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 푸르고』를 열면 「미망 혹은 비망」 연작이 시작되는데그 첫 두 편이 위와 같다. 이전 시집 세 권을 읽은 독자라면 이 시들에서 놀랄 만한 것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80년대들에서 이미 다 발설된 자기인식이 재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 P272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최승자는 여전히우리 곁에 있다. 이제 저 질문을 다시 던져볼 때가 되었다고 나는느낀다. 그리하여 세기말은 그에게 무슨 낙인을 찍었던가.‘ 이렇게 달리 물어도 뜻은 같다. ‘90년대는 최승자에게 무엇이었나?‘
최승자의 시집 일곱 권을 앞에 놓고 있자니 저 질문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 P270

많은 학자의 말대로 ‘5월 공동체‘는 개별성에서 연대성으로 도약하는 인간성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죽고 싸우고 따르는, 그런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지고한 경지 하나를 재현하는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간임을 위한행진곡이다. 이 노래를 우리의 국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과분해서다. 이 노래가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자격이 없어서다. - P267

당연하게도 이런 나르시시즘적(우울증적) 주체에게서는 사랑이 발생할 수 없다. 타인의 심연 같은타자성과 충돌하면서 내가 나로부터 빠져나와 거듭나는 드문 체험이 사랑이라면 말이다. "에로스는 주체를 그 자신에게서 잡아채어타자를 향해 내던진다. 반면 우울증은 주체를 자기 속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양자택일이다. ‘우울증이냐, 에로스냐.‘ - P259

전화기나 야구공을 몇 번씩 바꿔 쥐듯이, 또 갤러리에서 작품을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에 서듯이, 우리는 신체를 통해 이 세계와 최선의 방식으로 만나기를 원하며,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드레이퍼스는 두 최고경영자가 회사 합병을 결정할 정도로서로를 신뢰하게 되려면 여러 번의 원격회의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결국 그들의 거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최종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최적의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가벼운 악수와 포옹을 해야만 생겨나는 확신, 이것을 ‘접촉신뢰‘라고 부르면어떨까. 원격현전은 접촉신뢰를 대체하지 못한다. 강의도 그렇고연애도 그렇다. 20년 동안 우리는 바뀌지 않았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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