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며칠 전 도착한 메일에는 바람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강연 전날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결항될 수 있으니 하루 더 일찍 섬으로 들어와달라는 것이었다. 정현은 섬 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많지 않았다. 그래서 메일 속 바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요청받은 대로 그는 강연일보다 이틀 먼저 출발했다. 지금 생각하면다행이었다. 그날은 12월 중순이었지만 온화하고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은 상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 P39

"그게 아니라면?"
내가 물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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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맥주를 마시며 존에게 답장을 보냈다.
‘해피 버스데이, 존.’ - P174

-화장터 가죠? 우리도 놓쳤어요! - P169

m의 장례식을 치른 뒤, 나는 남자친구와 나 사이의 무엇인가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영화가 끝났는데도 아무도나가지 않는 영화관에 앉아 영화보다 더 긴 엔딩 크레디트를 함께지켜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애초에 우리의 연애는 절대적인것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남자친구가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살아온 것처럼 나는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남자친구를 사랑했다. - P167

-내 심장이 타고 있다. 그런 거 아니지? - P129

진강이의 반응에 갑자기 이 여정이 해볼 만한 일처럼 느껴졌다.
진강이의 고향까지는 사백 킬로 남짓. 차는 고속도로로 진입하고있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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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 푸르고』를 열면 「미망 혹은 비망」 연작이 시작되는데그 첫 두 편이 위와 같다. 이전 시집 세 권을 읽은 독자라면 이 시들에서 놀랄 만한 것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80년대들에서 이미 다 발설된 자기인식이 재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 P272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최승자는 여전히우리 곁에 있다. 이제 저 질문을 다시 던져볼 때가 되었다고 나는느낀다. 그리하여 세기말은 그에게 무슨 낙인을 찍었던가.‘ 이렇게 달리 물어도 뜻은 같다. ‘90년대는 최승자에게 무엇이었나?‘
최승자의 시집 일곱 권을 앞에 놓고 있자니 저 질문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 P270

많은 학자의 말대로 ‘5월 공동체‘는 개별성에서 연대성으로 도약하는 인간성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죽고 싸우고 따르는, 그런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지고한 경지 하나를 재현하는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간임을 위한행진곡이다. 이 노래를 우리의 국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과분해서다. 이 노래가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자격이 없어서다. - P267

당연하게도 이런 나르시시즘적(우울증적) 주체에게서는 사랑이 발생할 수 없다. 타인의 심연 같은타자성과 충돌하면서 내가 나로부터 빠져나와 거듭나는 드문 체험이 사랑이라면 말이다. "에로스는 주체를 그 자신에게서 잡아채어타자를 향해 내던진다. 반면 우울증은 주체를 자기 속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양자택일이다. ‘우울증이냐, 에로스냐.‘ - P259

전화기나 야구공을 몇 번씩 바꿔 쥐듯이, 또 갤러리에서 작품을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에 서듯이, 우리는 신체를 통해 이 세계와 최선의 방식으로 만나기를 원하며,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드레이퍼스는 두 최고경영자가 회사 합병을 결정할 정도로서로를 신뢰하게 되려면 여러 번의 원격회의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결국 그들의 거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최종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최적의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가벼운 악수와 포옹을 해야만 생겨나는 확신, 이것을 ‘접촉신뢰‘라고 부르면어떨까. 원격현전은 접촉신뢰를 대체하지 못한다. 강의도 그렇고연애도 그렇다. 20년 동안 우리는 바뀌지 않았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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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다 파낸 가슴에 귀를 얹은 채구공탄이 허물어지는 골목처럼 - P20

AA를 좋아합니다설산을 그대로 받아쓴 것 같아서 - P15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급하다고, 다짜고짜 가게에 쓸 재료를 부르기 시작했다 멸치 마늘 양파 홍합 갈치 순두부 갑자기 꽃을 하나 사달라 했다 - P13

색을 다 뺀 무지개를 툭툭 썰어서 간장에 찍은 뒤 씹어 삼킨다 죽은 사람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 것, 입속에서 일곱 색이 번들거린다 - P11

그리고나는, 함부로 더 이상해져야지꽃술을 만지던 손끝으로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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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배워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통근 버스에서 다짐했다. 근데 무슨 기술을 배워야 할까? 막연함은 의외로 금방 해소되었다. 좋은 인연과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 P113

‘용접‘은 힘든 노동의 상징처럼 세상에 알려져 있다. 나역시 달리 생각지 않았다. 눈앞에 태양만큼 눈 따가운 빛이 아른대고 사방으로 벌건 불똥이 튀어대는 위험한 일로치부했다. 처음으로 용접면을 쓴 순간, 내 짧은 인식이 얼마나 큰 편견덩어리였는지 깨달았다. 온통 어두운 시야 속번뜩이는 불꽃만 남은 망망대해 위에서 치열하며 섬세한손놀림이 8자를 그리며 흐느적댄다. 천천히 진군하는 용융 풀은 나긋하게 산책 나온 주홍 반딧불이 같다. 목적지에 도달한 불길이 사그라지고, 지나왔던 길엔 위아래 간격이 똑바른 용접 비드만 남아 철판과 철판 사이를 메우고있었다. "어때, 해볼 만할 것 같애?" 아저씨의 물음에 살짝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근사하네예!" 처음으로 용접을 접한 날이었다 - P115

"야, 현우야, 우리 없으면 누가 다리 만들어주냐? 우리뿐만 아냐. 청소부, 간호사, 택배, 배달, 노가다, 이런 사람들 하루라도 일 안 하면 난리 나저기 서울대 나온 새끼들이 뭐하는 줄 알어? 서류 존나 어렵게 꼬아놓고, 돈으로 돈따먹기만 하고, 땅덩어리로 장난질이나 치지. 그런 새끼들보다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 기죽지 마." - P116

사람들은 앞으로 수십년동안 이 다리위를 오갈 테고. 누군가는 연인에게 사랑 고백도 하겠지.
어쩐지 근사한 일을 해낸 듯해서 혼자 한 일도 아닌데 괜히 대견해졌다. 그날은 포터 아저씨와 오후부터 시작해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 P122

"그래, 고데기질 이기 돈은 안 돼도 손맛은 직인다. 해보면 재밌을 끼라 그라믄 니는 자격증 딸래, 아이면 실전 조지볼래?"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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