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김밥과 음료수, 사과를 사 들고 아줌마들이 모여 있는 계단 밑 공간에 갔다. 라면 상자를 펼쳐 자리를 만들었다. 수다 삼매경에 한창 빠져 있는데, 반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식품부의 채소류 냉장고 밑에 물이 떨어졌으니 어서 가보라는 불호령이었다. - P155
그날의 광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생기면 먹고 없으면 굶고 산 한 생(生)이었다. 달도 쩍쩍 얼어붙는 엄동설한에 할아버지는 얼음 덩어리로 가시고, 장례에 쓰고 남은밀가루로 동네잔치를 벌이자 동네는 비로소 떠들썩해졌다. 그 광경이 나는 지금도 너무 넓다, 할아버지를 팔아 벌인 잔치같아서. - P110
가쁜 숨을 들이켜던 할머니가 물 한 잔을 더 청했다. 이번에도 단숨에 마시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 P95
결핍과 사랑,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사랑의 결핍 속에 산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게 일반론이다. 사랑을받지 못한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 P82
어쨌든 본능은 치열하다. 어머니 임종 때가 떠올랐다. 저녁을 드신 후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하셨던 어머니. - P214
하루 일이 수월하게 끝났다. 한 시간 만에 밥을 다 먹였다. 커피를 타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 보니 웬 할머니 한 분이 서 있다. "누구세요?" "어? 누구셔? 어디 갔나?" - P222
환자의 트림 소리, 그 소리는 환자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임과 동시에 남자와 내가 함께 소통해야 할 시간의 전주곡 같았다. 환자가 남자와 나 사이의 벽을 거두어준 격이 됐다. 감사함을 느끼며 여자를 향한 내 쓸데없는 우려를 한쪽으로 미뤄놓았다. 그 우려와 함께 따라오던 나의 오래된 습관 ‘나는 왜 사나?‘ 하는 생각에서도 벗어나 보기로 했다 - P222
"그게 아니고요. 병원에서 몸 쓰는 일은 위험하니 앞으로하지 말래요." - P236
보는 것도 아니고 실습은 집에서 하셔도 될 거고. 두 달 동안내가 시간 채워줄게요." "벌어먹어야 한다며 누이는 일 못해서 어쩌누?" 딴소리하며 남자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누가 누굴 걱정한대?" - P237
ㄴ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어머니 빨리 가시게 하는 불효를 자청했습니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많이 보아온 말기 암환우의 마지막 모습과 그 가족들의 안타까운 선택의 순간들이 그날 어머니의 병실 장면에 오버랩되어 내린 결정이었어요. 그때도, 지금도 잘못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요.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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