지만, 사전이 담으려 하는 언어는 한시도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하면서 사전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사전 편찬자들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 산이 계속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완벽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사전뿐 아니라 인간이 하는 모든 노역의 공통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조형물은 쇠락하고 완벽한 이론은 반박된다. 시간의 흐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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