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이나 됐을까 싶은데요, 뭐."
"우리 아버지는 상관 안 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웃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짓고, 그런 다음 우리 둘은 뒤쪽에 있는 무대를 둘러본다. 재즈 트리오가 공연 준비를 하며 악기를 조율하고 있다. - P210

"내일 봐!" 델핀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린이 외친다. 델핀은 그녀에게 키스를 보낸다.
나는 가슴께가 저릿해지는데 왜 이러는 것일까. - P196

"이봐요, 허니." 나는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다 잘될 거예요." - P184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만 농장을 나올 수 있게 한 것이 오히려 더 안 좋지 않았을까 싶다 더이상바라서는 안 되는 일말의 자유를 맛봄으로써 유혹은 더욱 강해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때문에 그 많은 아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에. - P162

그날 저녁, 파티가 열린 날 저녁, 우리는 일찌감치 코네스토가강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더그 형과 미셸 선배, 트레이 형,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었다. 우리는 숯불 화로를 들고 갔고 강가에서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태양은 뜨거웠다. 세상은 명료해보였다. 가족들이 격자무늬 담요를 들고 나와 개들을 끼고 앉아있었고, 그들이 굽는 바비큐에서 푸른 연기들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 P143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날 밤 그를 봤을 때 나는 흐뭇하게 놀랐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여름이면 태양을 벗삼는 사람 같은 주근깨 피부였다. 소년 같은 매력이 있었고, 내가 무슨말을 하면 미소를 지었으며 내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에 진심으로 놀라는 듯했다. 양고기 카레를 먹고 와인을 마시며, 그는 내가 자기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똑똑한 축에 속한다고 했
- P97

"아니." 나는 말한다.
"정말이세요?"
"그래."
195
"아술 아빠 되세요?" 다른 아이가 묻는다. "진짜 아빠냐는 뜻은 아니고 그러니까…………" - P73

일 년 후 우리는 같이 살게 되었고, 다시 일 년 후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나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결혼식 날 밤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점을 분명히 알아둬. 왜냐하면 좋든 싫든, 당신은 이제 내게서 떨어질 수 없으니까."
"그거 협박이야, 약속이야?"
"둘 다지." - P54

"그래봐야 일 년이야. 모험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모험?"
"아니면 적어도 기분전환은 될 수 있을 거야."
"기분이 안 좋았어?" - P50

"하지만 그러라고 했으면 그랬을 거예요?"
"알렉스." 어머니가 말했다.
"알고 싶어요."내가 말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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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김밥과 음료수, 사과를 사 들고 아줌마들이 모여 있는 계단 밑 공간에 갔다. 라면 상자를 펼쳐 자리를 만들었다. 수다 삼매경에 한창 빠져 있는데, 반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식품부의 채소류 냉장고 밑에 물이 떨어졌으니 어서 가보라는 불호령이었다. - P155

나눔은 분명 행복한 기회다. - P127

그날의 광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생기면 먹고 없으면 굶고 산 한 생(生)이었다. 달도 쩍쩍 얼어붙는 엄동설한에 할아버지는 얼음 덩어리로 가시고, 장례에 쓰고 남은밀가루로 동네잔치를 벌이자 동네는 비로소 떠들썩해졌다.
그 광경이 나는 지금도 너무 넓다, 할아버지를 팔아 벌인 잔치같아서. - P110

가쁜 숨을 들이켜던 할머니가 물 한 잔을 더 청했다. 이번에도 단숨에 마시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 P95

결핍과 사랑,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사랑의 결핍 속에 산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게 일반론이다. 사랑을받지 못한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 P82

어쨌든 본능은 치열하다. 어머니 임종 때가 떠올랐다. 저녁을 드신 후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하셨던 어머니. - P214

하루 일이 수월하게 끝났다. 한 시간 만에 밥을 다 먹였다. 커피를 타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 보니 웬 할머니 한 분이 서 있다.
"누구세요?"
"어? 누구셔? 어디 갔나?" - P222

환자의 트림 소리, 그 소리는 환자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임과 동시에 남자와 내가 함께 소통해야 할 시간의 전주곡 같았다. 환자가 남자와 나 사이의 벽을 거두어준 격이 됐다. 감사함을 느끼며 여자를 향한 내 쓸데없는 우려를 한쪽으로 미뤄놓았다. 그 우려와 함께 따라오던 나의 오래된 습관
‘나는 왜 사나?‘ 하는 생각에서도 벗어나 보기로 했다 - P222

"그게 아니고요. 병원에서 몸 쓰는 일은 위험하니 앞으로하지 말래요." - P236

보는 것도 아니고 실습은 집에서 하셔도 될 거고. 두 달 동안내가 시간 채워줄게요."
"벌어먹어야 한다며 누이는 일 못해서 어쩌누?"
딴소리하며 남자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누가 누굴 걱정한대?" - P237

ㄴ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어머니 빨리 가시게 하는 불효를 자청했습니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많이 보아온 말기 암환우의 마지막 모습과 그 가족들의 안타까운 선택의 순간들이 그날 어머니의 병실 장면에 오버랩되어 내린 결정이었어요. 그때도, 지금도 잘못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요.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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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말 믿었어?"
지민이 내게 물었다.
"당연히, 믿었지."
"난 안 믿었어." - P34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지." - P33

"그런 말을 했어?"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 P32

그즈음 그는 카지노에 빠져 있었다. - P20

이 이야기 들어본적있어?"
은정이 물었다 - P62

"그때 섬으로 가는 배가 보였대요. 그래서 거기가 끝이 아니구나 싶어 그 배에 올라탔다네요."
김선생의 말에 정현이 대답했다.
"까지 가려고 했던 모양이군요." - P59

도로에는 눈이 녹아 있었다. - P55

"그럼 이 섬에 와서 꿈을 이룬 셈이네요.‘
"그런 셈이죠."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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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서 "아가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돌아보았다. 아가씨라는데 돌아볼 나이는 아니지만, 그냥 소리가 나니 돌아봤을 뿐이다. 나를 부른게 맞았다) 아주머니와눈이 마주쳤다. 똥 씹은 얼굴로 내 얼굴을 본다. 나보다 몇살 더 많아 보이지도 않는 아주머니는 민망하도록 나를 빤히 들여다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상왕십리 가는 지하철 어디서 타요." - P31

각설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대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친구한테 돈을 빌려주어서 좋은 결과로끝나지는 않았다. 친구의 짐을 나눠 들 수야 있지만, 짐을떠맡긴 채 연락 없는 친구를 계속 친구라고 생각할 만한 아량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었으니 이자는 톡톡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 P23

번역하다 후지산 이마(富士類)라는 말이 나와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이마 가장자리가 후지산봉우리처럼 생긴 것을 후지산이마라고 한단다.
후지산 봉우리라면 ‘M‘자처럼 생긴 것?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다…………. 그것은 ‘M‘ 자 이마, 내 이마였다.
낫 놓고 기역 자 검색했어. - P91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오조오억 명이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싫어하는 오조오억 명에 들어가기 싫은 게 사람의 마음. - P85

대부분 편집자가 퇴사 메일을 보낼 때, 공통적으로 하는말이 있다. ‘몸이 좋지 않아서 당분간 쉬기로 했어요. 그만두는 사연은 각자 다를 텐데 전부 자기 몸 탓으로 돌린다.
뒷모습도 아름다운 사람들. 매뉴얼이 있는지 친한 편집자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2주 전이면 이미퇴사가 결정된 상황일 텐데 출판사에 관한 이런저런 물음에 단 한 마디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던 어린 편집자,
참 기특하다. - P81

번역 의뢰를 받고 편집자를 만났다. 초면이다.
처음 만나도 오래 만난 사람처럼 수다를 잘 떠는 게이아줌마의 특징이다. 그래서 편집자는 진짜 오랜 지인처럼 느껴졌는지, ‘사실 말이죠‘ 하고 운을 뗀다.
"사실 말이죠. A선생님한테 의뢰했는데 시간이 안 맞는다고 하시고, B선생님한테 의뢰했더니 안 한다고 하셔서 세번째로 선생님한테…………"
A, B선생님 다음에 내 이름을 떠올려 주어서 고오맙습니다. - P75

"어………어………" 하며 생각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그동안번역한 수많은 작가 이름이 빙글빙글 떠돌았다. 이 작가는아실까, 저 작가는 아실까, 생각하다 결국 모를 수가 없는작가 이름 하나를 겨우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도 좀 했고요………… - P39

견명도 제천인데 눈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잃어버린 이작은 노견한테 무조건 오래 살길 바라는 건 사람의 욕심이겠지. 그저 남은 견생, 아프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 힘들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너의 눈이 되고 싶다.
나무야.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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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차가운 돌 위에 올리는 꽃을, 사실 우리 자신에게도 주어야 한다. 꽃에서 서서히 물기가 마르고,
꽃잎이 열 장에서 두 장, 한 장이 될 때까지 바라보는일을 우울하거나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이것을 평화로운 저녁 인사로 주고받을 수 있으면좋겠다. - P163

매일 산책하는 사람들은 자연이 돌연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2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봄은 존재했다. 흙이 부풀어 올랐고 나무줄기의 색이 바뀌었다.
벌레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고양이들의 소요가 길어졌다. 동그란 물방울을 입안에서 굴리듯 지저귀는 새가숲에 새로 왔다. 봄은 단서들을 한껏 뿌리고 다녔건만,
도시의 건물 안에서는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 P147

창문을 더는 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의 유년은끝이 났다. - P131

늘창문 안에서 바깥을 엿듣고 엿보기만 한 건 아니다 가끔은 나의 이야기책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P131

나에게는 하나의 창문이면 충분하다.
이해하고, 느끼고, 침묵하는 순간의 창문 하나 - P130

문학은 결국 문과 창문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나보다. 단단한 벽을 뚫어 통로를 내고, 거기 무엇을 드나들게 하고, 때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 밖을 밖에서 안을 살피는 일. - P111

이제 나는 가진 것 중 가장 단단한 나무를 재단하고, 사포질을 하고 있다. 이것으로 다시 길고 긴 계절의틈을, 하룻밤의 간격을 메워볼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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