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 지는 파도에 발을 씻으며 먼 곳을 버리기로 했다.
사람은 빛에 물들고 색에 멍들지. 너는 닿을 수 없는 섬을바라보는 사람처럼 미간을 좁히는구나. - P9

수평선은 누군가 쓰다 펼쳐둔 일기장 같아. 빛이 닿아뒷면의 글자들이 얼핏 비쳐 보이듯, 환한 꿈을 꺼내 밤을비추면 숨겨두었던 약속들이 흘러나와 낯선생이 문득 겹쳐온다고. - P9

어스름을 뒤집어 여명을 꺼내면 가라앉는 골짜기마다환한 어둠들이 차올랐다 그건 너무나 아름다워 깨어져야만 안심이 되는 유리잔 같았지 - P11

벽을 두드리면 남아 있던 밤이 뒤척였습니다 - P15

돌이켜보아도 무례한 빛이었다. - P17

달은 실패했다. 구해줘. 추락하기 전에, 달은 잠시의 바다로 깊이 잠겨들었다. 끝까지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익숙한 밤이 찾아온다. 오직 끝없이 가라앉는 너만이 차갑고 텅 빈 이 밤을 알아본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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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어느 밤이었다. - P6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죽음은 물음표로 남겨 둬야 한다고, 여전히믿는다. - P7

내일은 그런 사치를 허락하지않았다. 물음표 대신 마침표를 더 자주 써야 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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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태어나는 중인 고백처럼. - P54

하나의 알은 하나의 완전함이며 흐르기 전의 눈동자다. 그렇기에 껍데기를 깸으로서 알의 세계를 침범하려는일은 불온하고 죄스럽다. 계란을 깰 만한 적당한 모서리를가늠하며, 이종의 도형을 가르고 들어가 그 속을 마주할 자격을 묻는다. 지금 이 테두리를 부수지 않는다면 알은부화할 것인가. 안쪽부터 썩어들 것인가. - P51

계란을 쥐어본다. 피부와 닮은 껍데기의 색이 손안을채운다. 이 나름의 견고함을 부수어 마음이라 여기던 것에몸을 만들어줄 것이다. - P52

속수무책과 엉망진창.
때로 여름은 이 두 단어를 완성하기 위한 계절 같다. - P56

퍼져나가는 달콤함. 복숭아를 생각하면 조금만 스쳐도 멍들 준비가 된 육체 같고 언제든 손목을 타고 흐를 소문 같아서 극도의 예민함과 자포자기의 마음이 한꺼번에밀려온다. 가느다란 솜털을 잔뜩 세우고 웅크린 작고 유약한 짐승. 아름답거나 무너지거나. 완벽하거나 망가지거나.
두가지 선택지만 있다는 듯이. 복숭아의 이분법에는 완벽주의자들의 강박 같은 단호함이 느껴진다. - P57

언니, 그 이후로 나도 물복이 좋아졌어요. 진심으로 엉망과 진창을 사랑하기로 했거든. - P59

짓물렀다는 건 너무 길게 머물렀다는 뜻일까, - P63

층층과 겹겹. 차곡차곡 쌓아올린 생각의 단면. - P66

To toss or to stir up.
가볍게 섞고 휘저으며 소용돌이치는 모양으로 - P74

라따뚜이를 만들다보면 신은 무척 열성적인동그라미 매니아, 항성 수집가였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밖에 없겠다. 겹쳐지며 뜨거워지는 이 작은 소용돌이가 안드로메다 은하처럼 오븐 속에 잠겨 회전할 때. - P80

그건 꽃에게서 문법을 배워 여름에관여하고자 하는 오래된 놀이이자 겨울 첫눈에 미리보내두는 초대장입니다. - P83

보름에서 반달로, 반달에서 초승으로, 초승에서 그믐으로.
양파를 썰어 희고 연약한 낮달들을 연이어 발굴하는일은 맵고 또 달다. - P96

시선을 막는 글자의 방패. - P105

헤아리고〔料] 다스린다[理]는 요리의 핵심은, 다루는재료의 물성을 조심스럽게 파악하여 그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독이는 것에 있다. - P107

기다림도 연습해야 실력이 늘어난다. 와시다 기요카즈鷲田淸—는 그의 저서『기다린다는 것불광출판사 2016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 어쩔 수 없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고 단지 가만히 있을 수밖에없는"20면 것들을 마주해 단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때 기다림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기다림은 미래를 향해 자신을 열어두는 일이며, 무언가 찾아올 수 있게 내 안에 공간을 만드는 실천이라는 것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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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 - My Dog’s Diary
권남희 지음, 홍승연 그림 / 이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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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웃기고 너무 슬프고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권남희 작가님이 세상 모든 반려인들에게 건네는 가슴 찡한 나무와의 시간들 순간들 그리고 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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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된 강아지야. 언니 종교도 없는데 이제 맨날 나무한테 빌어야겠다! 언니가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피곤하겠지만 하던 대로적당히 씹어. 나무야, 우리 가족이 돼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네게도우리가 좋은 가족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늘 무덤덤해서 표현은 별로 안 했지만, 너도 사실은 언니랑 엄마 엄청 사랑했지?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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