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희는 그것들을 보고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있다니! 하며 폭죽놀이를 처음 구경했을 때랑 비슷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나로서는 즐기는 것은가능하지만 절대 내 안에 남지는 않을 이야기들을 천희는 좋아했다. 나는 안도했다. 천희가 내 만화를 볼 일은 없을 테니까. - P11

나는 너의 모든 행동이 부드럽고 나긋하다고 느끼지만 그 안까지 부드럽지만은 않다고 여긴다. 의외로 뾰족한 구석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바깥을 향하는 게 아니라 너의 안쪽을 향한다.
너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다. 거래처 강부장은 새로 들어온 네가이사를 하자 시집 좋은 데로 가게 생겼네, 라고 말했다. - P47

헤어지자는 말을 하며 재인은 그렇게 말했고 남자친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조금 과하게 울었다. 제발 자기를 짠하게 여겨달라는 것처럼 보여서 재인은 살짝 인상을 쓸 뻔했다. 한 명이 더 힘을줘 끌고 가는 관계는 언제까지나 반대편이 일 프로 정도는 함께힘을 실어줄 때 가능한 일이었다. - P123

대로 배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손이 느려졌다. 옷을 다 갈아입고, 메고 온 목도리까지 다시 잘 두르고서 재인은 데스크에 몸을 가까이 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재등록하려고요. - P149

철수를 마친 날, 고향인 원주에서 올라온 엄마는 영은과 병원식당에서 칼국수를 먹다가 결국 울컥 울음을 토하고 말았다.
이게 뭐니·····특히 엄마를 위로하던 영은은 그 말에 상처를 입었다. - P155

-이 죄스러운 마음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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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의 인프라가 서울을 비롯한수도권에 몰려 있는 구조라 문화적 불균형 역시 극심하다. - P65

호명은 중요하다. 문학을,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살면서호명받는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 혼자만 보자고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예술을 하는사람으로서 내 작품이 많이 알려져야 돈도 벌고 생활을영위할 수 있으니까. - P70

많은 분야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새롭게 배치되고 있다는것을 실감한다. 물리적 거리가 삭제된 온라인 세계에서는서울이나 제주도냐보다는 내가 가진 콘텐츠가 중요하게되었다. - P70

가난이 무서운 이유는 포기해야 하는 게많아진다는 데 있다. 어린 나이에 포기를 알게 된 아이들은마음이 일그러지기 쉬운 재질로 바뀐다. 일그러지는 모양이각기 다를 뿐.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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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는 서른에 잔치가 끝났다고 했다. 언젠가고모의 책장에서 그 시집을 발견했을 때 나는 10대였고,
서른이라는 나이는 너무 까마득해서 하늘의 달이나 별 같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저기 어딘가에 있다고 알고 있는 머나먼행성 같은 것이었다. - P13

나는 콜라의 본질을 좋아했지만 그 본질이 사라진 상태의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은 열정이 있었지만 그 이후 삶에 대한 것은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았다. 모르는 세계였으니까.
치기 어렸지만 위태로웠다. - P15

돈은 언제나 부족했고 부족한 돈으로 부족하지 않은것처럼 살기 위해 우리는 매일 전철을 탔다. - P17

오늘의 마지막 열차가 승강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안전문과 객실 문이 동시에 열리고 더러운 의자 하나가 철로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나는 거기에 없었고 사람들은 줄지 않았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그 일을 한다는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도취되어 있었다. 제주로 향하는나의 발걸음에 말이다. ‘강추진만‘은 추진하는 과정에도취된 자에 불구하니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어딘가로,
무언가를 하러 간다. 그 자체가 즐거웠던 것이다. - P30

네가 물었지시는 언제 써?
누군가 미워지면 시를 써너는 매일 밉고매일 사무치게 그리워서

제주도로 이주하기 전 농가 주택 리모델링에관한 책을 몇 권사 봤었는데 감히 단언하건대, 사랑과리모델링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 - P36

나는 한강시켜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대학 때가졌던 포부와는 달리 글로 먹고산다는건 아주 조금씩 먹고아주 조금씩 쓰고 아주 조금씩 살아 있을 수 있는 거구나하는, 씁쓸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중이었다. - P43

야행성 생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빛 공해 없이, 어둠과 빛이 서로를 밀어내지않고 차례대로 땅을 밟는, 진짜 낮과 진짜 밤. 거기에서 만난제주도의 검은 밤. - P51

친구에게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늘 이상하게 욕심이 난다. 졸업앨범을 찍을 때도 그렇고 증명사진을 찍을 때도 그랬고웨딩사진에서는………… 모든 욕심이 폭발해 버렸다. 항상사진을 찍을 때는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생의어느 순간을 박제하는 일이라 그런 걸까. 어느 때라도 다시들춰 볼 수 있는 그 시간을 아름답게 해 두고 싶었다. - P57

‘내가 훔친 기적‘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이거아니면 안 되겠다 싶었다. 이 제목은 시집에 수록된 시 중「당신이 훔친 소금」이라는 시와 데뷔작인 「기적」을 합쳐서만든 제목이다.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고 여전히 그 자장안에서 지내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시라는 존재를 만나기적과 같은 미래를 갖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정말맞는 말이다. 내게 시, 언어라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니까.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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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하여 탄생한 거대하고 아름다운섬이 있었다. 그 섬에는 자애롭지만 장난기가 그득한 수호신,
설문대할망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설문대할망이 몹시따분하여 즐거운 오락거리 하나를 떠올리는데…….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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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제가 직접 할게요." - P198

"야, 알았다."
"뭘 알았어?"
"인생에 대한 네 성의가 그 정도인 거 알겠다고." - P201

따뜻한 차 한잔처럼 노상 몸과 마음을 뭉근하게 만드는일이었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소봄은 동생과 싸우지 않았고 혼자만의 술자리도 주종을 바꿔 맥주 정도로 가볍게끝냈다. 뭔가 삶 자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적당히예열된 차를 부드럽게 액셀을 밟아 몰듯 자기 삶을 운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생겼다. - P207

"촛불, 나, 그거 별로야. 불이 탁 꺼질 때 기분이 이상해,
안 좋아." - P212

아니에요 피디님이 어떻게 알아요? 뭘 알아요?
또 시작이네, 알아.
아니, 몰라요.
어허, 어디야? - P221

세미는 처음으로 ‘종족‘이라는 것에 대해생각했다. 정작 본인은 날마다 인류애를 잃어 이제 어떤기적이 일어나도 되살릴 수 없을 듯한 소속감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둥근 머리와 복슬복슬한 털과 납작한 코를가진 그 부류들 속에 때로 설기는 아직 살아 있는 듯 느껴졌다. - P227

"누난 정말 아무래도 정신 개발 좀 해야겠어."
양요가 테이블에 놓인 냅킨을 팍팍 뽑아서 세미 손에쥐여주었다. 세미는 두 손바닥이 다 젖도록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정신 개조겠지"라고 겨우 대답했다.
"와중에 꼬투리 잡니? 응? 아주 여유가 있네. 이거 우는것도 페이크 아냐?" - P230

"로맨스 장르를 몰아 봤으면 드라마 피디가 되든지 하지 왜 예능 피디가 됐어? 자꾸 보다보니 세상이 다 우스워졌나보지?" - P233

삼촌과 함께 살던 할머니는 식구들이 반려견만 예뻐한다며 집 앞에 온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버리려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통과한다는 건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니까 할머니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머니를 너무 믿지는 말라고 세미는 설기에게 진지하게 경고했다. 그냥 인간 같은 건 다 피해 다녀, 내가 하늘로 갈 때까지. - P234

"나는 수술이 잘못돼 갑자기 호두를 잃었어.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지. 얼마나 자책을 많이했는지 그냥 나라는 인간 자체가 싫은 느낌 있잖아. 배가고프거나 똥이 싸고 싶거나 하면 어느 순간보다도 나라는인간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나에게 그런 것조차 해주고싶지 않은 느낌.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다 빼앗아버리고 싶은 생각에 시달렸어. 직장도 두번이나 옮겼지.
근데, 세미씨는 너무 오래 자기 자신을 벌주지는 마. 애들이 알면 슬퍼해." - P237

"세상에 안 변하고 가만있는 것도 있어."
"그런 게 있어?"
세미 쪽으로 돌아누웠는지 엄마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있어. 뭔지는 말 안 해." - P242

‘아직 내가 이름을 못 지었어. 길러도 될까 싶기도 해서."
"왜요? 완전 귀여운데."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는 입 주위만 까맸다. - P247

설기는 겨울에 온 개였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아파트복도까지 생크림 더미 같은 눈이 쌓였을 때였다. 세미는개를 반기지 않았다. 크게 낙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P257

한번 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개들이 그렇게 해서 인간을 믿을 줄 아는 개들이 설기처럼 기품 있게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상가에 들를 생각이었지만 세미는 더 멀리 걸었다. 그러다보니 여름에 양요와 함께 앉아 있었던 맥주 가게가 떠올랐고 겨울에는뭘 파는지 확인해서 말해줘야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 P261

"처음부터 날 속인 거잖아."
"아니야!" - P273

"우야, 니는 들어봤제? 한번 설명을 좍 해야 방송 나가고 우리 카페도 입소문을 타고 안 하겠나. 다음 주에 오이소, 한해 마지막에 가슴 뻐근해지고, 없던 인류애도 생겨나고 희망도 생기고." - P287

나는 아버지가 아픈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당시 수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누나가 환자가 집안에 있는 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의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음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수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며 느낀 것이었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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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vl0725 2022-12-1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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